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면담일시 – 2008년 3월 9일 오후 2시
면담인사 – 박영숙(느티나무 도서관 관장)
면담장소 –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 882-3



공간이 있고, 책이 있다. 그리고 사람이 있다. 그래서 도서관이다.
느티나무 도서관의 박영숙 관장이 말하는 도서관의 정의는 어쩌면 단순하다. 그러나 천천히 곱씹어보면 어느 것 하나 쉽게 얻을 수는 없다.

박 관장은 지난 99년 40평짜리 상가 지하 공간에 뿌리를 내리고, 도서관의 요소를 하나씩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책만 채운 것이 아니고, 사람도 함께 채워 나갔다. 지금은 이름 그대로 느티나무다. 나무 그늘 아래 사람들이 끊임없이 모여든다.

어떻게 그토록 단단한 뿌리를 내리고, 푸른 잎을 낼 수 있었을까. 박 관장과 마주 앉은 시간이 길어질수록 조금씩 궁금증이 풀려갔다. 책과 함께, 사람과 함께 보낸 그의 지난날을 소개한다.


마을의 사랑방을 꿈꾸다


박영숙 관장이 처음 도서관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9년 전의 일이다. 그는 학창 시절부터 도서관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예전에는 빈민 운동차원에서 공부방에 관심이 많았죠.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은 좌절과 포기로 삶이 규정되어 있다는 점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다 통합이 화두가 되었습니다. 누구나 책으로 둘러싸이고, 사람을 만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죠.”

책이 있고, 문턱이 없어 마을 사랑방처럼 누구나 올 수 있는 공간. 박 관장이 원하던 도서관이었다. 때마침 집 한 채를 마련할 수 있는 자금이 생겼고, 집을 구하러 돌아다니다 눈에 띈 상가 건물 지하에 덜컥 도서관을 열었다. 문을 연 다음 도서관의 철학과 역사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도서관을 운영하게 된 것은 큰 복이었습니다. 누구나 책을 볼 수 있는 권리를 누리는 것, 골방에서 혼자 보는 것이 아니라 책을 나눈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배울 수 있었죠.”

도서관을 연 후 또 하나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상을 현실로 만드는 일은 녹록치 않았다.

“문을 열고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도서관이 밑 빠진 독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죠. 공공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운영비를 공공의 재원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설립 초기부터 법인을 만들려고 했어요. 제가 없어도 도서관은 계속 유지되어야 하니까요. 가까운 사람들에게 이사 시켜줄 테니 돈을 내라고 해 이사회를 꾸렸죠.”

사람들은 도서관이 법인이 된다는 사실을 낯설어했지만, 2003년 법인허가 신청서를 제출해 재단법인을 만들었다. 작가들을 초청해 강연을 개최하거나 그림 책 전시회를 여는 등 공모사업도 벌이기 시작했다. 도사 구입비와 인건비, 임대료 등은 모두 이사들이 부담했고, 후원규모는 점점 커져갔다.


‘복제’를 위한 도서관 학교


재단을 설립 한 후 박 관장에게는‘어떻게 도서관을 느티나무처럼 100년을 가게 할까’라는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복제’가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다.

“도서관이 마을마다 있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우리 사례를 일반화시킬 수 있을까 고민한 거죠. 사람이 문제였습니다. 도서관의 세 가지 요소가 공간과 책과 사서입니다. 한 가지만 고르라면 사람이죠. 건물과 책이 없어도 사람만 있으면 도서관을 만들 수 있습니다”

전국 대학의 문헌정보학과 커리큘럼을 모두 살펴본 결과 도서관의 이념이나 철학을 가르치는 곳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도서관 학교’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서지나 목록 만들기 등의 기술은 배우지만, 도서관이 우리 삶에 왜 필요하고, 왜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지, 어떻게 우리 사회에서 그런 도서관을 만들 수 있는 지는 가르치는 곳이 없더군요. 문화 기획자, 출판인, 건축인, 지역 단체 활동가, 평생학습 전공자들을 모아 커리큘럼을 만들었습니다. 공공 도서관이나 민간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모아 강의를 열었죠.”

강의 경험을 통해 그는“사람을 키우고, 인적 인프라를 만드는 일이 얼마나 큰 힘을 갖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도서관 학교’는 그 자체로 네트워크가 됐다.


”?”“이렇게 저렇게 엮었습니다. 수강생들끼리 알아서 교류를 하다 보니 우리가 예상치 못했던 네트워크들이 형성됐죠. 도서관의 사회적 접점을 넓혀야한다는 화두를 갖게 되었습니다. 수강생들이 모두 도서관을 체험하지 않고 자란 세대였는데, 그분들이 ‘아, 도서관이 이런 거였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도서관이 수험 공부하는 곳이 되어 버린 우리나라에서 전문가끼리 도서관에 대한 생각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1년에 한 차례씩 12회 강좌를 열면서 5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동안의 강의를 평가하면서 좀 더 깊이 있고 전문적인 강좌를 계획했다고 한다.

“사서나 도서관 운영자를 대상으로는 워크숍 형태로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후원 기업과 연계해서 도서관을 지원하는 사업도 준비 중이고요. 일반 시민을 상대로 도서관을 둘러싼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포럼도 개최하려고 합니다.”


도서관 + 친구, 아주 좋은 두 말의 결합


한 고민이 끝나면 다음 고민을 이어갔다. 느티나무는 그렇게 단단히 뿌리를 내려갔다.

“ 처음에는 느티나무 도서관을 어떻게 계속 운영할 수 있을지 고민해 재단을 만들었고, 도서관의 희망을 어떻게 마을마다 복제할지 고민해 도서관 학교를 만들었습니다. 이후 여러 전문가들을 만나면서 도서관이 돌봄 사회, 배움 공동체의 터가 된다는 사실을 확인했죠. 좀 더 폭넓게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한 고민에서 ‘도서관의 친구’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도서관의 친구’는 도서관 이용에 적극적인 시민들이 도서관 운영과 활동을 돕기 위해 만든 후원 모임이다. 이들은 경제적인 후원을 담당 하는 것은 물론, 행사가 열릴 때면 자원 활동가로 나서 직접 진행을 돕기도 한다. 도서관이 어려움에 처할 때면 지방의회 의원 등 정책 결정자를 대상으로 캠페인과 로비 활동을 벌이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도서관이 발전하려면 사서들끼리, 관장들끼리만 이야기해서는 안 되고, 다양한 인적 자원이 모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도서관의 친구들을 널리 만들어보려 한 것이죠. 도서관과 친구라는 좋은 두 말이 만나는 겁니다. 또 도서관만큼 ‘인프라’ 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곳이 없습니다. 지식정보사회의 가장 큰 인프라는 도서관이죠.”

느티나무 도서관은 개인 뿐 아니라 기업에게도 손길을 내밀었다. 박 관장의 표현대로라면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하면서였다.

“여러 기업을 찾아다니며 회사가 망할 때까지 계속 지원해 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친구가 한번으로 끝나지는 않잖아요. 기업을 찾아가서‘큰돈이 아니라 작은 돈이라도 좋다, 보이는 건물을 짓는 게 아니라 인건비에 지원금을 쓸 테니 성과를 보여 드리지는 못한다’고 말합니다. 또 ‘사람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월급이 오르니까 지원금도 계속 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제안을 받아들이는 최고 경영자가 늘어나는 모습에서 우리사회의 희망을 보았습니다.”


일용직 늘려가는 공공도서관


박 관장은 공공도서관에 대한 조언도 쏟아냈다. 10여 년 간 제 손으로 애지중지 도서관을 키워온 그의 눈은 매섭다.

“열람석이 커지면 관장의 위상이 올라가기 때문에 크게만 지으려고 합니다. 삶터 가까운 곳으로 와야죠. 반면 일률적으로 수많은 작은 도서관을 짓는 것도 걱정입니다. 사람이 빠져 있어요. 동 사무소 빈 공간에 마을 도서관을 만들 수 있지만, 사람에 대한 장기적인 계획이 없습니다. 공공 도서관에서는 사서 정원을 확보하기가 어려워요. 제도적 벽 때문이죠. 낮은 임금의 불안정한 일용직만 늘일게 아니라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져야 해요.”

그는 도서관을 단순히 하나의 시설로 여기는 시각에도 제동을 건다.

“도서관을 시설로 관리할 것이 아니라 지역에서 정보 복지를 실현하고, 함께 어울려 사는 공간으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고요. 사람을 키우고 지원하는 재단이 필요한 거죠. 재단이 만들어지면 기부가 가능해집니다. 현재 소득 총액의 10%까지만 세금이 공제되는데, 이 범위도 조금 더 늘여야죠.”
”?”‘OUT-REACH’ 프로그램도 그의 제안 중 하나다. 공공 도서관이 지역 사회에 녹아들기 위해 꼭 필요한 제도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우리말로는 ‘찾아가는 서비스’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외국에서도 많이 시행되고 있죠. 장애인 등에게 책을 배달해 주는 겁니다. 느티나무 도서관에서는 올해 하반기부터 계획하고 있습니다. 지역에서 도서관을 찾아올 수 없는 사람에게 대출해 주는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죠. 도서관이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까지 포함시켜야 합니다. 도서관 공사를 맡았던 배관, 설비, 조명, 창호 기사와 현장 소장에게도 열람카드를 발급해 드렸습니다. 요새 이분들이 자주 가족들을 데려오시곤 합니다.”

꼭꼭 닫아 놓은 공립학교 도서관의 문을 지역 사회에 활짝 여는 것은 어떨까. 동네 주민들에게도 밤늦게 까지 개방해 마음껏 이용할 수 있게끔 하자는 것이다. 박 관장은 “우리나라에서 공립학교나 공공도서관 운영은 어떻게 하면 잘 관리하고 지키느냐에 초점을 둔다”고 꼬집는다.


결국 사람이다


박 관장은 인터뷰 내내 줄곧‘사람’을 강조했다. 10년여에 걸친 도서관 운영 경험에서 나온 단단한 믿음인 듯 했다.

“도서관을 도서관답게 만들기 위해서는 사람이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어딘가에 공간을 얻고, 책을 기증받은 후 자원 활동가를 모집하면 도서관이 됩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한계가 있죠. 사람을 어떻게 채워 놓을지가 문제입니다. 자원 활동이 저절로 돌아가지는 않죠. 자원 활동을 기획하고, 조직할 수 있는 사람이 커가야 합니다.”

그가 생각하는 도서관다운 도서관은 어떤 모습일까. 박 관장은 “도서관이 ‘복합 문화 복지공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도서관은 철저히 공공성을 지켜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문턱도 없어야 하죠. 사람은 누구나 사회 속에서 경제적, 사회적인 지위로 그를 둘러싼 환경의 틀이 규정되는데, 거꾸로 내가 그 틀을 만들고, 그 틀을 넘어 꿈을 꿀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책이 있어야 하고,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주체적으로 책을 만날 수 있어야죠. 복합 문화 복지공간은 자꾸 프로그램을 만들어가면서 폭이 좁아지기 마련입니다. 굉장히 어려운 이야기죠.”

느티나무 도서관은 지난해 말끔한 새 건물로 둥지를 옮겼다. 새로운 공간에서는 새로운 꿈이 익어간다. 전국 곳곳에 울창한 느티나무를 심는 꿈이다.

“전국에 지역 도서관 재단이 다섯 개 정도는 생겨야 한다고 생각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개최할 포럼에서 논의할 생각입니다. 이런 의식을 지닌 사람들을 모두 만나고 있습니다. 지금은 모두 혼자서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모여서 함께 한다면 많은 것이 가능 하겠죠. 일을 좀 더 효율적으로 하고, 우리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 잡지 창간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모두 상상력을 모아보려고 합니다.”

정리_이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