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면담일시 – 2008년 8월 16일 오전 10시
면담인사 – 인재진(자라섬 국제재즈페스티벌 예술감독)
면담장소 –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읍내리 432번지 2층



“대학로에서 극장 두 개를 운영했죠. 주로 재즈 공연을 다루는 기획자였어요. 가평과는 아무런 연고가 없었는데, 가평군 공무원인 이문교 주사와 연결이 되어 오게 되었습니다. 어디에선가 제가 한 강연을 듣고 연락을 해 오셔서 가평으로 오게 된 거죠. 가평에 와서 축제를 할 만한 공간을 좀 봐달라고 하시더라고요. 여기저기를 봤는데, 마지막으로 본 곳이 자라섬이었습니다. 아무 것도 없고, 너무 황량했던 곳인데 자연환경이 너무 좋았죠. 핀란드의 포리재즈페스티벌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환경이 비슷했어요.”

이렇게 시작된 자라섬 재즈페스티벌이 올해로 5회째를 맞는다. 이제는 한 해 10만 명이 찾는 성공적인 지역 축제로 자리 잡았다. 자라섬 재즈페스티벌의 인재진 예술감독은 주소지까지 가평군으로 옮겨 4,070원의 주민세를 내고 있다. 가평에 대한, 그리고 음악에 대한 애정을 고백하는 그에게 축제가 성공하기 위한 요인을 고루 설명 들을 수 있었다.


5년 만에 10만 명을 모아내다


“5회째를 맞고 있는데, 네 번 한 것치고는 아주 성공적입니다. 규모나 방문객수를 생각하면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음악 축제가 되었죠. 작년의 경우 4박 5일 동안 10만 명의 관람객이 찾았습니다. 세계 15개 국 2~300명의 아티스트가 옵니다. 작년에는 문화관광부 국가지정축제가 되었고, 올해에는 경기도 지정 최우수축제가 되었죠.”

인 감독 스스로 말하듯 재즈와 가평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지금은 많이 희석되었지만, 주민들 사이에서도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다고 한다. 이런 환경 속에서도 재즈페스티벌은 성공적으로 출발해 정착의 단계에 이르렀다. 1000여개가 넘는 지자체 주관 축제 속에서 독특한 색깔을 지닌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인 감독이 첫 번째로 꼽는 성공의 비결은 콘텐츠다.

“공연축제기획은 다른 것이 없습니다. 무대 위에 올라가는 콘텐츠가 얼마나 좋으냐에 달려 있죠. 축제를 기획하면서 프로그램에 대해서만큼은 양보한 적이 없습니다. 프로그램 선정과 관련해 높은 위치에 있는 여러 사람으로부터 압력이 많았습니다. 아무리 욕을 먹어도 받아들이지 않고, 좋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에 애를 썼죠. 덕분에 축제의 질과 색깔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인 감독은 재즈와 월드 뮤직 전문 기획자다. 천 회가 넘는 재즈 공연 기획 노하우를 바탕으로 프로그램 선정에 심혈을 기울였다. 축제의 좋은 콘텐츠는 입소문을 타고 마니아층을 만들어냈다. 참가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마니아층은 축제를 든든하게 지탱하는 기둥 역할을 한다.

“나머지 49%는 음악에는 관심이 없지만, 가족단위로 소풍을 오는 분들입니다. 사람들이 저에게 재즈페스티벌의 주제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자연, 휴식, 가족, 그리고 음악이라고 답합니다. 바로 소풍이죠. 음악이 좋아서 오는 분들의 기대에 맞추면서, 소풍을 오는 49%의 사람들을 위한 배려도 필요합니다. 처음 축제를 시작한 게 2004년인데 월드컵을 겪으면서 놀이 문화가 많이 바뀌었던 시점이죠. 사람들이 해외여행도 많이 가고, 인터넷도 보편화 되면서 야외무대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졌습니다. 여자는 남자의 무릎을 베고 누워있고, 옆의 바구니에는 치즈나 빵이 들어있습니다. 아이들은 잔디밭을 뛰놀고요. 이렇게 사람들이 연상하는 장면을 바로 자라섬이 상징하는 거죠.”


공무원과 친해진 비결


축제를 준비하는 이들의 애정 역시 무엇보다 중요한 성공요인이었다. 인 감독 자신도 ‘업자’의 입장에서 시작해 이제는 축제 자체를 목적으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축제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처음부터 지금까지 많은 애정을 가져왔다는 점이 최고의 성공요인입니다. 1회 축제를 준비할 때, 행사는 하루 이틀 앞으로 다가오는데 예산이 부족한 거예요. 군청 직원들에게 1, 2천만 원을 꿔달라고 했더니 과장에서부터 주사까지 모두 한, 두 시간 안에 돈을 마련해 빌려주는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떤 담당자가 애정을 안 가지겠습니까. 스텝들에게 18개월 동안 월급을 못주었는데, 한 명도 안 나갔어요. 함께 애를 쓰는 것을 아니까 모두 애정을 가지게 된 거죠.”

자라섬 재즈페스티벌은 성공적인 민관협력의 사례로도 알려져 있다. 인 감독은 공무원들과 잘 지내는 비결에 대해 강의를 해 달라는 부탁까지 받곤 한다.

“공무원 조직은 가장 보수적인 집단입니다. 문화기획자와 서로 갈등이 생기지 않을 수 없죠. 보통 문화기획자들이 공무원을 무시하면서 일을 시작하게 되죠. 바뀌어야 할 부분입니다. 보통 공무원이 일하는 시스템이 답답하다고 생각하면서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요. 사실 상당히 좋은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만, 그것을 이해하고 맞추지 못할 뿐입니다. 사전에 예산을 세울 때부터 잘 이해하고 맞추어야 합니다. 이해하려고 하니 커뮤니케이션이 되죠. 민간에서 이런 노력을 많이 해야 합니다.”

그는 현지화 노력의 필요성도 강조한다. 서울에서 살던 인 감독은 아예 가평으로 이사를 왔다. 스스로 지역주민이 된 것이다. 주민세를 내면서 지역에 대한 애정을 갖고, 공무원들과도 동료의식을 지니게 되었다고 한다.


지역 축제는 지역 주민들과 함께


“처음부터 안고 있던 문제가 재즈라는 아이템이 가평에서 너무 생소하다는 것이죠. 축제라는 것이 지역의 특산물이나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하는 것인데, 담배 파는 김씨 아저씨와 밭 매는 박씨 아줌마는 재즈를 잘 모릅니다. 자라섬 재즈센터를 열어 주민들에게 악기를 가르치고, 음악을 접하게 하고 있습니다. 학교를 찾아가 꼬마들에게 음악을 이해시키고요.”

원래 자라섬 재즈센터는 읍사무소로 쓰이던 건물이었다. 가평군에서 처분하기 위해 내놓은 건물을 손보아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었다. 이제는 주민들을 위한 작은 문화공간으로 자리잡은 곳이다.



”?”

“첫해 축제가 끝나고 나서 현지화를 위해 읍사무소 건물이 필요하다고 했더니 군에서 지원해주더군요. 문화관광부에서 기금을 받아 리노베이션을 했습니다. 그래도 예산이 모자랐는데, 메타건축의 이종오 소장이 디자인 작업을 맡아 주었죠. 형편이 되는 대로 돈을 내라면서요. 영화상연을 하고 연말에는 발표회를 엽니다. 세계의 타악기 500여개를 기증받아 1층에 전시해 놓고, 체험도 하죠. 지역주민의 반응이 좋습니다.”

자라섬 재즈페스티벌로 얻을 수 있는 지역의 경제적 효과는 얼마나 될까. 인 감독은 단기적이고 직접적인 손실계산이 전부는 아니라고 말한다.

“지자체에서는 단기적으로 관광객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대한 압박을 많이 받습니다. 저는 조금 달리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시장에서는 공연축제로는 돈을 벌기가 힘듭니다. 축제를 통해 발생하는 자라섬의 좋은 이미지로 간접적인 경제효과를 기대해야죠. ‘푸른 연인’이라는 가평의 공동브랜드를 홍보하는 효과를 얻는 겁니다.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방식)으로 자라섬 커피와 와인을 만들고 있어요. 와인은 지역의 포도영농조합과 연계해서 만들죠. 초보적인 단계지만, 가평에서 잘할 수 있는 아이템을 갖고 해 보는 거죠.”


아시아 최고 축제를 꿈꾼다


인 감독은 “축제는 유기체와 같다”고 강조한다. 계속 시행착오를 거치며 새롭게 발전해가는 존재라는 뜻이다. 그 자신도 네 번의 축제를 거치면서 거듭되는 실패를 통해 배워왔다. 달랑 2개의 무대에서 시작한 자라섬 재즈페스티벌은 이제 11개의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공연만 모아두면 축제가 된다고 생각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아요. 자라섬 재즈페스티벌의 성공 이후 많은 음악축제가 생겼는데, 실패한 경우가 많습니다. 몇 번 해보니까 노하우가 필요하더군요. 많은 외국 페스티벌을 경험했지만, 한국에 맞는 것은 다릅니다. 한국적 축제의 전형을 만들어야 해요. 간단합니다. 축제의 키워드는 콘텐츠에 얼마나 충실하냐와 먹을거리에 있습니다. 접근성이 안 좋아도 사람들이 다 알아서 찾아옵니다. 한국 사람들은 와인으론 안 돼요. 국물도 있고 밥도 말아 먹어야 하죠.”

올해 열리는 5회 자라섬 재즈페스티벌(10.2 ~ 10.5)은 예년과 비교해 더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자랑한다. 한국적 재즈 페스티벌에 대한 그의 고민과 열정이 진화를 거듭한 결과다. 자라섬의 메인 무대 외에도 군청, 농협 강당 등 가평 읍내 곳곳에서 축제가 벌어진다. 마지막 날에는 장터에서도 공연이 열린다. 축제 기간 동안 읍내의 술집은 분위기 있는 재즈클럽으로 탈바꿈 하게 된다.



”?”“아시안 스테이지도 열립니다. 동남아시아에서 좋은 뮤지션이 와서 공연을 하죠. 아시아에도 좋은 음악이 있고, 좋은 페스티벌이 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시아 음악인들을 무시해요. 아시안 스테이지를 통해 그런 잘못된 인식을 불식시키려 합니다. 이를 통해 자라섬 페스티벌이 아시아의 중심에 서고, 선두에 서면 좋겠어요. 아시아는 떠오르는 시장이기도 하고,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죠.”

자라섬 재즈페스티벌은 첫 발을 뗐다. 인 감독은 이제 막 시간과의 싸움을 시작했다. 수십 년, 수백 년간 이어질 축제를 향한 싸움이다.

“결국 시간의 문제입니다. 정체성을 잃지 않고 계속 간다면 점점 더 좋아질 겁니다. 지역주민들이 자부심을 갖게 하는 것도 중요하고요. 지역축제로 출발했지만, 아시아의 대표축제로 성공하도록 만들어야죠. 외국의 축제도 일정시점에 이르면 재즈 페스티벌이 아닌 팝 페스티벌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있어요. 관광축제가 되는 거죠. 사람들이 음악축제에서 음악은 듣지 못한 채, 먹고 마시고만 갑니다. 자라섬 재즈페스티벌은 음악이 주가 되는 정체성을 계속 살려가고 싶습니다.”

정리_이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