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지역에서는 청년들이 일군 임팩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희망제작소가 이들을 ‘소셜디자이너’라고 호명하는 이유입니다. 나의 성장이 로컬의 변화로 이어지는 소셜디자이너들의 다채로운 활동과 이야기를 특집으로 전합니다. 오는 11월 14일 개최되는 청년 소셜디자이너를 위한 무대 ‘2024 사회적가치 투자(Social Investor Relations, SIR) 대회’에서도 생생한 임팩트 경험담이 펼쳐집니다.
공영환 자작자작협동조합·플레이어 대표 | 충북 충주
충주 원도심 관아골 뒷골목은 슬럼에서 도시 재생의 성공 사례로 떠오른 곳입니다. 썰렁했던 골목에 이제 카페, 화실, 사진작업실 등 ‘힙’한 상점 20여 곳이 북적이죠. 카페 세상상회 이상창 대표 등 5명이 뭉친 보탬협동조합(현 ㈜보탬플러스)은 이 변화를 이끌어낸 주역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관아골 골목의 단골이었던 5인방이 보탬협동조합의 2세대 격인 ‘자작자작협동조합’을 만들어 관아골 골목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인 ‘여인숙’ 골목을 바꿔가고 있습니다. 이 골목은 포장마차가 사라지고 난 뒤 낡은 여인숙 한 곳 빼고는 모두 폐점한 황량한 곳이었습니다. ‘자작자작’은 이 골목에 충주의 친구들을 불러들이고 있어요.
먼저 세상상회 ‘알바 4호’였던 이준영 씨가 오래된 여인숙을 리모델링해 1층에 카페 평정, 2층 대림여인숙을 열어요. 그 옆에 보템플러스 멤버 유순상 씨가 민간운영 청년몰인 ‘로컬종합상가복작’을 만들죠. 청년몰에 사진, 영상 작업 등을 하는 공영환 씨의 ‘플레이어’와 우혜빈 씨의 책방 ‘빈칸’이 들어섭니다. 이들에 인테리어 작업하는 박경훈(프로노가더) 씨와 디자이너 이하늘(피에스파피에) 씨 등 5명이 ‘자작자작’으로 뭉쳐 충주 도심 투어를 벌이고 있습니다. 투어의 핵심은 ‘친구 되기’입니다. 지난 8월 27일 ‘로컬종합상가복작’ 공유공간에서 공영환(37) 플레이어 대표이자 자작자작협동조합의 대표(인스타그램)를 만났습니다.
MBTI 대문자 I들이 모여 충주의 친구들을 만들다
– 자작자작이 꾸리는 충주 도심 투어의 특징은 뭐예요?
= 자작자작 멤버들은 모두 ‘본캐’와 장기가 있습니다. 그 장기들을 살려 여행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사운드엔지니어인 제가 ‘사운드피크닉’을 이끌어요. 소리 채집기를 들고 일상 속에서 스쳐지나갔던 소리 하나하나에 귀 기울이는 시간이에요. 또 예비 창업주들을 위한 투어도 하고 있어요. 예비 창업주가 꿈꾸는 가게와 비슷한 충주 매장에 함께 가보고, 사업을 돋보이게 만드는 촬영 기술이며 마케팅 방법 등을 알려줍니다. 카페 ‘평정’과 대림여인숙 대표인 이준영 씨는 천체물리학을 전공했어요. 이 전공을 살려 ‘반짝반짝 별빛투어’를 진행해요. 망원경으로 토성 고리나 목성의 띠를 직접 볼 수 있습니다. 1층 카페 평정이 웰컴센터예요. 투어 상품 안내 등을 해주죠. 관광 프로그램이 끝나는 곳인 책방 ‘빈칸’은 ‘시유어게인 센터’예요. 이곳에선 느린우체통과 비슷한 프로그램인 ‘충주에서 온 편지’를 운영했어요. 투어를 마친 관광객들이 책방에서 자기 자신에게 편지를 쓰면, 이 편지는 6개월 뒤 배달돼요. 기억을 되살려 다시 오고 싶게 만드는 거죠. MBTI로 따지면 대문자 I들인 저희가 진짜 좋아하는 거, 그 매력을 함께 나누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관광거리가 별로 없는 충주에 다시 오게 만드는 건 사람이에요. 저희 프로그램을 체험해 보신 분들은 동네를 기억하고 재방문하시는 경우가 많아요.
– 그 가운데서도 ‘자작자작’의 중요한 성취를 꼽으라면?
= 2년째 매달 한 번 하는 시민대학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사회생활하면서 자기 생각을 얘기해 볼 기회가 별로 없잖아요. 여기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누구나 강사가 될 수 있어요. 정치와 종교 빼고 주제는 마음대로 정해요.
카페 ‘평정’ 친구는 ‘내향형이 제주도 혼자 가면 하는 일’을 주제로 발표했는데 재밌었어요. 저는 ‘비트코인 투자할 때 주의할 점’이란 짧은 강연을 8개 했고요. 화가인 건물주 유순상 씨는 라이브 드로잉 쇼를 했어요. 그게 아티스트 심장을 깨웠는지 이후 개인전을 열고 라이브 드로잉 퍼포먼스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있어요. 1회 시민대학 때 처음으로 발령받아 충주로 온 교사가 강연했는데 그 자리에 대림여인숙에 머물던 어르신 부부가 참여했거든요. 알고 보니 그 어르신들도 교사였어요. 참 따뜻한 이야기들을 나눴던 거 같아요. 저는 특히 ‘살면서 포기해야 했던 것들’이란 주제 강연이 기억에 남아요. ‘자작자작’은 ‘커뮤니티’고 그 정체성을 유지하는 게 시민대학 프로그램이에요. 영리 사업이 아니니까 지역 주민들도 좋게 봐주시는 거 같아요.
관아골 손님들이 ‘자작자작’ 멤버로 뭉치다
– 주제가 영 아니다 싶을 때는 어떻게 하세요?
= 그냥 그대로 해요. 강연자가 망하는 거지 저희가 망하는 게 아니잖아요. (웃음)
– 자작자작협동조합은 어떻게 모이게 된 건가요?
– 보탬플러스 누나 중 한 명이 (한국관광공사가 벌이는) 관광두레 PD가 돼 사업체를 모집했어요. ‘동네 누나가 하니 내가 도와야지’ 그렇게 ‘자작자작’이 시작됐어요. 자작자작 멤버들은 모두 관아골의 손님들이었어요. 충주에서 뭔가 꿈틀대는 느낌이 가장 많이 드는 데가 관아골이었어요. 그쪽 사람들하고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보탬플러스에서 플리마켓 ‘담장마켓’할 때 제가 사진 기록을 제안했고 그러다 친해졌죠.
자작자작협동조합은 제가 제안했는데요. 저희는 먹고사는 문제는 각자 사업으로 알아서 해결하고 이를 도와줄 수 있는 방법으로 협동조합을 쓰려고 했어요. 그게 더 지속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각 사업에 맞게 여행프로그램을 짰죠. 보탬플러스 멤버는 외지에서 충주로 온 사람들인데 자작자작은 모두 충주 출신이에요. 자작자작 구성원들이 왜 충주를 떠났다 돌아왔는지 생각해 봤어요. 충주의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은 느낌’이 좋았던 거거든요. 구성원들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아요. 에너지가 남는 사람이 좀 귀찮은 일을 감당하면 돼요. 관광두레 관련한 서류 작업 같은 건 저 혼자 해요. 각자 기획한 투어 상품의 수익은 각자 가져가요.
– 여인숙 골목에는 원래 관심이 있었나요?
= 그렇죠. 여인숙 골목 부근과 봉방동이 마지막 남은 충주 구도심이죠. 봉방동 청년 25명이 봉방동청년엽합회를 만들었어요. 모두 사장이에요. 젊은 세대들이 은근히 충주로 들어오고 있어요. 상권이 생기면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니 (창업해 안정적으로 성장하려면) 건물주가 되지 않으면 답이 없어요. 충주는 1억 미만인 건물들이 있으니 손을 뻗어볼 만한 거죠.
– 관광두레 이외에 정부 지원 사업을 받아 보신 적이 있나요?
= 저는 간섭 받지 말자는 주의예요. 정부 지원 사업은 모집 방향과 실제 사업이 맞지 않는 거 같아요. 말로는 하고 싶은 거 하면 지원한다면서 실제로는 원하는 그림이 있더라고요. 저는 그런 게 싫어요. 차라리 대놓고 모집 때부터 원하는 그림이 뭔지 분명히 했으면 좋겠어요. 공모사업으로는 돈을 벌 수가 없고요, 지원 사업이 오히려 사업체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도 있어요. 예를 들어, 지원금을 받으면 투어 상품 가격을 (실제 가치보다) 낮게 책정해야 해요. 그러면 나중에 제값을 받을 수가 없어요. 저는 이게 독이라고 생각해요.
-지자체마다 관광객 유치하려 노력 중인데요. 어떻게 해야 효과적일까요?
= 충주 키워드로 검색하면 1등으로 나오는 게 활옥 동굴이에요. 투명 카약 타고 도는 동굴이죠. 소비자들은 ‘시그니쳐뷰’가 있어야 가요. 사람들이 제값 주고 볼 비주얼을 관은 못 만들어요. 관은 사공이 너무 많거든요. 모두를 고려한 디자인이라고 하는데 그건 모두가 안보는 디자인이기도 해요. 방문객들이 자작자작 멤버인 대림여인숙에 남긴 후기를 보고 저도 충격을 받았는데요. 그 손님은 에어비엔비 찾다가 숙소가 아늑해 보여서 왔다더라고요. 그렇게 충주 자체가 목적지일 필요가 없는데 관은 착각하는 거 같아요. 그래서 자꾸 이상한 걸 만들어요. 콘텐츠 하나가 뾰족하게 튀어나올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해요. 매력적인 사업체가 일어나는 게 시작이에요. 만약 관이 나설 거라면 특정 공간에 대한 권한은 민간에 주고 10년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컨트롤하지 말아야 해요.
큰 소리 안 나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
– 대표님도 충주 출신이신데 왜 떠나셨고 또 돌아오셨어요?
= 원래 음악을 하고 싶었는데 부모님 반대로 의공학을 공부했어요. 사운드앤지니어를 하고 싶어 20살에 서울로 갔죠. 그 일을 하려면 무조건 충주를 떠나야 했어요. 공연이나 문화적인 소비가 서울에 몰려 있으니까요. 사운드앤지니어로 3년 정도 일했어요. 그러다 공연장에서 사고로 한 쪽 귀를 못 듣게 돼 접었어요. 곧 사진을 만났어요. 2010년 충주에 내려와 대학 앞에서 사진관을 열었습니다. 잘 됐는데 매출이 3~4월에 몰렸어요. 리스크가 있다고 생각해 사진관을 넘기고 KT통신사 대리점 영업을 7년 했어요.
그때 배운 게 지금 큰 도움이 돼요. 고객 유형 분석도 많이 했고요. 애플코리아에서 영업을 잘하는 사람들을 뽑아 서비스, 상품 기획 교육을 하는데 진짜 좋았어요. 당시 배운 건 기획자들이 소비자일 때를 자꾸 망각한다는 점이에요. 자기가 소비자라면 안 샀을 걸 내놓는다는 거죠. 또 하나는 소비자는 상품을 모른다는 거예요. 당신이 이 상품을 만났을 때 어떤 기분이 들 거란 걸 말해줘야 그 기분을 느낀다는 거예요.
코로나 터지기 2년 전부터 오프라인 판매 시장이 저문다는 감이 오더라고요. 여행사하던 손님이 저한테 스카웃 제의를 하셨어요. 코로나 끝나면 여행 수요가 폭발할 거라고요. 여행사에서 석 달 일했는데 코로나가 생각보다 길어졌어요. 그래서 촬영 프리랜서 창업을 했죠.
관아골 골목 구석에 히피 친구들이 노는 펍이 있어요. 4년 전 거기서 만난 히피 친구들에게 자극 받았어요. 저는 자기 직업으로 소개하려면 엄청난 전문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 친구들은 재밌게 음악하면 뮤지션이라고 소개해요. 제가 사운드앤지니어를 못할 건 없겠다 싶었죠. 그날 바로 음향 장비를 샀어요. 지금은 1천명 정도 들어가는 공연을 할 수 있는 장비를 갖추고 공연기획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공연기획도 하고 있죠. 8월엔 울릉도에서 하는 ‘우리나라 가장 동쪽 영화제’ 음향을 맡았어요. 이 모든 경험이 녹아 제가 지금 하는 ‘플레이어’ 사업이 된 거죠. 브랜드가 소비자를 만나는 순간을 설계하는데요, 브랜딩 영역과 겹치는 포토그래퍼라고 보시면 돼요. 그냥 사진을 찍는 게 아니라 상품 안에 담긴 스토리를 소비자에게 전달하도록 영상, 바이럴 콘텐츠를 기획해요. 최근엔 고급 온천호텔인 유원재의 사진과 바이럴콘텐츠 작업을 했어요.
– 자작자작의 비전은 뭐에요?
= 큰 소리 안 나게, 하고 싶은 거 다하자 그래요. 곧 나올 저희 ‘궂즈’에는 성경에서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에게 선물한 몰약과, 카페 ‘평정’ 친구가 만드는 라이터, 서점 친구가 만드는 책갈피가 함께 들어가요. 몰약을 오일버너에 올리고 불을 붙이면 녹으면서 향이 나거든요. 그 시간 동안 책을 읽는 거죠.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게 정말 재미있어요.
– 대표님의 비전은 뭔가요?
=저는 안 좋은 일이 일어나면 ‘이미 일어난 걸 어쩌겠나’ 하고 넘어가요. 그냥 재밌는 걸 택하다 여기까지 왔어요. 제 비전은 계속 재미있게 사는 거예요.
– 글: 김소민 희망제작소 연구위원 | 사진: 희망제작소·자작자작협동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