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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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21년. 같은 자리에 시민들이 다시 한 번 모였다. 우리 사회의 참여민주주의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달포 남짓 뜨겁게 타오르고 있는 촛불들의 의미를 되짚고, 앞으로 희망을 모색하는 토론회 “2008 촛불시위가 창조하는 새로운 민주주의”가 9일 오후 2시 희망제작소 2층 희망모울에서 열렸다.

<오마이뉴스>와 희망제작소 공동 주최로 열린 본 토론회는 전 과정이 인터넷으로 생중계되었다. 하승창 시민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과 민경배 경희사이버대 NGO학과 교수의 발제를 시작으로, 김은실 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 안진걸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엄기호 성신여대 문화커뮤니케이션학부 강사,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가 토론 패널로 참여하였다. 또 생중계를 지켜보는 네티즌들의 뜨거운 관심 속에 활발한 댓글 토론도 진행되었다.

시위에 화염병과 짱돌은 옛날 얘기죠 ― 한 공간에 선 두 세대의 민주주의

“이제는 더 이상 ‘팽팽한 긴장과 두려움 앞에 굳은 결의를 하고’ 시위에 나가지 않는다. 동지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앞으로 나아가던 21년 전의 시위와는 달리, 지금 촛불을 든 시민들에게는 두려움이라고는 전혀 없다. 동지 대신 가족과 친구들의 손을 잡고, 화염병과 짱돌 대신에 휴대폰과 디카를 든 시민들은 시위 참가를 즐거운 놀이처럼 여기고 있다.”

하승창 위원장은 2008년 6월의 민주주의를 1987년 6월과 이렇게 비교 ? 분석하면서 질문을 던졌다. “독재정권 타도와 직선제 개헌이라는 요구로 시작되었던 1987년 6월 항쟁의 목소리는 각종 비민주적 기제의 본격적인 해체에 방아쇠를 당겼다. 21년이 지나고 같은 자리에서, 이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

하 위원장은 인수위 시절부터 논란이 되어 온 이명박 정부의 영어몰입교육부터 학원 자율화정책, 건강보험 및 수돗물 민영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에 이르기까지 시민들의 목소리는 소위 ‘생활정치’에 대한 요구로 변화하고 있다’ 며, 나아가 이러한 시위가 조직되는 경로의 변화에도 주목하였다.

“21년 전에는 하나의 ‘지도부’가 시위를 조직하는 단선적인 방식이 익숙하고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2008년 6월의 촛불집회에 통일된 조직의 중앙이나 ‘배후’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시민들은 더 이상 시민단체를 매개로 하지 않는다.”

그는 촛불을 든 이들은 조직되고 동원된 대중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참여한 자유로운 개인이라고 촛불시위의 개체를 정의하였다.

아날로그 정부는 아직도 무전기? 디지털 시민은 구글어스(earth.google.com) 위성사진!
― 인터넷, 새로운 참여민주주의를 창조하다

“국민을 억압하고 음모론을 유포하려는 정부의 태도는 80년대로부터 한걸음도 진화하지 않았는데, 이에 대응하는 국민들의 태도는 2008년도의 디지털 시민의식으로 상당히 성숙해 있다.” 민경배 교수는 촛불집회와 관련한 다양한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정부 측의 낡은 사고방식에 일침을 가했다. 80에서 08,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간극과 그와 함께 혁명적으로 변화한 시민운동의 패러다임을 민 교수는 가로등과 점멸등에 비유하였다.

“전통적인 시민운동의 방식이 가로등처럼 한 곳에 붙박이로 자리하며 상시적으로 어둠을 밝히는 것이었다면, 지금 보여주는 참여의 모습은 마치 크리스마스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점멸등과 같다. 개개의 빛은 미약하고 영속적으로 불이 들어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이 작은 불들이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끊임없이 점멸을 거듭하며 다른 어떤 불빛보다도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크리스마스 트리를 밝혀주는 것이다.”

그는 웹2.0의 철학인 참여, 자율, 개방, 공유 등의 키워드는 시민운동에서 늘 이야기하던 민주적 가치의 핵심이기도 하며, 이번 촛불시위에서는 미디어 통신환경이 디지털 시민참여를 보다 더 성숙한 방향으로 조성해주고 있음을 읽어낼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소녀들의 촛불, 방전된 기성세대를 충전하다 ― 우리는 다른 길로 갈 수 있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식품 안전은 정치적인 이슈가 아니었다. 광우병 문제를 계기로 먹거리 문제가 소녀, 10대 여성들, 어머니들에 의해 정치적 이슈로 등극했다.” 김은실 교수는 이번 촛불집회는 비단 여성뿐만 아니라 정치적 소수자들이 적극적으로 정치적 주체로 등장하는 장이라고 정의하였다. 촛불집회를 ‘항쟁’이라 부르겠다는 광우병국민대책회의의 안진걸 팀장은 ‘지식인들이나 사회운동 단체들은 탄핵이나 퇴진까지는 얘기하지 못한다. 그러나 시민들은 대규모로 퇴진을 얘기하고 있다’고 현장의 목소리를 전했다.

“시민들은 ‘고시철회 협상무효’보다 ‘이명박 퇴진’ 구호를 외치면 너무들 좋아한다. 대운하부터 시작해서 상속세 폐지까지, 이 정부가 입만 열면 서민들을 말살하고 국민을 기만하는 정부라는 인식을 시민들은 가지고 있다. 그것이 강한 분노로 표출되었고 이 항쟁의 중요한 동력중 하나가 된 것이다.”

오연호 대표는 촛불집회가 두 가지의 질문을 던졌다고 정리하였다. “누가 이 시대의 어둠을 밝힐 것인가? 그리고 누가 이 나라의 주인인가?” 그는 이명박 정부 탄생을 전후로 진보진영은 방전된 상태였고, 많은 사람들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어둠의 터널’을 가야 한다고 체념하고 있었는데 그러한 가운데 촛불 세대가 등장한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오 대표는 10대들이 촛불을 켜면서 ‘어둠의 터널’을 가고 있는 기성세대들을 충전시켜주었다고 촛불집회의 의미를 새겼다. ‘10대들 덕분에 우리들이 앞으로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를 다시금 고민할 수 있게 되었다’고 역설하였다.

‘진짜로 믿지 않는 사람들’ 은 가질 수 없다?

엄기호 교수는 이를 가리켜 ‘진짜로 믿는 사람들의 민주주의’라고 표현하였다. “진보진영이 예상치 못한 자발적인 대규모 집회에 당황하는 이유는, 그들은 (민주주의를) 진짜로는 안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0대들을 비롯하여 시위장에 나와 있는 사람들을 보면, 그 사람들은 진짜로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라고 믿고 있다. 지금 세상을 바꾸는 건 진짜로 믿는 사람들인 것 같다.”

김은실 교수는 이에 대하여 ‘1987년도 이후에 태어난’ 10대들의 한국사회에 대한 이해는 그 이전에 태어나서 중 ? 고교 시절에 민족주의 훈련을 받은 사람들의 그것과는 매우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각각의 세대들이 갖고 있었던 나와 국가와 권리에 대한 인식의 차이들은 지금 광장에 각각 매우 다른 에너지로 분출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며 의문을 던졌다. “역사상 유례없는 시민들의 참여민주주의 대반격은 시민단체 사회에도 가히 이정표라 부를만한, 혁명에 가까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밤샘 집회 강행군을 계속하고 있다는 안진걸 씨는 ‘앞으로도 계속 잠 못 자도 좋으니 이 뜨거운 열기가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며, 민주주의의 최전방에 등장하여 우리 사회를 한 단계 업데이트한다는 자부심으로 가득 찬 시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촛불을 든 시민들은 정부뿐만 아니라 광우병 대책회의를 비롯한 시민단체사회의 무능과 낙후성 역시 가차없이 지적하고 있다. 이에 진보진영 내부에서는 자성의 목소리가 일고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안진걸 씨는 ‘시민단체들은 배후나 주도, 지도 같은 것은 하지도 못했고, 해서도 안 되고,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 이라며, 이제는 시민과 네티즌이 주도하는 항쟁으로 나아가되, 시민단체는 시민이 용납하고 납득하는 선에서 플러스 알파 정도의 역할로 새롭게 자리매김해야 한다며 시민단체사회의 목소리를 전했다.

한편 민경배 교수는 ‘시위에 혼자 가면 뻘쭘하다’ 며, 새로운 커뮤니티가 촛불시위의 주체로 떠오르고 있음을 포착하였다. “과거의 커뮤니티는 운동단체 ? 이익단체 ? 정당과 같은 전통적인 조직이었다면 이제는 동창회 ? 가족 ? 각종 인터넷 동호회 등 다양한 성격의 커뮤니티 단위들이 집회에 참가한다.” 다변화된 욕구들이 하나의 용광로와 같은 광장에서 뒤섞여 녹아내리는 상황이 2008년 현재, 참여민주주의의 모습이라고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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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이여, 당신의 ‘기억’으로 민주주의에 접속하라

회장에 모인 50여명의 시민들과 인터넷으로 생중계를 지켜보는 시민들의 활발한 참여로 이밖에도 대의 정치의 위기, 퇴진 구호의 적합성, 비폭력 시위와 경찰 진압, 시민단체의 역할 등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6·10 백만인 촛불 대행진’을 하루 앞두고, 참가자들은 차분한 가운데서도 참여민주주의의 빅뱅을 지켜보는 벅찬 마음을 거침없이 털어놓고, 집회 이후를 건강하게 모색하려는 의지를 자신 있게 표출했다.

토론을 마무리하며 엄기호 교수는 200만 명이 모였던 프랑스 노동법 집회의 풍경을 전했다. “길거리에 나가보니 백발의 할아버지부터 아이들까지 모여 있었습니다. 레지스탕스의 기억을, 68혁명의 기억을, 공공노조파업에 대한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그 각각의 기억을 가지고 같은 자리에 나와 있었다. 촛불집회는 10대들만의 투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각자의 기억을 지금의 정치에 연결시켜야 한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우리가 겪고 있는 지금 이 사건은 우리 시대에서 이전과 이후를 가르는 사건(하승창 위원장)’ ‘우리 국민들이 촛불이 되는 경험을 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성과(오연호 대표)’ ‘지금 시민단체는 꾸중듣는 조연… 시민 ? 네티즌이 주연인 것이 너무 기쁘다. 칭찬받는 조연이 되도록 노력하겠다(안진걸)’ ‘실용 노선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이다. 새로운 공동체의식을 원하는 시민들이 등장했다(김은실 교수)’ 토론회가 마무리되고 10일의 백만인 대행진도 끝났지만, 촛불은 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구상에서 듣도 보도 못한 대한민국의 촛불 민주주의는 이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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