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글/사진 홍일표(희망제작소 선임연구원, 조지 워싱턴대학교 시거센터 방문연구원)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아시아재단(The Asia Foundation, http://asiafoundation.org/) 한국대표를 지냈던 아시아재단 국제관계 분야 워싱턴 프로그램 시니어 어소시에이트(senior associate) 스캇 스나이더(Scott Snyder)와, 지난 2008년 3월 6일 아시아재단 회의실에서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국제평화를 위한 카네기기금 건물 8층에 위치한 아시아재단은, 5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으며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부, 워싱턴 디씨 사무소, 그리고 아시아 17개국에 사무소들의 네트워크로 구성되어 있다. 비영리/비정부 기관인 아시아재단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번영, 정의, 개방의 증진을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아시아 각국의 법률, 협치, 시민사회, 여성 역량 강화, 경제개혁 및 개발, 국제관계 등의 프로그램들을 지원하고 있다. 작년 2007년는 6,800만 달러 이상 규모의 프로그램 지원을 하였으며, 3,300만 달러에 달하는 액수의 책과 자료들을 아시아 각국에 배포하기도 하였다.

능숙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스캇 스나이더는, 워싱턴 싱크탱크 세계에서 대표적인 한국 전문가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아시아재단에서 일하기 전 그는, 미국평화연구소(USIP) 아시아 전문가(Asia Specialist in the Research and Stuides Program of USIP)로 활동하였으며, 미국 내 대표적 사회과학분야 장학프로그램인 아베 펠로우쉽(the Abe Fellowship)을 받기도 하였다. 그는 현재 워싱턴 디씨에서 한반도 문제와 관련된 대표적인 기고자, 논평자로 활약하고 있으며, 『벼랑 끝 협상 : 북한의 협상 행태 Negotiating on the Edge : North Korean Negotiating Behavior』(USIP, 1999)의 저자이다.

※인터뷰 분량이 많은 관계로, 새 정부 출범 이후 한미관계 등의 내용은 별도로 게재토록 한다.
”?”홍일표(이하 홍) : 이렇게 얘기 나눌 기회를 갖게 되어 반갑습니다. 스캇 연구위원은, 제가 참여연대에서 일을 하던 시기에, 안국동에 있던 아시아재단에서 일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인연이라면 인연인데요.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아시아재단에서 일 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때는 저 역시 참여연대에서 아주 열심히 활동하던 시기였지요. 당시 아시아재단 건물은 참여연대에서도 가까워 자주 그 앞을 지나다니곤 했습니다. 저는 현재 “미국 싱크탱크와 동아시아” 라는 주제로 많은 전문가들과 인터뷰를 진행해 오고 있습니다. 오늘도, 그 주제에 관한 얘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먼저 미국 싱크탱크와 동아시아라는 주제에 관해 전반적인 설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스캇 스나이더(이하 스나이더) : 저 역시 반갑습니다. 그러면 홍박사께선 참여연대에서 일을 하다가 현재 희망제작소로 옮기신 것이네요. 저 역시 가회동 시절이 그립습니다. 모든 나라는 각각 국제 정책이나 무역에 관한 연구를 필요로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체로 싱크탱크들이 그런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특히 한국의 경우에는, 정부 부처와 연계된 국책연구소의 강한 전통이 있어 왔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많은 싱크탱크들은 1970년대에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비단 한국만이 아니라,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에서는, 싱크탱크들이 국가가 필요로 하는 연구, 정부가 필요로 하는 분석을 수행하는 것을 목적으로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국제관계에 있어서의 새로운 기회나 교류의 증진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미국은 이런 아시아의 경험과 좀 다르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차이가 발생한 첫 번째 이유로는 우선, 미국에서 정책연구는 정부가 주도해왔기 보다, 대학들이 주도해 왔다는 점을 들 수 있겠습니다. 대학이 연구의 중심 역할을 오랫동안 해왔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런 대학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는 국제문제를 다루는 연구 집단이 별도로 존재해 왔습니다. 다시 말해, 정부의 재정지원으로 만들어지고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결성되어 정책형성에 정보를 제공하고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시민적 네트워크(civic network)”가 일찍부터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일종의 공공재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류의 활동은 20세기 초반부터 미국에서 이루어져 왔습니다. 예를 들어, 외교관계평의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의 경우 매우 오랜 역사를 가진 대표적인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설령 이들 기관의 회원들이 정부 관료들과 깊은 친분관계를 맺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정부에 의해 결성된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후 싱크탱크가 성장해 온 경로를 살펴보면, 2차 세계대전 이후 상황이 매우 중요하다고 할 것이지만, 그 이전에도 이미 중요한 변화들이 발견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브루킹스연구소라 할 것입니다. 브루킹스연구소는 정부정책 형성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인데, 이 역시 정부가 아니라 민간의 주도로, 민간 영역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처럼 미국에서는, 아시아에서의 경우와 달리, 민간 싱크탱크에 대한 더 큰 기대, 그리고 실제 이들의 많은 역할이라는 특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도 또한 공적인 재원에 의해 만들어진 연구기관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의회연구서비스(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 CRS)나 미국평화연구소(United States Institute for Peace, USIP) 등은 미 의회가 설립한 연구기관들입니다. 좀더 특화된 곳으로는, 국방부와의 계약 사업을 주로 하는 랜드연구소(RAND Corporation)를 들 수 있을 것이고, 이들은 냉전이라는 맥락 속에서 등장한 것들로, 아시아의 국책연구소와 완전히 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상당히 비슷한 역할과 구조를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에서는 “국가 건설(national building)”에서 “민주화(democratization)”로의 커다란 변화가 진행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유용한 자료들을 생산해내는 민간 영역의 흐름 또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의 많은 ‘시민 네트워크(civic network)’들이나 한국의 수많은 운동조직들, 대표적인 예가 참여연대라 할 수 있겠지요. 이런 운동조직들이 연구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국가주도의 연구기관들이 중심적 역할을 수행해 왔던 한국의 경우, 한국판 브루킹스연구소, 한국판 미국기업연구소, 한국판 전략 및 국제문제연구소 등이 존재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민간 영역에서는 대학들이 중심적인 연구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해 왔고 이들은 비교적 훌륭한 연구 성과를 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한국에서도 보다 ‘독립적’인 연구 기관들이 생겨나고 있는 추세인 듯합니다. 중국의 경우에도, 대부분의 연구 기관들은 정부에 의해 설립, 운영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싱크탱크들에서도 연구의 독립성이 조금씩 강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재미있는 경우가 호주의 사례라고 생각됩니다. 호주 또한 미국식 싱크탱크들을 부러워하곤 있지만, 호주에는 미국과 같은 ‘사적 자선(private philanthropy)’의 전통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호주에서도 역시 대학들이 민간 영역의 중심적 연구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 오고 있습니다. 따라서 단순히 ‘아시아’와 ‘서구’를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고 할 것입니다.

이처럼 각각의 나라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국제문제 등에 필요한 연구를 수행하고, 정보를 교환하여 정책을 만들어 가고자 하는 요구와 바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특히 외교문제의 경우에는, 다른 이슈들과 달리, 특별히 ‘독립성’이라는 것이 매우 핵심적 쟁점이 되어 왔던 것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외교문제의 경우, 전통적으로 ‘당파적’인 분쟁보다는 ‘초당파적’ 협력의 성격이 더 강한 주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사회적으로 서로 다른 시각들이 충돌하는 경우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싱크탱크에 관한 좀 더 큰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면, 보다 특정한 이념이나 관점에 입각한 싱크탱크들이 1980년대를 거치며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헤리티지재단이나 미국기업연구소는 물론, 최근 만들어진 미국진보센터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어떤 정책들에 대해 ‘먼저 만들어진’ 시각으로 접근하거나 그것을 파악하는 양상이 뚜렷하고 그러한 것들에 기반하여 정책을 제안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홍 : 지금까지는 주로 아시아와 미국에서의 싱크탱크 일반에 관해 설명을 해 주셨는데요. 그렇다면 미국 싱크탱크들에 있어 ‘아시아 연구’의 특징과 역사에 대해선 어떤 설명이 가능할런지요?

스나이더 : 물론 그 주제에 대해 제가 최적의 인물이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홍박사께서 보다 나은 인물들로부터 얘기 듣는 기회를 가지길 바라면서, 제가 아는 것을 중심으로 말씀을 드려 보겠습니다. 미국 싱크탱크들의 아시아 연구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에 대해선 저 또한 확실히 알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역시,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2차 세계대전 직후가 중요한 기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당시 ‘지역 연구’를 주도했던 것은 대학들이었지요. 하지만 이들에 대한 ‘초기적 도전’, 특히 중국 연구가 지나치게 이데올로기에 의해 압도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대학에서의 중국 연구조차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렌즈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었죠. 이러한 비판은, 이후 베트남 등에 대한 지역연구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었습니다. 이는 또한 ‘돈’과 관련된 것이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지역연구를 가능케 하는 자금이 주로 정부로부터 지원되면서 정부의 시각과 크게 다르지 않는 연구들이 이루어졌다는 비판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돈’과 ‘연구’의 문제는, 1980년대 들어서면서 비단 ‘미국 정부’와의 관계만이 아니라 ‘외국’으로부터 지원되는 돈과 연구에 관한 문제로 확대되기 시작하였습니다. 특히, 1980년대에는 일본의 경제적 위협에 대한 미국 내부의 우려로부터 제기되는 논란이 컸습니다.

어쨌든 제가 볼 때, 지역연구에 있어 싱크탱크들의 지역연구는 일종의 ‘이차적 발전’(secondary development)의 성격이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지역연구의 ‘다양성’을 확대시켰고, 특히 대학이 주도해 온 이론적 성격의 지역연구를 보다 ‘정책적 연관성’이 큰 연구로 전환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70년대 대학들의 지역연구가 점점 ‘이론적’ 주제들에 관한 것으로 집중되면서, 보다 정책적인 지역연구에 대한 수요가 커지게 되었고, 이를 싱크탱크들에서 수행하기 시작하면서 싱크탱크에서의 지역연구, 아시아연구도 점점 더 성장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수준의 ‘싱크탱크에서의 아시아 연구’에 관한 역사적 설명일 것 같습니다.

홍 : 제가 이곳 디씨 싱크탱크들이 개최하는 다양한 컨퍼런스 등에 참석하면서 느낀 것은, 현재 디씨 싱크탱크들에는 일종의 ‘차이나 연구 붐’이 불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다른 전문가들에게 이런 현상에 대한 질문을 공통적으로 드려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조지 워싱턴대학교의 마이크 모치즈키 교수는 “중국 연구 붐은 분명하다. 다만, 일본 연구는 ‘약화’되는 동시에 ‘전환’이 진행 중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라는 설명을 해 주기도 하셨습니다. 실제로 ‘중국의 부상’은 동시에 ‘미일동맹’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는 계기가 되면서 이에 관련된 연구 또한 늘어나고 있는 추세인 듯합니다. 또한 ‘한반도’에 관심을 갖는 많은 싱크탱크 소속 전문가들의 경우, 남한보다는 북한, 특히 핵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저는 ”과연 누가 한국 전문가인가?“에 대해서도 별도의 조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슈들에 대해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스나이더 : 정확한 지적인 것 같습니다. 분명 중국은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한 연구대상”입니다. 그래서 그것에 돈과 사람이 집중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지요. 워싱턴 싱크탱크들에 있어, 어떤 연구주제의 부상이나 약화는 미국 정부의 정책적 관심, 우선성, 수요와 직결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10년전까지 이곳 싱크탱크들에서 진정한 의미의 아프가니스탄 전문가를 찾기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프가니스탄을 직접 수차례 방문하기까지 한 전문가들을 쉽게 만날 수 있고, 지금 아프가니스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현재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군사적으로, 정치적으로 깊숙이 연루되어 있고 상당한 정책적 우선순위를 거기에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례로, 1990년대 초반으로 돌아가 보면, 아시아, 특히 캄보디아 문제를 주로 다룬 ‘특정한 세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캄보디아는 ‘개발’을 다루는 연구자들에게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연구대상국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캄보디아의 경우, 한번 연루가 된 이후 그들의 전문적 관심을 계속 지속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국가가 아닌 것이 사실입니다. 따라서 그들 중 상당수는 이미 ‘개발’의 다른 측면이나 다른 기능적 요소들에 대한 연구로 관심주제를 옮겨 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지역적으로 캄보디아 전문가로 분류되곤 하지요.

다시 말해, 미국의 정치적 아젠다와 경제적 중요성이 연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중국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중국은 10년전에도 물론 중요한 국가였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중국을 다루는 전문 연구자들을 싱크탱크들에서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중국 이슈가 미국의 정치적 아젠다로 급부상하고, 중국과 연계된 경제적 이해관계가 커지면서 상황은 급격히 전환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중국 연구를 지원하는 재원 용량이 팽창하였는데요. 이는 비단 정부 정책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과거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던 미국기업들의 중국 연구 지원규모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또다른 이라크 연구 분야라 할 것입니다. 지난 6-7년간 미국 내에는 수많은 이라크 전문가들이 나타났습니다. 이라크 연구에 필요한 자금들이 정부로부터 쏟아져 나왔고, 이를 기반으로 수많은 이들이 이라크를 연구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예를 들어, 정부가 재정을 지원하여 운영되고 있는 미국평화연구소의 경우, 단지 이라크 연구만으로 원래 자신들의 예산 이외에, 2003-2004년 한해 동안 수백만 달러의 추가 자금을 지원받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미국평화연구소 사람들과 “이라크 덕분에 엄청난 자금을 추가로 지원받고 있으니, 미국평화연구소 이름을 아예 ‘이라크 미국평화연구소’로 바꿔야겠다”고 농담을 주고받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처럼 싱크탱크의 구조, 펀딩, 정책적 우선순위 등의 이슈들은 “어떤 종류의 돈”을 받는가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고 할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한 가지 예만 더 들어 보겠습니다. 인도네시아는 남동아시아 지역에 있어 매우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국가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디씨 싱크탱크에는 인도네시아 전문가라 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고, 브루킹스나 전략 및 국제문제연구센터에서 ‘인도네시아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것을 발견할 수도 없습니다. 이는 바로 ‘자금의 흐름’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며, 인도네시아 연구를 지원할 만큼 경제 규모가 충분치 않은 것이죠. 1990년대에 ‘미국-인도네시아 소사이어티’라는 새로운 기구가 만들어졌지만, 하지만 그게 다입니다. 그것도 싱크탱크라 할 수는 없고, 인적 교류나 대중 교육을 중심으로 하는 조직이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중국이나 일본 연구에 지원되는 금액, 특히 비록 일본 연구가 과거에 비해 축소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금액은 인도네시아 연구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라 할 것입니다.

홍 : 그렇다면 한국 연구는 상황이 어떻습니까?

스나이더 : 제가 볼 때, 디씨 싱크탱크들에서의 한국 연구는 1990년대 중반 이후, 현상 유지정도이거나 다소 축소되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1990년대 중반에는 북한 핵 문제에 관한 관심이 크게 증폭되었다가 그 후로 점점 줄어들었다고 생각됩니다. 설령 2차 북핵 위기 상황에서도 미국 주류언론들의 반응이, 과거 1990년대 중반과 비교하면 그리 크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높은 수준”의 관심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저는 여전히 그렇다고 보는데요. 브루킹스, 전략 및 국제문제연구센터, 외교관계평의회 등은 아예 한국 전문가가 없고, 헤리티지는 브루스 클링너가 있지만, 일본과 한국을 동시에 다루고 있습니다. 대신 한미경제연구소(KEI)의 역할이 커졌고, 존스홉킨스 국제관계대학원(SAIS)에 한미연구소(Korea-US Institute)가 만들어 졌지만, 한국에 대한 관심은 그리 크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투자라는 관점에서 보더라도 문제입니다. 만약 전략 및 국제문제연구소나 브루킹스연구소에서 한국 문제를 전담하며 보고서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을 갖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싱크탱크라고 하는 곳, 특히 민간 싱크탱크라고 하는 곳에서 재정적 이해관계는 아젠다를 형성하는데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한국에 지금 살고 있으면서, 한국에 대한 관심과 지식도 많은 전문 연구자가 한명 있습니다. 만약 그가 워싱턴 디씨로 돌아오고 싶어 한다면, 상황은 어떨까요? “내가 어디서 한국에 관한 일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설령 그가 진정으로 뛰어난 한국 전문가라고 하더라도, 그가 디씨에서 어떤 자리를 구할 수 있겠습니까? 싱크탱크들은 그에게 “당신은 분명 뛰어난 전문가이다. 하지만 우리는 당신을 고용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우리에겐 당신을 고용할 돈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게 되는 현실인 것입니다. ‘투자’가 그의 연구자로서의 ‘자질’이나 ‘능력’, ‘기술’보다 더 중요한 현실적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앞서 제가 말씀드렸던 것이 바로 이 맥락입니다. “어디서 싱크탱크들은 돈을 마련할 수 있는가?” 예컨대, 비확산(nonproliferation), 지금 한국과 관련된 많은 돈들은 이 문제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왜 지금 이곳 디씨에서 비확산 문제의 전문가가, 한반도 문제에 관한 다른 전문가들보다 더 “고급 한반도 문제 전문가”로 대접받고 있는가를 설명해 주는 이유입니다. 예를 들어, 현재 한미경제연구소(KEI) 소장을 맡고 있는 잭 프리처드 역시, 원래 한국이 아니라 일본 전문가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외교관으로써 북한 핵 이슈를 다뤘기 때문에, 지금은 최고의 한국 전문가로 대접받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