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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종의 사막을 건너는 법

텔레비전 뉴스 후반부에 2~3분 방영되는 일기예보는 시청자가 많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이 시간에 나오던 남자 기상 캐스터들이 차츰 사라지고 그 자리를 젊은 여자 아나운서들이 차지해 갑니다. 이들 여자 기상 캐스터들의 패션은 갈수록 화려해지고 있습니다. 근래에는 가슴과 히프의 볼륨을 강조하는 의상이 눈에 많이 띕니다. 보통 앉아서 말을 하는 뉴스 앵커와 달리 움직이면서 구름사진과 기상도를 설명해야 하니 제작자들이 더욱 시청자의 시선에 신경을 쓰는 모양입니다.

미모의 기상 캐스터들이 청산유수 같은 말솜씨를 자랑하며 날씨를 예보하는데, 마치 천기(天機)를 다 아는 것처럼 말합니다. 골프와 등산 등 주말 나들이, 출근길 우산 챙기기, 서비스 업종의 수요 예측, 고기잡이, 농사짓는 일 등 전 국민의 일상생활이나 기업 활동이 이 아름다운 숙녀들의 방송 예보에 따라 움직입니다. 기상 캐스터들이 자긍심을 가질 만합니다.

”?”그런데 요즘 기상 캐스터들이 수난기를 맞고 있다고 합니다. 장마 끝에 쏟아지는 게릴라성 폭우를 예보한 것이 맞지 않아 사람들의 불평이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오보의 원죄는 기상청에 있는데 캐스터들이 욕을 먹는 것은 확인을 못하고 잘못된 사실을 싣는 신문방송의 다른 오보가 여론의 질타를 받는 것과 생태가 비슷합니다.


번번이 틀리는 예보에 쏟아지는 비판


텔레비전 뉴스의 일기 예보를 들으면 어색합니다. 기상 캐스터들은 천문을 다 아는 것처럼 일기 예보를 해놓고, 뉴스 앵커는 자기네 방송을 통해 나간 예보가 틀렸다고 따가운 비판을 퍼붓습니다. 비판의 표적은 물론 예보 자료를 제공하는 기상청이지만 그 예보가 틀린 것을 비판하거나 변명해줘야 하는 일은 전문지식을 갖춘 기상 캐스터가 먼저 해줘야 할 일인 듯 싶은데 말입니다.

폭우 예보가 번번이 틀리자 이만의 환경부 장관이 뿔이 났습니다. 환경장관이 기상청 수뇌부를 향해 무능력을 꾸짖고 ‘기상 전문가 수입’을 공언하고 나섰습니다. 이명박 정부들어 정부직제 개편으로 기상청이 환경부 산하기관으로 편입되어 비대해진 조직만큼 장관의 힘은 커졌으나 그 힘을 맛보기도 전에 폭우 예보가 맞질 않아 여론이 들끓으니 장관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입니다.

기상청은 할 말이 없어졌습니다. 근년에 일기 예보를 잘 맞힌다는 평가도 받았으나 몇 번의 오보로 그만 도매금으로 무능력 기관이 되고 말았습니다.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겠지만 겉으로는 벙어리 냉가슴일 수밖에 없습니다.

기상청에는 슈퍼컴퓨터도 있고, 박사들이 수두룩 모인 연구소도 있고, 국가의 녹을 먹는 인력이 1,200명이나 됩니다. 여론, 특히 우리의 국민 정서는 한번 불길이 번지면 정치권력과 경제이론은 물론 과학이론도 꼼짝 못하게 만듭니다. 정부 조직의 서열로 보나 여론으로 보나 환경장관의 질타에 기상청장은 숨을 죽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중앙정부 관료로 잔뼈가 굵어온 장관과 기상 전문 공직자로서 평생을 보낸 청장이 정말 여론과 관료조직의 속성을 배제한 채 진지한 논의를 통해 일기 예보의 정확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게 종합적 시스템 개혁을 해보면 어떤가 하고 말입니다.

두 사람이 깊이 숙의하면 관료조직의 문제는 무엇이고, 과학적 문제점은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일을 그 누구보다도 잘 해낼 것입니다. 그게 그들이 해야 할 임무이니까요. 날씨 현상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관리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쌍방에 다 문제가 있는지를 체계적으로 점검할 좋은 기회가 아닐까요? 그리고 나면 외국 전문가 수입 필요성 판단도 합리적으로 이뤄질 것입니다.


기후가 변한 것인가,시스템이 문제인가


기상전문가를 수입해 온다니 얼핏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축구 대표 팀 감독으로 거스 히딩크를 영입했던 일이 떠오릅니다. ‘전문가 수입’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히딩크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효과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하게 됩니다. 히딩크의 리더십으로 한국 축구는 톡톡히 재미를 봤지만 그가 떠난 후 한국 축구는 질적으로 나아진 것이 없이 옛날 관성으로 돌아갔습니다.

과학기술은 스포츠와는 달리 지식이 축적되는 효과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외국 전문가가 한국의 특수한 국지적 기상현상에 통달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언젠가 기상전문가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슈퍼 컴퓨터를 갖다 놓으면 저절로 날씨가 어떻게 변할 것인지를 알려주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합니다.”

슈퍼 컴퓨터도 기계, 즉 하드웨어입니다. 적절하고 정확한 자료가 입력되어야 하고 이를 분석하고 예측하는 수치예보 모델이 잘 개발되어야 한다는 것이 정확한 일기 예보의 전제조건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는 화성 탐사선을 쏘아 올려 몇 달 동안 우주공간을 여행한 후 거의 정확히 목표지점에 착륙시켜 화성 표면을 사진으로 찍어 지구로 전송하는 과학기술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주일 후에 서울에 소나기가 내릴지를 알 수 없습니다. 게릴라성 호우를 예측한다 해도 정확한 강수량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날씨의 변화는 ‘복잡계’라는 이름아래 카오스의 세계로 분류합니다.    

1950년대 MIT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가 컴퓨터를 이용한 날씨 예측모델을 연구하다가 ‘기상변화는 갈매기의 날갯짓과 같은 인간이 감지할 수 없는 미세한 초기조건의 변화에 따라 그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는 개념을 세웠습니다. 그의 주장은 “아마존 우림에서 한 마리 나비의 날갯짓이 며칠 후 텍사스에서 토네이도로 변할 수 있다”는 버전으로 ‘나비효과’로 이름 붙여졌습니다. 뒤집어 얘기하면 미래 날씨를 예측하는 것은 시간이 멀수록 또 특정지역에 국한할수록 어렵거나 불가능해진다는 말입니다.

근년에 우리나라 기상, 특히 여름 날씨가 종잡을 수 없이 변해갑니다. 특히 게릴라성 폭우가 예측불허로 쏟아지고 그 홍수피해가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아열대 기후로 변하면서 폭염, 식물분포, 모기서식지 변화, 바다의 적조 등이 국민생활에 큰 영향을 줍니다.

이런 현상을 기후변화 외에 다른 이유로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지금은 게릴라성 폭우로 기상청이 곤욕을 치르고 있지만 앞으로는 어떤 변화무쌍한 날씨가 심술을 부릴지 모릅니다. 그럴수록 기상예측의 정확도를 향상시켜야 할 과학적 요청은 커집니다.

날씨의 룰이 바뀌는 게 분명하니 이 기회에 전문성을 갖고 ‘쿨’하게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 이 칼럼은 전직 언론인들의 칼럼 사이트 자유칼럼그룹에도 함께 게재했습니다.

올챙이 기자로 시작해서 주필로 퇴직할 때까지 한국일보 밥을 먹었다. 혈기 왕성한 시절의 대부분을 일선 기자로 살면서 세계를 돌아 다녔고 다양한 이슈를 글로 옮겼지만 요즘은 환경과 지방문제, NGO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이제는 글 쓰는 것이 너무 지겹다’고 말하면서도, 지난 100년 동안 지구 평균 기온이 0.6도 올랐다는 사실이 인류의 미래에 끼칠 영향을 엄중히 경고하기 위해서 사막을 다녀온 후 책을 쓰고, 매주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그는 여전히 현장에 있고 천상 글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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