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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의 한 걸음 더

위계사회에서 이름 부르기


한국에서 사람 호칭 부르기만큼 어려운 것이 없다. 과거 장관이나 대법관을 지냈던 사람은 지금은 그 직책을 그만둔 지 오래인데도 여전히 장관님, 대법관님이라고 부른다. 그렇게 부르면 부르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조금은 민망하다. 그렇다고 딱히 선생님이라고 하기도 그렇고 “전 장관님” 이렇게 부르기도 힘들다. 사실 장관 끝난지 오래인데 계속 평생동안 장관이라고 부르니 여간 민망한 일이 아니다. 때로는 그렇게 불리워지는 것을 본인이 좋아하는지는 모르지만.

더구나 내 경우 직업을 계속 바꾸고 있으니 더 어렵다. 변호사를 오래 했으니 사람들은 여전히 나를 ‘변호사님’이라고 부른다. 좀 더 친한 사람은 아예 ‘박변‘이라고 부른다. 한 시민단체의 ’사무처장‘을 오래 했으니 ’사무처장‘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그 중에서 간사를 계속 하다가 지금은 사무처장이 되어 자신이 사무처장인데도 나를 ’사무처장‘이라고 부른다. 이제 나는 희망제작소의 상임이사가 되었다. 상임이사라고 또박 또박 불러주는 사람도 있지만 여전히 이사장, 박변호사님, 사무처장, 이사 등 다양한 직책으로 부른다. 부르는 사람이나 불리는 사람이나 아주 혼란스럽다.

미국은 누구라도 미스터라고 통칭하면 되고 일본도 누구 누구 ‘상’이라고 하면 무난하다. 미국에서는 대통령도 미스터 클린턴이라고 해도 실례가 아니다. 일본에서는 사람들이 나를 보고 ‘박상’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누구 누구 ‘씨’라고 부르면 조금 하대하는 것 같아 부르기 힘들다. 맥킨지 한국지사의 지사장이던 최정규씨는 모든 직원에게 누구나 ‘씨’라고 부르게 하였다. 어느 대기업에서는 ‘님’이라고 부르기로 통일하였다고 한다. 이것도 남이 듣기에는 조금 거북스럽다. 희망제작소에서도 씨라고 불러보라고 하였더니 젊은 연구원들은 조금 따라하는데 간부들은 영 그렇게 부를 생각을 안한다.

아름다운가게에서는 각자 인디언씩의 이름을 정하고 그렇게 부르는 것이 전통이 되었다. 예컨대, 내가 ‘외로운 숫사자’라고 정하면 사람들은 나를‘숫사자’라고 부르는 것이다. 지금도 ‘탐’이나 ‘샘’ 등의 간사 이름만 생각이 나고 실제 이름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온라인에서 만난 사람들은 자기들의 이름을 실제 이름이 아니라 ID를 부른다. 어느 온라인 모임에 갔더니 한 사람은 자기를 ‘빨래줄’이라고 소개하였다.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통용이 되는데 나이든 사람에게는 이것도 어색하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ID만 기억할 뿐이지 그 사람의 나이나 직업 등을 잘 알지 못한다.

이런 이야기를 어느 모임에서 하다가 함께 자리에 있었던 한국대학신문 이인원 회장은 자기들의 모임에서는 반드시 호를 정해 그것을 부른다고 한다. 나이가 많든 적든 호를 그냥 부른다는 것이다. 예컨대, 이인원 회장은 항석이라는 호를 정해놓고 사람들이 위든 아래든 자기를 보고 ‘항석’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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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따지고 보면 과거 우리나라 선조들은 어른이 되면 이렇게 하나씩 호를 정했고 그 호를 불렀다. 그러니까 호를 정하고 부르는 것은 우리의 선조들의 좋은 습관을 복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호를 정하는 것도 젊은이들에게는 여전히 낯설다. 그래서 희망제작소에서는 이런 시도를 해 보고 있다. 각자 멸종동물이나 멸종위기종 동물의 이름을 정하고 그것을 서로 부르자는 것이다. 나의 경우 멸종위기종인 ‘넓적부리 도요새’로 정했으니 사람들은 나를 ‘도요새’로 부르면 된다. 여전히 낯설어 아직 보편화되지 못하였지만 이런 노력을 계속 하다 보면 사람들이 쉽게 나를 ‘원순씨’라고 부르거나 ‘도요새’라고 부르는 날이 오지 않을까.

우리도 온 국민이 호칭을 사용하는데 어려움이 없는 그런 호칭을 하나 만들어내거나 아니면 기존의 ‘씨’나 ‘님’을 그런 보편적 호칭으로 만드는 국민적 캠페인이라도 하나 벌여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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