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유기농 오리농법으로 유명한 충남 홍성군 홍동면에 요즘 귀농·귀촌을 꿈꾸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지역공동체 활동을 체험하기 위해서이다. 50여 년 전만 해도 홍동면은 한국의 여느 농촌과 다름이 없었다. 소득원은 한정되어 있었고 넉넉지 못한 가정 형편 때문에 학업을 포기해야 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홍동면 지역공동체 활동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풀무학교’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 주옥로 목사가 학교를 설립하기로 뜻을 세우면서 시작되었다. 전쟁 후 어려운 상황 속에서 농촌에 학교를 설립하고 운영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새벽별’이란 잡지에 주옥로 목사가 기고한 글을 읽고 밝맑 이찬갑 선생이 뜻을 같이하면서 1958년, 교회 부지에 폐교된 학교의 잔해를 모아 풀무학교를 열 수 있었다.

더불어 사는 평민을 키우는 학교

“우리나라에는 지식인, 기업인, 높은 관리인이 되고 싶은 사람은 얼마든지 있으나 밑뿌리가 될 기본층의 평민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가꾼 사과알을 따려는 이는 많으나 사과나무를 북돋우고 퇴비를 주어 사과알을 열게 가꾸어 줄 일꾼, 민족의 주인공은 너무나 적습니다”

이 말은 밝맑 이찬갑 선생의 풀무학교 개교사 중 일부이다. 개교사에서 엿볼 수 있듯이 지역에서 더불어 사는 일꾼을 키우려 했던 풀무학교의 정신은 현재까지도 이어져서 ‘노동(농사)과 배움’이 함께 하는 교육, ‘올바른 인간’을 육성하는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풀무학교의 가르침 때문일까? 많은 풀무학교 졸업생들이 농촌에서 활동하고 있고, 한해 정원 25명에 불과한 풀무학교는 농업계 고등학교가 사라져가는 요즘에도 입학 경쟁률이 10:1에 이를 정도로 계속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풀무학교는 단순히 교육만을 하는 학교와는 다르다. 생활 속에서 필요한 활동들을 협동의 방식으로 실천하는 곳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풀무학교는 설립 초기부터 풀무학교에서 사용할 문구를 학생들이 공동으로 구매하고 이익금을 배분하는 협동조합 활동을 했으며, 이 활동이 동네로 확대되어 현재의 풀무생협이 되는 기반이 되었다. 이외에도 풀무학교 내에서 도서협동조합, 신용협동조합 등의 활동이 시작되었다. 특히 풀무신협은 현재 조합원 2,800여 명, 200억 이상의 출자금을 가진 지역순환경제의 중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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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 있는 농민이 만든 문당리

사실 앞서 말한 풀무학교보다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것은 유기농 오리농법으로 유명한 문당리이다. 그런데 이 ‘유기농 오리농법’도 풀무학교와 인연이 깊다. 오리농법을 일본에서 들여와 소개한 사람이 바로 그당시 풀무학교 교장이었던 홍순명 선생이다. 그리고 이를 실제로 시작한 사람 중 한 명인 주형로 지역센터 마을활력소 공동대표 역시 풀무학교 출신이다. 이들은 초기에 주변의 반신반의하는 우려를 딛고, 유기농 오리농법으로 홍동면 문당리를 시대를 앞서가는 농촌으로 만들었다.

문당리 주민들은 오리농법 성공 이후, 문당리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고민했다. 그 결과, 오리농법으로 모은 소득 중 일부를 마을의 공동자산을 모아 환경농업교육관을 만들고, 마을 주민의 의견을 모으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문당리 발전 100년계획’을 수립했다. 주형로 공동대표는 “농민 스스로 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고, 좋은 일에는 좋은 사람들이 함께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문당리 주민들과 함께 꾸준히 마을을 가꾸어왔다고 한다.

다양한 지역공동체 활동 무대, 갓골마을

풀무학교에서 시작된 홍동면 지역 공동체는 1980년까지 학생도서관, 갓골어린이집, 농기계협동조합, 제빵협동조합, 풀무생협 등을 만들었으며, 현재는 풀무농업기술학교 생태과정(전문대 과정), 환경농업교육관, 홍성여성농업인센터, 밝맑도서관, 갓골목공소 등 마을에 약 30개 기관 및 단체가 운영되고 있다.

마을활력소 인근에 위치한 갓골마을은 문당리와는 또 다른 홍동환경농업마을의 모습을 보여 준다. 다양한 이력을 가지고 귀농한 사람들이 농촌에 스며들어 다른 농촌 지역에서 찾기 어려운 공동체 활동을 펼치고 있다.

갓골마을은 도서관과 책방, 어린이집 등 다양한 문화공간이 있는 곳이다. 우선 밝맑 도서관은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풀무학교의 공동 설립자인 밝맑 이찬갑 선생님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으로, 도서관 겸 마을의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북카페와 일반 열람실, 어린이 독서실, 일본자료실 등 도서관으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뛰어놀고 쉴 수 있는 마당과 주민들의 동아리 활동을 위한 공간으로도 활용되고 있는 곳이다.

밝맑 도서관 바로 앞에 밝맑 도서관이 있기 전까지 마을 도서관 역할을 했던 느티나무 헌책방이 있다. 홍순명 선생이 “농촌에도 꼭 책방이 있어야 한다. 이제 진짜 책을 만드는 사람(장은성 그물코 출판사 대표)이 왔으니 마을에 책방 하나 만들자.”고 제안하여 주민들이 십시일반 보태고, ‘녹색시민 구보씨의 하루’를 펴낸 장은성 씨가 홍성으로 내려올 때 가져온 수백 권의 책으로 사무실 앞에 ‘느티나무 헌책방’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밝맑 도서관이 세워져 도서관의 역할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지역과 농촌에 관한 책을 출판하면서 출판사와 책방의 역할을 하고 있다.

밝맑 도서관과 그물코 도서관을 지나면 작은 정원이 나오고 그곳에 풀무생협이 있다. 이곳은 다른 상점과 달리 돈을 내고 농산물을 사는 방식 이외에도 지역주민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물물교환하는 방식으로도 거래가 가능하고, 풀무학교 학생들이 기른 우리밀로 만든 빵, 지역주민이 만든 장류, 참기름까지도 판매하고 있다.

갓골마을에서는 이외에도 원예동아리(원예협동조합 가꿈)와 아이들의 논밭 관련 생태교육(논배미)을 하는 동아리 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최근에는 구당선생의 제자와 공중보건의로 일했던 의사가 귀촌하면서 마을뜸방과 의료생협도 운영할 예정이다. 이런 다양한 활동들은 풀무학교에서부터 이어진 스스로 출자하고 운영에 참여하는 경험과 전통이 쌓이고, 다양한 귀농·귀촌인들과 함께 생활 속에서 필요한 일들을 함께 풀어내는 노력이 더해진 결과일 것이다.

넉넉한 마을을 만들자


주형로 공동대표는 “지금까지 홍동환경농업마을 활동은 결국 넉넉한 마을 만들기였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넉넉이라는 것은 나뿐만 아니라 아랫집, 윗집도 같이 돌보자는 것이고, 오순도순한 마을을 만들자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농촌이 참 좋다고 했다. 농촌이 어렵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어렵고 힘든 면만 봐서 그런 것이라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농사를 함께 지으면서 생명과 자연의 소중함을 알고, 공동체가 함께하는 삶을 배울 수 있는 곳이 바로 농촌이다. 그래서 농촌에 희망이 있는 것이다.” 그의 자신감에 응원을 보내고 싶다.

글_ 김지헌 (뿌리센터 연구원 kimjihun@makehope.org)

* 이 글은 충남 홍성군 홍동면을 견학한 내용과 주형로 님(지역센터 마을활력소 공동대표)의 강의를 재구성하여 정리한 글입니다.

* 이 글은 월간 아젠다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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