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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하직원이 절대로 차문을 못 열어주게 하는 시장. 실무자들을 시장실로 부르지 않고 스스로 찾아가는 시장. 명절을 맞아 지역 특산물 수요가 증가할 때면 직접 한우고기 포장에 나서는 시장. 3월 14일‘안성맞춤’의 고장에서 만난 이동희 안성 시장의 평소 모습이다.

벌써 3번째 임기를 맞는 그에게 퇴임 후 계획을 물었다.“임기 중 심은 나무를 돌보는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싶다”고 한다. 그는“사람이 자리를 탐내 자꾸 올라가려고만 하는 것이 문제”라며“시장을 세 번이나 했으니 바닥에서 일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그는 정말 진지하게 안성의‘먹고 사는’문제를 고민하고 있었다. 인터뷰 내내 이 시장의 치열한 고민을 접하며 그의 소박한 꿈이 이루어지길 빌었다.

”?”‘안성맞춤’브랜드를 만들다

“안성은 경기도의 농촌도시입니다. 경기도에 위치했기 때문에 모두 도시화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모습은 농촌지역과 다름없지요.‘샌드위치 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매서운 눈매를 지닌 그가 눈을 반짝이며 안성의 역사를 짚는다.

“조선 후기까지만 해도 안성은 전국 3대 물류집산지였습니다. 박지원의 <허생전>을 보면 조선시대 안성의 역할을 잘 알 수 있죠. 남쪽 지방의 물류가 안성을 거쳐 한성으로 갔습니다. 60년대만 해도 안성 인구가 13만 명 정도 됐죠. 용인 인구는 당시 7만 명이었는데 지금은 80만이 넘습니다.”

그는 “빠르게 도시화된 다른 지역에 비해 안성은 발전이 늦었다”고 회고한다. 뒤늦게 이웃 도시들을 따라가려고 나서자 수도권정비계획법 등 까다로운 법률 규제에 발이 묶였다. 참여정부 시절에도 균형발전이라는 정책목표 때문에 수도권에 위치한 안성은 충분한 예산을 배정받지 못했다고 한다. 시민들 스스로‘우리 고장은 낙후되었다’고 생각한단다.

“시장이 되어‘안성을 어떻게 끌고 갈까’고민했습니다. 안성은 농업이 주산업입니다. 인구의 20%가 농사를 짓지만, 농업만으로는 먹고 살기 힘들죠.”

고민을 거듭하던 그의 머릿속에‘안성맞춤’이라는 보통명사가 떠올랐다.

“서울 양반가에서 세간을 마련할 때면 반드시 안성의 장인들에게 주문을 했다고 합니다. ‘안성맞춤’이란 말이 곧 신뢰를 뜻했죠. 우리 지역에서 유래한 보통명사를 우리의 브랜드로 삼자고 생각했습니다. 허튼 짓 안 하고 정확히 수요자의 뜻에 맞추는 정신을 상징화하는 거죠.”

그는 농업정책에도 명확한 목표를 설정했다. 쇠락하는 안성의 농업을 그대로 두었다가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절박한 위기의식이 있었다. 2000년부터 네 가지 정책 목표를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우선 소비자를 염두에 두고 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과거에는 쌀을 생산하기만 하면 돈이 되었지만, 이제는 다르죠. 소비자를 염두에 두고 고품질의 농산물을 생산하도록 독려했습니다. 둘째는 안전성입니다. 소비자가 우리 지역에서 난 농산물만큼은 안심하고 먹을 수 있도록 신뢰를 주는 겁니다. 세 번째 목표는 브랜드화, 네 번째 목표는 기능성 농산물 생산이었습니다.”

”?”시에서는 5대 특산물을 선정했다. 한우, 배, 포도, 인삼, 쌀의 다섯 가지 농산물이다. 이 시장은 다섯 가지 특산물에‘안성맞춤’이라는 브랜드를 붙였다.

“별짓 다 했습니다. 판매장에 가서 띠 두르고 주부들한테 우리 농산물을 홍보했죠. 리콜제도 백화점에서 제일 먼저 시작했습니다. 정말 품질관리, 브랜드관리만큼은 철저히 했습니다. 안성에서 구제역이 발생한 적이 있습니다. 백화점 매장에서 안성 한우 판매를 중단해야 했죠. 그런데 백화점에 다른 지역 한우를 갖다 놓으니까 소비자들이 안성 한우만 찾았다고 합니다. 자부심을 갖게 되었죠. 고소득층 주거 지역의 매장도 안성 한우가 점령했습니다. 품질 만큼은 안성이 인정받고 있는 거죠.”

치열한 농산물 브랜드 전쟁

지역 특산물 브랜드화는 안성만의 전략이 아니다. 이 시장은 지자체 사이의 치열한 농산물 경쟁을 소개했다.

“서울 지역에서 원래 여주, 이천, 안성의 쌀이 유명했죠. 이천의 경우 특산물이 쌀밖에 없었기 때문에 일찌감치 상표를 붙여 브랜드 마케팅을 시작했습니다. 이천의‘임금님 쌀’은 현재 최고의 브랜드 파워를 행사하며 가장 비싸게 팔리고 있습니다. 동일한 품질의 안성 쌀은 브랜드 마케팅이 늦어 가격이 천원이나 차이가 납니다.”

현재 시장에서는 안성 배와 나주 배, 안성 인삼과 금산 인삼 사이에서도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물론 그는 자신감이 넘친다.

“안성의 5대 특산물에 대한 평가는 최고입니다. 제1회 축산물 대상에서 안성 한우가 우승했고, 안성 배 역시 품평회에 나가면 매 번 상을 받습니다. 왜 안성의 농산물이 좋은 평가를 받을까요. 안성은 기후 조건이 좋고, 농민들의 기술이 앞서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장은 계속“농산물을 생산해도 팔기 힘든 시대”라고 강조했다. 그가 브랜드 마케팅에 그치지 않고 농업 마케팅 전문기관을 설립한 것도 이런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시와 농협, 농민, 대학 등 각 주체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하자고 제안했죠. 사업연합회라는 형태로요.‘안성맞춤 농협조합 공동법인’이라는 마케팅전문기관을 만들었습니다. 농업 마케팅을 전문으로 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기관이고, 최대의 조직입니다.”

농민은 최고의 농산물을 생산한다. 농협이 팔고, 시는 정책 개발 및 지원을 맡는다. 예산 확보와 브랜드 관리도 시의 몫이다. 시청 안에 ‘안성맞춤 마케팅담당관실’을 만들어 장기비전 수립과 전략 실행, 투자유치를 맡도록 했다. 이러한‘지역농업클러스터’모델은 안성시가 최초로 시도해 지금은 전국적인 모델이 되었다.‘생산만 하면 판매는 걱정 없다’는 인식 덕에 농민들의 불안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향후 과제는 농업가공입니다. 1차 농산물만으로는 경쟁력이 없습니다. 감자, 양파 등은 직접 손으로 다듬어 포장까지 마친 후 납품하고 있습니다. 배 즙 공장도 짓고 있죠. 가공을 해서 부가가치를 높이는 겁니다. 이제부터의 숙제입니다.”

”?”바우덕이와 남사당을 불러내다

‘안성맞춤’이라는 브랜드는 단순히 농업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이 시장은“시대적으로는 문화가 중요한 산업으로 대두했다”고 말한다. 농촌의 전통과 문화를 어떻게 산업화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고 한다. 그는‘장인의 혼이 살아 있는 세계적인 문화예술 도시’를 안성의 비전으로 정했다.

“안성장이 전국 3대 시장이 되면서 유동인구가 늘자 남사당패가 몰려들었죠. 남사당패에 바우덕이라는 아주 극적인 인물이 있었습니다. 여자의 몸으로 다섯 살에 남사당패에 맡겨졌고, 15세에 꼭두쇠(남사당패의 우두머리)가 되었습니다. 남존여비 사상이 철저하던 조선시대에 최하층 계급 출신 여성으로 한 단체를 이끈 인물은 바우덕이 밖에 없을 겁니다.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현대적인 해석이 가능하다고 생각해 바우덕이 축제를 시작했습니다.”

이 시장은 남사당의 여섯 마당을 재현해 상설공연을 열었다. 기대 이상의 호응이었다고 한다. 매 공연마다 평균 천명이상의 사람들이 찾았고, 젊은 관객의 비중도 컸다.
농악 연주가들을 모아‘안성시립 남사당풍물패’도 만들었다. 풍물패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당시 현지에서 초청 공연을 펼쳐 많은 주목을 받았다.

“앞으로 안성이 이런 문화를 세계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덕수 씨도 사물놀이를 세계에 알렸잖아요.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세계민속축전기구협의회(COF)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가입국이 89개국인데 4년마다 각 대륙을 돌면서 축제를 열고 있죠. 일종의 문화올림픽입니다. 2012년 대회를 안성이 유치했습니다. 남사당 공연을 전 세계인에게 보여줄 겁니다.”

전통문화의 진수,‘안성맞춤 랜드’

문화예술의 발전은 관광산업의 성장으로 이어진다. 이 시장은 “안성의 전통문화로 외국 관광객을 불러들이겠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외국 관광객이 오면 남대문, 경복궁, 경주만 데리고 갑니다. 그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즐길 거리가 다양해야죠. 전통문화를 보여줄 책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사당 공연도 그 중 하나죠. 안성장을 재현해‘안성맞춤랜드’를 만들려고 합니다. 용인의 에버랜드가 놀이동산이라면 안성맞춤랜드는 전통문화 교육의 장입니다. 일본과 중국 관광객을 타깃으로 하는 프로그램도 만들어야죠.”

이 시장은“안성이 전통 문화공연의 중심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남사당 풍물 외에도 궁중 무용인 태평무의 고향도 안성이라고 한다. 서민 문화와 궁중 문화를 동시에 품은 셈이다. 그의 머릿속은 정말 바쁘게 돌아가는 듯했다.“숙박시설도 만들고, 수도권 사람들을 안성으로 끌어들일 아이디어도 생각 중”이란다. “이런 노력을 통해 안성 시민이 일자리를 찾을 수 있다”며 숨 가쁘게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는다.

점심식사를 위해 자리를 옮겼다. 안성의 특산품인 한우 고기를 함께 맛보며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시장직에 세 번이나 당선된 비결을 물었다.

“진실하면 됩니다. 기교를 부리면 안 됩니다. 있는 그대로, 본 그대로 시장이 밀고 나가야 합니다. 짧은 시간 동안은 시민에게 인기를 잃을 수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 이해를 해줍니다. 시민에게 잘 보이려 기교를 부리면 나중에 더 큰 실망만 안겨주게 됩니다.”

소탈한 외모만큼이나 자신의 역할에 대한 그의 생각 역시 담백하다.

“전문가에게 모든 걸 다 맡깁니다. 부하 직원들에게도 늘‘여러분이 나보다 실력이 더 낫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해요. 제가 믿고 영입한 사람이라면 그에게 최대한 자율권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저는 실력이 없어 가끔 의견만 내는 시장입니다.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믿습니다.”

정리_ 이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