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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 김해창 희망제작소 부소장은 재팬 파운데이션(japan foundation) 주최로 아시아 7개국 7인의 공공리더를 초청하는 ‘2008 아시아 리더십 펠로우 프로그램’의 한국인 대상자로 선발되었다. 그는 앞으로 9월부터 약 2개월 동안 ‘다양성 속의 일치’를 주제로 일본에서 연구활동을 하면서, ‘일본리포트’를 통해 실시간으로 연구 및 현장 소식을 전할 예정이다.



11일은 필리핀의 치토 변호사와 일본의 이수임 교수가 발표하는 날이다. 치토 변호사의 주제는 ‘필리핀 민주주의의 퇴조와 정치 폭력(Democratic Recession and Political Violence in the Philippines)’이다. 그는 현재 필리핀은 경제적인 면에선 어느 정도 안정된 편이나 정치적으로는 불안하다, 어느 정도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으나, 사회적 불균등이 심화되고 있고, 국내에 자본은 들어오고 있으나 인력은 국외로 유출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한 마르코스 시대로의 회귀 우려도 없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한마디로 필리핀 경제는 ‘반은 차 있고, 반은 비어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재정 개선은 어느 정도 이뤄지고 있고, 해외 송금도 늘어나고 있으며 경제성장은 연 5% 이상을 달성하고 있다. 필리핀의 1인당 GNP는 1400 달러. 그러나 아직도 절대 빈곤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고 물가는 오르는데 일자리가 없다며 필리핀의 경제는 ‘춤추는 경제’라고 덧붙였다.


위기의 필리핀 민주주의

그는 미국 ‘프리덤 하우스(Freedom House)’가 매년 발표하는 ‘자유지도’를 보여주며 2005년에 필리핀, 태국은 자유 국가로 분류되었는데, 2006년에는 필리핀, 태국 모두 반(半)자유 국가로 들어갔고, 2007년엔 필리핀은 반(半)자유국가, 태국은 비(非)자유 국가로 분류됐다는 것이다. 그러자 샤르마 교수가 ‘자유지도’는 너무 미국 중심으로 세계는 보는 것이라며 그러한 분류에 대해 문제가 있으니 그리 신경 쓰지 말라고 치토 변호사에게 말했다. 그러자 네팔의 칼럼니스트인 씨케이 씨도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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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글로벌 인테그리티 리포트(Global Integrity Report)’에 따르면 반부패 메커니즘을 포함해 정부 차원에서 40개의 개도국을 대상으로 사회통합 정도를 지표화한 GI 인덱스라는 게 있는데 필리핀은 시민사회, 공공정보 미디어, 행정서비스 반부패 부문은 ‘보통(Moderate)’인데, 선거 부문은 ‘매우 취약(Very Weak)’한 것으로 소개 됐다고 한다.

‘글로벌 평화지수(Global Peace Index)’로 볼 때도 필리핀은 140여 개국 중에 전체 순위가 99위에 머물러 있다. 한국은 31위로 나와 있었고 일본은 5위, 중국 59위. 태국 104위, 미얀마 107위, 인도 108위였다. 무슨 근거인지 모르겠지만 대충 그런가 싶었는데 인도가 108위라는 게 이해가 안 됐다.

치토 씨는 지금 ‘왜 필리핀 민주주의가 위기인가’에 대해 얘기했다. 지난 1997년 아시아 경제위기 이래 98년 필리핀 대선에서 라모스 정부는 개혁을 약속했으나 이를 제대로 추진하지 못했으며 정부 각료 또한 부패 스캔들에 연루됐고 2004년부터는 우리로 치면 선거관리위원회에 해당하는 선거관리기관이 신뢰를 많이 잃었다고 한다. 부정선거 의혹이 불식되지 않고 있어 ‘정당성의 위기’에 놓여있다.

정치 또한 뒷거래가 횡행하고 권위주의적인 면을 보이고 있다. 강한 행정은 ‘견제와 균형’에서 멀어지고 있고, 사회 양극화는 대통령 사퇴 요구 시위 그리고 반군 세력의 부활을 낳고 있다. 군의 정치화가 여전히 문제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법의 지배’가 약화 되고 권력남용 및 부패세력에 대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은 채, 폭력이 상존하고 있다. 게다가 경제성장에 따른 빈곤 및 불균등 경제 부정의에 대한 사회적 문제, 인종 및 종교 분열, 정당과 의회를 비록한 정치제도의 약화 등 문제점이 너무 많다고 한다.

특히 현재 필리핀에선 인권 문제가 심각한다. ‘공포정치’라고 할 수 있는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유도 모르게 실종되거나 살해되는 일이 많다고 한다. 이른바 ‘정치 살해’의 건수가 100건이 훨씬 넘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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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토 씨는 필리핀이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선 정치가 국민의 신뢰성을 얻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선거를 통해 민의를 모아내는 일이 매우 중요하고, 붕당 지배를 막아야 하며 사회 갈등을 조정, 완충할 수 있는 중간 조정기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래도 아직까지 사법부는 그런대로 신뢰를 얻고 있는 것이 그나마 희망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평화를 위한 방법론’으로 사회 경제 정치 개혁을 추구해야 하며, 국민 총의를 구축하고, 평화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정부가 반군세력과 평화적 교섭력을 높여야 하며, 사회재통합을 위한 화해 프로그램을 추진할 필요가 있으며, 사회 전반적인 평화 분위기를 유도하고 이를 위해 사회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민주주의에 대한 자신감 회복이 과제

그는 그동안의 필리핀 정치사를 짚어보면서, 1969년부터 1973년까지는 ‘권위주의의 공고화 시대’, 1983년부터 86년까지는 ‘민주주의의 회복기’, 그리고 1986년 이후 지금를 ‘민주주의 모색기’라고 불렀다.

재미 있는 것은 필리핀의 ‘사회 기상 리포트(Social Weather Report)’라는 여론조사 내용인데 1986년부터 지난 2007년까지 필리핀 역대 대통령에 대한 국민 순만족도 조사해 소개한 것이었다. 지난 1986년부터 92년까지 재임한 필리핀 ‘피플 파워 혁명’의 상징인 아키노 대통령도 정권 초기엔 국민들로부터 60~70% 만족도를 줬으나 말기엔 10%로 추락했다. 라모스 대통령도 지난 92년 집권 초기에는 60%대였던 것이 96년엔 0% 그리고 98년도엔 겨우 20~30%를 유지했다. 98년 집권한 에스트라다 대통령도 초기엔 60%이던 것이 2001년에는 10%로 내려간다. 아로요 대통령은 2001년 20%에서 출발해 현재 ‘-30%’의 만족도였다. 완전 ‘대실망’이라는 것이다.

또한 2001년부터 2005년까지 필리핀 국민들은 민주주의를 어떻게 보고 있나, 하는 것에 대한 조사 결과도 소개했다. ‘민주주의는 언제나 우선 하는 가치인가’라는 설문에 지난 2001년엔 64%가 ‘그렇다’고 응답했는데 2005년엔 51%로 줄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우리 필리핀에 적절한 체제인가’에 대한 긍정적인 응답도 80%이던 것이 57%로 떨어졌고, ‘민주주의에 대한 만족도’도 54%에서 39%로, ‘권위주의적 강한 리더에 대한 거부감’도 71%에서 59%로 줄어들어 전반적으로 보면 필리핀 국민의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자신감’이 상당수 떨어졌다고 치토 변호사는 설명했다.

결론적으로 그는 민주정치를 어떻게 하면 ‘굿 거버넌스(Good Governance)’로 연결할까 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즉 민관 파트너십이 효과적이면 사회개혁이 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렵게 얻은 민주주의의 투쟁의 성과를 믿고, 국민 총의를 모아 제도화를 통해 진정한 국민 참여를 이뤄내는 게 중요한데 그러기 위해선 국민간의 대화, 사회 교육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국민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민주주의의 과정과 절차를 만들어가는 일, 특히 선거와 선거 관리 행정의 민주화, 새로운 민주 리더의 출현을 사회가 적극 지원하고, 아울러 시민단체의 국제연대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면에서 2010년에 있을 필리핀 총선은 매우 중요한데 특히 공공 책임 시스템을 구축하고 정당정치를 강화하며, 경제성장의 지속과 성장 과실의 균등한 분배 그리고 교육, 보건, 물, 식품 안전 등이 주요 선거 이슈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본의 높은 자살률이 의미하는 것

이어서 일본 류코쿠대학의 이수임 교수가 발표에 나섰다. ‘일본 정체성 변화를 위한 도전(Challenges of Changing Identity in Japan)’이라는 다소 ‘도발적인’ 주제였다.
이 교수는 일본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경제력을 가졌고 군사비 세계 5위, 세계 4대 수출국, 6대 수입국에 들어가는 대국으로 세계 GDP(국내총생산)의 9%를 차지하는 나라라고 기존의 자료를 보여주면서 발표를 시작했다.

그런데 ‘기업가정신’은 매우 낮다는 것이다. 일본 대졸 청년들의 꿈이 대부분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인데 이 교수 생각에는 국제 경영 발전에 매우 중요한 요인인 기업가정신이 오히려 부족한 것이 앞으로 일본의 미래를 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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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네덜란드의 저술가인 게르트 호프슈테드(Geert Hofstede)에 따르면 ‘직장에서의 가치는 그 나라 문화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며 일본은 개인의 색깔이 분명하지 않고, 중립화되는 경우가 많은데 인내심은 강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문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은 자살률이 매우 높은 나라로 연간 3만 명이 자살을 한다고 한다. 10만 명 당 자살하는 사람이 일본 19명으로 프랑스 15명, 미국 10명, 이탈리아 6명에 비해 훨씬 높다는 것이다. 불만이 있지만 전체를 생각하다보니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게 바로 스트레스로 연결되고 이것이 잘못되면 자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조심스레 분석했다.

수임 씨는 또한 일본이 정체성에서 자신감의 결여를 나타내고 있다고 했다. 어떤 조사를 보니 주위사람들로부터 사랑받기, 유명세, 부자 되기, 성공하기, 좋은 부모 되기, 좋은 가족 되기 등에 대한 설문에서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일본인의 반응이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다는 것이다.

‘좋은 부모가 되기를 원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일본인은 21.1%만 그렇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한국인 65.5%, 중국인 70.2%, 미국인의 60.0%가 그렇다고 대답한 것에 비해 훨씬 낮은 비율이다. 이는 ‘좋은 가족 되기’에서도 일본은 38.6%로만 긍정적으로 반응을 해 한국(78.3%), 중국(68.5%), 미국(63.5%)보다 낮았고 ‘성공하기’에 대해서도 불과 20.8%로 한국(60.2%). 중국(51.3%). 미국(52.7%)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는 것이다.


한류열풍에 대해

이어서 수임씨는 일본에서 일고 있는 ‘한류’ 바람을 소개했다.‘겨울연가’,‘대장금’ 등의 그림을 보여주면서 “대학 교수로 있다 보니 동료 교수들끼리 가끔 바비큐 파티 같은 모임을 부부동반으로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교수 부인들을 하나같이 하는 이야기가 한국 드라마에 관한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요즘 일본 중년 부인들이 한국 드라마에 관심이 많다.

일본사람들이 ‘욘사마’ 배용준 씨를 좋아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한국이 성공한데다 일본인이 갖고 있지 않은 남에 대한 배려, 인간미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수임 씨는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다케오 레이코’라는 일본이름을 갖고 있었는데 졸업할 때 한국인임을 ‘커밍아웃’했다.

당시 20명의 재일한국인 여학생 가운데 자기만 유일하게 ‘이수임’이라고 밝혔는데 정말 새로 태어난 기분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재일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일본인 여학교 친구들에게 알려지면 거의 모든 걸 잃는 분위기였다. 그 뒤 그는 한국인도 싫었고 일본인도 싫어 미국에 유학길에 올랐고 그곳에서 외국인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다.

그는 일본 사람들이 대장금에 반하는 것은 대장금이 매우 겸손하면서도 아름답고 위엄이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도쿄 하라주쿠에 가면 얼굴 검게 화장하고 다니는 일본 젊은 애들이 많은데 그게 정말 자신의 개성을 나타내는 일인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한국 이름을 가지고 귀화해서 성공한 손정의 회장

그는 일본의 소프트웨어 재벌인 ‘소프트뱅크’ 손정의(마시요시) 회장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규슈 출신인 손 회장은 부친이 파친코업을 했다. 어릴 때 고등학교 교사가 되고 싶었는데 재일한국인은 공무원이 될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고민 끝에 그는 발상을 바꿨다. 내가 법적으로 교육공무원이 될 수 없으면 내가 학교를 만들면 되지 않나, 교사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되면 되지 않나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됐다.

그는 미국 ‘유시 버클리'(UC Berkeley)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는데 특히 IT에 관심을 많이 갖고 독학을 해 마스터했다고 한다. 손 회장은 매년 10가지의 새 노트북 PC 상품을 내놓고 있는데 처음에는 샤프, 도시바, 소니 등 대기업에 가서 자신의 소프트웨어를 사라고 부탁을 했다. 번번이 문전박대를 당했지만 나중에 샤프가 흥미를 가졌고 그가 개발한 ‘전자사전’이 공전의 히트를 쳤다.

그는 그 뒤 귀화하기로 작정하면서 한국이름인 ‘손정의’로 그대로 활동하길 원했다. 일본의 이민정책은 동화정책이지만, 손 회장은 일본인 여성과 결혼해 부인의 성도 ‘손’으로 바꿨다. 그는 새로운 형태의 일본인의 모델을 만들고 싶어 했다. 그는 결국 자신의 한국인 성을 그대로 가지고 일본인으로 귀화했다.

이수임 교수도 그런 뜻에서 손 회장과 같이 한국인의 이름을 갖고 일본인으로 귀화했다. 한국인 이름 그대로는 귀화가 안 된다고 거부당했지만 투쟁을 통해 따냈다고 덧붙였다. 그 이야기를 하자면 다음에 따로 몇 시간을 내도 모자랄 것이라고 했다.

소프트뱅크의 광고 중에 ‘시라토가의 사람들’이란 광고가 있는데 가족사진에 엄마 딸. 딸의 남편인지 친구인지 흑인 한명. 그리고 개가 등장하는데 정작 아버지는 없다. 왜 그러냐 하면 아버지는 말을 하지 않지만 개는 말은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일본의 가족 현실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며 웃었다. 치토 변호사가 웃으며 한마디 거들었다.

“가족은 개념일 뿐이에요.”


일본의 걱정스러운 미국 따라 하기

이 교수는 일본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 중 하나가 ‘외부의 자극’이 없으면 바뀌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외교를 봐도 무조건 미국 따라 하기에 익숙하다는 것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얼굴이 없다는 것, 즉 지도자의 모습이 안 보인다는 것이다.

‘글로벌리즘과 반미’라는 책을 쓴 와타나베 야시시의 글에는 미국과 관련한 긍정적 부정적 용어가 일본에서는 정말 많이 나온단다. 일본에선 미국(美國)이란 글자를 ‘아름다울 미’가 아닌 ‘쌀 미’자를 써 미국(米國)으로 쓴다. 미국과 관련해서 긍정적으로 쓰는 말로 호미(好米:미국을 좋아함), 친미(親米), 배미(拜米:숭배함), 예미(禮米:잘 대접함), 지미(知米:잘 이해함) 등이 있다고 소개했다.

또한 부정적 의미로는 포미(飽米:싫증남), 염미(厭米:싫음), 권미(倦米:권태로움) 공미(恐米:두려움), 겁미(怯米:무서워함), 탈미(脫米:벗어남), 이미(離米:헤어짐), 종미(從米:추종함), 추미(追米:쫓아냄), 반미(反美), 혐미(嫌米:혐오함), 배미(排米:배척함), 모미(侮米:업신여김), 애미(哀米:불쌍히 여김) 등이 있다고 했다.

우리는 친미 반미 정도를 쓰는데 반해서 일본에서는 이렇게 많은 말들이 쓰이고 있는 것이 재미 있다. 그만큼 일본은 모든 영역에서 미국과 불가결한 관계라는 것을 잘 말해준다. 애증이 교차한다고나 할까. 그런데 내 생각에는 ‘극미(克米)’라는 말도 있음직한데 보이지 않았다.

이 교수는 또한 최근 일본에서 일본 민족주의와 관련돼 대중성 있는 만화가 의도적으로 보급되고 있는데 일본의 젊은 아이들을 쉽게 조작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즉 일본 극우단체의 사상을 보급하는데 앞장서고 있는 ‘새역모(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회원들이 주축이 된 것으로 그 중 고바야시 요시노리라는 만화가가 적극 참여하고 있다고 했다. 만화를 통해 젊은 층을 중심으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데 책도 잘 팔린다고 했다.

지금까지 지식인 중심에서 대중들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기존의 일본 정치가들을 ‘바보’라고 비웃는 것 자체도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과연 이런 것이 진정 일본의 정체성이 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끝으로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아느냐고 펠로우들에게 물었다. ‘안중근 의사. 맥아더 원수와 히로히토 천황이 함께 있는 사진(히로히토는 부동자세, 맥아더는 팔을 허리춤에 대고 있다). 이토 히로부미가 기모노 입은 조선 왕자와 함께 찍은 사진.’ 세 장의 사진을 하나로 모아놓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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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때 일본은 ‘야마토’ 정신을 강조하며 스스로 선택된 민족임을 자처했다. 메이지유신 이후에 일본 여성들은 서양화돼 드레스를 입었고 서양문물을 받아들여 소비주의 물질주의로 빠지고 있었는데, 전시에는 정부가 국민들에게 모든 미국식 사고를 버리라고 강요했다. 2차 대전 패전 이후 미군은 동네를 다니면서 아이들에게 쵸콜릿과 츄잉껌을 나눠주며 미국 민주주의를 홍보했다.

이 교수는 나도 당시 ‘기브미 초코레토 세대’라고 말했다. 그 뒤 일본은 미국에 ‘노’라는 말을 하지 못하는 나라가 돼버렸다. 이렇게 일본은 극단에서 극단으로 갔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일본이 앞으로 선진국으로서 리더십을 가진 국가가 되기 위해선 일본의 정체성에 대한 연구와 더불어 과거에 대한 역사인식을 바로 잡는 문제가 심각하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열혈 한국인 ‘수임씨’

분위기가 다소 엄숙해졌다. 인도의 샤르마 교수가 말을 꺼냈다. 일본은 미국과 싸우면서 미국을 너무 닮아갔다. 즉 어떤 이념과 싸우다보면 자기가 싫어했던 정반대인 사람과 그대로 닮아가는 것처럼 일본이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간 것 같다고 말했다. 중국의 구이안 교수는 공자의 논어에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런 면에서 일본이 그 나름대로 정체성을 찾는 노력에서 부족했던 것 같다며 좋은 발표였다고 느낌을 말했다.

그리고 오늘 있었던 해프닝을 빼놓을 수 없다. 치토씨가 발표할 때 이상하게 일본 국제문화회관에서 가져온 컴퓨터가 다운이 됐다. 그러자 옆에 있던 인도의 샤르마 교수가 미국의 ‘윈도우 비스타’가 문제가 많다며 소프트웨어 탓을 하자 수임 씨가 맞다며 거들었다.

나는 이들이 발표하는 걸 노트북 PC에 정리했다. 영어 발표를 들으면서 이를 한국말로 번역해 간략하게 노트북에 정리를 한다. 귀에 잘 들어오지도 않고 많이 피곤한 일이지만 그래도 따로 노트에 메모한 걸 다시 노트북 PC로 옮기는 것보다는 낫다 싶어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런데 발표를 들으면서 물을 마시다 그만 컵을 쏟아 노트북 자판 위로 물이 좀 튀어 들어갔다. 다들 노트북 컴퓨터가 괜찮은지 걱정을 했다. 그런데 별로 물이 많이 들어간 게 아닌데다 간단히 털고 나니 괜찮았다. 나중에 몇 번이고 수임씨가 내게 노트북 괜찮으냐고 묻는다. 괜찮다고 말하니. 어느 나라 거냐고 묻는다. 한국 삼성이라고 하니 수임씨가 한마디 한다. “역시 삼성 것은 다르네. 일본 것이었다면 벌써 고장 났을걸”이라며. 어쨌든 싫지 않았다. 한국말을 못하는 일본 국적의 이 교수이지만 마음은 늘 열혈 한국인이다.






[김해창의 일본리포트 바로가기]


첫 번째 이야기- 도쿄에 짐을 풀다
두 번째 이야기- 국제문화회관, 도서실부터 접수하다
세 번째 이야기(1) – ALFP 2008 참가자들을 만나다 – ‘일곱 빛깔 무지개’ 아시아 친구들
세 번째 이야기(2) – 환영 리셉션, 소박하지만 알차게
네 번째 이야기-일본 교수가 보는 ‘침몰하는 일본’
다섯 번째 이야기 – ‘ 서던 아일랜드’-오키나와, 필리핀 기지문제 다룬 연극을 보다
여섯 번째 이야기 – 일본 따오기 27년 만에 자연 품으로
일곱 번째 이야기 – 방콕 포스트 기자가 말하는 ‘태국의 민주주의는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