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박명준
희망제작소 객원연구원 / 독일 체류 중

”?”기업재단으로 두 번째로 소개할 곳은 로베르트 보쉬 재단(Robert Bosch Stiftung, 이하 ‘보쉬재단’)이다. 보쉬재단은 정밀기계, 자동차 부품, 전기제품 생산 등으로 유명한 보쉬(Bosch)사의 본거지인 독일 중남부지역의 대도시 슈트트가르트(Stuttgart)에 위치해 있다. 슈트트가르트와 그 주변지역은 자동차 산업과 기계산업에 있어서 독일을 세계적으로 경쟁력있게 만든 산업기지로 유명하다. 현재 보쉬사는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들에 지사를 두고 있는 글로벌 회사로 해당 산업에서 최고의 역량을 자랑하는 기업이다.

보쉬 재단은 직접 연구활동을 통해 정책페이퍼를 작성하는 식의 전형적인 싱크탱크와는 다르다. 내부에 연구역량을 직접 육성해서 사회경제적인 정책연구와 개발을 위한 작업에 매진하는 방식은 매우 약한 편이다. 대신 사회내에서 그러한 일을 하는 주체들의 활동을 후원하는 ‘간접 씽크탱크(indirect think tank)’로서 역할을 주로 한다. 베텔스만 재단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성공한 대기업의 궁극적인 비전과 가치기여의 방식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곳이다.

방문

보쉬재단을 찾던 날은 2007년 10월 어느 늦가을이었다. 낙엽이 뒹굴고 길가의 가로수가 울긎불긎 장관을 이루면서도 스산한 가을비가 흩뿌리는 날이었다. 슈트트가르트 중앙역에서 탄 전철은 두 정거장을 지나고 나면서부터 오르막 언덕길을 천천히 달렸다.
전철을 하차해 다시 호젓한 산책로를 따라 낙엽을 밟으며 10여분을 걸어 오르니 왼편에 범상치 않은 고풍스러운 큰 나무문이 나왔고 이어서 긴 담이 뒤따랐다. 그 담 안편에 바로 로베르트 보쉬 하우스(Robert Bosch Haus), 즉 보쉬 재단이 입주해 있는 건물이 위치해 있었다.
신비감을 품고 정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바깥과는 또 다르게, 우아한 중세의 가을을 연상케 하는 정취가 느껴졌다. 넓은 정원과 호수, 나무들과 담들을 배경으로 두개의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왼편에는 오래된 빌라가 오른편에는 최신식의 대형건물이 위치해 있었다. 옛것과 새것이 친하게 어울려 온고溫高와 지신知新이 서로를 다독거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언덕에 서서 멀리 시내를 바라보니, 월드컵 축구경기장으로 유명한 ‘다임러-고틀립 구장’의 유연한 곡선도 시선에 들어왔다. 마치 슈트트가르트 언덕배기의 한 명당자리에 마련된 ‘작은 영주국가’와 같은 느낌이 들었다.
”?”보쉬재단에서 만난 인물은 최근에 이곳에 결합한 마르크 베어만(Marc Bermann)이라고 하는 젊은 중국전문가였다. 상하이에서 90년대 중반부터 약 10년간 유학생활과 기자생활을 한 중국통인 그는 올 여름에 보쉬재단으로 활동의 장을 옮겼다. 3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젊은 인재였다.
직책은 프로젝트 라이터(Projectleiter)로 이는 베텔스만 재단의 프로젝트 메니저와 같은 급이었다. 우리의 연구소들의 보통 연구원에 해당하는 직급이었다. 그 자신도 보쉬재단과의 인연이 아직 길지 않아 재단 운영의 전반적인 측면에 대한 깊은 이야기는 나누기 어려웠다. 대신 주로 기본적인 사항과 그의 부서의 활동사례들에 대해 알려주었다.

”?”설립과 운영

보쉬재단과 보쉬기업의 창립자인 로베르트 보쉬는 1861년 울름(Ulm)근처의 알베크(Albeck)에서 태어나 19세기와 20세기의 유럽사의 격동기를 살다간 기업가이다. 1941년에 사망할 때까지 그는 보쉬기업을 기계산업의 세계적인 강자로 우뚝 세워 독일을 대표하는 기업 가운데 하나로 성장시킨 유능한 기업인이자 휴머니스트로 명성을 날렸다.

보쉬 재단은 베텔스만재단과 마찬가지로 창업자의 정신과 가치추구를 실현하는 취지에서 마련되었다. 그 창립은 그의 사후 20여년이 지난 후인 1964년에 로베르트 보쉬의 유언을 구체화하기 위한 취지에서 이루어졌다. 이후 오늘날까지 약 40여년간 보쉬재단은 큰 굴곡없이 꾸준한 발전을 이루왔다.
보쉬재단은 보쉬사의 기본자본(Stammkapital)의 약 92%를 소유하고 있다. 나머지 8%는 보쉬가家가 사적으로 소유하고 있다. 즉, 보쉬 재단이 공식적으로 보쉬사의 주인인 것이다.

그럼에도 보쉬재단은 보쉬사의 경영에 대해서 아무런 결정권을 지니고 있지 않다. 즉 소유권과 처분권이 분리된 것이다. 또한 보쉬재단이 보쉬사의 경영에 간여를 하지 못하듯, 보쉬사 역시 보쉬재단의 운영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
이렇게 기업과 재단이 분리되어 존재하면서 상호자율성을 유지하는 모습은 베텔스만 재단과 매우 유사하다. 재단과 기업간의 이러한 관계는 모습은 특별한 제도나 규칙을 통해서가 아니라 창업장였던 보쉬의 금언(Testament)을 금과옥조처럼 지키는 것이다.

이곳 재정의 원천은 전적으로 보쉬사의 이윤을 기반으로 한다. 재단의 나라(Land der Stiftungen) 독일의 여러 재단들 중에서도 최선두의 재정규모를 보유하고 있는 곳이 바로 보쉬 재단이다. 재정규모 면에서 2006년 현재 제1위이며, 지출면에서도 VW재단에 이어 2위를 차지한 바 있다.
보쉬재단은 평균적으로 1년에 약 6천만 유로를 다소 밑도는 수준 (약 1000억원)을 지출한다. 2005년에는 정확히 5천5백만 유로를 지출했다. 1964년 설립 이후 40년간 총 7억 3천 5백만 유로 가량을 지출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으며, 이는 한화로 약 1조원을 넘어선다.
지출내역을 살펴보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보쉬병원의 운영과 민족간 소통부문이다. 재원의 약 60% 이상은 국제교류 프로그램들을 위하여 사용되고 있으며, 그를 통해 국제적으로 넓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정체성

재단건물의 정문을 들어서면, 1935년에 행한 다음과 같은 보쉬의 발언이 소개되어 있다.
“내가 하려는 것은 사람들이 겪는 일체의 역경을 경감시키는 일을 넘어서 그들의 윤리적, 신체적 그리고 정신적 능력을 고양시키는 데에 있다.” (Robert Bosch)
이는 보쉬재단의 정체성을 집약적으로 표한한 것으로, 이곳이 윤리적, 신체적, 정신적 능력에 대한 창립자 보쉬의 남다른 관심을 자신의 활동의 핵심적인 지향과 근간으로 삼고 있음을 표현한다.
위의 말에 담겨 있듯이 보쉬재단이 추구하는 사회적 기여의 주제영역은 크게 세 가지로, 건강(Gesundheit), 교육(Bildung) 그리고 민족간 상호이해(Völkersverständigung)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핵심적인 가치들을 기반으로 해서 보쉬재단은 자신의 활동조직을 구성하고 있다. 활동을 행하면서 취하는 재단의 관점은, 그야말로 – 베어만씨에 따르면 – “초당파적, 초종교적, 초이데올로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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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접싱크탱크

베어만씨는 보쉬재단을 ‘간접 씽크탱크’라고 설명하면서, “미국의 브루킹스 연구소나 CSIS 등에서처럼 하루종일 저술과 출간활동에 전념하는 것이 주된 업무는 아니다”고 밝혔다. 대신 ?학술연구의 교각’으로서의 역할을 추구한다.
재단 내 분과들의 활동의 핵심에는 다양하고 유의미한 사회적 활동들을 후원하는 일에 있다. 대부분의 부서들은 독자적인 정책연구에 집중하며 정책페이퍼 쓰기작업에 몰두하기 보다, 외부에서 진행되는 사회적 실천들과 여타 중요한 연구들, 창작활동들, 취재활동들을 후원, 개발하는 데 가장 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이는 학자들, 저널리스트들, 작가들, 학생들의 창의적 활동을 지원하는 일과 더불어 지원활동 자체의 창의성과 생산성을 높이는 일을 의미한다.

때로는 보쉬재단 내에서 일정한 문제의식과 필요에 의해 특정한 연구주제의 활성화를 모색하면서 스스로 프로그램을 창출해서 추진하며 외부연구자들을 모집하는 경우도 있다.
네트워크는 보쉬 재단에게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 재단 내에 전 세계적으로 재단이 관계를 맺고 있는 광범위한 데이터 베이스가 구축되어 있고 여기에는 경제정책, 문화정책을 망라하여 모든 분야에서 지도급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거나 앞으로 하게 될 인물들에 대한 인적사항이 확보되어 있다.
이곳의 6대 분과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프로젝트들을 수행하는지 그 내용을 살펴보면, 이곳의 성격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래에서는 6대 영역분과들 가운데 건강과 교육 분과, 민족간 소통 분과의 활동을 소개하겠다.

인력과 조직
초창기에 10여명에서 출발한 재단의 규모는 오늘날 약 100여명 수준에 이르렀다. 슈트트가르트의 본부 이외에, 독일통일후 베를린에 지부를 세워 오늘날 수도에서 진행되는 여러 중요한 지도급 인사들과의 연락과 상호작용을 보다 신속하게 진행시키도록 하고 있다. 베를린 지부의 경우 10명이 채 못되는 직원들이 상주하고 있으며, 보쉬재단 직원들의 양도시 왕래는 매우 빈번하다.
재단의 의사결정을 책임지고 있는 단위는 10명의 명망가들로 구성된 평가위원회와 3인의 최고경영인들이다. 산하의 핵심적인 업무단위인 프로그램 영역은 주안점을 두는 주제별로 총 6개로 나뉘어져 있다. 이는 위에서 언급한 3대 관심사를 각각 두개씩의 프로그램 영역으로 구성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최고경영인들 가운데 2인은 각각 3개씩의 프로그램 영역들의 관리책임을 맡고 있다.나머지 한 사람은 전반적인 행정 일체와 기업내 인사관리 영역을 담당하고 있다.

여섯 개의 프로그램 영역은 각각 과학과 연구, 건강과 인도적 지원, 민족간 소통I, II, 교육과 사회, 그리고 사회와 문화 등 주제별로 특화되어 있다. 각 영역들은 분과장, 내지 영역장(Beriechsleiter)들이 주도한다. 6인 중 5인은 박사학위를 소유한 전문학자들이며, 그 중에는 현직 대학교수도 있다. 개별 분과 내에는 약 5-6인의 프로젝트 라이터(Project Leiter)들이 재단활동의 머리, 손, 발의 복합적인 역할을 담당하면서 활약하고 있다.
프로젝트 라이터들은 분과장과의 협의하에 일정한 의사결정의 자율성을 갖고 있고, 지식과 아이디어 창출 및 실현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이들은 간접씽크탱크로서의 재단의 활동에 부합하기 위하여 자신들의 전문성 자체를 통해 기여를 함과 동시에, 전반적인 소통과 조율의 자질, 높은 수준의 인성을 함께 지니고 있어야 한다. 여기에는 특히 보쉬재단의 높은 국제화 수준에 걸맞게 자신의 업무영역은 물론이고 일반적인 영역에서 글로벌한 관점과 소통능력을 안배하는 것까지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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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과 교육

건강과 교육 분과는 4개의 부문으로 나뉘어진다.
첫째, 과학과 연구분과는 대체로 자연과학 즉 의학이나 생물학, 화학 등의 과학활동에 대한 내용과 관련되어 있다. 특히 이 영역에는 3개의 연계된 연구소들과 병원이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데 이들은 각각 의학사연구소, 보쉬병원, 그리고 약학연구소이다. 과학연구기지로서 독일을 발전시키기 위한 다양한 창의적인 실천 프로그램들, 특수연구지원, 그리고 과학과 사회적 소통의 주제 등을 탐구한다.

둘째, 건강 및 인간적인 지원에 대한 분과에서는 건강관리과 건강문제의 사회적 측면 등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특히 고령화의 문제와 인구학적인 요인들에 대한 연구작업이 주를 이루며, 역시 보쉬병원을 비롯한 위에서 언급한 연구소들의 활동과 이 분과의 활동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셋째, 교육과 사회분과 산하의 인구변동에 관한 연구자는 그야말로 연구작업만을 수행하며, 전형적인 싱크탱크적인 면모를 지닌 경우이다. BDS의 최근 보고서에서는 보쉬재단에서 근래에 인구학 연구부서가 특화되어 설립된 것을 두고 “씽크탱크로서의 면모에 더 가까이 접근하게 되었다”고 평가를 한 바 있다. 그 외에도 유치원교육과 영재교육에 관한 방안, 미래의 바람직한 학교상을 찾아가는 탐구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과정에서 주변국의 여러나라들과 독일의 학교와의 교류활동을 활발하게 만들어 내려고 노력한다.

넷째, 사회와 문화분과의 활동을 통하여, 시민참여의 활성화, 특히 무보수 참여활동(Ehrenamt)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고 있고, 젊은 이민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사회에 적응을 하고 통합해 들어가는 것을 후원하는 프로그램, 그리고 여타 예술활동에 대한 지원 등의 주제들을 다룬다.

민족간 소통

보쉬 재단은 민족간 소통을 다루는 두개의 분과를 통하여 몇몇 핵심국가들을 지정하여 그 나라의 매우 다양한 직업군들을 대상으로 선정, 그에 상응하는 독일의 직업집단과의 교류를 촉진시키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보쉬재단이 민족간 소통촉진을 위한 사업에 임하는 원리는 ‘상대민족에 대한 이해와 앎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그에 대한 증오와 오해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고 하는 진리이다.
첫번째 분과는 과거 냉전시대의 동서구분을 기준으로 해서 대체로 서방세계에서의 외교관계를 다루는 영역으로 그 핵심 대상국은 프랑스였다. 이는 20세기 초의 세계대전의 양상을 포함해서 전통적으로 독일-프랑스관계가 상당한 긴장을 갖고 진행되어 왔던 역사를 반성하고 독일과 두 국가간의 선린우호관계를 다양한 방식으로 구축하려는 보쉬의 의도가 반영된 모습이다.

근래 독일의 외교관계 변화속에서 독일-미국관계 및 독일-터키 관계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이 두 나라들과의 관계도 특화시켜 다루고 있다. 최근들어 (2007년부터) 3분과에는 일본과 인도도 대상국으로 선정이 되어, 냉전시대의 관점을 갖고 하는 구분은 사실상 의미가 상실되었다. 이제는 지리적인 관점과 내용적인 관점의 교차를 통해 사안별로 어떤 분과영역이 업무의 주체가 될 지를 개별적으로 결정하고 있다고 한다.

민족간 소통에 대한 두번째 분과는 과거 동구권을 겨냥해서 만들어졌는데, 현재는 중부, 동부유럽 그리고 중국까지도 그 안에 포괄하고 있다. 원래 핵심 대상국은 폴란드였다. 독일의 오른쪽에 국경을 접하면서 미묘한 긴장관계를 지녀왔던 독일-폴란드 관계를 발전적으로 만들려는 의지를 실천하는 것이다.

3분과가 상대적으로 언론인 교류와 장학프로그램에 주안점을 두면서 대상국들과의 관계증진을 모색한다면, 4분과의 경우는 거기에서 더 나아가 문학과 예술 분야의 교류촉진 및 중동부유럽 국가들의 문화인프라 확대와 민주적 시민사회의 강화까지 그 내용으로 담고 있다.
그 중에 언어와 문화 프로그램은 신규대졸자들 가운데 해외의 대학이나 여타 기관들에서 경험을 쌓고자 하는 젊은이들을 3년간 후원하여 이들이 소위 ‘문화 메니저(Kulturmanager)’로 거듭날 수 있도록 돕는 내용도 있고, 독일 내 3개의 김나지움 (인문계 중고교)을 선정하여 그 중에서 영민하고 의욕있는 청소년들로 하여금 중국어를 배우도록 권면하는 등의 청소년교류 사업도 포함되어 있다.

후기

간접 싱크탱크로서 보쉬재단은 직접 싱크탱크에 가까운 베텔스만 재단과 차이를 보인다. 이는 사회참여의 방법론에 대한 해당 재단의 설립자들의 취향과 견해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보여진다. 직접이든 간접이든 우리의 대기업들이 경제연구소를 설립하여 정책에 개입을 하는 방식과는 모두 일정한 차이가 있다고 느껴진다. 그에 대한 연구는 사후과제로 남겨둔다.

보쉬재단의 활동 중에는 역점 사업으로 두 개의 분과를 할애하여 민족간 소통을 증진시키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내용적인 측면이 제일 인상적이다. 기업이 경제의 영역이 아니라 사회의 영역에 개입하여 외교적으로 민감한 문제에 대해 적극적이고 장기적인 해결의 실마리를 위해 애쓰는 모습은 각별하다고 느껴진다.

보쉬재단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글로벌 기업들 중에서도 우리 사회 내에서든 이웃나라들과의 관계에서든 상호이해의 부족으로 인해 발생하는 높은 갈등비용을 낮추고 퍽퍽한 관계에 윤활유가 되는 실천을 소명의식을 갖고서 행하는 곳들이 출현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욱 구체적으로 생기게 되었다.

[연재순서]

1. 연재를 시작하며
2. 쾰른의 막스플랑크 사회연구소 MPIfG
3. 뮌헨의 ‘경제를 위한 연구소 IfO’
4. 포츠담의 ‘기후영향연구소PIK’
5. 프랑크푸르트의 ‘헤센 평화와 갈등 연구 재단(HSFK)’
6. 뉘른베르그의 ‘노동시장과 직업연구를 위한 연구소IAB’
7. 도르트문트의 ‘도시와 공간정책 연구소ILS-NRW’
8-1. 본의 ‘프리드리히 에버트재단 FES’
8-2. 본의 ‘프리드리히 에버트재단 FES’
9. 베를린의 ‘콘라트 아데나워재단 KAS’
10. 베를린의 ‘하인리히 뵐 재단(Heinrich Böll Stiftung)’
11-1. 귀터스로의 ‘베텔스만 재단(Bertelsmann Stiftung)’
11-2. 귀터스로의 ‘베텔스만 재단(Bertelsmann Stiftung)’
12. 슈트트가르트의 ‘로베르트 보쉬 재단(Robert Bosch Stiftung)’
13. 뒤셀도르프의 ‘경제사회연구소(WSI)’
14.‘쾰른 경제연구소 (IW Köln)’
15. 베를린의 ‘베를린폴리스(Berlinpolis)
16. 베를린의 ‘위드(WEED)’

[기획연재] 독일의 정책브레인을 해부하다 는 매 주 수요일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