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지역에서는 청년들이 일군 임팩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희망제작소가 이들을 ‘소셜디자이너’라고 호명하는 이유입니다. 나의 성장이 로컬의 변화로 이어지는 소셜디자이너들의 다채로운 활동과 이야기를 특집으로 전합니다. 오는 11월 14일 개최되는 청년 소셜디자이너를 위한 무대 ‘2024 사회적가치 투자(Social Investor Relations, SIR) 대회’에서도 생생한 임팩트 경험담이 펼쳐집니다.
조미림 재작소 대표 | 대전
날씨 좋은 가을, 한적한 유성천을 따라 걷다 보니 <사회실험공간 나선지대>라는 간판이 보입니다. “사회실험공간”이라니, 무얼 하는 공간인지 궁금한데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실험이 진행되는 공간”이라는 소개말을 읽으니 더 흥미롭네요. 서둘러 문을 열고 들어서니 제로웨이스트샵 은영상점, 생태책방 버들서점, 메이커스페이스 새로고침 등 다양한 팀이 샵인샵 형태로 모여있습니다. 고즈넉한 공간 하나에 대전의 작은 혁신파크가 만들어진 듯합니다.
조미림 재작소 대표는 ‘사회실험공간 나선지대’를 기반으로 펼쳐지는 모든 사업과 일을 관리하고, 지원하고, 연결합니다. 재작소는 물건의 쓸모를 새롭게 다시 바라보고(再), 직접 고치고 만들어(作) 사용하는 사람이 모인 공간(所)”이라는 뜻입니다. 이름에 걸맞게 동네 주민, 대전 시민들은 이곳에 모여 생활에 필요한 기술을 익히고, 머리를 모아 고치고, 쓸만한 것은 살리면서 환경과 지역·사회 문제 해결을 응원하는 다양한 실험을 펼칩니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생활 기술처럼 적절한 대전에서 일상에서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생활 제조와 디자인 활동을 통해 지속 가능한 공동체 문화를 만들고 있는 조미림 대표를 만났습니다.
-이번 인터뷰로 희망제작소를 처음 만난 게 아니라고요?
=재작소를 만들기 한참 전인 2018년, 희망제작소에서 운영한 ‘국민해결 2018’에 참여했어요. 중증 장애인도 함께 걸을 수 있는 ‘모두를 위한 거리’를 만드는 시민제안프로그램에 제작 디자인 전문가로 참여해달라는 요청을 받았거든요. 프로젝트에 합류해서 당사자분들과 함께 활동하고 의견을 교환하다 보니 말이 너무 잘 통하는 거예요.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에서도 당사자로서 의견을 적극적으로 내주시니까 큰 도움이 되었고요. 국민해결 2018에 합류 전에도 장애인 분들과 의수를 제작하는 교육을 진행해 본 적이 있는데, 그때 경험했던 장면들과 많은 부분이 겹쳐지더라고요.
오픈소스 프로젝트라는 걸 처음 접한 계기이기도 했는데, 의수 제작 교육에 자기 것을 만들려는 장애 당사자뿐아니라 아이 것을 만들려는 장애 가족분들도 계셨어요. 저희가 만들어 드리는 게 훨씬 빠르고 편하겠지만, 요구나 필요가 정확한만큼 본인이 직접 제작하면 오래 걸리더라도 훨씬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올 것 같더라고요. 계속 고쳐쓰실 수도 있고요. 그래서 3D 프린트로 의수를 제작하는 과정 자체를 교육으로 진행했어요. 참여자 분들이 정말 열정적이셨고 주변에 있는 비슷한 상황의 분들도 모시고 와서 같이 교육 듣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을 전환하게 된 것 같아요. 이전까진 “우리끼리 만들어서 우리에게 도움이 되었으니 좋았다!” 정도였지 만들기 활동을 사회문제 해결로 연결해볼 생각은 못 해봤거든요. 국민해결 참여를 계기로 우리의 능력인 ‘만들기’를 활용해서 일상의 문제, 동네의 문제, 사회의 문제까지 해결해 보자는 방향을 잡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재작소에서 커뮤니티에 관심을 갖고 열린 공간을 만든 계기가 궁금합니다.
=서울에서는 특정한 주제를 기반으로 커뮤니티가 계속 만들어지고 유지된다는 점이 인상 깊었어요. 대전에서도 커뮤니티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고민하다가, 무언가 만드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니까 ‘메이커(maker)’ 활동에 집중한 커뮤니티를 만들었어요. 참여자가 점차 많아지면서 생활 수리, 전자제품 수리, 의류용품 수리 등 무엇이든 가지고 오면 같이 머리 싸매고 고쳐보자는 분위기가 되어서 ‘새로고침 클럽’으로 확장되었고요. 메이킹 활동 또한 ‘그냥 즐겁게 만들기’에서 출발했지만, 그 다음엔 ‘재료 아껴 버려진 것 없이 전부 사용해보기’, ‘버려진 재료 활용해서 만들기’를 거쳐 ‘업사이클 통해 가치 넣어 재생산하기’로 오게 된 거죠.
처음에는 메이커 스페이스만 운영을 했는데, 대부분의 초기 단체가 그렇듯 지역 내에서 안정적인 활동 공간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보니 공간을 여기저기 옮겨 다녔어요. 그러면서 저희와 비슷한 가치로 활동하는 분들을 만나게 되었고, 방향성이 같으니 지출 부담을 덜어 함께 공생하자는 취지에서 지금처럼 샵인샵 형태가 되었고요. ‘사회실험공간 나선지대’는 재작소의 네 번째 공간이에요.
-재작소가 운영하는 공간 ‘나선지대’는 동네 사랑방 같기도 하네요.
=실제로 많은 분들이 그렇게 사용하고 있죠. 대전에서 나고 자랐지만, 이 도시가 정말 좋아요. 예전에는 취업 준비해서 서울로 가려던 때가 있었는데요. 그래도 결국 대전에 살아야겠다 싶더라고요. 저는 뭐든 중간이 제일 좋다고 생각해서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상태를 가장 만족스러워하는데, 이런 성향이 대전이라는 도시와 잘 맞는 것 같아요. 서울은 너무 많아서 넘치고, 소도시는 생활하기에 많은 부분이 부족하게 느껴지거든요. 지금 재작소에서 함께하는 동료들도 비슷해요. 아니, 더 한 것 같기도 해요. 아예 대전 말고 다른 데는 갈 생각도 없었대요.(웃음)
대전은 비교적 외지에서 온 구성원이 많은 편인 것 같아요. 특히 학교나 직장 때문에 이주한 청년이 많고요. 재작소는 유성구에서 청년마을 ‘여기랑’도 직접 운영하고 있거든요. 만나보면 다 저처럼 중도의 삶을 선호하는 스타일이더라고요. 이 공간을 거치는 사람들이 비슷한 결을 가져서인지 자연스럽게 교류하면서 관계가 생기고, 커뮤니티가 생기고, 함께 도모하는 일도 생기고요. 그래서 저희는 사랑방을 찾는 분들을 ‘로컬 라이프 챌린저’라고 불러요.
-‘로컬 라이프 챌린저’가 메이커 활동을 계속하게끔 이끄는 매력은 뭘까요?
=‘만들기’가 가진 힘 덕분 아닐까요? 사회 구조 자체가 주어진 방식에 따라서 소비하는 삶만 살도록 만들어져 있잖아요.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일해야 하고, 기업에서 일부러 빨리 소모되도록 만들어 파는 걸 매번 사서 써야 하고. 이런 환경에서는 능동적인 사람도 쉽게 수동적이게 되죠. 새로운 걸 배우거나 일상에 작은 변화를 주는 방식이 누군가의 삶에 다양한 기회와 전환을 만들어준다고 생각해요. 그게 메이커 활동이 가진 힘이죠. 저는 누구나 상상하고 창작하고 만든다면 거기에서부터 개인의 삶이 바뀐다고 믿어요. 만들기의 방법도 정해져 있지 않아요. 디자인이든, 목공이든, 수리든, 사업 기획이든 스스로 제조 능력을 익히고 실제로 해보면서 ‘나도 할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효능감을 경험하길 바라요. 결과물은 당연히 거창하지 않아도 되고요. 그러다 보면 누구나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출 수 있고, 지식과 정보와 권력을 특정 소수만 가지는 모습이 당연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어요. 지금 우리 삶과 만들기는 매우 동떨어져 있는데, 역으로 재작소는 만들기를 최대한 일상 가까이로 끌고 오게끔 돕고 있어요.
-재작소의 많은 활동이 환경 문제와 연결되어 있네요. 지역에서 만든 쓰레기, 정말 지역에서 처리될 수 있을까요?
=가끔 저희를 환경단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환경은 어떤 활동에서든 기본적으로 고려하는 부분이니까 계속 언급하며 집중하는 주제일 뿐, 저희 단체의 목적은 아니에요. 그래도 환경 이슈를 통해서 대전에서 재작소를 알게 되고 찾아주시면 너무 감사한 일이죠. 가장 열심히 하고 있는 활동은 ‘플라스틱 프레셔스 대전’이에요. 프레셔스 플라스틱(Precious plastic)은 오픈 소스로 공개된 도면을 활용해서 플라스틱 가공 기계를 통해 누구나 쉽게 폐플라스틱을 업사이클링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세계적인 활동이에요. 재작소는 시민을 대상으로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열가소성 플라스틱을 이 성형기기를 활용해서 새로운 제품으로 재가공해 볼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어요. 이를 위해 직접 플라스틱을 수집하고 분류하고 분쇄하는 과정에서 플라스틱에 대한 자원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거든요.
재작소를 기반으로 대전이 ‘팹시티(FabCity)’*가 실현된 지역이 되면 좋겠어요. 대전시의 자급자족률이 50% 이상 된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럼 더 이상 외부에서 생산된 것을 지역으로 끌어 들여와서 소비하거나 막대한 쓰레기를 배출하지 않게 될 거예요. 지역에서 필요한 것을 자체적으로 생산하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만큼만 쓰레기가 배출될 테고 일정 부분을 재활용하면 결국 도시에도 자생력이 생기겠죠. 대전도 그렇지만, 사람이 점점 많이 몰리는 도시가 될수록 다양한 니즈와 빠른 속도, 엄청난 양을 감당하기 위해서 지역 내 생산보다는 외부에 의지하면서 오로지 소비만 남게 되거든요.
*팹시티(FabCity) : 제조를 뜻하는 ‘Fabrication’과 도시를 뜻하는 ‘City’의 합성어로, 시민·지역사회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자원을 소비하는 것을 벗어나 자체 생산력을 갖춘 지속 가능한 도시로 전환되는 것을 뜻함.
-자가수리, 자원순환 외에는 어떤 활동을 하시나요?
=재작소를 찾는 주요 구성원이 청년인 만큼, 청년 자립 분야의 프로젝트도 운영해요. 대전시에서 ‘청춘터전’이라는 사업을 운영하는데, 공모를 통해 청년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공간을 개방하고 적극적인 청년활동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민간 단체나 사업장을 선정하는 지원사업이에요. 재작소는 2022년에 선정이 되었어요. 대전 청년들에게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 모델을 제시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했었고요. 2021년에는 금산에서 청년 문화 활성화를 위한 게스트 하우스 ‘유유자립’을 운영하기도 했는데요, 시골집 고쳐 살기나 목재 생활용품 수리하기 등 청년이 금산에 머물며 살아갈 수 있도록 생활에 필요한 기술과 지식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을 특색화했습니다.
대전을 배리어프리 도시로 만들기 위한 사업도 여럿 진행했는데요. 국민해결 2018을 계기로 개발한 ‘입간판식 경사로’를 개선하여 충남대 학생·지역 상점 20곳과 협업하여 궁동과 어은동에 제작, 배포했어요. 월평동에서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배리어프리 공간 활성화를 위해 리빙랩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고요. 지역 내 배리어프리 상점을 조사해서 공유하고, 추가로 배리어프리 공간을 늘리기 위한 경사로 설치와 확산 활동을 했죠.
-재작소에서의 일을 ‘실험’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인상적이에요.
=재작소의 출발 지점이 리빙랩에 있어서 그런지, 저희의 일과 활동이 실험체 같다고 느껴요. 지역에서의 일을 성공과 실패를 떠나서 실험하고 배우는 기회라고 생각하면 크게 스트레스받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은 걸 얻더라고요. 사실 공간도 사업도 여전히 불안정하다 보니 운영 지속이 어렵고 고민이 될 때가 많은데, 결국 내가 삶을 꾸리는 도시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편해지더라고요. 동료나 참여자분들도 재작소 경험을 ‘실험’이라 생각하면서 마음껏 시도하고 마음껏 실패하길 바라는 마음에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있고요.
특히 지역에서 일을 하다 보면, 지역에 있다는 이유로 뭔가를 늘 증명해야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경우가 종종 생기더라고요. 저희가 지역 자원을 가지고 어떤 일을 한다고 할 때 많은 분들이 굉장히 작은, 마이너한 일을 한다고 생각하시더라고요. 비즈니스가 아니라 그냥 동아리 활동 정도로 보시는 분들도 많고요. 또 투자하는 분들은 지역에 뭐가 있냐고, 그게 지역에 있어야 할 이유가 뭐냐는 질문을 꼭 하시죠. 그래서 한편으로는 지역에서 무언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모두에게 ‘실험’인가 싶기도 해요. 그만큼 그 실험을 잘 기록하고 언어화해서 전달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어서 여전히 어렵지만 차근차근 잘 기록해 나가는 연습도 하고 있고요.
-재작소가 꿈꾸는 대전을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요? 앞으로의 계획은요?
=지금은 그리 넓지만은 않은 공간에서 좋게 말하면 ‘옹기종기’, 힘들게 말하면 ‘꼬깃꼬깃’하고 있는데요. 더 많은 대전 시민들과 모여 공간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확장해나가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대전을 자생적으로 만들어가기 위한 시도를 해보려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안정된 공간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겠고요.
어제도 저희가 동네 투어를 하면서 독립 서점 사장님을 만났는데, “지역에서는 버티기가 중요하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도 무척 공감했어요. 재작소도 공간도 사업 방향도 이리 저리 조금씩 바뀌어 왔지만 몇 년간 활동하니, 지역 내에서 어느 정도 자리 잡았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스스로 어떤 사업을 어떤 방식으로 이어갈 지에 대한 방향이 잡혔고 지역에서도 저희를 먼저 찾아주시는 경우가 점차 많아지고 있고요. ‘버티기’가 누군가에게는 우둔해 보일 수도 있지만 너무 쉽게 포기하지는 말아야겠다고 다짐해요. 얼마 전에도 3~4년 전에 활동했던 프로젝트를 보고 관심이 있다며 지금도 참여할 수 있을 지 문의 주신 시민이 있었거든요. 저희와 속도는 다를 수 있어도 결국 전달된다는 사실이 힘이 되더라고요.
인터뷰·글 희망제작소 최나현 선임연구원 ㅣ인터뷰 정리 손호석 객원연구원 ㅣ사진 희망제작소, 재작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