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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의 사막을 건너는 법

노원구청과 희망제작소가 공동 주최한 사회창안 포럼을 보고



서울 노원구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김씨와 찜질방 사업을 하는 박씨는 같은 동네의 조기축구회 회원이다. 어느 날 게임을 치르고 식사를 같이 하면서 각자가 운영하는 사업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슈퍼마켓 주인 김씨는 이해할 수 없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김씨는 조그만 슈퍼마켓에 커피 자판기를 설치하기 위해 구청에 영업신고를 하며 수수료 2만8000원을 부담하였다. 그런데 찜질방 영업주 박씨는 똑같은 커피 자판기를 설치하면서도 수수료 없이 영업신고를 마쳤다는 것이다.

김씨는 너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제3자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많게는 수십억원대의 내재가치를 지닌 찜질방의 업주가 수수료를 내지 않고 자판기를 설치하는데 영세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자신은 수수료를 낸다는 것이 형평성에 전혀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 민원을 담당했던 노원구청 직원 김영한씨는 슈퍼마켓 주인의 주장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공무원인 그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슈퍼마켓의 커피 자판기에 적용되는 법률과 찜질방의 커피 자판기에 적용되는 법률이 서로 다르다는 설명밖에 없었다.


같은 커피자판기 수수료 달라


슈퍼마켓에 적용되는 식품위생법에는 수수료 조항이 명시되어 각종 영업을 신고할 때 수수료를 부담하게 되나, 찜질방에 적용되는 공중위생관리법은 그런 조항이 없어 영업신고를 해도 수수료를 물리지 않는다.

얼마 전 재단법인 희망제작소와 노원구청이 함께 마련한 ‘공무원 사회창안’ 포럼에서 노원구청의 김영한씨는 이 사례를 내놓고 법률을 개정하여 수수료 부과에 형평성을 갖게 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자판기 수수료 문제가 객관적으로 이렇게 불합리한 측면이 드러났는데도 고치지 않으면 행정의 신뢰성을 잃게 되어 슈퍼마켓 주인들은 각종 조세와 공과금의 납부에서 회의적인 태도를 가질 것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이 포럼에서 노원구청 공무원들은 사회창안 아이디어 57가지를 내놓았다.

커피 자판기 사례처럼 법규의 모순점을 고쳐야 한다는 제안도 있었고, 주민들이 불편하게 생각하는 행정 관행을 고치자는 제안 등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쏟아졌다. 한 여성 공무원은 해외여행에서 사용하다 남은 외국 동전을 모아 불우이웃 돕기 기관에 기부하자는 시민운동 차원의 아이디어도 제안했다.

우리나라 해외여행 인구가 1300만 명이나 되니 그들이 외국에서 쓰다 남은 동전을 다 합치면 상당히 큰돈이 될 것이라는 데 착안한 것이다. 구청 같은 관공서에 모금함을 비치하면 동전이 잘 모일 것이라는 아이디어였다.

참 흥미로운 실험이다. 한 기초자치단체가 행정의 일선에서 공무원들이 보고 느낀 시민생활의 불편을 해소하고 보다 질 좋은 행정서비스를 해보겠다고 생각하고 나선 것은 흥미로운 실험이다. 나열된 아이디어들은 대부분 우리나라 모든 지자체에 적용될 수 있는 사안들이다.

”?”이 토론을 지켜보면서 몇 가지 느끼는 점이 있었다.

첫째,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바로잡고 개선해야 할 제도와 법규와 관행이 수도 없이 많구나 하는 것을 실감했다.
공무원 제안들 중에는 관련 업무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고는 쉽게 생각해내기 어려운 아주 구체적인 아이디어들도 있었다.
또 해당업무에 능통한 공무원들이어서 손질이 필요한 법규나 개선에 필요한 절차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둘째, 비록 한 기초지자체의 사례지만 어떤 자극만 주어지면 공무원 사회, 특히 지자체 공무원들이 공공서비스 공급자로서의 자세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지자체 선거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서비스에 대한 공무원의 생각을 부지불식간에 수요자 중심으로 이동하게 만드는 게 선거의 효과인 것도 사실이다.


일선 공무원의 창의성이 중요


여기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임용된 젊은 공무원들이 주류를 이루면서 과거의 공직문화가 변화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셋째, 많은 아이디어를 내놓지만 과연 이를 실행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불편한 법제와 관행을 고치려면 공직 기관 내에서의 소통과 사회적 공론화가 절실한데, 이게 여전히 어려운 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사회가 선진국으로 가려면 거대 담론만으론 안 된다. 시민을 불편하게 하거나 화나게 하는 일을 없애고 양질의 행정서비스를 제공하는 일, 즉 공무원들이 창의적으로 발휘할 ‘디테일의 힘’이 필요하다.


”?”1947년 제주에서 태어난 그는, 1974년 한국일보에 입사해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혈기 왕성한 젊은 시절의 대부분을 기자로 살면서 세계를 돌아 다녔고 다양한 이슈를 글로 옮겼지만, 요즘은 환경과 북한 핵문제, NGO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이제는 글 쓰는 것이 너무 지겹다’고 말하면서도, 지난 1백년 동안 지구 평균 기온이 0.6도 올랐다는 사실이 인류의 미래에 끼칠 영향을 엄중히 경고하기 위해 사막을 다녀와 책을 쓰고, 매주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그는 여전히 현장에 있고 천상 글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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