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안성 고삼 농협은 특별하다. 농민의 삶과 동떨어진 채 많은 비판을 받는 여타 농협과는 달리 오롯이 농민을 위한 사업을 힘있게 추진해가는 까닭이다. 농민 주유소, 농기계 대여 등 선도적인 사업을 통해 ‘농업 희망 찾기’의 근원지로 자리 잡기도 했다. 조직 내부도 농민운동단체와 같이 활기찬 모습이다.

고삼 농협을 특별하게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지역의 많은 농민이 자문하거나, 힘을 얻고 싶을 때면 농협을 찾는다고 한다. 농업인의 ‘멘토’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는 조현선 조합장을 만나기 위해서다.

‘희망탐사’를 시작한 후 여러 차례 조현선 조합장을 만나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그를 통해 우리 농업의 미래에 대한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3월 14일 안성 고삼면을 찾아 조현선 조합장을 만났다. 그와 마주앉아 눈을 맞추며 ‘특별한’ 농협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농민회 아니었다면 편히 살았을 것”

“1980년대부터 ‘한국가톨릭농민회’활동을 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죠. 사람이 바뀌었습니다. 제 성장의 자양분이 되었던 것 같아요. 아마 가톨릭농민회 활동이 아니었다면 다른 사람에게 묻어가며 걱정 없이 편하게 살았을 겁니다. (웃음)”

가톨릭 농민회 활동을 하던 1993년 우루과이 라운드(UR)가 타결됐다. 그를 비롯한 농민들의 상실감이 컸지만, 미래에 대한 고민을 더욱 치열하게 해야 했다. 농협을 통해 지역을 바꿔보자는 생각에 94년 조합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그의 나이 서른여덟 살이었다.

“당선 후 고삼농협 발전계획을 세웠습니다. 조합원을 만나면서 전수조사를 하고, 전문가들의 조언도 받았습니다. 친환경농업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했죠. 95년 천주교에서 ‘우리농촌 살리기 운동’을 시작했고, 우리가 생산한 농산물을 서울의 성당을 통해 구매하기로 했습니다.”

조합장이 된 그는 농산물 유통구조 혁신에도 힘을 쏟았다. 개별 농협 단위로 생산물을 유통하던 체계에 변화를 꾀한 것이다.

“99년 농협 조합장들을 모아 힘을 합치자고 제안했습니다. 이전까지 각 지역 농협들은 시장에 나가 경쟁하기에만 바빴죠. ‘사업연합회’형태로 개별 농협이 모인 뒤 전문가에게 맡겨 공동으로 판매하자고 했습니다.”

공동 판매를 통해 사업연합회는 농민들이 생산하는 쌀 전량을 수매할 수 있게 됐다.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쌀 판매에 어려움을 겪을 때면 농민들에게 지탄을 받기도 했다. 조현선 조합장은 “이것이 옳은 방향”이라며 농민들을 설득했다. 지금은 유통 규모가 1년에 7백억 원에 이르고, 전국적으로도 모델이 됐다.

개별 농협들은 공동 판매뿐 아니라 농자재 공동 구매에도 나섰다.

“농민들로부터 ‘농협에서 파는 사료값이 너무 비싸다’는 민원이 많았습니다. 사료회사들이 농민에게는 사료를 저렴하게 팔고, 오히려 농협에는 비싸게 팔았던 거죠. 22개에 이르던 거래 회사를 4개로 줄이고, 사료값을 직거래 가격 아래로 내렸습니다.”

각 농협별로 거래 가격이 달랐던 석유 문제도 해결했다. 석유회사들이 농협을 상대로 “장난을 많이 쳤다”고 한다. 불공정한 거래 관행을 없애기 위해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 하고, 농협중앙회에도 도움을 요청했다.

“공동구매는 복잡하지만, 나중에는 반드시 이익이 되더군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농협들이 협동을 통해 이득을 얻는 구조를 고민한 결과입니다. 약한 사람들끼리는 뭉쳐야죠. 지금은 뭉치면 뭉칠수록 힘을 얻는 구조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농가부채를 줄이는 길, 농기계 임대사업

농가부채 문제도 그의 고민거리 중 하나다. 정부의 보조가 있지만, 농민이 대부분의 부담을 지고 있는 현실이다. 그는 “농가 부채를 줄이고, 생산성 부채로 전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농기계 임대사업은 농가부채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했습니다. 농기계를 사는 것 자체가 부채입니다. 농가들이 개별적으로 사들이던 농기계를 농협에서 구입해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거죠. 낭비를 막고, 꼭 필요한 만큼만 구입할 수 있습니다. 퇴비 살포기, 콩 탈곡기 등을 일정 수량씩 구입해 마을별로 제공했습니다. 고장 날 경우를 대비해 농협에도 비상용 기계를 비치했죠.”

트랙터, 이앙기 등 대형 농기계들은 구입 시 농민들의 손해가 크다고 한다. 콤바인의 경우 가격이 4천만 원이 넘는다. 정부의 농가 지원 자금 중 농기계 부채에 투입되는 돈이 30%에 이른다. 조한선 조합장은 도의원에게 제안해 경기도 내 3개 시, 군에서 시범적으로 농기계 임대 사업을 실시했다. 노약자, 부녀자, 장애인들에게 우선적으로 혜택이 돌아가게 했다.

“현재 안성 전역과, 경기도 대부분 지역에서 실시하고 있습니다. 아직 예산이 충분치 않아 전국으로 확대되지는 못했죠. 원래 농협에서 직접 기계를 구매해서 운영했는데 고장이 잦고 수리비 부담이 컸습니다. 농민 중에 관리, 운영자를 정하고 수리비를 스스로 부담하게 하니까 고장이 확 줄었습니다. 물론 농협에서 기름값을 보조해주기 때문에 10년 전 비용으로 작업할 수 있습니다. 모두에게 ‘윈 – 윈’이 되어 농민들도 극찬을 합니다.”

그는 “농협이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해 오는 동안 농민들은 어려움을 겪어 왔다”며 안타까워했다. 농협 조합장으로서 그가 추진하는 모든 사업은 농민의 신뢰를 쌓고 불신을 메우는 과정이다.

“직원을 보내 농민들의 소득 현황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직접 가보면 농민들의 살림살이가 형편없습니다. 농민 60%가 연간 천만 원 정도의 소득에 그칩니다. ‘우리가 제대로 하고 있는가,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라며 반성하곤 합니다. 농민들의 부채가 늘어나도, 삶의 질이 개선되지 않아도 농협 직원들 월급은 그대로 나오잖아요.”

그는 고삼 농협 산하에 세 개의 위원회를 만들었다. 위원회에서는 농민의 소득과 삶의 질을 높이는 방안을 집중적으로 연구한다. 소득 증대를 위해 콩을 심자는 아이디어가 나온 적이 있다. 농협에서는 곧바로 고가의 콩 탈곡기를 구입해 농민들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농민 소득 증대를 위해 노동부의 ‘사회적 일자리 사업’에도 참여했다. 농촌에서 계절적 실업이 발생하는 점을 고려해 농한기에 농자재를 만들어 팔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농민들은 쌀겨, 퇴비 등을 만들어 매달 120 ~ 130만 원의 수익을 추가로 올릴 수 있었다. 현재 농민 50명을 모아 사회적 기업으로 등록하기 위한 신청까지 마친 상태다.

”?”농산물 매장은 농업의 전진기지

그는 “농업을 살리려면 소비자를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에게 농산물 매장은 단 순한 판매처가 아닌 ‘농업의 전진기지’이다.

“유기 농산물 판매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토양과 자연환경을 살리는 좋은 농업방식인데도 생산물을 팔기가 힘듭니다. ‘한살림’이나 ‘민우회’같은 농산물 소비 조직이 있지만, 돈이 없어 매장을 못 냅니다. 정부가 보조해줘야 합니다. 농림부에서 24억을 지원 예산으로 배정해 두었는데, 한미 FTA가 타결되면 주겠다고 해요. FTA 대책으로 만들어 두었으면 지금이라도 빨리 도와줘야죠.”

고삼 농협은 이미 2억 원을 들여 죽전, 수지, 분당에 3개의 농산물 매장을 냈다. 운영은 가톨릭농민회에서 맡고 있다. 매장에서 고삼 유기농 쌀만 판다는 조건을 붙였다.

그는 농협 이용객이 많은 지역을 추려 ‘프리미엄’매장을 만드는 계획도 갖고 있다. 이곳 의 운영 역시 소비자 단체에 맡긴다. 그는 “우리 같은 농협 사람들이 띠 두르고 나서면 식상하지만 외부 단체사람들이 운영하면 신선하다”며 웃었다.

조현선 조합장이 도시의 농산물 매장을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농산물 매장은 단순히 농산물을 사고파는 곳이 아닙니다. 도시인이 농업을 만나고 이해할 수 있는 교량 역할을 하게 되죠. 농업의 전진기지라고 생각합니다. 농민 스스로 우리 농산물을 이용해 달라고 홍보하는 것보다 도시의 소비자가 입소문을 내주는 것이 더 효과적입니다. 이웃에게 편하게 얘기할 수 있으니까요.”

국민 생각에 달린 농업의 미래

조현선 조합장은 거듭 “생산자와 소비자의 만남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민 전체가 농업을 이해하고 소중히 여겨야만 우리 농업의 미래가 밝다는 생각 때문이다.

“우리 국민이 얼마나 농촌과 농업의 필요성을 인정하는가에 따라 미래가 갈립니다. 자동차, 핸드폰 팔아 쌀 사먹으면 된다고 생각하면 농업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반면에 ‘농업이 있으니 푸른 들판도 보고, 황금 들녘도 있고 우리 삶이 더 풍요로워진다’고 생각하면 희망이 있는 거죠.”

그는 “도시 소비자가 농산물을 단순한 상품으로만 본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소비자와 생산자가 직접 현장에서 만날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한다.

“유기농업을 할 때 도시인들도 농업에 관심을 갖고, 체험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농민과 소비자가 만나면 서로 애환도 얘기하고 생각을 나누게 되죠. 도농교류는 희망을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만나면 희망을 만들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정리_ 이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