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면담일시 – 2008년 7월 19일 오전 1시 30분
면담장소 –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 757번지
면담인사 – 박승현(성남문화재단 문화기획부장)



성남에는 어딜 가나
문화클럽의 모임이 있다네
그 모임에는 누가 구경꾼이고 누가 주인공이 없다네

시민들은 100년 후를 노래한다네
예술시민의 도시, 성남에서 수많은 예술가와 창조가들이 탄생하고
시민 모두가 문화예술의 삶을 누리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의 아들 딸들이
사랑방 문화 클럽이 꽃피는 도시에서 자랐기 때문이라네


성남의 문화클럽이나 동아리들이 함께 모일 때면 이런 시를 노래한다고 한다. 시민이 주인공이고, 100년 후를 노래하며 모두가 창조가가 된다는 것이다. 문화행정의 객체이고, 손님으로만 대접받아온 시민들이 이제는 주체를 지향하고 있다.

서울, 인천 등 대부분의 큰 도시에서 유행처럼 이루어지고 있는 문화재단은 때로 정책의 실패를 초래하고, 획일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성남의 시민들은 우리 동네 문화재단만큼은 무언가 다르다고 말한다. 다른 지역의 사람들도 성남이 부럽다고 입을 모은다. 성남문화재단의 문화예술 정책은 무엇이 다를까. 과연 성남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우리도 관이다, 그러나 다르다


박승현 성남문화재단 문화기획부장은 대학 재학 시절부터 꾸준히 경력을 쌓아온 전문 문화기획자다. 예술에 대한 그의 시각은 예술가의 입장과는 확실히 다르다. 예술만을 위한 예술도, 미적 교양에 머무르는 예술도 아니다. 그는 예술이야 말로 모든 시민이 공동체에 주인으로서 참여할 수 있게끔 만들어주는 매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우리도 관입니다. 성남문화재단은 성남에서 전액 출연한 곳이고, 시장이 이사장이죠. 그 아래에 전문가들을 끌어와 운영하는 것이고요. 단, 우리는 다른 문화재단과 비교해 조금 다른 점이 있습니다. 아트센터 운영 외에 정책부서가 따로 존재한다는 사실이죠. 다른 도시 문화재단의 경우 정책기능이 없습니다.”

”?”성남 문화재단의 정책이 가장 상위에 두고 있는 가치는‘시민’이다. 박 부장은 “시민이 만드는 도시가 우리의 캐치프레이즈다”라고 강조한다.

“우리 사업의 핵심은 일종의 민관협력 방식을 통해 주민이 주체성을 갖게 한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100여 년 동안 모든 것을 중앙에서 추진해 지역의 자치성을 깨버렸습니다. 가슴 아프게도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전부였죠. 때문에 문 밖을 나서면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시민이 스스로 동네를 만들어가고, 더 나아가 스스로 도시를 만들어 가게끔 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시민이 만드는 도시’라는 큰 그림 속에 성남문화재단은 15년 기본계획을 세워 추진하고 있다. 올해는 3년간에 걸친 1단계 계획이 마무리되는 해다. 15년 계획의 성패를 좌우할 기초 공사를 막 끝마친 셈이다. 박승현 부장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점점 흥미를 더해간다.

“수월성의 제고와 접근성 확대가 문화정책의 두 축입니다. 수월성은 예술작품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예술가를 지원하는 것이고, 접근성은 시민들 스스로 창조할 수 있게 하는 것이죠. 그동안 정책이 이런 본질적인 부분을 놓쳐왔습니다. 정책은 모두 뿌리는 것이었죠. 시민들을 상대로 그냥 혜택을 뿌린 겁니다.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주고, 스스로 자치성을 높여주는 것이 안 되었죠.”

그는 “시민의 자발적 힘이 어마어마하게 올라오고 있다”고 말한다. 이를 뒷받침 할 수 있는 정책을 전면적으로 시행해야할 때가 왔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마을 만들기 등 자치성을 키우려는 노력을 민간에서 많이 하고 있지만, 정책으로 연결되지 못했습니다. 이런 노력들이 어떻게 도시계획과 연결되고, 어떻게 문화지원정책과 연결될지에 대한 고민이 없었죠. 민간은 민간대로 고립되어 일하고 관은 뿌려대면서, 서로 만나는 지점이 없었던 겁니다. 성남의 문화 정책은 이런 문제를 깊숙이 파고들고, 장기적으로 풀고자 하면서 비롯된 것입니다.”


시민 스스로 문화의 도시를 만들게 하라


시민과 정책의 만남은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를 띠게 될까. 박 부장은 ‘사랑방문화클럽 네트워크’사업을 소개했다. 성남지역에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크고 작은 문화예술 동아리들을 ‘사랑방’이라는 이름의 네트워크로 묶어 지원하는 사업이다. 이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먼저 어떠한 모임들이 활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현황 파악이 필요 했다.

“정책단위에서는 이런 동아리를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습니다. 시민들의 움직임이 어떠한지 알아보려 하지 않았던 거죠. 조사를 해 보니 1103개가 나왔습니다. 전체로는 3,964개가 있는 것으로 유추되었고요. 약 30개의 동아리와 사업을 시작했죠. 음악 동아리로는 리코더 합주단, 기타 합주단, 만돌린 오케스트라 등이 있고, 전시분야에서는 닥종이 인형, 퀼트, 한지공예 동아리 등이 있습니다. 시민이 중심이 된 동아리들이 성남 45개 동에서 활동하고 있죠.”

구슬을 엮는 작업이 시작됐다. 각기 다른 동아리 회원들끼리 사랑방에 모인 지인들처럼 이야기를 나누고, 생각을 나누게 했다.

“독일의 철학자 하버마스가 시민 공론장으로서 카페를 이야기했죠. 그런 것이 우리나라의 사랑방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누구나 모여서 즐기기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고, 시도 짓는 곳이죠. 동아리 간의 만남은 클럽파티를 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서로 섞이고, 오픈되고자 하는 마인드가 있다는 것을 느꼈죠. 아마추어의 건강성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들은 직접 운영위원회를 선출하고, 정관을 만들었다. 클럽지기 모임도 만들어졌다. 이 모임을 통해 클럽축제를 기획하고, 지원 사업을 어떻게 진행할지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다. 문자 그대로 지원의 역할만을 담당한 문화재단에서는 회원들의 공연을 성남아트센터의 무대에 올릴 수 있도록 했다. 박 부장은 “성남아트센터 무대에 서 보는 것은 대단한 경험” 이라며 “수월성과 접근성이 서로 만나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클럽지기 모임에 이어 회원들끼리 만나는 네트워크도 창립되었다.



”?”“작년부터 공모지원 사업을 했습니다. 클럽 당 최고 3백 만 원을 지원했죠. 한해를 해 보고 나서 문예진흥기금의 폐해와 같은 것을 느꼈죠. 시행된 지 30년이 넘은 문예진흥기금은 예술가의 자발성을 떨어뜨리는 역할을 해 왔습니다. 지원금을 받기 전에는 어떻게 하든 협찬을 받고 회비를 받아, 경쟁력을 높이고 예술적 기량을 키우기 위해 노력했죠. 그런데 지원금을 받다 보니 그것에만 의존하고 창작활동을 안 하는 겁니다. 질이 계속 떨어지는 거죠. 지원이 끊어진 후에는 스스로 일어날 힘을 잃어버리는 겁니다.”

클럽 내부에서 4 ~ 5개월 동안 논의를 해 하나의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사회 공헌을 많이 하는 클럽에 지원금을 주기로 한 것이다. 또, 개별 팀 위주로 지원을 받기보다는 여러 클럽들이 함께 모여 공공성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해 지원을 받겠다고 나섰다. 자연히 네트워킹은 더욱 활발해졌다.

“60 ~ 70세의 노인들이 비바댄스 공연을 펼쳤고, 만돌린 클럽은 아파트 단지 안 수영장에 무대를 세워 공연을 하기도 했습니다. 노인복지회관에 가서 공연을 하는 팀도 있고, 국군수도병원에 입원해 있는 장병을 위해 ‘사랑의 힘’이라는 팀이 록 공연을 펼치기도 했죠. 올해는 9월 23일부터 28일까지 성남아트센터와 남한산성에서 큰 발표회를 열 예정입니다.”


문화로 만나고 성장하는 문화공동체


사랑방 네트워크는 출발점이다. 성남문화재단은 더 큰 그림을 그려나가기로 한다. 각 동에 포진한 문화예술 동아리를 중심으로 동네문화공동체를 꾸려나가기 시작했다.

“각 동에서 동아리들이 각자의 문화 활동을 하면서 동네를 바꾸어가도록 하는 것이 궁극적 목표입니다. 45개 동을 분류했더니 골목길, 아파트, 공단, 시장, 상가의 다섯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더군요.”

유형별로 공간의 성질을 반영해 각기 다른 색깔로 작업을 진행해나갔다. 그가 들려주는 한 아파트의 사례가 재밌다.

“80년대 중반 성남시 중원구 은행동에 지어진 아파트 안에 수영장이 하나 있습니다. 아주 상징적인 아파트입니다. 그 당시로는 아주 좋은 아파트라고 손꼽혔던 곳이죠. 폐쇄되어 안 쓰던 수영장을 새로 단장 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청소하고, 색칠해 문화놀이터로 개조했죠. 아파트 동의 이름도 다시 붙였습니다. 멋진아카시아동, 참큰은행나무동, 매미솟는동, 딱다구리동 따위죠. 모두 사연이 있어 그렇게 붙인 겁니다. 이곳을 너무 사랑하는 한 주민이 동네를 관찰한 다음 특색에 따라 이름을 지은 것이죠. 이 지역의 사계절 생태계를 관찰한 책도 나옵니다. 103계단이라고 이름 붙인 계단에는 시를 써 넣어 그것을 읽으며 오르내릴 수 있습니다.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을 발굴해 클럽활동에도 동참시켰죠.”

박 부장은 문화통화사업도 소개했다. 사랑방 클럽을 만들고 이를 축으로 해 동네를 문화공동체로 만드는 일은 1단계 사업의 목표이다. 문화통화사업은 공동체의 결속을 더욱 단단히 해주는 역할을 한다.

“일종의 지역통화입니다. 공동체의 힘이 솟아나올 때 가능한 것이죠. 클럽 회원들에게 물으니 자신의 활동을 펼치고,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의 부족을 가장 아쉬워하더라고요. 그래서 성남시에 위치한 병원, 카페, 수련관 등 150 개 공간과 하나하나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예를 들어 보바스 병원에는 100 여 명이 들어갈 수 있는 홀이 하나 있습니다. 이곳과 계약을 체결하고, 사랑방문화통장을 갖다 두었죠. 만돌린 클럽이 이곳을 빌려 1시간 연습을 하면 보바스 병원은 5천 넘실(문화 통화의 단위)을 얻게 됩니다. 만돌린 클럽은 마이너스 5천 넘실을 기록하게 되고요. 마이너스 금액이 많아지면 환자들을 위해 봉사공연을 하는 거죠. 그러면 만돌린클럽은 다시 플러스 5만 넘실을 기록하게 됩니다.”

1년 반 동안 준비해서 작년 8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문화통화사업은 아직 시작 단계라고 한다. 2단계로 은행 알을 주고받는 동네 통화 모델도 계획 중이다. 주로 아이들 교육에 사용하게 된다고 한다. 결국 성남시의 문화예술 클럽 안에서는 돈이 없어도 마음껏 소통하고, 재능을 나누게 되는 셈이다. 문화공동체의 시작이다.


그가 그려보는 15년 후의 성남


이야기는 다시 시민으로 돌아간다. 도시는 시민의 것이다. 시민들이 스스로 도시를 만들고 참여해야한다. 문화와 시민, 그리고 도시. 그의 입에서 맴도는 단어들이다.

“공무원들이 일방적으로 도시계획을 세우고 그에 따라 모든 도시와 시민을 쓸어버립니다. 그것을 기초로 먹이사슬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모두 개발중심적인 사고를 갖고, 빌딩만 높게 지어 투기가 날뛰죠. 주민자치위원회 같은 조직도 결국 몇몇 관변 단체 사람들로 구성되어버립니다. 문화클럽을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내공을 가진 사람들이 나옵니다. 만돌린 클럽 대표는 사람들에 대한 설득력이 있고 리더십이 있어요. 이런 사람들이 곳곳에 숨어 있는 거죠. 이들이 자신의 관심을 동네로 돌리면 엄청난 힘을 낼 수 있습니다. 10년이 지나면 자신의 동네와 우리 사회를 바꿀 수 있습니다. 100년 동안의 사슬이 바뀌는 겁니다.”

박승현 부장은 원래 예술가를 지망했지만, 부모님의 뜻을 꺾지 못하고 경제학과에 진학했다. 예술로 경제활동이 가능함을 보여주겠다는 꿈을 숨긴 채 문화에 대한 열정을 키워왔다고 한다. 그런 그가 이제 15년 후의 꿈을 말한다. 대학 시절 꿈은 그동안 훌쩍 키가 자랐다.

“15년 후에는 누구나 하나의 클럽에 들어갈 겁니다. 시를 짓거나, 악기를 연주하거나 뭔가 하나씩을 한다는 것이 제 꿈이고 목표입니다. 일상적으로, 동네에서 이루어지는 겁니다. 우리 집 인테리어만 꾸미지 말고, 우리 동네도 꾸미자는 이야기가 나올 겁니다. 수백 곳의 커뮤니티 센터와 사랑방이 생길 겁니다. 이렇게 되면 문화도시가 되는 것이 아닐까요? 10 년 후에는 성남 탄천변에 장르별로 전국의 꾼들이 모두 모이게 할 겁니다. ‘퀼트 동호인 다 모여라, 기타 동호인 다 모여라’하는 거죠. 탄천에서는 시기별로 온갖 축제가 열릴 수 있습니다. 성남시민들이 모두 쏟아져 나와서 즐기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거죠. 아니, 그것 자체가 일상이 되지 않을까요?”

정리_이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