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글/사진 홍일표(희망제작소 선임연구원, 조지 워싱턴 대학교 시거센터 방문연구원)

1964년 대통령 선거에서 “극우의 트로츠키”로 묘사될 만큼 뛰어난 선동과 설득 능력을 선보였던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배리 골드워터(Barry Goldwater)가 참패한 직후,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이 패배가 자유주의적 아이디어와 정책들을 우선시하는 전국 단위의 거대 재단들, 신문, 아이비리그 대학들, 뉴욕의 출판사들로 구성된, 소위 “자유주의적 기득세력(Liberal Establishment)” 때문이라고 분석하였다.

그래서 보수파들은 이들 기득세력을 이겨낼 수 있는 지적 하부구조(intellectual infrastructure)를 건설하고자 하였다. 이때 소수의 공화당 의원과 보좌관들은 새로운 조직적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시도하였고, 의원 보좌관 출신의 에드윈 포일너(Edwin Feulner)와 그의 친구인 폴 웨이리치(Paul Weyrich)는, 1971년 무렵 공화당 연구 위원회(the Republican Study Committee)를 결성하여 그 첫걸음을 내딛게 된다.

에드윈 포일너는 콜로라도 맥주 회사 사장이자 대표적인 보수파의 재정후원자였던 죠셉 쿠어스(Joseph Coors)로부터 25만 달러의 지원을 받아 1973년 헤리티지재단을 창설하게 된다. 이후 멜론(Mellon)의 상속자인 존 스카이프(John Scaife)로부터 90만달러를 지원받는 등, 몇몇 보수적 재단들로부터 장기간에 걸친 후원을 받으며 헤리티지재단을 키워나가게 된다.

이들은 “자유로운 기업 활동, 제한된 정부, 개인의 자유, 전통적인 미국의 가치, 그리고 강한 국가 안보라는 원칙에 입각한, 보수적인 공공정책들을 확립하고 증진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임을 밝히면서 그동안 브루킹스연구소를 비롯한 미국 싱크탱크들이 만들어 온 역사와는 구분되는, 새로운 싱크탱크의 역사를 쓰기 시작하였다. 싱크탱크 세계의 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헤리티지재단은 기존 싱크탱크들의 전통적 재원조달방식이나 활동방식, 인적 구성 모두에 충격에 가까운 변화를 가져 왔고, 이는 이후 보수적 싱크탱크들 뿐만 아니라 미국 싱크탱크 일반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헤리티지재단은 당시 대부분의 싱크탱크들과 달리 직접 우편에 의한 기금 마련(direct-mail fund raising)에 주력하여 1년에 25달러에서 50달러 정도를 내는 소액 기부자들을 다수 확보하였고 이들이 헤리티지재단 전체 예산의 40% 가량을 차지할 정도로까지 확대하였다.

소액 다수 기부자들에 주목했다는 것과 더불어 헤리티지재단의 대표적 혁신 가운데 하나는, 회의장을 오고 가는 리무진 안에서 간단히 읽을 수 있도록 짧은 분량의 정책 보고서들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그들은 ‘적재적소’에 꼭 필요한 보고서가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실질적인 정책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이들은 자기 조직의 목표를 ‘학술적’인 것이 아니라 ‘주창적’인 것(advocacy)임을 분명히 하였다. 브루킹스연구소나 후버연구소, 미국기업연구소 등과 달리 헤리티지재단의 정책 분석가(policy analyst)들은 주로 대학원 졸업 정도 나이의 정력적인 ‘정책 활동가(policy activists)’들이었다.

그들은 이런 젊은 연구자들에게 학술 세계에서 읽힐 논문이 아니라 정책 영역에서 읽힐 보고서를 작성할 것을 요구하였고, 그들은 멀리서 적진을 향해 포격을 가하는 포병이 아니라 ‘특공대’나 ‘해병대’로 묘사되었다

헤리티지재단의 대표는, 공동 창립자 가운데 한명인 에드워드 포일너가 1973년부터 현재까지 계속 맡아오고 있으며, 이사회 의장은 데이비드 브라운(David R. Brown)이 1979년부터, 이사회 부의장으로는 가장 대표적인 보수적 재단인 스카이프 재단의 창립자이자, 헤리티지재단의 초기 자금 제공자 가운데 한명인 리차드 스카이프(Richard M. Scaife)가 1985년부터 맡고 있다.

2007년 현재 헤리티지 재단에는 에드워드 포일너 대표와 필립 트럴럭(Phillip Truluck) 부대표, 10명의 시니어 매니저(9개 프로그램을 책임지는 헤리티지재단 부대표 9명과 대표 자문역 1명), 32명의 각 센터 대표, 35명의 펠로우, 각 센터 및 부서에 속해 있는 139명의 스탭 등 모두 228명이 함께 일하고 있다.

헤리티지재단의 2006년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2006년 말 현재 헤리티지재단의 총자산은 177,503,940 달러이고, 이 가운데 부채는 23,197,441달러, 순자산은 154,306,499 달러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2006년 한해 영업 수입은 41,443,623달러이고, 이 가운데 개인의 기부가 25,005,310달러, 재단 조성금이 13,162,352달러, 기업으로터는 1,577,700달러, 기타 수입 1,698,261달러인 것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처럼 개인 기부가 전체 수입의 60% 가량을 차지하고 그 절대 액수가 2,500만 달러를 넘는다는 것은 다른 싱크탱크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헤리티지재단의 중요한 특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헤리티지재단은 현재 25만명을 넘는 개인회원을 확보하고 있다.

브루스 클링너(Bruce Klingner)와의 인터뷰는 2007년 12월 4일, 그의 연구실에서 약 1시간 반 가량 진행되었다. 현재 헤리티지재단 아시아 연구센터(Asian Studies Center) 연구위원(senior research fellow)인 클링너는, 헤리티지재단의 일본과 한국 연구를 전담하고 있다.

헤리티지재단에 오기 전, 약 20년가량을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국방정보국(DIA) 등에서 소련과의 무기군축,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 정세분석, 일본의 정치 및 경제 분석을 담당하였고, 이후 약 5년간은 유라시아 그룹 등 민간 컨설팅 회사에서 역시 일본과 한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문제를 담당한 후, 2007년 1월 헤리티지재단으로 자리를 옮겼다. 전체 인터뷰 분량이 다소 긴 관계로 그 중 일부만 간추려 소개한다.

”?”홍일표(이하 : 홍) : 브루스 클링너 연구원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현재 미국 싱크탱크들에 관한 책을 쓰고 있고 이미 많은 싱크탱크를 방문한 바 있습니다. 오늘 다소 늦게 헤리티지재단을 방문하게 되었는데요. 우선 헤리티지재단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브루스 클링너(이하 클링너) : 홍박사님, 저 역시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는 이곳 헤리티지재단에서 올해 1월부터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만, 제가 아는 내용을 바탕으로 말씀을 드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헤리티지재단과 다른 싱크탱크들의 비슷한 점이라면 전문가들이 가득한 건물에서 다양한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고, 상황에 대한 분석과 예측, 아이디어의 생산 등을 주로 하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저희들은 1,000~1,500자 정도의 짧은 글을 웹 메모(Web Memo)라는 이름으로 써서 발표하고 있고, 각종 기명칼럼(op-ed) 작성, 그리고 좀 더 긴 연구보고서를 백그라운더(Backgrouders)라는 이름으로 내고 있습니다.

언론과의 인터뷰도 많구요. 예를 들어 저는 지난 1월 이곳에 온 이후 약 230건 가량의 언론 인터뷰를 했습니다. 주로 일본과 한국 언론들과 많이 했습니다. 한미자유무역협정이나 6자회담 등 한국이나 일본 모두 관심을 갖는 주제들이 올해 많았지요.

또 각종 컨퍼런스나 라운드 테이블에 참석하고, 미국이나 한국, 일본 관료들과의 면담, 의원보좌관들과의 접촉, 출장 등 다양한 방식의 활동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

헤리티지재단의 가장 강력한 강점이자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비당파적(non partisan)”이라는 것입니다. 저희가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만, 공화당과는 어떤 공식적 관계도 맺고 있지 않습니다.

공화당과 민주당 양당 모두를 비판할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저희는 미국 정부는 물론 다른 어떤 나라 정부로부터의 돈도 일체 받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기업들과의 계약사업 역시 하지 않습니다.

기업으로부터 기부 형식의 후원은 받지만 계약사업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이것들은 모두 30만 명에 가까운 개인회원들의 존재 덕분입니다. 제가 이곳에 와서 들은 재미있는 일화 가운데 하나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어떤 에너지 관련 기업체 대표가 자신들이 원하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해 주면 매년 큰돈의 기부를 약속하겠다며, 저희 재단의 포일너 대표에게 수표를 건네줬다고 합니다. 그러자 포일너 대표가 그 수표를 그 자리에서 찢어 버리며 “우리는 이런 돈 안 받아도 됩니다”라고 했다고 하더군요. 그만큼 저희는 독립적인 연구기관입니다.

그리고 헤리티지재단은 다른 어떤 싱크탱크들보다 정책 형성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려 하고 있습니다. 흔히 “학생 없는 대학”이라 불리는 다른 싱크탱크들은 사람을 ‘교육’시키는데 더 큰 비중을 둡니다만, 저희들은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분명한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비록 로비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는 아니지만 아이디어를 정책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노력에 최선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특정한 이념에 입각하여 정책에 대해 평가하고 또 그런 정책을 만들려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극단적인 보수주의나 극단적 자유주의 모두에 대해 부정적 입장입니다. 제가 헤리티지재단과 채용인터뷰를 할 때에도 이렇게 말을 했는데, 그랬더니 좋은 태도라고 하며 저를 뽑더군요. 물론 헤리티지재단은 보수적 성격의 싱크탱크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매우 기본적인 수준이죠.

예컨대 강한 국방, 제한된 정부, 시민참여, 자유시장과 자유무역, 이런 가치들에 대해 저는 전적으로 공감하고 있습니다. 이런 기본적 가치에 입각해서 사회보장, 이민, 이라크 문제, 6자 회담 등 주요 사안들에 대한 정책적 영향력을 입법부와 행정부에 미치려 하는 것입니다.

또한 저희 헤리티지재단은 비단 다양한 방식의 글쓰기만이 아니라 지역 언론이나 풀뿌리 조직들과의 직접적 연계를 중시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통해 지역 시민들을 교육할 수 있고, 그들이 자기 지역 의원들을 접촉하여 정책에 영향을 미치도록 하는 것이죠.

이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재단 자체의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 스튜디오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많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것이 없다면 인터뷰를 하기 위해 꽤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하는데 저희는 그저 계단을 몇 번 오르내리면 되도록 되어 있죠.

인디애나폴리스나 댈러스 지역 라디오 방송 토크쇼와도 연결하여 우리 의견이 지역으로 보다 쉽게 확산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비록 외교정책과 관련해서는 큰 영향을 미치기 어렵지만 세금이나 사회보험 문제와 같이 국내정책에 있어서는 이런 방식이 실제 정책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입니다.

홍 : 클링너 연구원께서는 현재 헤리티지재단의 일본과 한국 담당자이신데요. 헤리티지재단의 아시아 연구에 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클링너 : 아시아 연구와 관련해서 보자면, 올 한해는 6자회담이나 한미자유무혁협정 등 비교적 큰일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더욱이 조만간 한국에서 대통령 선거도 열리고, 일본 아베 수상이 갑작스레 사임하면서 후쿠다 수상이 취임하는 일도 있었구요.

그래서 올 한해 동안은 이러저런 주제로 꽤 많은 글을 써야 했습니다. 지금도 한국 경제에 관한 글과 후쿠다 수상 취임 이후 일본, 미일동맹의 문제 등에 관한 글을 쓰고 있고 조만간 발표될 예정입니다.

6자회담이나 북핵문제와 관련해서 조금 더 말씀을 드려 보자면, 흔히 저희 재단의 입장이 지나치게 강경하다고 하는데, 저희들 역시 외교적 개입이 나쁘다고만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얼마 전 있었던 남북정삼회담 공동선언이나 6자회담 합의문 등의 내용을 보면 너무 빈틈이 많다는 것이 저희 생각입니다.

차를 한 대 사거나 집을 한 채 사더라도 꼼꼼하게 계약서를 살피는 것이 정상이지요. 미국의 크리스토퍼 힐 대표와 북한의 김계관 대표가 서로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은 나쁘지 않지만 계약서 자체는 엉터리로 보입니다.

과거 소련과 미국이 맺었던 무기통제관련 문서처럼 훨씬더 자세한 계약서 형태가 되어야 하고, 거짓말을 할 수 없도록 분명히 해야 합니다. 예컨대 방코 델타 아시아(BDA) 건과 관련해서도 당시 ‘resolve’라는 것의 의미가 도대체 무엇인가만 가지고 4개월의 시간을 끌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합의문에선 미국과 북한이 서로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많고, 또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 부족하다고 보기 때문에 부정적 입장을 피력하는 것입니다.

한미자유무역협정과 관련해서는 저희들은 기본적으로 찬성 입장입니다. 정치적, 경제적, 지정학적 이유 모두에서 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부시행정부의 입장을 전적으로 지지하고 있고, 이는 북핵문제 해결과정에 대한 저희들의 비판적 입장과는 구별됩니다.

그래서 기명칼럼, 웹 메모, 컨퍼런스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저희들의 입장을 밝히고 있고 여론 형성에도 영향을 미치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한국정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에 대해 기본적으로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이슈이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한미자유무역협정과 관련해서는 현 정부 정책을 지지하지만 북핵문제나 다른 이슈들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경우도 많은 것이죠. 자동적인 지지나 반대란 없습니다.

홍 : 그렇다면 클링너 연구원 본인이 아시아, 특히 한국과 일본 전문가가 되시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클링너 : 원래부터 아시아 문제를 전공으로 했던 것은 아닙니다. 저는 대학교 때 소련을 주로 하여 정치학과 국제관계학을 공부했습니다.

졸업 후에 브루킹스연구소 인턴 생활을 하였고, 그 이후 국방성과 중앙정보국에서 요원으로 20년간 근무했습니다. 거기서 일할 때도 처음에는 바르샤바 조약, 유럽 주둔 지상군 문제, 미소 군축 등을 주로 담당하였습니다.

그러다가 1993년 중앙정보국의 한국 지부에서 북핵문제와 북한군 동향 파악 등에 대한 책임을 맡아 일을 하게 되었고, 이후 다시 본부로 돌아와 한국담당 부책임자가 되어 남북한 문제를 다루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범위가 점점 넓어져 한국과 일본, 동아시아 문제 전반으로까지 확대된 것이죠.

”?”홍 : 그렇다면 헤리티지재단에는 왜, 어떻게 들어오게 되신 것입니까?

클링너 : 정부기관에서 약 20년 정도 일하는 동안, 싱크탱크에서 연구자로 일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동안은 제가 작성한 보고서들은 모두 기밀로 분류되거나 제 개인 이름으로 공개된 적이 없기 때문에 곧바로 큰 싱크탱크에서 일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정부 바깥에선 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단 중앙정보국을 그만 둔 이후 유라시아 그룹 등 민간 컨설팅 회사에서 일을 하며 각종 언론 기고와 보고서 등을 통해 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언론 관계자들도 제 존재를 알기 시작했고, 방송 패널이나 워싱턴에서 열리는 각종 회의에 발표자로 참석하기 시작했지요. 그래서 헤리티지재단에 지원할 당시엔 이미 상당한 분량에 경력사항을 갖춘 경쟁력 있는 인물이 되어 있었습니다. 마침 제 직전 담당자가 국무성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재단에 사람이 필요했고 제가 뽑혔던 것입니다.

홍 : 클링너 연구원은 현재 시니어 리서치 펠로우(senior research fellow)라는 직함을 쓰고 있으신데요. 그것과 정책분석가(policy analyst), 연구위원(senior fellow) 등등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헤리티지재단 연구원들의 계약조건은 어떻게 됩니까?

클링너 : 각각의 직함은 위계에 따른 구분입니다. 정책분석가들이 가장 출발단계이고, 제가 중간 단계, 그리고 연구위원들은 가장 높은 직위이죠. 제 경우는 정부에서 20년, 민간 기업에서 5년을 근무한 경력직이기에 중간 간부급으로 곧바로 채용되었지만 보통의 젊은 연구원들은 정책분석가로 뽑혀 연구원(research fellow), 연구위원 등으로 승진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저희 재단 연구원들은 1년이나 3년 단위의 계약직으로 채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일반 회사 직원들처럼 전업 연구원으로 채용되는 것이며, 자기가 떠나고 싶을 때 떠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희 재단 연구원들의 가장 큰 특징은 다른 싱크탱크 소속 연구원들처럼 스스로 돈을 모으러 다니질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브루킹스연구소 북동아시아정책연구센터 책임자인 리차드 부시 박사만하더라도 재단이나 기업으로부터 재정 지원을 얻어 내기 위해 항상 돌아 다녀야 하는 상황입니다. 특히 최근에는 미국 주식시장이 별로 좋질 않아 회사나 재단들로부터 후원을 받는 것이 어렵다고 하더군요. 아마 전략 및 국제문제연구센터 연구원들도 그렇게 해야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희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연구원은 연구만 하면 됩니다. 이는 헤리티지재단만이 갖는 매우 독특한 특징이지요. 30만명에 가까운 회원들이 내는 회비가 전체 재정의 약 50~60%를 차지할 것입니다. 나머지 20%가 재단, 20%가 기업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0달러를 내는 개인 회원에서부터 거액을 기부하는 이들까지 다양하지요. 예를 들어 현재 재단 본관 옆 건물도 그 건물 주인이 기부한 것입니다. 그 건물 2~5층엔 인턴들 숙소가 있습니다. 두 건물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요.

6층에는 언론 담당 부서가 있고, 7층에는 회의장, 8층에는 대표와 주요 임원들의 연구실이 있습니다. 강당은 1층과 7,8층에 각각 있구요.

홍 : 그렇다면 헤리티지재단 연구원들의 연구 성과는 어떤 식으로 관리가 되고 있는가요?

클링너 : 저희들은 일반 회사처럼 중간 평가와 연말 평가를 합니다. 각 평가 때에 작성해야 하는 서식이 있어 연구자 본인과 관리자들이 그것을 작성하지요. 이런 중간 평가는 연구원의 보너스 지급과 관련됩니다. 연말 평가는 기본 급여와 연계되는데요.

저 같은 중간간부급 연구원은 1년에 네 편의 연구보고서와 매달 웹 메모를 작성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기명칼럼 기고는 정식으로 반연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의회 증언은 연구보고서와 같은 비중으로 처리됩니다.

저는 이제 막 네 번째 연구보고서를 끝냈고, 17개의 웹 메모, 10편의 기명칼럼 게재를 했으니 의무는 다한 셈이죠. 각각의 글은 부서 책임자들과 편집 책임자들이 발표 직전에 검토를 합니다. 특히 연구보고서(Backgrouders)dml 경우에는 외교정책분야 총괄책임자까지 검토를 하게 되는데요.

하지만 ‘검열’이라 볼 수는 없고, 주로 편집책임자들이 보다 나은 표현을 지적하는 정도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중앙정보국 등에서 일을 해 왔기 때문에 보고서 작성에 대해선 별로 간섭을 받지 않습니다.

특히 헤리티지재단의 경우 다른 싱크탱크들과 비교할 때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중시하는 편입니다. 헤리티지재단이 동의하는 범위 내에서 연구 결과가 외부로 발표되도록하는 것이죠. 예를 들어 미국기업연구소의 경우, 여기는 전문가들의 집합소 같은 곳입니다.

그래서 더욱 중요한 것은 미국기업연구소의 입장이 아니라, 그곳 소속의 존 볼튼 같은 유명 인물들의 입장이라는 식이죠. 미국기업연구소는 관료 출신 연구원을 뽑을 때에도 고급관료 출신을 선호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가능하면 젊은 사람들을 뽑아 이들을 잘 훈련시켜 키우려 하려 합니다.

저처럼 관료출신들도 적지 않지만 대체로 20년 정도 근무경력을 갖춘 중간간부급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렇다면 제 입장과 헤리티지재단의 입장은 어떻게 조정하는가가 궁금하실텐데요. 기본적으로는 제가 한국을 담당하는만큼 제 입장이 헤리티지재단의 입장이 됩니다.

그런데 제가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관련된 글을 쓰려고 하면 재단 내에 자유무역을 담당하는 연구자와 토론과 협력을 미리 하는 식인 것이죠. 이는 제가 전에 일했던 중앙정보국의 그것과 매우 유사합니다.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 혼란스럽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희들이 남을 설득하려 한다면 당연히 일관된 목소리를 내는 것이 필요한 것이죠. 그렇게 하기 위해 보고서 등에 대한 사전 검토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홍 : 그러면 재단 내부 회의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나요?

클링너 : 기본적으로 연구원들과 스탭들의 회의가 있습니다. 위계적인 관리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지요. 다양한 연구들을 조정하고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때로는 연구 주제를 제시하기도 하지요.

대부분은 “아래에서 위로” 연구주제가 제안되지만, 매년 초에 연구계획을 검토하면서 “위에서 아래로” 연구주제가 제시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이민법 개혁과 같은 문제는 재단 전체가 관여하는 연구주제인만큼 “위에서 아래로”의 방향으로 제안과 조정이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홍 : 헤리티지재단은 젊은 연구원들을 뽑아 훌륭한 연구자로 키워내는 것을 선호한다고 말슴하셨는데요. 그렇다면 재단 내부에 체계적인 교육 및 훈련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지요?

클링너 : 물론 저희가 젊은 연구원들을 선호한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경험이나 지식이 없는 젊은이들을 연구원으로 뽑는 것은 아닙니다. 대학을 갖 졸업한 이들보다는 대학원 졸업이나 특정 분야에서 몇 년간 일을 해 본 이들을 선호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의무는 아니지만 대체로 석사 이상의 연구자들이 많지요. 훈련 시스템 또한 갖춰져 있습니다. 다만 저는 워낙 기본 경력이 길기 때문에 그냥 통과했습니다. 예를 들어 방송 인터뷰와 관련해서 보자면, 저는 꽤 많은 텔레비전 인터뷰 경험을 갖고 있었습니다만, 저 역시 재단이 제공하는 방송 인터뷰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여야 했습니다.

그런 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에 위탁을 주어 운영하는데요, 하루 종일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저는 이론 교육이 이루어지는 오전 세션은 빠지고, 실제 상황을 연출한 오후 세션 교육을 받았습니다.

시엔엔(CNN)에 인터뷰하는 것처럼 촬영기 앞에서 얘기하는 방식, 진행자와 두 명이 나란히 하는 방식, 여러 명이 토론하듯 하는 방식 등 다양한 형식의 인터뷰 실무 교육을 받았습니다. 저 말고 다른 헤리티지재단 신입연구원과 다른 싱크탱크 소속 연구원 6~8명이 함께 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홍 :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