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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의 한 걸음 더

개인의 대학 기부금으로선 사상 최대 액수인 305억 원을 부산대에 쾌척했던 ㈜태양 송금조 회장이 이번에는 1000억 원의 사재를 털어 교육문화재단을 설립키로 했다. 부산대와 송 회장의 측근에 따르면 송 회장은 자신의 호인 ‘경암(耕岩)’을 따 ‘경암교육문화재단’을 설립하고 조만간 재단법인 등기를 할 계획이다. 부산대와 교육문화재단에 출연할 1305억 원은 그가 모은 대부분의 재산이어서 입버릇처럼 말하던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자신의 약속을 지킨 셈이 됐다.“(2003년 11월 4일자 동아일보 기사)

단지 기부의 액수가 커서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이 아니다. 무슨 큰 죄를 짓고 큰돈을 내서 국민 여론의 불을 끄려는 대기업 오너였다면 우리는 시큰둥했을 것이다. 평소 “‘자린고비’ ‘구두쇠’ 등의 별명을 갖고 있는 그가, “경남 양산에서 태어나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해 부산에서 온갖 잡일을 마다하지 않고 해내며 푼푼이 돈을 모아 중소기업을 운영했던 그”가 이 크고 아름다운 결심을 했던 것 때문에 우리는 감동을 받는다.


문제는 그 후의 일이다. 약속한 기부금의 일부가 건너간 상태에서 부산대는 송 회장의 요망대로 ‘캠퍼스 부지대금’조로 일부만 쓰고 나머지 대부분의 기부금은 연구기금으로 사용해 버렸다. 송 회장은 그 시정을 요구하고 나섰고 그 과정에서 좋지 않은 언사들이 오가고 마침내 최근 송 회장은 나머지 기부금을 주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채무부존재확인의 소까지 제기하는 사태에 이르렀다고 한다.


기부문화를 위해 뛰고 있는 모금운동가로서는 이 사건이 참 아쉽고도 충격적인 사건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법정으로 이 사건이 갔으니 법정에서 모든 문제가 가려질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귀추가 어떻게 되든 간에 부산대의 잘못이 크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기부자의 요청과 달리 엉뚱한 곳에 썼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손님은 무조건 옳다”라는 말이 있듯이 “모든 기부자는 옳다”는 말도 맞기 때문이다.


나는 늘 아름다운재단 간사들에게 “전화 한마디로 수백억이 왔다 갔다 한다”고 말한다. 전화로 울려오는 말 한마디, 그 인상 때문에 수백억을 기부할 수도,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지 전화상의 친절이 중요하다는 것을 넘어서서 기부자를 대하는, 아니 세상 모든 사람을 대하는 성실함과 정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부자에게나 가난한 사람에게나 돈은 귀한 법이다. 그 귀한 돈을 그 누군가에게 기부한다는 것은 존경받아 마땅한 일이다. 모금을 하는 사람들은 기부자의 뜻을 받들도록 정성을 다해야 한다. 미국에서 재단들이 늘어나고 융성한 것은 바로 기부자의 뜻을 최대한 받아들이는 ‘기부자 조언 기금’(Donor Advised Fund) 때문이다. 자신의 귀한 돈을 기부하고도 즐겁고 보람 있게 만드는 것은 그 돈이 제대로 자신이 원하는 곳에 쓰여서 그만큼 어려운 사람들이 격려 받고 세상이 그만큼 변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원하는 곳에 쓰지 않거나 기부자의 뜻에 반하는 곳에 사용하거나 아니면 그 기부자를 모독하거나 명예를 손상하는 일이라도 한다면 그것은 기부의 본뜻을 훼손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소송에서 송 회장은 “만약 부산대학 측에서 사과하고 본래의 요구대로 쓴다고 한다면 나머지 약속한 기부금까지 다 낼 수 있다”고 했다. 송 회장의 소망대로 기부한 돈이 쓰이고 그에 따라 나머지 돈이 모두 기부되어 기부를 받는 부산대학 측이나 기부를 하는 송금조 회장 측에서나 모두 만족하는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그럼으로써 송 회장의 귀한 뜻이 이 일을 바라보는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움직여 제2, 제3의 송금조가 나오기를 바랄 뿐이다. 어찌 보면 기부자를 대하는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온 사회에 알려줌으로써 이번 사건이 한국의 기부문화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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