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희망제작소 2층에는 NPO정보센터라는 곳이 있습니다. 국내 서울, 경기를 비롯한 지방 곳곳의 NPO 자료들과 함께, 관련 도서들이 있는 곳인데, 이곳에서 매 주 2회 한 분의 시니어가 행복하게 봉사 중이십니다. 바로 ‘최강주’ 선생님, 그 분을 소개합니다.

”사용자Q: 선생님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히 듣고 싶습니다.
A: 전남 장성에서 태어났지요. 해방둥이입니다. 지금, 한국 나이로 66살 먹었네요. 딸 둘, 아들 하나 두고 있는데, 딸 둘은 결혼했고, 대학 다니는 아들과 같이 살고 있습니다. 법학을 전공했고, 교직을 선택해 고등학교에서 정치와 경제를 가르쳤는데, 군산에서만 30여년 보냈습니다. 교직에만 34년 몸담았군요.

어른을 부르는 호칭이 아니라, 정말 ‘선생님’이셨습니다. 선비의 풍모가 느껴졌습니다.
전, 선생님을 만나뵐 때면 꼭 여쭈어 보는게 있습니다.

Q: 기억에 남는 제자가 있으십니까?
A: 요 근처 삼각산 금선사에 주지로 법안 스님이 있어요. 명진 스님, 수경 스님과 함께 MB정부로부터 요주의 인물로 지목 받고 있지요. 함운경이라는 제자도 기억에 남아요. 서울대 물리학과를 나와서 삼민투위원회에 속해서, 최초로 미 문화원을 점거했던 녀석입니다. 정치에 몸담았는데, 선거에서 몇 번 고배를 마셨지요. 참, KBS의 전 노조위원장 강동구도 있습니다. 현직, 판검사, 고위 공무원들 많지만, 나는 이 친구들이 가장 먼저 떠오르네요.

남이 안가는 길을 가는, 그래서, 지탄도 받고, 고통도 겪는 그런 제자들을 더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그 길은 또 어두운 시대를 밝히기 위해 자신을 태우는 길이었습니다. 투쟁의 현장에서 그 제자들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최강주 선생님이 함께 겪으셨을 그 아픔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면서, 살아오신 이 분의 삶 전반을 느끼고 싶어서 질문했습니다.

Q: 좌우명 혹은 마음에 늘 품고 계시는 생각이 있으신가요?
A: 음…. 바르게… 정의롭게…

좌우명이라는 거창한 규정에 멋진 문장 하나를 가지고 계신 것은 아닌 듯 망설이시면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 ‘바르게, 정의롭게’를 들으면서, 그 제자들을 왜 그렇게 기억하시는지 알게 됩니다. 또, 기억하시는 그 제자들의 삶이 왜 그러한지 알게 됩니다. 우리가 영웅처럼 보게 되는 사람들 뒤에는 역시 부모와 더불어 ‘스승’이 자리합니다. 최강주 선생님도 그러한 분이시네요.

”사용자본격적으로 선생님의 희망제작소 활동에 대해서 여쭈어 보았습니다.

Q : 희망제작소에서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요?
A : 희망제작소 NPO정보센터의 자료 관리입니다. 도서와 자료의 분류 및 데이터 입력을 하고 있습니다. 양이 많아요. 만만치 않은 작업이죠. 올해 초부터 주 2회, 화요일ㆍ목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봉사해오고 있습니다.

Q : 선생님이 느끼시는 보람은 무엇입니까?
A : 아직도 도서분류가 안돼서 방문자들이 쉽게 자료를 찾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다 되면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이 편하게 자료를 찾을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가지고 있죠. 좋은 자료들이 많거든요.

Q : 희망제작소에서 활동하게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A : 희망작소에서 진행하는 행복설계아카데미 9기를 수료 했고, 이후 이곳에서 봉사하게 되었습니다.

Q : 희망제작소에서만 활동 하시나요?
A : 건강한 몸인데, 물론 아니죠. 국가인권위원회의 노인인권지킴 위원회 활동도 합니다. 또 있어요. 탑골공원 서울 노인복지센터내에 있는 서울시 어르신 상담센터에서 주 1회 동년배의 전문가 상담을 하고 있는데, 나는 소비자피해 상담을 합니다. 퇴임하고 1년간은 여행이나 하고, 친구들 만나고, 주로 등산만 했지만, 지금 이렇게 왕성하게 다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모두모두 행복설계아카데미를 통해 인연이 되었습니다.

놀라웠습니다. 희망제작소에서 매주 6시간 이상 자료와 컴퓨터로 씨름하시는 것만으로도 이미 훌륭한 나눔의 삶이라고 생각했는데, 제 눈으로 보고 있는 것 이상의 의미있는 일들을 하고 계셨습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이미 꽉찬 스케줄입니다. 참, 일요일은 아침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교회 성경학교 고등부 선생님도 하신답니다. 열정 가득한 선생님을 보면서 내친 김에 ‘꿈’을 여쭈었습니다.

”사용자Q : 실례가 되는 질문일까요? 혹시, 남은 30년을 앞에 두고 꿈이 있으십니까?
A : 당연히 있지요. 30년 이상 사회와 국가로 부터 녹을 먹고 살았으니 사회, 국가에 다시 환원해주는 삶을 살고 싶어요. 금전적인 도움은 못되지만, 지식이라던지 몸을 이용해서 환원해보려고 합니다. 몸이 허락하는 그 때까지 할건데, 건강이 관건이라고 생각해서 일주일에 3-4번 하루 한 시간 이상 걷기를 하고 있습니다.

나눔을 위한 꿈을 꾸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한 열정인 각오와 실천이 있는 사람. 청년, 중년, 장년 또는 시니어와 같은 단어들이 단지 나이 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우리 최강주 선생님, 꿈꾸는 청년이라 불리워야 합니다. 산행하거나, 운동하면서 만나는 동년배들에게 행복설계아카데미 광고도 그렇게 많이 하신다고 합니다. 그 불꽃같은 열정을 다른 분들과 함께 불태우고 싶으셔서겠지요.

마지막 질문을 던졌습니다.

Q : 선생님, 희망제작소 입구를 보면 유명인들이 ‘나는 희망합니다’라고 쓰여진 작고 동그란 피켓을 들고 자신들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사진이 걸려 있는데요, 그거 보실 때마다 선생님도 한 문장 떠올리시지 않으셨습니까?
A : 음… 나는 희망합니다. 사람 살기 좋은 사회, 소외받는 층도 인간 대접을 받는 그런사회…

인턴을 시작한지 며칠 만에 30~50대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퇴근후 let’s’ 프로그램의 수료 파티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때, 희망제작소 유시주 소장님의 한마디가 생각납니다.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세상의 지혜를 구하는 사람이 봤을 때 의미가 있는 사람’.

최강주 선생님 역시, 바로 그러한 사람입니다. 교직에서는 떠났지만, 아직까지 이렇게 한 젊은이에게 가르침을 주고 계십니다.

글_시니어사회공헌센터 김동연 인턴 (susuact@gmail.com)

”사용자



희망제작소 NPO 정보센터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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