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박원순의 희망탐사 42>

어릴 적 엄마 치마 끄트머리를 붙잡고 복작복작한 시장을 걸어 다니다보면 별천지가 따로 없었다. 시큼한 막걸리 냄새에 살짝 코를 맡기기도 하고 오색 옷들에 눈을 빼앗기기도 했다. 여기저기 시끄러운 소리 틈새로 곧잘 농가가 흘러나오기도 했지만, 듣도 보도 못한 가락들이 귀를 울렸다. 날랜 엄마의 발걸음을 따라잡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시장을 가는 게 좋았다. 사람냄새, 음식냄새에 가락이 어우러지고, 내 것이 아니어도 풍성한 그곳이 나는 좋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옛날의 시장, 흔히 말하는 재래시장의 옛 영광의 한 단면일 뿐이다. 요즘 재래시장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살아남느냐, 사라지느냐 두 갈림길에서 모두 발버둥치고 있다. 재래시장 상품권을 발행하고, 재리시장을 현대화하고, 주차장을 들이고, 지자체나 지역기업을 대상으로 재래시장 이용의 날을 정하기도 한다. 그래서 살아남은 자는 살아남은 자로서 더 많은 책임감을 가지고, 더 많은 어려움에 봉착하면서 살아남기를 계속하고 있다.
”?” 청주 육거리시장은 살아남았다. 면적 3만 평, 상가점포수 1500여 개, 종사원수 3500여 명, 일일 매출액 7억 원에 이르는 움직이는 거대기업 육거리시장은 3500여 명의 깨침과 1500여 개 점포의 새 각오와, 약 3만 평의 새단장으로 살아남았다.

문자 속에 갇힌 글귀로서가 아닌 실질적인 제 살 깎기와 변화로 살아남았기에 그들의 변화에는 끝이 없다. 하나의 고개를 넘었을 뿐 앞에는 더 많은 산이 그 거대한 위용을 드러내며 기다리고 있으니 그들에게 안주는 없다. 변화만 있을 뿐이다.

대형마트의 셔틀버스 운영 중단노력과 시장상인들의 각성

민성기 육거리시장 상인연합회장은 그 변화의 맨 앞자리에서 ‘전진’을 외치고 있다.

“육거리 시장은 청주 최대의 전통 재래시장입니다. 청주 유일의 하천인 무심천변에 우시장이 형성되면서 자연스럽게 먹거리와 생필품을 교역하는 장소가 되었죠. 하지만 다른 재래시장과 마찬가지로 90년대부터 가속화된 대규모 마트와 쇼핑몰, 홈쇼핑, 인터넷쇼핑 등으로 최고의 상가라는 지위를 양보하고 쇠퇴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시장에서 다져진 다부진 그의 목소리에는 육거리시장이 봉착한 어려움이 묻어났다. 하지만 시장사람들은 강하다.
”?” “다른 시장과 같았죠. 대형마트가 들어오면서 거의 문을 닫을 형편이었어요. 급하게 각 구역의 번영회장들이 모여 연합회를 만들어서 처음에 시작한 운동이 대형마트의 셔틀버스 운행을 중단하라는 데모였어요. 버스조합, 재래시장, 슈퍼연합회, 경실련 등이 함께 힘을 보탰습니다.

결과적으로 셔틀버스는 중단됐죠. 운동을 하면서 사람들이 깨치기 시작했어요. 상인들 스스로 나서며 활성화를 위한 노력을 벌였습니다. 물론 황무지에서 시작해 실패도 많이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런 실패가 밑거름이 되어 지금은 많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재래시장 살리기는 하나하나 단계를 넘어가면서 진행됐다. 셔틀버스 운행이 중단되고서는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아 재래시장 현대화 사업의 하나로 아케이드 공사가 펼쳤다. 35억 원이 들어갔지만, 생각만큼 고객은 늘지 않았다. 문제는 스스로의 변화였다. 아침 첫 손님이 값만 물어보고 가면 하루 장사가 어렵다며 소금뿌리는 기존의 방식으로는 아케이드를 설치한다고 손님이 올 리 만무한 것 아닌가.

“상인들의 의식은 하루아침에 바뀌는 게 아니잖아요. 하지만 그건 시장의 현대화보다 더 중요한 거죠. 그러는 사이 대형마트가 들어왔는데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중년층 이상의 고객들이 시장을 찾게 됐어요. 2000년에는 주차장을 만들었더니 그 해가 우리 시장 활성화의 원년이 되었죠. 물론 주차전쟁을 극복하는데 4년 정도 걸렸으니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그뿐 아니다. 1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이벤트를 했다. 한 달에 한 번 꼴로 행사를 진행했다니 그 준비에 대단한 공이 들어갔을 터이다. 하지만 그 사이 또 다른 대형마트가 화려하게 개장했다.

재래시장의 장사꾼, 친절서비스 교육을 받다.

민성기 회장이 늘어놓는 그들의 노력들을 펼쳐보니 열손가락을 훌쩍 넘는다. 상인연합회를 구성해 한 목소리를 내어 움직였고, 아케이드나 주차장 등의 편의시설을 확충했으며, 지속적인 이벤트는 기본이고, 고정손님을 유치하기 위해 부녀회와 기업체와 자매결연 등을 맺었다. 인터넷 쇼핑의 기법인 ‘공구'(공동구매)는 물론이고, 노점좌판까지 규격화했다.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상인의 의식개혁을 위한 교육과 판매기술 교육을 통해 전문상인으로 육성한 일이다.

“교육은 성과가 바로 드러나지 않아요. 재래시장이 상인들에게 친절교육을 했다고 해서 상인들이 금방 친절해지는 것도 아니고 또 나름 친절해졌다고 해서 바로 고객이 늘어나는 게 아니잖아요. 하지만 상인들이 변하는 게 눈에 띄어요. 강사들이 교육하고 나면 기가 막히게 잘하고 상인들이 변하는 게 바로바로 눈에 들어와요. 교육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큰데, 상품을 진열하고 고객과 대화하는 것부터 달라져요. 반복교육을 하면 대부분 변하게 되죠. 그러한 교육의 열매는 당장 열리지 않지만, 길게 보고 궁극적인 변화를 위한다면 필수적이에요.”

하지만 그 교육 또한 현장을 담보로 하지 않으면 일정한 한계를 가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현장교육에 들어가는 비용이나 재래시장의 전문가가 없다는 단점을 안고 있다. 그러기에 교수들을 만나면 학생들을 훈련시켜 현장에 투입해달라는 주문을 빼놓지 않는다.

재래시장 상품권으로 히트치다.

재래시장을 살리기 위해 청주에서 노력한 여러 방안 가운데 가장 성공한 것은 청주시가 최초로 도입한 재래시장상품권이다. 그 효과를 보자.

“공무원 한 명이 제대로 하면 큰 성과를 내게 되는데, 재래시장 상품권이 바로 그 결실이죠. 청주시의 권병홍 경제과장이 열심히 해서 재래시장 상품권이 이뤄졌어요. 2003년 12월 1일 전국 최초로 재래시장상품권이 발행되었습니다. 2006년 5월말 현재 43억5000만원 어치가 발행이 되었고 판매가가 37억 원이나 됩니다. 청주에 재래시장이 14곳 있는데 그 중 육거리시장에서 판매되는 것이 70%를 차지하니 우리로서도 가장 성공한 방안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죠.”
”?” 재래시장 상품권은 선물용 등으로 많이 나간다.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 지자체나 기업 등에서 많이 이용하는데 특히 명절 즈음 재래시장 상품권 선물 캠페인도 벌인다. 기업체나 공무원을 중심으로 이왕이면 재래시장상품권을 쓰자는 운동이 펼쳐지는 것은 그들의 바탕에 건강한 지역경제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본다.

재래시장 측으로서는 그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1212개소나 되는 가맹점을 확보하고, 단일화된 브랜드 마케팅을 벌이는 노력 등을 아끼지 않는다.

그처럼 지역의 각 주체들의 노력들이 합해져 재래시장상품권이 재래시장을 살리는 효자역할을 하고 있고, 청주시에 이를 벤치마킹 하러 오는 발길 또한 줄을 잇는다.

“재래시장 상품권의 매출확대 효과가 아주 큰 것은 아닙니다. 회수와 판매를 계산해보니 매출의 0.7% 수준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효과는 고객층에 변화를 불러왔다는 사실입니다. 궁극적으로 고객창출의 효과라고 봐도 무방하죠. 예전에는 중년층 중심으로 재래시장을 찾았다면 상품권이 생기면서 젊은 층들이 상품권을 이용하고 있어요. 재래시장에 대한 옛 추억 하나 가지고 있지 않은 젊은 그들이 상품권을 계기로 재래시장을 한번 찾아보고는 재미를 느끼게 되는 거죠. 깎아달라고 졸라대는 사람 사는 맛, 대형마트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그 맛을 알게 되는 거예요. 그러다보니 서서히 고객층이 바뀌더군요.”

지금 당장 그들이 재래시장에서 쓰는 돈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고, 아직도 머리 희끗한 사람들이 더 많지만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한 그 젊은이들은 재래시장의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음을 보여준다.

“물론 우리도 발맞춰 움직여줘야 해요. 젊은이들, 아기 엄마들도 많이 오는데, 고객이 바뀌니 상인들도 서서히 젊은 층으로 바뀌더군요.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그 고객에 맞는 상품이 없다는 겁니다. 상품을 빨리 개발하는 게 가장 시급한 과제다. 상인이 그 개발을 먼저 나서서 하지 못하는데 이런 것은 전문가들이 도와주어야할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재래시장 전국연합회가 결성되다-벤치마킹하러 오는 전국의 상인과 공무원들

재래시장의 어려움은 한 두 곳의 문제가 아니다. 전체 한국 유통경제의 구조변화와 맞물리면서 일어난 전체 재래시장의 어려움이다. 이에 청주시에 재래시장 상인연합회가 생겼듯, 전국의 모든 재래시장에서 소소한 연합회가 생기기 시작했다. 여기에 재래시장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보태져 ‘재래시장 육성법’이 만들어졌고, 이러한 배경으로 생긴 것이 전국연합회다.

“2006년에 들어서 전국재래시장연합회가 만들어졌습니다. 재래시장육성법에 따라 이뤄진 거죠. 중소기업청에서 힘을 많이 썼습니다. 설립은 됐는데 2006년도의 준비단계를 거쳐 2007년부터 실질적인 활동에 들어가게 됩니다. 중소기업청에 재래시장과가 있고 시장경영지원센터라는 게 있어서 적극적으로 재래시장을 돕게 되는 거죠. 중소기업청과 상인연합회, 시장경영지원센터가 삼박자로 노력을 경주하고 있고, 다들 힘을 보태고 있으니 결실이 맺어지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 청주 육거리시장은 재래시장 가운데에서도 성공적으로 변화를 꾀하는 곳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동안 육거리시장 사례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다녀간 상인들이나 공무원들이 5000명이 넘는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자랑할 단계가 아니며, 자신도 이제 첫발을 뗀 수준이라고 이야기 한다.

“첫발을 뗀 정도죠. 엄정히 말하자면 초보적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스스로 걸음을 떼고 당당히 걸으며 그 결실이 제대로 맺어졌을 때 성공이라는 이름을 붙이며 자랑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아직도 부족하다는 그들의 말은 사실이다. 재래시장은 아직도 부축을 필요로 한다. 지금도 수많은 재래시장의 상인들은 한숨을 지을 테고, 그중 몇몇은 장사를 접을지도 모르며, 또 일부재래시장은 그 숱한 영광과 상처를 뒤로 한 채 사라져버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수의 재래시장이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으며, 더 많은 수의 상인들이 흔들리는 다리를 굳건히 땅에 대고, 상처 많은 손으로 물건을 담고 있을 게다. 얼굴에는 웃음을 띤 채로, “또 오라”는 말을 잊지 않고.

그러기에 민성기 회장을 비롯해 육거리시장의 수많은 상인의 목소리에서, 강인한 눈빛에서 어려움의 그늘이 언뜻 비치지만, 그보다 강한 생명력이 꿈틀거리는 것이다. 그리고 난 그 강한 생명력에서 이러한 어려움에 무릎 꿇을 그들이 아니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그래서 난 감히 우리 재래시장의 미래를 함부로 어둡다고 말하지 말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 국민들이 재래시장에 대한 애정을 거둔 것이 아니라면 분명 희망은 있다.

면담일시 – 2006년 6월 12일 7시

면담장소 – 청주시 상당구 석교동 육거리시장상인연합회 사무실

면담인사 – 민성기 청주 육거리시장 상인연합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