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편집자 주/ 2008년 11월 4일 오후2시 희망제작소 2층 희망모울에서는 ‘내가 다시 자치단체장이 된다면’의 일곱 번째 순서가 진행되었다. 이번 강연자는 단체장으로 우면산 트러스트를 진행한 조남호 전 서초구청장이다. 조남호 구청장은 서초구의 자연을 기반으로 주민운동의 새로운 잠재력을 만들어냈다. 사업을 진행하며 겪었던 다양한 노하우를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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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욕구를 기반으로 능동적으로 움직여라

조남호 전 서초구청장은 마포ㆍ동작ㆍ성동ㆍ서초 구청장을 관선으로 지내고 민선 서초구청장을 세 번 지낸 삼선단체장이다. 조남호 구청장은 관선 단체장과 민선단체장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관선 구청장의 인사권을 지닌 사람은 서울시장입니다. 그래서 시장 눈밖에 나면 일을 그만두어야합니다. 그러나 민선구청장의 임명권자는 30만-40만명에 이릅니다. 그래서 주민들을 중심으로 행정을 하게 됩니다.”

민선 이후 주민 중심의 행정은 조남호 구청장을 능동적으로 만들었다. 주민중심의 행정을 위해 조 전 구청장은 주민욕구조사부터 시작했다. 서초지역 주민의 욕구를 조사하여 오케스트라를 조직하고 정기공연을 기획했다. 또한 주부들의 학력이 높고 직장을 다니는 사람이 많다는 특성을 파악해 어린이집과 탁로방을 만드는데 주력하게 된다. 그리고 의외로 많은 주민들이 우면산?청계산 때문에 서초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래서 우면산을 잘 다듬으면 지역주민들이 좋아하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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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면산 트러스트 운동

그러던 중, 우면산?청계산과 관련된 큰 사건이 일어난다. “LG가 도시계획변경안에 따라 우면산,청계산 약수터 지하에 유류탱크를 만든다는 겁니다.” 조 전 구청장은 수맥에 기름이 들어가면 커다란 환경재앙이 일어날 것으로 판단하고 소송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일선 공무원들도 그 모습을 보면서 억지라고 했다.

“그래도 저는 주민을 믿었습니다. 주민들에게 탄원서를 내달라고 부탁을 했죠.” 조 전 구청장은 주민들에게 우면산의 중요성을 피력했다고 한다. 그리고 기적같이 대법원에서 승소하게 되었다. 7000명 서초 구민의 탄원서가 큰 힘이었다. 승소이후 조 전 구청장은 실질적으로 지역의 산을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게 된다. 그때 영국 브리스턴 지역의 해안가에서 배웠던 것이 생각났다고 한다. 그 지역은 절경임에도 건물과 별장이 얼마 없었다. 영국 국민들이 기부금을 걷어 해안 길목 땅을 산 것이다. 이런 사례를 바탕으로, 조 전 구청장은 우면산 트러스트를 만들어보자고 지역주민들에게 제안했다. 이야기를 하니 시민들이 돈을 모아 직접 사겠다고 했다. 주민 전체가 만장일치가 되지 않고서는 절대로 산을 팔지 않겠다는 원칙도 세웠다.

우면산 트러스트 운동을 진행하면서 힘든 부분도 많았다. 하루는 우면산 땅을 소유하고 있는 노신사가 구청장을 찾아와 땅을 팔수 없다면서 완강하게 나왔다고 한다. 조 전 구청장은 노신사에게 환경의 중요성을 설명했다고 한다. 결국 그 노신사는 “내가 돈 몇 푼에 우면산을 파괴했다는 주범이 되기 싫어 그냥 주네. 앞으로 우면산을 잘 지켜주기 바라네.” 라고 말하며 매매가의 10분의 1밖에 안 되는 공시지가로 땅을 팔았다고 한다.

우면산 트러스트 운동 이후 – “산은 우리 것입니다”

조 전 구청장은 우면산 트러스트 운동을 하면서 지역주민들에게 “이 산은 우리 것이다.” 라는 공유개념이 생겼다고 한다. 그래서 구청장실에 주민들이 찾아 오면 토지문서를 보여주고 같이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또 지역의 어린이들이 산에서 꽃을 꺾는 어른을 보면 ‘꽃을 꺾지 말라’고 항의한다고 한다. 이렇게 지역 주민들의 공감대가 형성된 후, 우면산의 환경은 더욱 좋아졌다고 한다. 우면산 트러스트 운동은 지역 이슈에 대응하면서 각성한 주민들의 노력이, 환경이라는 전지구적 어젠다룰 해결하는 소중한 한걸음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