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 곳곳에 ‘해결사’들이 있습니다. 변화를 꿈꾸지만 않고 실행합니다. 희망제작소는 ‘사회적 가치’를 생산하는 이들을 ‘소셜디자이너’라고 호명하고 연결합니다. 오는 12월 14일 <2023 소셜디자이너클럽 사회적가치 투자(SIR) 대회(링크)를 여는 이유입니다. 이날 청중심사단(링크)이 소셜디자이너 10명의 피칭을 듣고 모의 투자합니다. 시민을 만날 소셜디자이너 10명을 소개합니다.
놀다가 어느새 정책 토론…“자연스러움의 힘은 세요” | 이학준 구로청년채움 대표
생판 모르는 곳에서 정을 나눌 수 있을까요? 대구에서 나고 자라 서울 내 대학에 입학한 청년. 여기까지는 평범합니다. 그렇게 대학 입학과 함께 자리 잡은 서울 구로구. 그는 색다른 선택을 합니다. 친척, 친구, 지인 한 명 없는 곳에서 청년들을 연결하기로요. 최근 몇 년 새 청년을 위한 커뮤니티도, 정책도, 공간도 넘쳐납니다. 부족할 게 없어 보이는데 그는 기가 막히게도 ‘틈’을 찾아냅니다. 틈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거창한 구호 뒤에 숨은 청년의 현실이 보이고, 호명되지 못한 청년의 얼굴도 보입니다.
‘틈’을 발견하는 ‘매의 눈’을 가진 청년은 이학준 구로청년채움 대표입니다. 이 대표는 청년 의제를 발굴해 공론장을 열고, 탈북청년 간담회를 개최하고, 구로 마을버스 투어 가이드북을 만들었습니다. 동네 어르신을 인터뷰하며 숨은 이야기를 모으고, 청년 커뮤니티 모임인 <구롱살롱>을 열었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다 보니 낯설기만 했던 구로구에 새록새록 정이 생긴답니다. 오전에는 대학생으로, 오후에는 청년단체 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이학준 구로청년채움 대표를 지난 10월 26일 사무실에서 만났습니다.
– 서울살이는 언제 시작하셨나요?
성공회대에 입학(2019년)하면서 연고 없는 서울로 왔어요. 고등학교 때 학생회, 토론, 독서토론 동아리 등을, 대학에서는 학생회 활동을 했는데요. 대학교 학생회에서 처음 ‘시민단체’라는 걸 알게 되면서 마음 맞는 사람들이 모여 작게나마 무언가를 바꾸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품었어요. 그렇게 대학 학생회에서 활동하다가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구로청년채움이라는 단체까지 만들게 됐어요.
– 서울 생활은 어땠어요?
석 달가량 적응하느라 진짜 힘들었어요. 대학 때문에 기숙사에 들어가야 했는데 그 공지글을 입학 이틀 전에야 찾았거든요. 그나마 학교 주변의 월세가 저렴한 축이라 그쪽으로 학생들이 빠져나가고, 신축 기숙사가 생기면서 경쟁률이 낮아 다행이었지만요. 그리고 몸이 아파서 신입생 MT에 못 갔는데 정보를 들을 창구도, 친구들과 친해질 기회가 없더라고요. 서울이나 수도권에 사는 친구들은 한 다리 건너면 아는 사람이던데, 전 지방 출신이라 공감대를 형성하거나 대화를 이어가기 쉽지 않았어요. 말을 걸어도 대화의 접점이 넓지 않았어요. 이후 학생회에도 들어가고, 동아리도 하면서 차차 적응했던 것 같아요.
– 고등학교 때도 학생회 활동을 활발하게 했다고 들었어요. 대학 학생회는 뭐가 다르던가요.
학생회에서 주로 기획을 맡았어요. 자치예산을 산정기준에 따라 예산을 짜고, 집행하고, 기준을 만들고, 증빙이나 회계 처리 등을 배우는 시간이었어요. 고등학교 때는 선생님과 학생의 요구 둘 다 맞춰야 했다면 대학교 학생회에서는 학생회 주도로 ‘하고 싶은 사업’을 직접 할 수 있으니까요. 한번은 축제 때 조선시대 콘셉트의 부스를 열었죠. 다만, 학생회 내 비리 문제가 터졌는데 자정작용도 없고, 공론장도 열리지 않는 등 민주주의가 실종된 상황을 목격하면서 실망이 컸어요. 치고받고 싸우는 국회의원과 다를 바 없어 보여서 학생회 활동으로 그만두고 마음이 맞는 친구들 15명이 함께 나왔죠.
‘비민주적’ 학생회 뛰쳐나와 뜻맞은 친구들과 의기투합
– 친구들과 영리기업이 아니라 비영리단체에 도전한 이유가 있나요.
끼리끼리 논다고 하잖아요. 그만두고 나온 친구들 모두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어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일’(직업)을 하고 싶었죠. 대학생으로서 대외활동도 매력적이지만, 어쨌든 누군가 정해주는 걸 해야 하잖아요. 오히려 경영학부, 사회복지학과, 정치학부 등 여러 전공배경을 가진 우리가 뭉치면 뭔가 새로운 거, 진짜 하고 싶은 걸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서로 하고 싶은 게 조금씩 달랐지만 공통점은 ‘정책’이었어요. 대학을 다니는 4년 동안 머무는 동네에서 뭔가 의미 있는 걸 해보기로 했어요. 그때 우연히 구로구청에서 추진하는 ‘일자리 정책 프로젝트’ 사업을 발견했고, 2021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어요.
– 구로청년채움은 어떤 활동을 주로 했나요.
일자리 정책 사업부터 브랜딩 사업, 세대 교류 사업, 공론장과 토론회 등을 열었죠. 그 중 구로구 마을버스 가이드북을 만들고, 청년 커뮤니티인 <구롱살롱>을 열어보니까 동네는 보면 볼수록, 동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정드는 게 순리더라고요. 이 동네 저 동네 돌아다니면서 오류동 부근에 북한에서 피난 오신 분들의 정착촌이 있었다는 이야기, 인천에서 서울로 가는 중간지점이라 주막거리가 있엇따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내가 사는 지역이 달리 보였어요. 그렇게 알음알음 청년들이 모였고, 하고 싶은 사업을 해본 뒤 해체하는 ‘느슨한 연대’ 방식으로 함께 일한 청년이 60명이 넘어요.
– 학생회나 동아리와 달리 단체를 이끌고 가는 게 쉽지 않죠.
지금도 자리 잡은 상황이 아니지만, 21살에 처음 시작했을 땐 노하우도 없고. 텃새도 제법 겪었어요. 구로구는 시민사회단체 활동이 활발하거든요. 구로 지역 청년 관련 단체에서 저희를 경쟁자로 보더라고요. 시민단체니까 열려있을 거라고 봤는데 한정된 자원 때문인지 경계하고, 강압적인 상황을 마주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또 처음엔 같이 활동을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 친구들이 현실적인 선택을 하는 순간이 오더라고요. 한두 명씩 활동을 그만두니 빈자리가 커졌어요. 주로 공모 사업에 참여하고 회비로 공간 임대료를 내고 있는데, 고정적인 재원이 없다는 게 어렵죠.
쏟아지는 청년 사업과 정책, 어긋난 청년의 현실
– 청년들 중심으로 개별성을 존중하는 취향 공동체가 주목받잖아요. 커뮤니티 중심의 공동체와 공존할 수 있을까요.
사실 저는 어린 시절 공동육아 유치원을 다녔고, 주변에 공동체 관련돼 활동하는 분들이 많았거든요. 동생도 세 명이고요. 그래서 처음 대학에 왔을 땐 또래인데도, 또래가 잘 이해되지 않더라고요. 뭔가 자기 것만 하고 가버리는 것 같아서요. 그런데 단체를 만들어 활동할수록 이게 청년세대의 문제라기보다 ‘세태’라는 걸 느껴요. 사회적 흐름이라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요. 예를 들어 기숙사만 해도 경쟁률이 높아지면서 성적, 거리, 거주 요건 등 입주요건이 까다로워졌거든요. 그러니 대학 주변에서 자취를 할 수밖에 없고, 매년 월세가 오르니 더 싼 곳으로 옮겨야 하는 상황인데 청년이 공동체에 관심을 가질 수 있을까요. 정주할 수 없는 청년의 비정주성은 청년의 문제가 아니기에 청년을 위한 무언가가 필요하죠. 인플루언서 중심의 커뮤니티, 첫발을 내딛기 어려운 마을공동체, 단발성의 지자체 청년사업 사이 벌어진 틈을 채울 수 있는 청년 사업이 필요한 것 같아요.
– 그렇다면 청년 사업을 벌일 때 가장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가요.
인건비요. 지금 많은 예산이 청년 창업 쪽으로 쏠려있는데, 비영리단체의 사회적 가치가 크다는 걸 믿고 있거든요. 실제 연구자료도 있고요. 우리사회는 비영리단체의 인건비를 두고 유독 깐깐히 구는 경향이 있잖아요. 제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단체를 운영하고 있는데, 한번은 월 100만 원 정도 인건비 지원을 받아보니, 활동의 폭이 정말 넓어지더라고요. 아르바이트할 시간에 꾸리고 있는 사업이나 활동을 점검하고 살펴볼 수 있으니까요.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있는 청년을 위한 사업보다 그렇지 못한 대다수 청년, 그러한 청년들의 눈높이에 맞춘 유인책이 많아지면 좋을 것 같아요.
놀다가 어느새 정책 토론으로…“자연스러움의 힘은 세요”
– 활동하면서 개인적으로 얻은 점이 있나요.
작년에 지방에서 워크숍을 열었는데 우리가 사회를 바꾸는 게 가능할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청년들이 곳곳에서 겪고 있는 고충을 한데 뭉쳐보니까 대다수 청년이 겪고 있는 문제더라고요. 그러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토론하는 게 자연스럽게 이어졌어요. <구롱살롱>도 동네에서 노는 모임으로 느슨하게 운영하지만, 실제 청년이 모이면 동네 얘기하다가도 청년 정책 얘기가 툭툭 나오거든요. 의도하지 않았는데 어느새 구청에 민원을 넣고 있더라고요(웃음). 이런 모습을 보면서 놀랐고요.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바뀔 수 있구나’, ‘자연스러움의 힘은 정말 세다’는 걸 알았어요.
– 앞으로 계획이 궁금해요.
처음 낯선 동네에 살게 되면 폐건전지함이나 헌옷수거함이 어디 있는지 찾기 어렵잖아요. 물어볼 데도 없어 답답하고요. 이러한 아이디어에서 우리 동네에서 필요한 무언가를 우리 눈에 보이는 걸로 만들면 어떨까 싶어서 <동네 지도>를 만들어보자는 얘기가 나왔어요. 또 동네를 아는 분들이 가이드 투어해도 재밌겠다는 아이디어도 덧붙였어요. 청년이 지도를 만들고, 동네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줄 분들이 투어 가이드로 참여해 지역 이야기를 풀어놓는 거요. 이미 여러 곳에서 만들기도 했는데 공유가 되지 않거나 업데이트되지 않더라고요. 기왕 서울에 사는 거 정도 붙이고, 뭐가 있는지도 보고, 서로 정보를 공유하면 좋겠다 싶었고요. 올해 연말부터 이번 사업에 함께하는 청년들이 거주하는 구로구 오류동과 구로동, 성북구와 노원구의 동네 지도를 만들어볼 예정입니다.
-인터뷰 및 정리: 방연주 시민이음본부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