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정광모의 국회를 디자인하자

우리 언론에는 몇 가지 잘못된 신화가 있다. 당정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 나라가 안정된다는 믿음도 그 하나다. 정부와 여당 사이에 어떤 정책과 법률안을 두고 어긋난 의견이 나오면 당장 언론은 ‘당정 난기류’니, ‘국정 혼란 우려’라며 태산 같은 걱정을 한다.
과연 당정이 일사불란하면 나라가 잘 될까? 실제로 일사불란한 당정협의는 국회뿐만 아니라 나라도 망치기 십상이다.

1997년 공룡부처였던 재정경제원은 ‘펀드멘탈은 튼튼하다’며 국가정책을 일방적으로 움직였고 그 끝은 외환 위기였다. 당시 재정경제원은 세제, 금융, 예산, 정책조정 등 이른바 ‘경제 4권’을 쥐고 다른 중앙행정기관 위에 군림하였다. 2002년 내수를 키운다며 카드를 마구 쓰게 하다 일어난 신용카드 사태도 마찬가지다. 이런 정책을 행정부가 추진하고 있는데 국회가 그대로 손을 들어주면 나라가 잘 굴러갈 수 없다.


당정이 일사불란하면 나라가 잘 될까?


당정협의는 여당과 행정부가 법률안과 중요한 정책에 대해 협의하는 제도다. 국무총리훈령인 ‘당정협조업무 운영규정’은 법률안과 국민생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책안에 관하여 여당과 협의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당정회의에는 국무총리, 대통령비서실장, 여당의 당대표, 원내대표, 정책위원회 의장 등이 참석하는 고위당정회의와 정부 부처별 당정협의회가 있다.

신문에 나오는 수많은 정부정책들은 당정협의를 거쳐 발표된다. 뉴스의 기본 형태는 이렇다. ‘ 정부와 여당은 무슨무슨 정책 건에 대해 당정협의를 갖고 이렇게 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이런 당정협의는 정말 내용을 결정하는 협의를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국회의 귀빈식당에서 당정협의를 하면 한쪽에 장관과 차관, 국장 등이 앉아 있고 반대쪽에 여당의 정책위원회 의장, 상임위원회 위원장, 담당 정조위원장, 국회의원 등이 앉는다. 먼저 정부쪽에서 협의할 내용을 발표하면 정책위원회 의장과 국회의원 등이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 회의가 끝난다. 대부분의 당정협의는 정부가 가져온 법안과 정책을 여당이 승인하는 자리다. 좋게 말하면 승인이고 솔직하게 말하면 거수기다.

정부는 당정협의 자료도 대개 하루 전에 국회에 준다. 보통 정부는 청와대와 먼저 협의를 해 내용을 결정짓는다. 그리고 당정협의를 하는 날 발표할 보도 자료도 미리 만들어 놓는다. 아예 당정협의를 하기 전에 정부에서 보도 자료를 뿌리기도 한다.


’10. 2 항명파동’ 효과는 사라졌는가


국회와 청와대, 그리고 정부의 관계는 1971년 박정희 정권 때 일어난 ’10. 2 항명파동’의 유형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971년 실미도 사건에다 광주대단지 난동 사건이 발생하자 야당이 오치성 내무장관 해임건의안을 발의하였다. 그런데 공화당 4인 체제의 국회의원들이 해임건의안에 동조해 오치성이 내무부장관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그러자 박정희 정권은 보안사 행동대원들을 동원하여 공화당 김성곤 의원과 정책위원회 의장인 길재호의 집을 덮쳐 몽둥이찜질을 하며 끌고 갔다.

1971년 10월 5일 박정희 정권은 항명파동의 주동자인 김성곤과 길재호를 공화당에서 강제로 탈당시켜 의원직을 자동 상실케 하였다. 한 마디로 국회의원이 청와대 뜻을 거스르면 정계에서 쫓겨난다는 사례다. 결국 여당 국회의원은 입을 닫게 되고 좋은 게 좋다는 보신주의가 번성하게 된다.
이건 박정희 정권시대에만 있는 일인가? 대통령 중심주의에 지도자 추종주의가 판치는 우리나라에서 정도 차이가 있을 뿐 이런 <10.2 항명파동>의 효과는 계속된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4년 6월 부동산 문제에 대해 열린우리당의 분양원가 공개를 부인하고, 10배 남는 장사도 있다며 말했을 때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과 의원들은 침묵했다. 김근태 의원이 ‘계급장을 떼고 토론하자’고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그때부터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은 추락했다.

대부분의 의원들은 대통령이 가진 인사권과 예산권을 두려워한다. 열린우리당 당의장이었던 정세균 의원은 2006년 산업자원부 장관으로 들어가면서 집권당의 당의장보다 장관자리가 값나간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었다. 당의장부터 이런 정도였으니 누가 대통령에게 쓴 소리를 할 수 있었겠는가? 자기성찰과 자기비판이 없는 조직은 몰락할 수밖에 없다.


이한구의원 추경예산에 반대하다


2008년 4월 기획재정부가 4조 9000억 추경예산을 추진하자 이한구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의장이 반대했다. 이 의원은 4월 18일 열린 고위 당 ? 정 ?청 협의에서도 이런 점을 밝혔다.

이 의원은 추경을 추진하는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을 겨냥해서는 “당을 망하게 하려면 그렇게 하라지.”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당론으로 작은 정부를 만들겠다고 해놓고 추경을 편성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화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이한구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관료들은 정치인들이 떠든다 싶으면 예산 몇 푼 집어주고 입을 다물게 하면 된다는 식의 사고를 한다. 이러니 보통 사람들은 당해 내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는 “추경예산은 정말 어렵고 긴급한 경우가 아니면 해서는 안 된다. 지난 정권에서 5년 이상을 투쟁해 국가재정법을 만든 취지도 그런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여당이 되자마자 추경을 하겠다고 덤비는 게 말이 되나”고도 했다.

기획재정부는 경기하강을 막기 위해 추경예산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추경예산을 편성해야 하는지 아닌지를 따지는 건 뒤로 미뤄놓자. 많은 법률과 정책을 둘러싼 당과 행정부의 관계가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가 중요하다.

결국 이한구 정책위의장의 반대로 17대 국회에 추경예산을 제출 못한 기획재정부가 2008년 4월 말에 18대 국회에서 추경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히자 이한구 의장은 ‘한나라당을 아주 우습게 보거나 아주 대담한 생각이라고 본다.’고 했다. 그러나 2008년 5월 한나라당에 임태희 정책위 의장이 들어서면서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추경예산안 처리는 기정사실처럼 굳어졌다.


과거 여당은 거수기가 돼 국민에게서 버림받아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2008년 5월 21일 주간조선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행정부가 국회 모르게, 특히 여당 모르게 추진하는 정책 로드맵이란 있을 수 없다. 지금은 시대가 변했다. 국민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의회의 기능을 중시하지 않는 정부라면 무너질 수밖에 없다. 과거 여당들은 행정부에서 일을 저지르고 나면 잘못을 덮어주는 역할만 하다가 스스로 거수기가 돼 국민으로부터 버림받았다. 우리는 거기에서 벗어나 사전 조정 기능을 발휘할 생각이다.”

그런데 홍준표 원내대표를 비롯한 한나라당 의원들은 “과거 여당처럼 스스로 거수기가 돼 국민으로부터 버림받지” 않을 수 있을까? 과연 “사전 조정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지금 한나라당은 찍히면 죽는다는 침묵의 블랙홀에 갇혀있다. 모두 청와대와 정부를 비판하기 두려워한다. 80여명이 되는 초선의원들은 정부에게 목소리를 높이기는커녕 쥐 죽은 듯 조용하다.

안 그래도 당정협의를 하면 당이 밀릴 수밖에 없다. 행정부의 힘이 당보다 훨씬 강하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 하나만 해도 260조가 넘는 예산 배정과 국세청을 쥐고 있다. 국토해양부와 교육과학기술부 등 정부 부처 하나 하나를 뜯어보면 이들의 예산과 인력은 막강하다. 거기다 이들은 산하 연구기관도 있어 두툼한 연구보고서로 정책을 뒷받침한다. 또 행정부는 청와대의 힘까지 업고 있다.

거기에 비하면 정당의 인력과 정책연구소는 구멍가게 수준이다. 의원들은 매일 터지는 현안에 쫓아다니기 바쁘다. 한국의 관료들은 1960년대 개발과 중앙집권 시대를 잇는 ‘내가 누구인데’ 하는마음과 자세로 무장해 있다. 어차피 정당은 여차하면 이름도 바꾸는 포장마차 수준이고 국회의원은 4년짜리 나그네가 아닌가?
그러니 의원과 정당이 마음 독하게 먹고 잘못된 정부 정책을 비판해도 이기기 쉽지 않은 게임이다.


당장 공기업 낙하산을 비판하라


하지만 한나라당은 당청, 그러니까 행정부와 청와대와 싸우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 열린우리당의 과거가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한나라당이 적당하게 당정협의에서 손을 들어주고 야들야들한 당 민원 몇 개 따내서는 가시밭길만 펼쳐진다. 당과 정, 어느 한편이 모두 옳은 일은 없다. 당과 정은 치열하게 서로 비판하며 자기 성찰을 해야 한다.

한나라당이 진정 ‘거수기가 된 과거 여당’의 몰락에서 교훈을 얻었다면 당장 공기업 낙하산을 비판하라. 청와대와 정부가 ‘형님 먼저 아우 먼저’ 알짜 자리를 나눠먹으며 공기업 선진화를 말하는 건 국민 모독이다. 진정 공기업 선진화와 공기업 낙하산이 양립할 수 있다고 보는가? 국민들은 신의 직장이라는 공기업의 낙하산 인사에 분노하고 있다. 우리 쪽 사람들의 이익과 자리를 챙기며 입으로만 부르짖는 ‘개혁과 선진화’에 국민들은 진저리를 치고 있다.
말은 옳지만 여태까지 여당이 공기업 낙하산을 비판한 일이 없었다고? 그러면 한나라당이 처음으로 비판하면 안 되는가?

*이 글은 여의도통신에도 실렸습니다.

”?”정광모는 부산에서 법률사무소 사무장으로 10여년 일하며 이혼 소송을 많이 겪었다. 아이까지 낳은 부부라도 헤어질 때면 원수로 변하는 모습을 보고 인생무상을 절감했다.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하며 국록을 축내다 미안한 마음에 『또 파? 눈 먼 돈 대한민국 예산』이란 예산비평서를 냈다. 희망제작소에서 공공재정 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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