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홍일표(사회학 박사, 희망제작소 선임연구원)

싱크탱크 거리

“워싱턴 컨센서스”와 싱크탱크 거리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 흔히 ‘신자유주의’와 동의어처럼 사용되고 있는 이 용어는 지난 1989년 워싱턴 소재의 대표적 싱크탱크 가운데 하나인 국제경제연구소(Institute for International Economics, 2006년 이후 현재의 피터페터슨 국제경제연구소(Peter G. Peterson Institute for International Economics)로 개칭) 소속 연구원인 존 윌리암슨(John Williamson) 박사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 미국 재무부 등 워싱턴에 본부를 둔 세 기관들이 경제위기에 빠진 남미국가들에 대해 따르길 바랐던 10가지의 정책목록을 “워싱턴 컨센서스”라는 이름으로 정리하여 1989년 국제경제연구소가 주최한 토론회의 발표 자료에서 사용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난 20여 년간 미국은 물론 전 세계 자본주의를 설명, 규정, 비판하는데 어김없이 사용되어 왔다.

이러한 “워싱턴 컨센서스”는 도대체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리고 민간 연구소의 토론회에서 발표된 용어가 전 세계로 어떻게 그렇게 빨리 확산될 수 있었을까? 만약 워싱턴 디씨를 걸어 다녀 본다면, 그리고 워싱턴 소재 싱크탱크들이 개최하는 토론회에 참석해 본다면 그런 의문이 조금은 풀릴 것이다. 백악관과 국제통화기금, 세계은행, 미국의 재무성과 국무성은 걸어서 10분이면 충분히 왕래할 수 있는 거리에 모여 있다.

전화를 걸어 간단한 점심 식사나 스타벅스에서의 커피 한잔을 제안한다면 별 부담 없이 만날 수 있는 정도이다. 만약 이들 사이에 “컨센서스”(consensus)가 필요했다면, 그것은 그들이 매우 가까운 곳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보다 쉽게 가능했을 것이다. 이들이 만나 얘기를 나눌 기회는 실제 이보다 훨씬 더 잦다.

그들 건물에서 조금 더 북쪽으로 걸어 올라가면 간단한 점심과 음료를 즐기며 참가할 수 있는 토론회들이 하루에도 수십, 수백개씩 열리고 있는 싱크탱크 거리(매사츄세츠 애버뉴와 엘(L), 엠(M) 스트리트 일대)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발표자로, 토론자로, 때론 청중으로 어울리며 서로간의 “교감”의 폭과 깊이를 키워 가고 있다.

미국 주요 싱크탱크의 창립 연도 및 예·결산 규모
제공: 시사IN

‘회전문’을 돌아 나오다

전세계 주식시장을 두려움에 떨게 하고 있는 미국의 ‘서브 프라임’ 사태가 프레디 맥(Fraddie Mac)과 패니 매(Fannie Mae)에 대한 연방정부의 지원계획으로까지 이어지자 브루킹스연구소, 미국기업연구소, 피터페터슨 국제경제연구소 등 유수의 싱크탱크들은 신속하게 독자적인 보고서, 인터뷰, 언론기고와 같은 다양한 방식의 정책제안들을 쏟아내고 있다.

문제의 정확한 진단과 해법의 적절한 제시야말로 미국 싱크탱크들의 존재이유이기 때문이다. 현재 워싱턴 디씨에는 300개―미 전역에는 1,500~1,600여개―가 넘는 싱크탱크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들은 매일같이 수많은 보고서들을 발표하고 있고, 크고 작은 세미나와 컨퍼런스들을 개최한다. 뉴욕타임즈나 워싱턴포스트와 같은 주요 신문사들의 기명 칼럼란에는 하루가 멀게 싱크탱크 연구원들의 기고가 실리고 있고, 텔레비전 뉴스 프로그램의 해설자로, 의회 청문회의 증인으로 연일 등장한다.

백발이 성성한 전직 고위관료 출신들로부터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정책을 제안하는 야심찬 젊은 연구자들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모습은 다양하다(하지만 대부분은 백인남성이다). 또한 올해와 같이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에는 많은 연구원들이 주요 후보자들의 캠프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며 구체적인 정책과 선거 전략 마련에 힘을 쏟는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버락 오바마(Barak Obama)의 캠프에 수잔 라이스(Susan E. Rice)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위원, 제프 베이더(Jeffrey Bader) 브루킹스 연구위원, 데릭 미첼(Darrick Mitchell) 전략 및 국제문제연구센터 연구위원, 고든 플레이크(Gordon L. Flake) 맨스필드재단 사무총장 등이 참여하고 있고, 존 맥케인(John MacCain) 공화당 후보의 선거 캠프에도 리차드 아미티지(Richard Armitage) 아미티지 인터내셔날 대표, 전략 및 국제문제연구센터 재팬 체어(Japan Chair) 책임자 마이클 그린(Michael Green) 죠지타운 대학교 교수 등 수많은 싱크탱크 연구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 중 적지 않은 숫자의 인물들은 대선 결과에 따라 다음 정부의 요직으로 등용될 것이다.

부시 행정부 시기 동안 가장 많은 인물들이 중용된 싱크탱크가 미국기업연구소임은 익히 알려져 있다. 현 부통령 딕 체니, 부시 행정부 1기 당시 재무장관 폴 오닐, 경제고문 로렌스 린제이,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 글렌 하버드, 국방자문위원회 위원장 리처드 펄튼 등도 모두 미국기업연구소 출신이었다. 한 조사에 따르면 2001년 부시 행정부 1기 출범 당시 무려 24명의 미국기업연구소 연구원들이 정부 요직에 임명되었다고 한다. 또한 존 볼튼 전 유엔대사와 폴 월포위츠 전 세계은행 총재 등 대표적 네오콘 인물들은 공직에서 물러나면서 곧바로 미국기업연구소로 돌아 와 집필과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은 한국이나 일본과 달리 직업관료들의 위상이 그렇게 강하지 않기 때문에, 현직 관료가 아닌 이들 가운데서 잘 준비되고 훈련된 정책전문가가 대통령의 ‘정치적 임명’을 통해 등용되는 구조를 갖고 있고 그것이 바로 ‘회전문’(Revolving Door)현상이라는 것이다.

일본경제신문 워싱턴 특파원, 월터 먼데일 주일대사의 특보 등을 거쳐 현재 워싱턴 디씨에서 <워싱턴 와치>(the Washington Watch)라는 주간정보지를 발행하고 있는 야마자키 가쓰타미씨는 이러한 ‘정치적 임명’과 ‘회전문’이야말로, “권력과 표리일체”인 워싱턴 싱크탱크 세계를 정확히 읽어내는 키워드라 설명한다. 또한 그는 워싱턴 싱크탱크가 “정책지향”과 “정치지향”이 동시에 뚜렷한 집단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대학 못지않은 학술적 연구 성과들을 제출하는 브루킹스연구소나 외교관계평의회, 국제경제연구소 등도 있지만, 이들까지 포함하여 미국의 싱크탱크들은 “정책”을 매개로 “정치”에 개입하고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미국 싱크탱크의 특징은 20세기 초반까지 거슬러 올라간 미국 싱크탱크의 오랜 역사 속에서 만들어져 왔다.

↑↑ 1.브루킹스 연구소
↑↗ 2.헤리티지 재단
↑ 3.피터 페터슨 국제경제연구소
→ 4.미국 진보센터 창립자 ‘존 포데스타'(오른쪽)

“자유주의 기득권세력”을 전복하라

미국 싱크탱크의 역사와 유형은 “학생 없는 대학”으로 요약되는 정책연구기관 중심의 1세대(1832년~1945년: 브루킹스연구소, 국제평화를 위한 카네기기금 등), “정부계약 수행자”들이 많이 등장하고 성장한 2세대(1946년~1970년: 랜드연구소, 도시연구소 등), “정치적 주창조직”으로서의 싱크탱크 3세대(1971년~1994년 : 헤리티지재단, 케이토연구소, 정책연구소 등), “정치인 장식품”으로서의 싱크탱크 4세대(1995년~현재 : 닉슨센터, 카터연구소 등)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이러한 미국 싱크탱크의 역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시기는 역시 1970년대 이후의 변화라 할 것이다. 1964년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로 나섰던 베리 골드워터(Barry Goldwater)의 참패는, 당시 그를 지지했던 미국 보수세력들에게 큰 충격과 좌절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선거 패배는 대학과 언론, 출판 등의 영역을 장악하고 있는 미국의 “자유주의 기득권세력”(liberal establishments)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린 후, 이에 대항하기 위한 ‘지적 하부구조’(intellectual infrastructure)를 건설하기로 결심한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싱크탱크가 바로 헤리티지재단(1973년 창립)과 케이토연구소(1975년) 등이었다.

레이건 대통령 집권 직후 그에게 전달된 1,000페이지에 달하는 『리더쉽에 대한 요구사항』(Mandate for Leadership)은 당시 워싱턴 서점가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팔려 나갔고, 요구사항의 약 60%가 레이건 대통령 집권 기간 동안 실현되어 헤리티지재단의 위상은 급격하게 높아만 갔다.

특히 이들은 그동안 싱크탱크들이 두꺼운 단행본을 중심으로 출판해 오던 관행을 완전히 뒤집어 버렸다. 워싱턴 레이건 공항에서 국회의사당까지 가는 약 20~30분 동안, 자동차 안에서 쉽게 읽을 수 있는 한두페이지짜리 정책브리핑 자료를 생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이전가지의 ‘학술적’ 성격의 정책연구기관에서 ‘정치적 주창조직’으로 싱크탱크의 성격이 전환되었음을 보여 주는 ‘작지만 큰’ 변화였다. 그리고 이들은 아이디어의 생산만큼 그것의 판매를 강조하였다.

헤리티지재단의 창립자이자 현재까지도 대표인 에드윈 퓰너(Edwin Feulner) 박사는 헤리티지재단의 목표가 “워싱턴의 공공정책 커뮤니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며, 그 대상은 첫째가 의회, 둘째가 행정 부처, 셋째는 전국적 언론”이라고 분명히 밝힌다. 실제로 헤리티지재단은 예산의 20~30%를 대중과 언론 홍보에 사용하고 있어, 예산의 3% 정도만 홍보비로 사용하고 있는 브루킹스연구소와 큰 대조를 보인다.

보수 싱크탱크의 대표격인 헤리티지 재단이 주관한 토론회

보수적 재단들의 장기적 투자

가장 대표적인 보수적 싱크탱크들이라 할 수 있는 헤리티지재단이나 케이토연구소가 자기 재정의 상당부분을 소액다수의 회원들의 회비로 충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무척 흥미롭다. 30만명에 가까운 회원을 둔 헤리티지재단의 1년 수입은 약 4천1백억원(2006년 연례보고서 기준)에 달하는데 이 가운데 약 60%가 개인들이 기부한 것이며, 케이토 역시 1만 5천명이 넘는 회원들의 기부 액수가 전체 1년 수입 2천여억원의 74.3%에 달한다.하지만 대부분 미국의 싱크탱크들은 다양한 재단들로부터 받는 조성금을 가장 중요한 재원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재단들의 싱크탱크 후원전략에는 큰 차이가 있다. 미국의 대표적 싱크탱크 연구자인 앤드류 리치(Andrew Rich) 교수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상위 12개씩의 보수와 자유주의적 재단들의 조성금 규모 자체만 본다면 자유주의적 재단들의 조성금 후원 총액이 훨씬 컸다.

하지만 자유주의적 성격의 재단들이 주로 ‘1년짜리’의 ‘사업비 지원’에 초점을 맞춘 반면, 보수적 재단들―특히, ‘네 자매’로 불리는 존 올린 재단, 린드 앤 해리 브레들리 재단, 스미스 리처드슨 재단, 세라 스카이프 재단―은 ‘다년형’ 지원, 그리고 사업비 이외에 운영경비 자체를 지원하는 규모가 컸다.

존 올린 재단의 부대표를 맡았던 제임스 피어슨은 “자유주의적 재단들은 너무 ‘프로젝트 지향’적이다. 그들은 프로젝트를 후원할 뿐 조직 자체를 후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프로젝트에서 다른 프로젝트로 옮겨 다닐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과 달리 조직 자체를 지원한다. 우리는 조직의 하부 구조를 튼튼히 할 수 있는 도움을 제공한다”라고 차이를 설명한다. 또한 자유주의적 성격의 재단들은 중립적 성격의 연구 및 기관을 선호한 반면, 보수적 재단들은 이념적 지향을 분명히 드러내는 싱크탱크나 연구주제에 대한 지원을 더욱 집중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헤리티지재단과 케이토연구소가 만들어진 이후 한 세대가 지난 현재, 보수적 싱크탱크들은 ‘조직’과 ‘이념’, ‘사람’을 키우는데 성공을 거둔 반면, 진보적 싱크탱크들은 그렇지 못했다는 반성이 미국의 진보진영 내부로부터 제출되기 시작하였다. 미국진보센터(Center for American Progress)의 창립은 바로 이러한 고민의 산물이었다.

미국의 싱크탱크는 주요 이슈에 대해 토론회(위)등 다양한 형태로 정책 제안을 하는 한 편, 직접 행정부에 참여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캡션

“진보판 헤리티지재단을 건설하라”

“매일매일 우파의 주장을 논박하는 브리핑이 발표되고, 공격적인 미디어부서는 자유주의적 사상가가 케이블TV에 출연하도록 도울 것이다. 신랄한 내용으로 가득한 웹사이트가 만들어질 것이고, 국내외 이슈에 대해 강력한 입장을 발표하는 정책부서가 움직일 것이다.

” 클린턴 대통령의 수석보좌관을 지냈던 존 포데스타(John Podesta)는 자신의 꿈을 이렇게 밝혔다. 그리고 그의 바람은 조지 소로스, 허버트와 매리언 샌들러와 같은 미국의 대표적 부호들의 재정적 도움에 힘입어 2003년 미국진보센터의 창립으로 실현되었다. 2008년 대선에서 민주당이 집권하게 될 경우, “여당 싱크탱크”로써의 역할을 해 낼 것으로 예상되는 미국진보센터는 2008년 현재 한해 예산이 2천만 달러에 달하고, 100여명의 연구원과 스탭들이 일하고 있는 거대 싱크탱크로 급성장하였다.

매년 미국 싱크탱크들의 언론인용빈도를 조사발표하는 엑스트라(Extra!) 잡지의 2008년 3/4월호에 따르면 미국진보센터의 인용빈도순위는 전체 싱크탱크들 가운데 8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진보적?자유주의적 싱크탱크들 가운데서는 가장 높은 순위이기도 하다. 스스로를 “진보판 헤리티지재단”이라고 규정하며 등장한 미국진보센터는 2008년 대선을 맞아 공화당과 보수세력에 대한 공격의 칼날을 더욱 날카롭게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과연 “진보판 헤리티지재단”의 실험이 성공적으로 끝날 것인가, 나아가 그것의 ‘성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헤리티지재단의 에드위 퓰너 대표는 미국진보센터가 민주당으로부터 얼마나 독립적으로 아이디어를 만들고 확산시켜 나갈 수 있을까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헤리티지재단은 공화당을 ‘이용’하고 있지 ‘종속’되지 않는데 비해, 미국진보센터는 과거 클린턴 행정부 당시 ‘여당 싱크탱크’ 노릇을 수행했으나 지금은 거의 정체되어 버린 진보정책연구소(Progressive Policy Institute)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새로운 미국재단(New America Foundation)의 스티븐 클레몬스 연구위원에 의해 제기되기도 하였다.

미국을 대표하는 진보적 지식인이자 민주당 전략가 가운데 한명인 죠지 레이코프 교수(U.C. 버클리, 언어학) 역시 미국진보센터가 ‘8자 구호’를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지만 그 근저의 ‘가치’와 ‘이념’을 독자적으로 생산해내는 역량은 아직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 상의 ‘가상 싱크탱크’(virtual think tank)의 성격이 강한 컴먼윌 연구소(Commonweal Institute)의 베리 캔달 대표는 미국진보센터가 진보적 싱크탱크들의 전국적 연대체(Progressive Instititute Network)에 참여하지 않는 것을 이유로 들며 헤리티지재단이 수행하고 있는 보수적 네트워크의 형성자, 지원자의 역할을 이들이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기도 하였다. 미국진보센터에 대한 미국 진보진영의 기대가 큰 만큼, ‘실망’과 ‘우려’도 큰 것이 지금의 현실인 것이다.

미국 싱크탱크의 언론 이용 빈도 및 순위
제공: 시사IM

그들이 그리는 동아시아

이처럼 취약하지만 고착화되어 버린 두 정당 체제, ‘회전문’을 이용한 관료의 충원과 같은 독특한 정치구조의 산물인 미국 싱크탱크들에 주목하는 것은, 그들이 그저 미국(의 정책)에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그들은 이미 “미국을 넘어 세계를 기획”하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특히 2008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더욱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미국 싱크탱크와 소속 연구원들의 정책경쟁은, 우리로 하여금 이들에 대한 한층 날카롭고 치밀한 관찰을 요구한다.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가 곳곳에서 위협받고 있는 오늘, 또 다시 새로운 “워싱턴 컨센서스”가 듀퐁 서클 주변 싱크탱크들이 개최한 토론회 자리 한쪽에 마련된 커피와 쿠키를 손에 든 이들 사이에서 어느새 만들어지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발 딛고 선 한반도와 동아시아 또한 그들이 그리는 거대한 그림판 위에서 그들의 취향에 따라 조금씩 다른 색깔과 구도로 그려지고 있다. 그들이 그린 그림의 물감이 마를 날만 기다릴 것인지, 스케치부터 새로 하게 만들 것인지, 아예 붓을 내손에 쥐고 스스로 그릴 지를 정하는 것은, 결국 “지피지기”(知彼知己)에서 시작되어야 함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미국의 저명한 동아시아 전문가 가운데 한 사람인 커트 캠벨 미국 안보센터 공동 대표

동아시아 연구 경향 ‘5대 흐름’

커트 캠벨 박사가 그려 본 미국 싱크탱크의 동아시아 연구 경향

필자는 지난 5월 24일 새로운 미국안보센터(Center for New American Security)의 공동대표 커트 캠벨(Kurt Campbell) 박사와 인터뷰할 기회를 가졌다. 클린턴 행정부 국방부 동아태 담당 부차관보를 역임하기도 했던 그는, 미국의 대표적인 군사?안보 분야 전문가 가운데 한명이다.
아스팬연구소와 전략 및 국제문제연구센터 의 연구위원을 겸하고 있기도 한 그는, 필자에게 미국의 동아시아 연구 경향을 크게 다섯 가지 흐름으로 정리하여 설명해 주었다.

첫째, 미국 동아시아 전략은 중국을 중심에 두고 구축되어야 하며, 중국과의 탄탄한 관계야말로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입장이다. 브렌트 스코우크로포트, 짐 베이커, 헨리 키신져 등이 대표적 인물들이다.
둘째, 미국과의 전략적 동맹국들(일본, 한국, 호주, 싱가포르 등)과의 관계를 더욱 중시하는 이들이다. 이들은 동맹국들과의 효과적인 양자관계를 기반으로 ‘중국의 부상’, ‘양안 긴장’, ‘북핵문제’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리차드 아미티지, 죠셉 나이, 짐 켈리 등이 이런 입장이다.
셋째, 중국은 앞으로 미국의 가장 큰 ‘적국’이 될 것이며, 동반자나 기회이기보다는 ‘위협’이라 여기는 이들이다. 헤리티재단, 도널드 럼스펠트, 딕 체니 등이 이런 관점에 서 있다. 넷째, 동아시아에 대한 19세기적 접근으로는 환경, 공해, 범죄 등 초국가적 성격의 21세기형 복잡한 문제를 해결 할 수 없다고 보는 이들이다.

이들은 정확하게 말해 “아시아 전문가”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 회담’의 성공에 집중해야 하는 크리스토퍼 힐과 같이, 작은 이슈들에 집착하는 이들이 있다.

커트 캠벨 박사 본인은 두 번째와 네 번째에 해당한다고 설명하면서, 미국 싱크탱크들의 동아시아 연구동향 역시 이상의 다섯 가지 흐름을 염두에 두고 살핀다면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글의 편집과 사진 등은 <시사IN> 원고와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

<시사IN><희망제작소>는 총 5회에 걸쳐 “미국 싱크탱크들의 동아시아 연구 동향과 연구진에 관한 기획기사”를 공동으로 게재하고 있습니다. “제5의 권부”로까지 불리며 미국 국?내외 정책 형성에 막강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싱크탱크들에서 과연 누가, 어떻게 한반도, 중국, 대만, 일본 등에 관한 연구를 진행해 가고 있는가를 살핌으로써, 향후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의 향방을 예측해 보고자 합니다.

지난 2년간 미국 조지워싱턴 대학교 시거센터의 객원연구원으로 머물며 미국 싱크탱크들에 대한 연구를 수행해 왔던 홍일표 박사(희망제작소 선임연구원, 『세계를 이끄는 생각 : “사람과 아이디어를 키워라”―미국 싱크탱크의 전략』(중앙북스, 2008)의 저자)는 미국 싱크탱크들의 동아시아 연구 현황과 주요 전문가들에 대한 입체적인 정보와 분석을 제공할 예정입니다. 첫회는 “미국 싱크탱크란 과연 어떤 곳인가,” 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돕는 글로 작성되었습니다. 본 글은 <시사IN> 48호에 게재되었으며, 시사인 온라인 사이트의 e-book을 통해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기획연재 ‘미국의 싱크탱크를 가다’ 리스트
①중국의 대약진
②워싱턴의 그들 미국을 넘어 세계를 기획하다
③타이완의 ‘전략 투자’ 뿌린 대로 거두네
④미국은 여전히 일본을 중심으로 아시아를 관리한다

본 기획연재는 5편까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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