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1995년 6월 27일부터 지역주민이 자치단체장을 직접 선출하기 시작한 이후 올해로 13년을 맞이하는 지금까지 세 번 연속으로 당선되어 지역의 단체장으로 일해온 사람들이 있다. 10년이 지나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이들은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어떻게 지역을 지키고, 변화를 모색해 왔을까?

희망제작소는 2008년 8월 12일 오후 2시 ‘내가 다시 자치단체장이 된다면’이라는 주제로 삼선자치단체장의 노하우를 듣고 함께 토론하는 포럼을 마련했다. 이번 시간은 석탄산업으로 큰 호황기를 누리다가 폐광과 함께 도시 붕괴로 이어졌지만 카지노와 정선 아리랑 축제로 회생한 정선군의 삼선자치단체장 김원창 군수를 만나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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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선 첫 해, 폐광으로 지역문제 극에 달하다

김원창 전 군수가 첫 자치단체장이 되던 때 석탄산업의 요람이었던 정선군은 정부의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사양길을 걷게 된다. 70~80년대 큰 호황기를 누리며 인구 14만 명이 넘을 정도로 인구 집적도가 높았던 정선은 인구 감소로 공황상태에 빠져들었다. 이는 1995년 3.3투쟁으로 일컬어지는 사북 고한 주민들의 치열한 투쟁으로 이어졌고 주민들은 호주머니 돈을 털어가며 생존권 투쟁에 돌입했다. 지역주민과 지역 의원들이 하나같이 삭발, 단식을 하며 강력한 투쟁을 전개했다. 이에 정부는 심각성을 느끼고 강원랜드 카지노를 중심으로 종합 관광레저단지로 대변되는 폐광지역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했다.

카지노 설립은 지역의 종교단체와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전국적인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지역민에게 카지노 유치는 생존권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크낙새 한 마리 살고 다 죽는 것이 자연보존이냐’ 며 환경보존 논리에 대응했던 지역주민의 말처럼, 생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민과 군수는 카지노 유치를 강력히 주장했다. 그는 시민단체와 종교단체, 타 지역 저항세력들을 일일이 만나 대화하고 설득하는데 앞장 섰다. “나는 민선 군수이기에 우리 군민들이 군수를 그만두라면 그만두지, 절대 그만두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지역 이익을 위해 앞장섰어요.” 국회통과를 위해 자결하겠다며 소리를 치고 눈물을 흘리면서 결국 승인을 받아냈다.

하지만 이후에도 카지노 관련 산업은 많은 문제들에 부딪히게 된다. 2002년 월드컵 유치와 관련해 호텔업계의 슬롯머신 요구가 불거졌고, 제주도 카지노 유치와 관련한 항의 방문 등 숱한 문제들이 잇따라 생겼다. 이러한 힘든 과정을 겪었지만 강원랜드는 2조 원에 육박하는 이익을 내고 있고 38번 국도 4차선 확장 등 수조 원의 국비가 투자되는 기쁨을 맛보았다. 무엇보다 강원랜드는 지역주민에게 고용창출효과를 가져다 주었다. 그가 군수로 있을 때 ‘강원랜드의 직원 중 반은 지역민을 고용’하도록 기준을 마련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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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아리랑과 5일장, 레일바이크를 연결해 지역상품을 만들다

강원랜드 유치에 온 신경을 쓰다 보니, 상대적으로 다른 농촌 지역 사람들은 많은 불만을 품게되었다. “관광객 인구는 340만 명에 육박하는데 시장에서 양말, 신발을 사는 사람은 없을 정도로 서민 경제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지역민의 경제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상품을 만들어 내야 했습니다. 그래서 공무원들과 수 차례 워크숍을 하면서 정선 아리랑을 상품으로 만들고 정선 5일장과 레일바이크를 접목시켜 패키지 상품을 만들기로 하였습니다.”

지역주민들이 구성한 정선 아리랑 창극을 5일장에서 펼친 후 하루 4~5만 원의 매상을 올리던 상가들은 이제 50~60만 원에 육박하는 수입을 올리게 되었다. 사람들은 5일장에서 와서 먹거리와 창극을 동시에 누리게 되었다.

그리고 경제성을 이유로 철도청이 폐관하려던 철길에 레일바이크를 만들어 관광철도가 탄생했다. 레일바이크를 만들기 위해 독일과 프랑스로 현장 견학을 떠났고, 많은 연구와 자문을 구했다. 현재 레일바이크는 사람이 많아 예약을 받고 기다릴 정도로 인기가 많다고 한다. 18억 원을 들여 만든 레일바이크는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운영 수입비로만 53억 원을 벌어 들였다. 김 군수는 “레일바이크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정선의 수려한 환경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이제 더 이상 정선은 희망 없는 폐광도시가 아니다. 폐탄 더미가 쌓여있던 광산에는 카지노 호텔이 들어섰고 골프장과 스키장이 수만 명의 인파를 끌어들이고 있다. 판자집이 즐비하던 고한, 사북 시내는 고층빌딩과 숙박시설이 빼곡하고 사람들의 표정에는 생기가 가득하다. 정선아리랑을 매개로 관광개발이 추진됐던 정선읍과 동면 북면은 창극, 5일장, 관광열차, 화암관광지, 아라리 민속촌 등이 어우러져 정선의 가치를 높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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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순간에 선봉장이 되어 정면으로 맞서다

이러한 정선의 발전 뒤에는 김원창 전 군수의 값진 노력이 있다. 지역주민의 의견과 반대의 소리까지 겸허히 받아들이며 지역을 살리겠다는 의지로 강한 추진력을 발휘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좋은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위기의 순간에 맨 앞에서 돌을 맞으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한다. 삼선 자치 단체장을 하면서 수많은 위기가 있었다. 그때마다 그는 가장 앞에서 문제와 맞섰으며 대화와 설득을 통해 문제를 해결했다.

“예전 폭풍 매미로 정선은 큰 수해를 입었는데 물에 잠긴 집들을 향해 직접 노를 저으며 수해 복구에 힘썼어요.” 수해를 입은 주민들이 군청으로 몰려오는 등 큰 사태를 맞았지만, 주민들을 설득하고 직접 몸으로 보여줌으로써 결국 주민의 신뢰를 얻어 냈다.

지금까지도 정선군의 카지노 사업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당시 김 전 군수에게는 환경문제, 윤리문제보다 지역민의 생존이 더 큰 문제였기에 불가피한 결정이었다. 제조업을 할 수 없는 환경에서 카지노는 정선군의 유일한 희망인 셈이었다.

돌이켜 보면 후회하는 점도, 아쉬운 점도 많다는 그는 하지만 다시 단체장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한다. 김 전 군수는 더 이상 정선 군에 레일바이크 같은 홈런을 날리지 않지만, 꾸준히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응원하는 정선군의 진정한 홈팬이다.

기사 작성자: 뿌리센터 인턴 장옥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