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글로벌 브레인 투데이에서는 미국의 서부 싱크탱크에 관한 새로운 연재가 시작된다.
본 연재는 희망제작소 개편 전 홈페이지에 일부 게재되었었으나, 일부 수정 및 추가 후 다시 게재될 예정이다. 지난 2006년 4월, 2008년 3월과 5월, 총 세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던 미국 서부 싱크탱크들에 대한 방문조사 결과 중 일부가 소개되었었다. 2006년 4월 방문조사에는 박원순 변호사(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최은진 연구원, 김성현 박사(중앙대 행정학과) 등이 참여하였고, 2008년 3월과 5월에는 홍일표 박사(희망제작소 선임연구원)가 조사를 진행하였다.

그동안 글로벌 브레인 투데이에서는 미국의 수도 워싱턴 디씨에 소재한 다양한 싱크탱크들에 대한 소개와, 미국 싱크탱크의 동아시아 연구에 관한 분석글들이 <시사IN>과의 연재기사 등의 형식으로 다루어졌다. 본 연재는 그간 한국에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던 미국 서부의 싱크탱크들이 집중적으로 소개될 예정이다. 후버 연구소와 같은 초대형 싱크탱크로부터 상근자를 한명도 두지 않고 있는, LA 소재 한국정책연구소에 이르기까지 “워싱턴의 세계기획자”들과는 또 다른 특징을 보여 주는 미국 서부의 싱크탱크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공저로 표시된 일부 글들은 최은진 등이 먼저 작성한 원고를 홍일표가 차후 수정하는 형식으로 작업된 것임을 미리 밝혀 둔다. 앞으로 약 10여주간 매주 목요일 게재될 예정이다.

후버 연구소(Hoover Institution)

전쟁과 평화, 그리고 혁명을 연구하다

최은진(한양대 대학원/희망제작소 전 연구원) & 홍일표(희망제작소 선임연구원)
사진 최은진

자유로운 사회를 규정하는 아이디어들 ideas defining free society

인간의 정당한 권리와 법, 인종과 성에 대한 평등, 사회 문화와 사회적 가치의 역할, 경제 성장과 자본 형성 및 세금 정책, 인구정책에 따른 부의 재분배, 교육과 보건 그리고 환경에 관한 정책. 이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상아탑이면서 또한 상아탑임을 스스로 거부하는 곳이 있다. 캘리포니아(California)주 팔로 알토(Palo Alto)시에는 스탠포드 대학(Stanford University)이 있다. 아담한 일반 가정 주택 같은 기숙사들이 드문드문 보이는 가운데 개성 있는 대학 건물들이 늘어선 스탠포드 대학은 그대로가 하나의 마을이다. 이 넓은 캠퍼스에 등대처럼 우뚝 솟아 있는 후버 타워. 후버 연구소는 이 후버 타워에서 먼저 빛을 밝히고 있다.

스탠포드 대학교 교정에 위치한 후버타워의 전경(좌)과 창립자 허버트 후버(우). 45세의 허버트 후버는 ‘전쟁과 혁명, 평화에 관한 후버 연구소(Hoover Institution on War Revolution and Peace)’를 설립한 후 9년 만인 1928년, 미국의 31번째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연구소- 허버트 후버에 대한 자부심

후버 연구소는 1919년 허버트 후버(Hubert Hoover)에 의해 설립된 후버 도서관으로부터 출발했다. 스탠포드 대학의 졸업생이었던 후버는 당시로 보면 소위 부르주아 계층 중의 한 명이었다고 후버 연구소 홍보 담당자(Public Affairs Manager)인 미셸 호래니(Michele M. Horaney)는 그를 소개했다.

허버트 후버는 1874년 미국 중부 아이오와(Iowa) 주의 고아로 태어났다. 그렇지만 서부 오리건(Oregon) 주에 살던 친척들에게 보내지면서 캘리포니아(California)의 우수 교육을 받을 기회는 생겨났다. 그가 스탠포드 대학에 입학하게 된 1891년은 이 대학이 막 문을 연 해이기도 했다.

후버는 이곳에서 지리학을 전공하고 이후 광산 기술자가 되어 중국과 미얀마, 러시아, 호주 등으로 옮겨 다니기 시작한다. 채굴업자이자 사업가로서 그는 젊은 나이에 백만장자가 된다.

하지만 돈보다 후버에게 더 큰 힘이 된 것은 인적 네트워크와 지식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후버는 정치와 전쟁에 관련된 자료를 모으기 시작한다. 혁명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고 파리평화회의에 참석하게 된 윌슨(Thomas Woodrow Wilson) 대통령이 자문할 만큼 평화 유지에 대한 연구에 몰두한다. 이때 수집한 신문, 책, 편지, 포스터 등 모든 자료들은 신속히 한 곳으로 옮겨져 아카이브를 이루게 되는데, 1921년 이미 그 수는 8만 부에 이르렀다고 한다. 후버는 특히 이러한 자료를 함께 연구할 동료들을 모으는 데 힘을 기울이면서, 정치, 경제 분야를 포괄한 국내 및 세계의 전반적인 현안에 대한 연구를 활발히 벌인다. 막심 고리키(Maxinm Gorky) 와 교류하면서 1921년부터 1923년 당시 소련 기근 상황을 듣고 식량 및 약품을 지원하기도 하며, 이로써 후버 연구소 초기 소장 자료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소련 문서 및 도서들을 수집한다.

“후버 연구소는 이를테면 허버트 후버의 돈 5만 달러로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차 한 대 값에 불과하지만 그 당시에는 아주 큰돈이었지요. 사람들은 우리에게 현재 어떻게 빌딩 세 채를 운영하고 1년에 3천2백만 달러의 예산을 낼 수 있는가를 묻곤 하는데, 저는 항상 후버 연구소는 작지만 큰 허버트 후버의 돈으로 시작되었고, 그것을 지탱해갔던 것은 그의 꿈이었다고 말합니다. 후버는 사람들을 우리의 연구 활동에 열정적이도록 만들었습니다. 말하자면 일하고자 하는 사람들 개개인과 연구 목표를 나누는 의사소통에 무엇보다 집중하였고, 이것이 네트워킹이 되어 성공적으로 함께 일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계속 해나가야 할 일이기도 합니다. 허버트 후버는 1960년까지 이곳의 주 책임자로 활동하였고, 이후 1989년까지는 캠벨(Wesley Glenn Cambell)이, 1989년부터 지금까지는 존(John Raisian)이 책임자로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상부 층에서의 많은 변화가 있지 않았던 까닭도 그에 대한 신뢰가 밑받침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종속’과 ‘독립’의 경계- 후버 연구소와 스탠포드 대학의 관계

후버 연구소는 분명히 스탠포드 대학 안에 설치되어 있는 대학 연구소이다. 그럼에도 스스로의 개별적인 예산과 인사권을 가지고 있는 독립적 연구기관이다. 독자적으로 모금하고 독자적으로 사용한다. 모금에 있어 때로는 스탠포드 대학과 경쟁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느 달에서 어느 달까지는 후버 연구소가 나머지 달은 스탠포드 대학이 모금하도록 서로 신사협정을 맺는다. 한편 많지는 않지만 후버 연구소의 연구위원(senior fellow) 중에는 스탠포드 대학의 정치학과나 사회학과 등의 교수직을 겸직하는 사람들도 있다. 연구소에서 석사나 박사학위를 따로 달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에게 상담을 받고자 하는 학생들은 몰리기 마련이다. 예컨대, 제3세계 민주화과정에 관한 전문가인 래리 다이아몬드(Larry Diamond) 교수 같은 이는 후버 연구소의 연구위원이면서 동시에 스탠포드 대학의 정치학과 교수로 유명하다. 그러나 스탠포드 대학에 소속되지 않은 사람의 인사 경우든 아니든지 간에 후버 연구소의 상급 회원이 되려면 연구소 별도의 엄격한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물론 후버 연구소의 상급 회원이 되려면 스탠포드 대학으로부터 이력에 따른 적격판단을 받는 것이 원칙이지만, 이제까지 승인을 받지 못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현재 후버 연구소에는 100명에 가까운 상급 회원이 있고 75명에서 100명에 달하는 연구회원이 있다. 상급 회원은 자신이 원하는 만큼 머무를 수 있지만, 연구 회원은 주로 2~5년간의 연장 가능한 계약을 한다. 그리고 보통 그들은 5년 이상 머무르려 하지 않고 프로젝트가 완성되고, 집필활동이 끝나면 다른 곳으로 떠난다. 이러한 대부분의 회원들은 그들이 후버 연구소에서 있는 동안 임금보다 직책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 이곳의 시설과 자료들을 활용하고 다른 회원들과 상호 교류하는 것을 원하는 측면이 더 크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는 카터(Jimmy Carter) 전 대통령이 창립한 미국의 또 다른 연구기관인 카터센터(Carter Center)와 유사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카터는 대통령이 되고 난 후에 센터를 시작했지만, 출생지인 조지아(Georgia) 주로 돌아가 에머리 대학(Emory University)에 자료를 기증하고 센터를 시작하여 투표권이나 국제적 주제에 대해 토론할 장을 만들기도 했다. 이런 연구소들은 완전히 대학 본부에 종속된 우리나라의 대학 연구기관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들은 서로가 함께 함으로써 이득을 보고, 또한 독립함으로써 경쟁성과 효율성을 갖는 진정한 윈-윈(win-win) 관계를 추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후버 연구소 홍보 담당 미셀 호래니(좌)와 후버 연구소 도서관 열람카드(우). 현재 5천만의 문서들과 160만 권에 달하는 도서 및 저널의 규모를 자랑하는 후버 도서관의 모든 소장 자료들은 도서관 입구 한편에 늘어선 열람카드함에서도 하나하나 확인할 수 있다.

또 다른 공화당의 아성?

1964년 허버트 후버가 사망하기 전인 1959년에, 후버 자신이 스탠포드 대학 이사회에서 밝힌 이 연구소의 원칙은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미국 헌법이 보호하는 권리와 그에 따른 정부 정책을 지지하는 한편, 사회적 ? 경제적 시스템의 독창력을 선도하는 힘은 제한된 정부 하에서의 민간 기업에 있다고 본다. 우리는 지방자치체나 일반 시민들 스스로 떠맡을 수 없는 비정부적, 사회적, 그리고 경제적인 행위를 연방 정부와 함께 책임져야 할 종합 시스템이다. 연구와 출판을 통해, 전쟁에 맞섰던 경험에서 나온 목소리들을 되살리고, 미국의 삶의 방식을 유지하며 개인의 평화를 보호하려 했던 노력들을 상기시키려 한다. 우리 연구소는 다만 도서관이 아니며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이러한 목적과 목표로써 우리 연구소 자신은 끊임없이 그리고 역동적으로 평화와 개인의 자유, 미국 체제의 보호로 가는 길을 가리켜야 한다.”

이들이 내세우는 원칙과 철학을 보면 영락없이 공화당이나 보수주의자들의 주장 그대로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자신들은 헤리티지 재단(Heritage Foundation)이나 미국기업연구소(American enterprise institute), 카터 센터(Cato Center) 등 다른 보수적 싱크탱크와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도 자신들은 세금 문제 상 특정 공화당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비당파적이라고 한다. 자신들의 정책적 주장들은 공화당뿐만 아니라 민주당에서 공약으로서 채택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특히 교육개혁에 관한 정책들이나 세금정책들은 민주당이 채택한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예컨대, 단일세제(flat tax)에 대해서 말하면 이는 모두에게 동일한 하나의 세율을 정하자는 제안이다. 단일세제는 오래전부터 후버 연구소에서 연구되어, 이 연구소의 두 명이 단일세제의 창시자로 불리며 미국 머니 매거진(Money Magazine)에서 단일세제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받을 정도였다. 이후 이 안은 민주당과 보수당 모두가 채택하여 논쟁의 화두가 되었다. 경제 전문지 포브스(Forbes)의 스티브 포브(Steve Forbe)는 이 안을 적극 지지하였지만 그는 민주당 소속의 캘리포니아 의원이었고, 현재 오클랜드(Oakland) 주의 시장인 제리 브라운(Jerry Brown) 역시 같은 입장이었다. 이런 예에서 알 수 있듯 후버 연구소를 단순한 흑백논리로 그것의 정파성을 규정하는 것은 무리라고 할 수 있다.

원칙적으로 후버연구소는 실천적이고 행동 중심적이라기보다는 아카데믹한 정책을 생산하는 곳이다. 대학의 학술기관으로서, 정책제시기관으로서 연구결과물의 생산과 다양한 세미나 등의 개최를 통하여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지 그 결과물을 가지고 정당이나 언론에 압력을 가해 채택을 요청하거나 로비를 벌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워싱턴에 사무소와 대표는 두고 있지만 로비활동을 하지는 않는다고 거듭 말하며, 홍보 담당자인 미셸 호래니는 아래의 말을 덧붙였다.

“글쎄요, 말하자면 우리가 가진 아이디어는 보수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대중매체처럼 일괄적으로 편 가르기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후버 연구소는 보수적이고 공화당과 같은 입장이라고 말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아이디어를 내기 위해서 존재하며 이는 보수당에서만 말하는 삶의 윤택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중요 이슈로서 사기업과 인권, 사생활, 시민권, 사적 재산권의 기회나 미래를 보장하는 방법 등 많은 것에 주목합니다. 우리는 정부 측에서 종종 말하는 국민들에 대한 막대한 세금 정책을 지지하지 않으므로 어쩌면 반정부적입니다. 자신들은 보수당의 입장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회원들도 많습니다. 그들은 진심을 토로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대한 재정규모와 전방위적 모금

후버연구소의 1년 예산은 약 2천8백만 달러(280억원 정도)이다. 그만큼 큰돈을 모금해야 한다. 정부로부터 지원받는 것은 없고 대학에서 장서구입비로 받는 것도 4백만 달러가량(40억원 정도)일 뿐이다. 자금 마련을 위해서는 별도의 조직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재원개발부서(Development Office)가 바로 그것이었다. 이들 역시 모금을 위해서는 피나는 노력을 해야 했다. 정식 이사들뿐만 아니라 해외 이사회(Board of Overseas)를 설치하고, 예산에 있어 중요 결정을 내리는 13명의 이사를 두며, 그 아래 소위원회(Sub-Committee)에 100여명의 위원을 임명하여 일종의 클럽으로 함께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결국 모금을 위한 조직이기도 하다. 모금을 위한 이벤트 역시 다양하다. 관심을 가질 사람들을 예상하여 자료를 보내고 세미나를 여는 한편, 상급 회원들은 지역을 옮겨 다니며 잠재 기증자들 앞에서 연설 등 모금활동을 벌인다. 대학 졸업생들은 물론이고 일반 기부자, 유력 재력가들을 상대로 현지까지 쫒아가서 모금을 하는 것이다. 1년에 두 번 있는 이사회는 1~2월에는 워싱턴에서 열려 수석 정부 관료를 포함한 정부기관 종사자들이나 언론계 인사 등 수도의 유력자들을 상대로 모금이 이루어진다.

2006년 7월에는, 본 캠퍼스에서 열린 이사회서 ‘묵상회(retreat)’라는 이름의 모금행사를 벌였는데 후버 타워 앞에 거대한 텐트를 설치하여 강당처럼 꾸미고 300여명의 사람들을 초대하여 3일 동안 각종 행사를 개최하였다. 일요일 밤 저녁만찬을 시작으로 월요일과 화요일 동안 내내 수많은 테이블에서 연구소 인사들과 잠재적 기부자들과의 다양한 만남이 이루어진다. 예컨대, 기업인들의 테이블에는 프리드먼(Milton Friedman) 교수 같은 스타급 학자가 같이 앉아 토론과 담화를 즐긴다. 이 유명교수를 만나는 것만으로 참여자들에게는 큰 즐거움이 되어 결국 큰돈을 기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후버 연구소에 소속되어 있는 유명 교수나 연구원들로는 전 국무장관이었던 죠지 슐츠(George Schulz), 전쟁과 사회와 관련한 로마, 그리스 고전 연구자인 빅터 한센(Victor David Hansen) 등이 있다. 한센은 특히 캘리포니아 일대의 이민 문제 등을 다루는 글을 활발히 저술하고 있다.

지하층 현관에 게시된 1995년부터 2000년까지 이루어진 집중모금기간 중에 기금을 낸 기관들의 이름이 붙어 있다. 그 중에는 한국의 한국개발연구원(KDI, Korea Development Institute)과 국제교류재단(Korea Foundation)의 이름도 있다.

기부자들은 보통 개인으로서 사업가들이 많다. 이들은 주로 허버트 후버처럼 사업에 성공하고 역사나 정치, 경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로 미국의 전형적인 삶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 중 상당수는 스탠포드 대학의 졸업생이거나 그들의 자녀가 스탠포드를 다닌 이들, 아니면 대학 부근의 주민들이라고 한다. 매년 이사회와 연예인, 음악가들까지 참여하는 큰 이벤트를 함께 벌이는 것은 바로 이들을 초대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성과로 기부자들로부터 지원받은 총 금액은 약 2억1천5백만 달러(2천억 원 정도)이다. 한 때 자금이 악용된 사례가 있었기에 몇몇 사람들은 자신의 기부금이 기금(endowment)으로서 전환되기를 요청하기도 한다. 현재 기금은 전체 기부금액의 약 5%만을 1년에 활용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되어있다. 자금 관리자를 별도로 두어 기금을 운영하여 수익을 내고, 자금 상황이 어렵거나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에만 이 수익금을 연구기금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한편 기업 차원의 지원은 많지 않다고 한다. 특별 자금 마련 캠페인 기간에 몇몇의 기업들의 지원이 이루어지긴 하지만, 많은 기업들이 참여하지 않는 것은 후버 연구소가 비즈니스적 연구보다는 훨씬 더 학술적 성격의 연구를 주로 행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광범위하고 활발한 출판

후버 연구소는 교육, 국제관계, 의료개혁, 사회 안보 개혁, 교육 개혁, 러시아의 현 상황, 중국의 경제발전, 남북문제 등 거의 모든 이슈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회원들에게 이러한 현장에 가서 직접 연구해볼 것을 요구하고 이후 책을 집필하거나 회의 기회를 가지도록 한다. 책임자는 7개의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회원들은 자신의 전공에 적합한 영역을 선택하여 다른 회원들과 협력하거나 프로그램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거나, 연구 과제 수행 후에는 TV나 라디오에 출연하기도 한다. 뉴스 미디어와 함께 하도록 장려하는 것은, 과거와 달리 연구를 소개하고 후버 연구소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데 미디어가 무엇보다 큰 영향력이 있다고 판단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현재 후버 연구소가 만들어 내는 출판물의 분량과 종류는 실로 방대하다. 후버 연구소에서 매년 출판하는 책자들의 소개를 담은 「후버 프레스」(Hoover Press) 카탈로그에 따르면 후버 연구소는 최근 기록으로 총 800권에 달하는 엄청난 종류의 도서를 출판하고 있으며, 이는 온라인을 통해서도 구입이 가능하다. 연구소의 평판은, 결국 그것의 생산물인 연구서의 양과 질에 달린 것이라고 한다면 후버 연구소의 위상은 충분히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러나 후버 연구소 역시 두꺼운 단행본 중심의 출판물로만 세상과 소통하고 있지는 않다. 한 페이지짜리 짧은 글에서부터 정기간행물, 온라인 뉴스레터까지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왼쪽부터 ↑「시점」, ↗「정책리뷰」, ↗↗「후버 다이제스트」, →「후버 뉴스레터」

한페이지의 팸플릿인 「시점」(Viewpoints)에는 사회 및 지역 현안이슈에 대하여 연구소원들의 입장과 시각을 밝힌 글이나, 언론에 기재한 글들이 담겨있다. 이는 저작권 때문에 온라인으로 올리거나 판매할 수는 없는 회원들만의 의견자료이다. 격월로 출간되는 후버 연구소의 저널 「정책 리뷰」(Policy Review)에는 내외부의 교수 및 연구원들에 의해 기고되는 정치, 경제, 사회 분야에 대한 심도 깊은 글들이 실려 있다. 「정책 리뷰」의 출판 사항(imprint)과 저널 이름은 헤리티지 재단으로부터 사 왔다고 한다. 더 이상 이를 출간하지 않게 된 헤리티지 재단으로부터 이를 사들인 것은 하나의 기회가 되어, 유명세와 경력 있는 편집자, 고객명단을 얻을 수 있는 결실을 얻었다. 「후버 다이제스트」(Hoover Digest)는 정치, 경제, 사회 및 공공 정책에 관한 후버 연구소 공식입장으로서 연구원들의 논평을 제공하는 글들을 모아 계간으로 간행된다. 이는 좀 더 다채롭고 흥미로운, 특출한 주제의 출판물로서 아카이브에 관한 내용도 함께 담는 한편 특정 의견에 관해 초점을 맞춘 글을 싣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한편 후버 연구소에서 발행하며 온라인으로도 게재되는 뉴스레터에는 후버 연구소에서 여는 세미나 및 전시회에 관한 정보와 연구원들의 대외 수상 실적, 연구 업적, 언론에 보도된 후버 연구소에 관한 내용 등이 실린다. 후버 연구소에 대한 기본 정보를 담은 「연간 보고서」(Annual Report)는 두툼한 책자 형식으로 발간된다. 이 보고서에서는 후버 연구소의 기관 및 개인별 연구 현황과 외부 네트워킹 현황, 법적 의무사항으로서 기부자들에게 알리기 위한 재정 리포트(financial report), 도서관 및 아카이브에 대한 정보, 연구원 및 직원, 기부자 등에 관한 제반 정보 등이 체계적으로 제공되고 있다. 최근에는 2년에 한 번씩 발간되고 있다.

우리 연구소는 다만 도서관이 아니며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그렇지만 우리의 목적과 그 목표로써
우리 연구소 자신은 끊임없이 그리고 역동적으로
평화, 개인의 자유, 미국 체제의 보호로 가는 길을 가리켜야 한다.

– 설립자, 허버트 후버 Herbert Hoover다음 주 목요일, 미국 서부의 싱크탱크들(2)가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