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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는 평등하고 자유로운 나라를 꿈꿨다. 그의 꿈이 오롯이 담긴 공간이 수원 화성이다.
그 화성에서 또 다른 꿈이 여물고 있다. 현재 화성은 세계문화유산으로, 화성 축조 과정을 기록한 <화성성역의궤> 등은 세계기록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되어있다. 그런 화성을 이제 세계무형유산에까지 이름 올리겠다는 꿈이다.

3월 2일 수원 화성에서 만난 김준혁 학예연구사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이날 오전 그가 공무원을 대상으로 화성 안내 교육을 하는 현장에서 처음 인사를 나눴다. 그는 화성을 이루고 있는 돌 하나에서도 그 안에 깃든 정조의 꿈을 읽어냈다. 그의 설명은 세심했고, 발음하는 단어 하나하나에 화성에 대한 열정이 묻어 나왔다.


”?”화성, 18세기 조선의 사상과 예술의 결정체

“화성은 우리 전통문화를 집약한 곳입니다. 5천 년간 이어져 온 다양한 전통, 건축, 사상, 미술을 한 공간에서 조망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죠. 외국에서 손님이 오면 우리 문화의 향수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을 소개해주어야 합니다. 화성이 그런 곳입니다.”

화성을 함께 둘러본 후, 그가 일하고 있는 수원화성운영재단 사무실에 앉아 인터뷰를 시작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그는 화성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한다.

“화성에는 18세기의 모든 사상과 예술이 압축되어 있습니다. 제대로 복원해서 당시의 사상과 예술까지 다시 꽃피워야 합니다. 지금은 성곽만 남아있고 내부 시설들은 복원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시설의 기능을 복원해야 합니다. 서고의 역할을 한 장춘각, 사회복지정책으로 만들어진 식량창고, 교육기관인 강무당 등을 복원해서 그 기능들을 재현해 나갈 것입니다. 화성의 옛 모습을 온전히 되찾는 겁니다.”

김준혁 학예연구사는 정조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에게 화성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닌 정조의 삶과 사상이 스며있는 곳이다.

“정조 개인이 화성을 만든 것은 아닙니다. 최고의 지식인과 백성들이 함께 만들었죠. 정조의 시대는 세계사적으로 볼 때 문화의 전성기입니다. 중국도 가장 평화로운 시기로 한족과 만주족, 서양이 함께 공존하며 문화가 발전했죠. 정조는 그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뛰어넘으려 했습니다. 조선을 문화의 중심이 되는 국가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조선이 곧 ‘중화’라고 생각했죠. 이전까지는 조선을 ‘소중화’라고 생각했지만, 정조는 달랐습니다.”

정조는 조선이 중화가 되기 위해서는 무언가 보여줄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김준혁 학예연구사는 “그 무언가가 바로 수원 화성”이라고 말한다.

“학문, 사상, 과학, 백성의 삶의 질이 중국보다 우수한 곳. 그 혁신도시가 바로 수원 화성입니다. 정조는 이곳을 중심으로 새로운 조선을 만들려고 한 것이죠. 정조는 중국으로부터 지식을 배우자는 의미에서 많은 서적을 수입했습니다. 중국은 조선이라는 나라에 지식을 전파하면 위협이 될지 모른다고 판단해 수출을 금지했습니다. 정조는 사신을 파견해 협상을 벌였죠. 이때 얻어온 것이 <고금도서집성>입니다. 또 정조는 서양 문물을 수입한 중국의 기술 수준을 조선이 뛰어넘지 못한다고 판단해 계속 통신사를 보냈습니다. 자신의 최측근인 홍대용, 박제가, 이덕무를 보냈죠.”
”?”왕ㆍ지식인백성ㆍ3자가 함께 만든 화성


“채제공과 조심태, 정조의 두 신하는 축조 경비를 줄이기 위해 승군을 동원하거나 백성에게 부역을 해야 한다고 건의했습니다. 그러나 정조는 강제노동의 비합리성을 꿰뚫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추진했던 청계천 준설사업을 통해 이미 경험한 거죠. 정조는 화성 축조에 동원된 백성들에게 인건비를 지급했습니다. 당시 평균 수준의 1.5배를 줬죠. 또 최대한 강제 철거를 자제하고, 부득이한 경우에는 합당한 보상비를 지급했습니다.”

화성 축조는 경기 부양을 위한 정책이기도 했다.‘백성’은 화성을 이해하는 키워드 중 하나다.

“정조는 성곽만 지은 것이 아니라 경제도 살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당시는 가뭄이나 홍수, 한파 등으로 경기 활성화 정책이 필요했던 시점입니다. 축조에 동원된 연인원이 36만 명입니다. 이들에게 모두 임금을 주었으니 경기가 살아날 수밖에 없죠. 정약용에게 거중기 등을 발명하게 한 것도 백성이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과학기술의 이익이 백성에게 돌아가도록 한 것이죠. 고급두뇌, 행정경험이 풍부한 관료, 기술자가 모두 축성 과정에서 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김준혁 학예연구사의 목소리에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그의 꿈 이야기가 시작된다.

“화성 축조 과정을 기록한 <화성성역의궤>,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홍씨의 회갑연을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입니다. <원행을묘정리의궤>에는 혜경궁홍씨 회갑연의 세세한 과정들이 모두 묘사되어 있습니다. 정조가 서장대에 올라 군사훈련을 지휘하고, 어머님의 회갑잔치를 백성과 함께 누리기 위해 쌀을 나누고 죽을 끓인 모습이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 화려한 궁중행사와 위민행사를 함께 한 거죠. 오늘날 그 모습이 그대로 재현된다면 세계인에게 감명을 줄 수 있습니다.”

세계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도시. 화성을 품고 있는 수원은 그의 꿈이다.

“지금 수원에서는 옛 행사의 원형을 복원해 세 가지를 재연하고 있습니다. 유네스코 관계자에게 ‘기록을 통해 복원한 행사들을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가능하다고 하더군요. 혜경궁홍씨 회갑연 당시의 8일간의 화성 행차를 모두 묶어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하려고 합니다. 유네스코 산하의 세 개 위원회(문화유산위원회 ? 무형유산위원회 ? 기록유산위원회) 모두에 등재된 도시는 없습니다. 수원이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으면, 오라고 하지 않아도 세계인이 찾습니다. 20년 후를 보고 있습니다. 복원만이 능사가 아니라 좀 더 높은 철학이 필요한 거죠.”

”?”화성과 지역경제, 두 개의 수레바퀴

“문화고용을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투자는 시가 하고, 돈은 시민이 버는 것이지요. 처음 화성 정비 사업을 시작할 때 ‘장사가 안 된다’며 짜증내던 주변 상인들이 지금은 고맙다고 합니다. 프로젝트가 성과를 내면 더욱 달라질 겁니다. 한의사 한 분이 찾아와 화성 앞의 땅을 사고 건물을 지어 한방체험센터를 운영하겠다고 제안한 적이 있습니다. 약과 함께 한방체험을 팔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발상을 하는 분들이 늘고 있습니다. 경주의 경우 문화예술촌을 조성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경주시에서는 3년을 지원했지만, 7년은 지원해야 한다고 봅니다. 결국 많은 사람이 찾아 먹고 마심으로써 투자비용 회수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그의 치밀한 고민을 엿볼 수 있었다.

“성곽 옆에 대규모 한옥 공연장을 만들려고 합니다. 서안의 당무 공연을 본 적이 있는데 사람들이 꽉 차더군요. 역사도시에서는 모두 가능한 일입니다. 기반시설을 잘 정비하고, 좋은 공연이 열리면 관광객이 자고 갈 겁니다. 숙박을 하는 관광객이 늘면 지역경제가 달라지죠. 현재 외국관광객이 120만 명 정도 되는데, 350만 명이 오면 독립경제권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젊은 친구들이 관광 상품을 만들어 들고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용기가 가상하죠. 성내에 이미 갤러리 하나가 들어섰고, 늘릴 겁니다. 한방센터, 관광 상품전, 한옥거리 등도 만들 겁니다. 한옥에서 세계적인 명품을 팔 수도 있죠. 궁중음식을 재현하는 노력도 하고 있습니다.”

“수원시는 나름대로 큰돈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화성 정비만으로 900억을 쓰는데. 시 예산의 5% 정도 되죠. 그런데 우리가 구상하는 모든 정비 사업에는 2조 원 정도가 필요합니다. 수원이 세계 최고의 역사도시로 태어날 수 있는 돈이죠.”

그는 중앙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수원이라는 도시가 역사 ? 문화 콘텐츠로서 잠재력이 있는 만큼 과감한 투자를 하자는 것이다.

“문화관광의 도시, 문화관광의 국가를 만들려면 선택과 집중이 필요합니다. 이미 세계는 자국 도시의 세계문화유산도시 선정을 위해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중국이나 일본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죠. 지금까지는 수원이라는 기초자치단체가 다 맡아왔지만, 중앙정부에서 지원해 주어야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수원에 왔을 때 화성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기대하고 있습니다.”

정조를 닮고 싶은 사람들

“화성 복원사업이나 주변 정비 사업에 다양한 전문 인력이 필요합니다. 수원시청 공무원 중에도 외국유학 경험이 있는 실력가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행정의 틀 안에 갇히는 한계가 있습니다. 인구 110만 도시에 학위를 가진 학예사가 두 명뿐입니다. 화성 박물관을 만들고 있지만 교육 기능이 주목적이죠. 화성만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기관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김준혁 학예연구사는 “주민과의 효율적인 대화와 합의도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지역주민들이 함께 조직한 ‘행궁길발전위원회’와 ‘화성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화성연구회)’을 예로 들었다. 이들은 매월 답사 및 토론을 하며 화성의 발전방향을 논의한다. 화성 관련 정책을 모니터하는 일도 이들의 주요 활동 중 하나다.

“지금 왜 정조를 말할까요? 세계화 시대입니다. ‘우리’만을 이야기하는 민족주의가 해체되는 시기죠. 세계화의 격랑에 휩싸여 우리의 의지대로만 되지는 않습니다.”

그는 “세계화 시대에 중요한 것은 정치지도자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오피니언 리더그룹이 반드시 역사 속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정조의 시대가 서양이 밀려오고, 중국이 변하는 가운데 작은 반도의 나라 조선이 문화충격을 극복해야 했던 시기라고 말한다. 왜 지금 우리가 정조를 연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다.

“정조는 위민의 군주였습니다. 백성에게 죽을 나누어줄 때 그 죽이 깨끗한지를 확인했던 군주입니다. 죽이 식으면 다시 나누어 주라고 명령했던 임금입니다. 백성을 그토록 배려하고 사랑했습니다. 그가 ‘백성을 위해서라면 내 살갗이 아까우랴’고 말한 것이 단순한 정치적 수사가 아니었던 거죠. 이제야 그의 뜻을 알 것 같습니다.”

정리_ 이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