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편집자 주 / 김해창 희망제작소 부소장은 재팬 파운데이션(japan foundation) 주최로 아시아 7개국 7인의 공공리더를 초청하는 ‘2008 아시아 리더십 펠로우 프로그램’의 한국인 대상자로 선발되었다. 그는 앞으로 9월부터 약 2개월 동안 ‘다양성 속의 일치’를 주제로 일본에서 연구활동을 하면서, ‘일본리포트’를 통해 실시간으로 연구 및 현장 소식을 전할 예정이다.



9월 9일(화)

아침에 8시쯤에 눈을 떴다. 국제문화회관 식당에 내려가니 중국의 구이안 교수가 와있었다. 이어 인도의 샤르마 교수 그리고 필리핀의 치토 변호사가 왔다. 우린 자연스럽게 4명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음식을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구이안 교수가 말을 꺼냈다.


‘나’를 표현하는 말 我에 대한 동서양의 해석 차이

구이안 교수는 중국의 경우 ‘나’를 표현하는 말로 ‘워(我)’와 ‘우(吾)’라는 말이 있는데 지금은 주로 ‘워’를 쓰지만 예전엔 ‘우’도 함께 썼다고 한다. 테이블에 깔아놓은 종이에다 한자를 써가며 설명을 했다. ‘워’ 즉 우리말 ‘아’라는 글자는 한자로 보면 ‘손 수(手)’와 ‘창 과(戈)’ 자가 합쳐진 것인데 이 ‘나’라는 글자는 사회와의 관계에서 나를 인식한다는 말이라는 것이다. 중국인의 관점에서 보면 이 ’아‘라는 글자는 창을 들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나를 보호하고자 하는 모습으로 이것이 한 개인의 실체임을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서양인의 입장에서는 창을 들고 있는 모습은 필시 단순히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공격하는 주체로서의 개인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즉 ‘나’라는 말은 자신을 남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독립인임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어서 그는 ‘워’라는 말 즉 ‘나 오(吾)’라는 말에 대해서도 이렇게 풀었다. 이 ‘오’자는 평화를 지양하며 우주 또는 환경과의 소통이 가능한 정보 집약체로서의 개인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즉 이를 풀면 ‘다섯 오(吾 )’와 ‘입 구(口)’의 합성어인데 즉 ’오감(五感)‘을 갖고 있는 존재로서의 인간, 그것이 한 개인이라는 것으로 사람이 곧 ‘소우주’임을 의미한다고 했다. 여기다가 ‘마음 심(心)’이 붙은 ‘깨달을 오(悟)’자는 ‘육감’ 또는 ‘영감’까지 포함하는 말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인도의 정치사상가인 샤르마 교수는 구이안 교수의 말에 동감하면서 그것이 인도철학에서 나왔다고 강조했다. 인도철학에는 우주가 5가지 요소로 구성돼 있는 것으로 보는데 이러한 요소와 사람이 일치된 생활을 할 때 평화를 누릴 수 있고 말했다. 빵과 우유, 샐러드로 아침을 먹는 짧은 시간에 이러한 이야기를 주고받았을 수 있었다는 게 신기했는데 이러한 ‘나’를 안테나 삼아 우주의 주파수에 잘 맞춰 살아가는 것이 건강하고 평화로운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다들 공감했다.

식사를 마치고 호텔 방으로 올라가는데 구이안 교수가 옆방에 있는 나와 치토 변호사보고 잠시 자기 방에 들러보자고 한다. 방에 들어서자 중국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과 폐막식 CD를 한 장씩 선물로 준다. 그리고 접는 부채도 하나씩 나눠 주었다. 펠로우들에게 줄 선물을 미리 챙겨왔던 것이다. 정말 성의가 대단하고 매우 부드러운 사람임을 느낄 수 있었다.

오전 9시 반부터 호세(法政)대학의 스즈키 유지 교수의 특강이 약 2시간에 걸쳐 이어졌다. 물론 영어로 했다. 스즈키 교수는 동남아 국제정치학이 전공이다. 1944년생으로 도쿄대학 및 대학원을 나와 1971년에 인도네시아의 모나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대학과 인도네시아대학 그리고 말레이시아대학에서 강의를 했고, 1983년부터 호세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분이었다. 저서로는 ‘Global Environmental Security(English)(Springer, Berlin, 1996)’, ‘위기의 동남아시아(게이소서방, 도쿄, 1982)‘ 등이 있다. 스즈키 교수는 이번 ALFP의 첫 강의가 일본경제에 관한 것으로 재미가 없고 머리만 아프게 할 것 같아 미안하다고 웃으며 시작했다.


”?”일본은 침몰할 것인가?

스즈키 교수의 강의 주제는 ‘침몰하는 일본-떠오르는 아시아에서 일본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가’이다. 먼저 영어자료와 함께 일본어 통계자료를 건네주었다.
먼저 그는 “일본은 침몰할 것인가?”하고 운을 뗐다. 그는 지난 2월 일본 재무성 장관을 지냈던 오타 히로코 씨의 말을 빌어 “일본은 더 이상 일등 경제국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일등 경제국’이란 표현엔 일본의 이기주의적인 마인드가 들어있음을 숨길 수가 없다면서 왜 그런지 각종 통계자료를 보여주며 설명해갔다.

일본 내각부 자료에 따르면 1인당 명목 GDP가 1993년에는 룩셈부르크가 1위(39,674 달러), 일본이 2위(35,008달러)였는데 2006년에는 1위는 여전히 룩셈부르크(89,840달러)이지만 2위는 노르웨이(71,857달러)이고 일본은 18위(34,252달러)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물론 아시아에선 20위 권내에 드는 나라가 아직은 일본 외에는 단 한곳도 없었고 스페인만이 1993년(12,986달러)이나 2006년( 27,925달러) 모두 똑같이 20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IMD(The International Institute for Management Development)의 국제경쟁력 순위를 보면 1996년 4위이던 일본이 2007년에는 24위로 엄청나게 떨어졌다. 1위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부동의 미국. 2위, 3위도 싱가포르, 홍콩이 차지하고 있다. 참고로 1996년에 26위이던 중국, 27위이던 한국은 2007년에는 각각 15위, 29위로 차이가 벌어지고 있다.

일본의 ‘국제군사 데이터 2007·2008’에 나오는 각국 국방비 비교에서 1991년에 2,271억 달러였던 미국은 2005년에도 5,050억 달러로 부동의 1위이며, 91년 6위(165억달러)였던 일본은 2005년에도 6위(439억달러)이지만 91년 8위(120억 달러)이던 중국의 경우 2005년엔 2위(1,030억달러)로 군사대국으로 급격히 떠올랐다.

OECD의 학습도달도 조사 자료(2006년)를 보면 일본은 ‘과학적 활용력’면에서 핀란드, 홍콩, 캐나다, 대만, 에스토니아에 이어 6위(한국은 10위 필리핀에 이어 11위)이다. 이는 지난 2000년, 2006년 조사에서 이 부문에선 공히 2위였던 일본이다. ‘수학적 활용력’에선 대만, 핀란드, 홍콩, 한국, 네덜란드, 스위스, 카나다, 마카오, 리히텐슈타인에 이어 10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2000년 조사에선 이 부분에서 1위, 2003년 조사에선 6위였는데 이 또한 내려갔다. 그리고 ‘독해력’에 있어선 한국이 1위, 핀란드, 홍콩이 2,3위를 차지했는데 일본은 15위로 돼 있다. 이 부분 또한 종전의 조사에선 8위, 14위였던 것이다.


‘한물 간 일본’ – 영국처럼 재생에 성공할 수 있을까

이러한 통계를 설명하면서 스즈키 교수는 글로벌리제이션으로 인해 일본은 ‘한물 간 일본’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이 ‘한물 간 일본’이란 표현은 ‘이코노미스트’ 일본판에 등장한 표현으로 일본인 경제평론가가 일본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한 것이라고 한다. 1980년, 1990년대 일본의 ‘버블 경제’는 정부의 정책 및 행정의 부적절한 지도에다 시장의 실패가 더해진 것으로 아직도 후유증이 남아있다고 했다. 특히 고이즈미 내각에서 후쿠다 내각에 이르기까지 잘못된 인사, 잘못된 정책으로 ‘정부의 실패’를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또한 G8의 쇠퇴로 글로벌 경제의 글로벌화는 더 이상 미국화가 아니고 미국식 ‘뉴 이코노미’의 종언 그리고 ‘잊혀진 일본’으로 나타나게 됐다는 것이다. 이는 클린턴시대와 IT혁명 등에 힘입어 북유럽 국가가 성장한 것과는 비교된다고 덧붙였다.

일본 국내로 눈을 돌려봐도 인구학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것이다. 고령화사회, 소자녀화, 결혼의 지연 등으로 2006년 내각부 통계를 보면 도쿄에서만 75세 이상이 100만 명이 넘을 정도로 고령화가 심각하다고 했다. 게다가 시골지역에 가면 50% 이상이 노인들이고 젊은 노동력이 없어 노령인구를 부양하기도 힘들며 대부분 외국인 노동자가 이주하고 있다고 했다. 이 때문에 중앙정부 차원에서 불법이주자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있지만 지자체 입장에선 이들이 없으면 농촌이 존재하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사실상 이주노동자를 묵인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재 일본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경제적 변화를 보면 더 이상 경제 성장이 없고 거시경제의 한계가 보이며, 풀뿌리 차원에서의 글로벌화, 아시아의 부상과 미국 경제의 쇠퇴로 일본은 아시아 이웃나라와의 경쟁력을 상당히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적 변화로는 도시 농촌간의 불평등이 확대되고, 계급차별이나 빈부격차가 심각해지고 있으며, 특히 일을 하기는 하지만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소위 ‘워킹 푸어(Working Poor)’나 사회적 낙오자 그리고 ’일 하지 않고 배우지도 않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게다고 젊은이들이 결혼을 하지 않으려 하기에 소비양식이나 가족 개념 자체에 큰 변화가 생기고 있는 것이 오늘날 일본이 안고 있는 큰 문제 중의 하나라고 덧붙였다.

스즈키 교수는 일본 재생의 시나리오로 “일본이 영국처럼 재생에 성공할 수 있을까”하고 물었다. 유럽과 아시아는 차이점도 있고 유사점도 있다. 아시아에서 일본의 위상은 어떠한 가고 다시 묻는다. 오히려 싱가포르나 다른 개발도상국에 의해 추월당한 것 아닌가. 그리고 동아시아공동체의 출현이 필요한가 하고 묻는다. EU가 일본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리고 여건은 어떠한가 하고 물었다.


다인종, 다문화 사회에서 NGO의 역할

그는 이렇게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누가 선택하고, 무엇을 선택하며, 무슨 이유로 선택할 것인가. 우리의 삶이란 게 뭔가. 그는 2007년 내각부가 발행한 일본 국민생활백서를 소개하면서 가족과 지역 그리고 일터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러한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 그것은 동남아시아에서 사회적 정책의 조정이 가능한가. 그리고 일본이 다인종 다문화사회를 잘 받아들이고 이에 잘 대처할 수 있는가에 달렸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속가능성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이제는 ‘에콜로지’와 함께 ‘인구문제’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데서 공동체 회복을 위해 NGO의 역할이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스즈키 교수의 발표가 끝나자 인도의 샤르마 교수는 언어 문제에 대해 말을 꺼냈다. “우리가 지금 영어로 얘기를 하고 있지만 하나의 언어를 쓰고, 쉽게 똑같은 사고방식을 가지는 것은 정말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인도의 성자 타고르가 ‘On Nationalism'(민족주의론)이란 책을 썼는데 그가 30,40대에 일본을 방문했을 때 느낀 것이 일본사회가 너무 계산에 밝고 사람이 위축되고 인간관계가 수단화되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좋은 의미에서 민족주의란 사람이 서로 행복하게 살아가며 희망을 만들어내는 단위로서 민족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며 이런 의미에서 인도가 비록 카스트제도와 같은 문제가 있지만 그래도 인도는 살만한 곳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네팔의 칼럼니스트 찬드라 씨가 말했다. 1920년대 네팔의 청년을 일본과 프랑스, 미국에 각각 5명씩 보낸 적이 있다고 한다. 일본에 간 친구들은 일본이 단일 민족이고, 같은 색깔에 같은 문화를 가진 것을 보고 “이것은 재앙이다”라고 말하고 돌아왔고. 프랑스, 미국에 간 친구들은 그곳의 다양성에 취해 그만 돌아오지 않고 거기에 들어붙어 살게 됐다고 한다. 네팔은 인도와 파키스탄이란 강대국에 끼어 새우등 터지는 격이기도 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민족주의는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프로그램의 주제도 ‘Unity in Diversity’보다 오히려 ’Diversity in Unity’라고 하는 것이 더 좋았겠다며 다양성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본의 이수임 교수는 최근 들은 이야기인데 한국의 청년들 상당수가 요즘엔 그다지 열심히 일도 하지 않고 회사에 크게 가려고도 하지 않고 하는 등 마치 일본의 현상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듯한 느낌도 드는데 이런 것은 나름대로 사회 차원에서 대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며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놓았다. 이 교수는 한국말은 거의 하지 못한다.

나도 한마디 했다. 결국 ‘침몰하는 일본’이란 얘기는 일본에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니고 한국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지금은 성장하는 것 같이 보이지만 곧 미래 중국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그것은 특정 국가의 현상이라기보다는 이제는 세계화되고 자본주의, 특히 천민자본주의에 빠질 경우 우리의 민족의식이나 건전한 공동체의식은 무너질 수밖에 없지 않는가. 이럴 때 일수록 단순히 통계적인 접근으로 각 나라를 비교하는 것은 위험하다. 미국과 이라크전에서 보았듯이 수천 수만 명의 전사자가 통계숫자에 묻혀 그 개인의 존엄성은 오간 데 없지 않는가. 이런 점에서 GDP의 신화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단순히 1인당 GDP가 몇 만 달러가 된다고 해서 그 사회가 진정 살만한 사회인가. 단순히 남과 비교해 많이 가졌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진정 행복한가 하는데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이제 NGO 차원에서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사랑, 타인에 대한 배려 등 공동체의식을 지역에서 실천하고. 개인적으로 전통적인 가정이 가졌던 종합적인 기능을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지원체제를 마련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지금은 전통적인 가정의 기능이 전부 파편화되고 상업화되고 있는데 정말 가족이나 지역공동체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소중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 느끼고 젊은 세대에게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샤르마 교수와 찬드라 씨 그리고 구이안 교수가 맞장구를 쳐줬다. 아, 정말 오랜 시간 많은 얘기를 했다. 갑자기 배가 고프다.

”?”정말 우리 만남은 생산적이야

오후 1시가 좀 넘어 강연을 끝내고 펠로우들은 국제문화회관을 나와 인근 아자부주반 거리의 ‘몬순 카페’라는 식당으로 걸어갔다. 6층이었는데 레스토랑 지붕이 돔형식의 유리지붕이어서 햇빛이 들어왔다. 다들 음식을 시킨다. 나는 일본의 이수임 교수와 같이 해물볶음밥 같은 것을 시켰다. 그런데 샤르마 교수는 야채 그린 카레를 시켰는데 알고 보니 그와 찬드라(CK) 씨는 채식주의자였다. 가격은 1000엔 정도였는데 다른 곳에 비해 싸고 맛있는 집이었다.

스즈키 교수와는 옆자리는 앉게 됐는데 생각해도 참 특이한 교수였다. 70년대에 인도네시아로 유학을 갔다니. 그는 인도네시아어를 잘 했다. 그래서 내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인도네시아 말은 ‘오랑 우탕’(숲 속의 사람)이란 말뿐이라고 하니 그가 인도네시아 단어 몇 개를 이야기한다. 인도네시아어로 ‘마타’란 눈을 말하는데 ‘마타마타’라고 하면 ‘스파이’를 말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태양은 ‘하리’라고 한다고. 인도네시아의 전 수상인 수카르노는 반은 인도인이고 반은 인도네시아인이라고 했다. ‘수’라는 뜻은 ‘슈퍼(super)’를 의미한다고. 수카르노 같은 사람은 이름이 24개가 될 정도로 긴데 인도네시아에선 이름이 길수록 귀한 사람으로 취급된다고 했다.

그리고 수업 중 했던 이야기 중 이주노동자가 일본에 많이 오고 있다는 것과 관련해, 근래 일본에는 새로운 의미의 고급기술을 지닌 외국인이 거주하는 지역이 새로 생기고 있다고 했다. 도쿄와 지바 중간지역에 있는 ‘가사이(葛西)지역’이 그런 곳인데, 이 지역엔 한국 사람도 많고 특히 인도사람이 많이 온다는 것이다. IT산업의 발달로 관련기술자들이 오면 이들의 살림을 대신 살아주는 사람들까지 함께 와서 새로운 사회를 형성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지역에선 전통사회가 없고, 상호 큰 편견도 없어 그런대로 다들 무리 없이 살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이수임 교수와는 일본으로 이야기하는 게 편했다. 이 교수는 나와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 펠로우들이 하는 내용을 각자가 정리해서 종합적으로 재미있는 책을 만들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그 책을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 네팔어 필리핀 태국어 인도어 등 각국어로 내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말이다. 그리고 앞으로 사진 같은 것도 찍은 것을 공유하는 게 좋겠다고 의견을 나눴다. “정말 우리 만남은 생산적이야.” 밥을 먹고 나니 여유가 생겼다.





[김해창의 일본리포트 바로가기]


첫 번째 이야기- 도쿄에 짐을 풀다
두 번째 이야기- 국제문화회관, 도서실부터 접수하다
세 번째 이야기(1) – ALFP 2008 참가자들을 만나다 – ‘일곱 빛깔 무지개’ 아시아 친구들
세 번째 이야기(2) – 환영 리셉션, 소박하지만 알차게
다섯 번째 이야기 – 서던 아일랜드. 오키나와, 필리핀 기지문제 다룬 연극을 보다
여섯 번째 이야기 – 일본 따오기 27년 만에 자연 품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