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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종의 사막을 건너는 법

“해외여행에서 돌아온 군청 직원이 인사를 하러 왔다. 백을 무겁게 들고 들어 오길래 어디서 선물을 사서 전해 주려는 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그 공무원이 내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었다. 순간 직감적으로 돈을 들고 인사 청탁을 하러 온 것을 알았다. ‘내가 그렇게 값싸게 보이느냐. 나에게 돈을 주려면 적어도 100억원은 줘야하지 않겠는가’ 나는 그렇게 말했다.”

이석형 함평 군수가 며칠 전 희망제작소 포럼에서 풀어놓은 자치단체장 경험담 중 한토막이다.
1998년 함평군수로 당선된 후 3차례 공무원 인사이동을 했는데, 그 때 마다 직원들이 돈 보따리를 갖고 찾아왔다고 술회했다. 보따리 크기로 보아서 액수가 상당한 것 같았다는 게 이 군수의 이야기다.

이석형 전남 함평군수는 전국 기초자치단체장 232명 중 ‘최고의 단체장’으로 꼽히는 사람이다. 그를 성공적인 단체장의 최고봉에 올려놓은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나비’다.
그는 군수에 당선되자 ‘나비축제’를 구상해서 성공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함평군을 친환경 농업과 생태 관광지로 전 국민의 시선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무엇이 그에게 성공을 가져다주었을까?


PD출신 ‘최고의 단체장’


‘나비축제’, 지금 생각하면 정말 좋은 아이디어라면서 농촌지역 군수들이 이석형 군수보다 먼저 생각해내지 못한 것을 가슴아파하겠지만 나비가 그냥 사람을 모아오는 것은 아니다.

나이 40에 군수에 당선됐을 당시 함평군은 우루과이라운드와 IMF의 영향으로 험난한 환경에 처해 있었다. 자원이라고는 논밭과 야산밖에 없었고, 인구는 1963년 최대 13만명에서 3만8000명으로 줄어든 ‘쇠락하는 농촌’이었다.

그는 KBS PD 출신이다. 그래서 한편의 멋진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는 심정으로 군수직을 수행하기로 마음을 다졌다. 그는 당선 후 몇달을 야산을 헤매면서 고민을 했다. PD의 다큐 프로그램 제작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 군수의 정책 프로그램에 대한 고민이었다.
길은 ‘친환경 농업’밖에 없었다. 농업을 하되 양이 아닌 질로 가야 경쟁력이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그러나 시골구석인 함평의 친환경 농업을 누가 알아줄 것인가.



”?”

가을 어느 날 함평천에 혼자 앉아 생각하다가 문득 흐르는 시냇물에서 힌트를 얻었다. 천변 둔치에 꽃을 심자. 의아해하는 공무원과 주민들을 독려해서 자운영과 유채꽃을 심었다.
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PD를 하면서 농업현장을 잘 알고 있던 그는 특히 자운영의 쓰임새를 잘 알고 있었다. 사료와 퇴비뿐 아니라 벌꿀의 먹이로 자운영은 용도가 많았다.
그는 함평을 친환경 지역으로 홍보하는 아이디어를 내놓도록 군청의 각 부서에 지시했다. 공무원들이 내놓은 아이디어라는 게 봄에 ‘유채꽃축제’를 열자는 것이었다. 제주서 선점하고 전국 곳곳서 따라하는 ‘유채꽃 축제’는 아이디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의 얘기에 공무원들은 천장만 쳐다봤다.

그는 또 고민하다가 PD 시절 자연 관련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알게 된 나비 전문가를 떠올리며 “나비축제를 하자”고 간부회의에서 거론했다. 간부들은 대부분 천장이나 창밖 먼 산을 쳐다보았고, 기껏 한다는 소리가 “없는 나비를 어디서 가져오느냐”였다.
그는 나비 전문가를 계약직 공무원으로 임용하고 나비사육 준비에 들어갔다. 군 의회를 비롯해서 반발은 거셌다. “군수가 나비를 갖고 군민을 우롱한다.”

이제 나비는 함평군의 브랜드가 되었다. 지난 봄에는 무모하다는 평을 받으면서도 ‘2008 함평나비 곤충 엑스포’를 열어 ‘함평=나비’ 등식을 세계로 알리기 시작했다.

그는 선거에서도 성공했지만, 정책프로그램도 하는 것 마다 성공했다. 그는 3선 군수다. 중앙정치든 지방정치든 정치인으로 성공하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권력을 오래 잡아 인사와 예산권을 휘두르며 지역사회에서 지배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원시적인 성공이다. 그러나 임기가 끝나고 나면 몇 몇 사람의 인심은 사지만 주민의 삶에는 변화를 주지 못하는 경우다. 두번째는 주민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멋진 정책 프로그램을 성공시키는 것이다.


공무원들 협조가 성공 요체


이 군수는 이 두 가지를 이뤘다. 그는 포럼의 연설문 제목을 ‘리더십과 나비효과’라고 붙였다. 나비가 그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나비효과를 불러오기 위해서 그는 먼저 리더십을 발휘해야 했다. 그는 농촌지역에서 군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절대 필요한 것이 공무원의 협조라고 말한다. 철밥통 공무원을 일하게 만드는 것이 성공의 요체라는 것이다.

그는 경험을 토대로 공무원들의 신뢰를 얻으려면 “인사와 사업에서 장난치는 것은 금물”이라고 강조했다. 너무나 당연한 얘긴데 정치인들에게 그게 쉽지 않다는 데 이석형 군수의 리더십의 핵심이 있는 것 같다.


올챙이 기자로 시작해서 주필로 퇴직할 때까지 한국일보 밥을 먹었다. 혈기 왕성한 시절의 대부분을 일선 기자로 살면서 세계를 돌아 다녔고 다양한 이슈를 글로 옮겼지만 요즘은 환경과 지방문제, NGO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이제는 글 쓰는 것이 너무 지겹다’고 말하면서도, 지난 100년 동안 지구 평균 기온이 0.6도 올랐다는 사실이 인류의 미래에 끼칠 영향을 엄중히 경고하기 위해서 사막을 다녀온 후 책을 쓰고, 매주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그는 여전히 현장에 있고 천상 글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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