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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묻고, 물어 화성한과 공장을 찾았다. 어렵게 도착한 공장은 생각보다 규모가 꽤 컸다. 강단 있는 남편과 후덕한 인상의 아내가 일행을 반갑게 맞는다. 유기농 쌀로 만든 전통 한과로 유명한 화성한과의 강석찬 대표와 송희자 실장이다.

”?”두 사람 모두 귀농을 했지만, 농사일이 잘 맞지 않았다고 한다. 때마침 농산물 소비자와 생산자의 협동조합인 한살림에서 쌀을 이용한 가공 상품을 고민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작정 한과를 만든 것이 시작이었다. 만들어 본 적도 없는 한과를 팔겠다고 나섰으니 그 간의 고생과 시행착오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십년 여의 세월이 흐른 지금, 화성한과는 전통 한과 기업으로서는 전국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우뚝 섰다.

주말이라 텅 빈 공장의 손님 접대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두 부부의 흐뭇한 성공 이야기를 들으며, 귀농인들이 꼭 농사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상력을 발휘해 농산물 가공 사업이나 관련 사업에도 종사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는 사실을 곱씹었다.


농대를 나왔어도‘농’자를 몰랐다


강석찬 대표는 수원 농대 76학번이다. 배운 것이 있으니 농촌운동을 해보자는 생각에 학교를 졸업하고 화성으로 내려왔다. 가톨릭 농민회 간사로 일하고 있던 송희자 실장을 만나 1985년 부부의 연을 맺고, 화성에 정착했다. 고향도 아니었고, 돈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결혼 축의금을 털어 귀농 비용으로 썼다. 전셋집을 하나 얻고, 30마지기 땅으로 농사를 시작했다.

“농사의 농자도 몰랐어요. 힘으로 밀어붙이면 농사가 되는 줄 알았습니다. 여름 장마철이면 논두렁 하나 제대로 관리하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농사를 접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무척 힘이 들더군요. 농사를 지으면서 매년 200만 원씩 적자를 냈습니다.”

5년 만에 빚은 천만 원으로 늘었다. 도저히 농사로는 빚을 갚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송 실장은 부업으로 미숫가루를 만들고, 동네 사람들과 함께 메주를 만들기도 했다. 손수 담근 장을 전통 항아리에 담아 팔기도 했지만,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남아도는 쌀로 만들기 시작한 한과


연이은 시련 뒤에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다. 한살림에서 공급이 넘치는 쌀을 이용해 가공식품을 만들 생산자를 찾아 나선 것이다.

“너무 좋은 기회였죠. 쌀이 남아돈다니까 쌀강정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아주 특별한 쌀강정을 만들자고 마음먹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에게 강정 만드는 법을 묻고, 또 물었습니다. 전통 제조법을 알고 있는 전문가를 찾아가 비밀을 전수받기도 했죠. 진짜 옛날식으로 만드니 맛있더군요.”

시험 판매 결과 쌀로 만든 과자는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자신감을 얻어 한살림에 물건을 공급하기 위해 사무실을 찾아갔다. ‘생산자에게는 생활을, 소비자에게는 생명을’이라는 문구에 강 대표는 눈물을 왈칵 쏟았다. 한고비를 넘긴 것이다.

”?”1994년 정부로부터 지원받은 전통식품 지원 육성자금 6천만 원도 큰 힘이 됐다. 강 대표는 “딱 필요한 때 자금을 지원받았다”며 웃었다.

“사실 지원금을 받은 업체의 80%가 부도났습니다. 욕심이 생긴 업체들이 마구 지원을 받아 판매루트도 고려하지 않고 생산을 하다 보니 오히려 독이 된 거죠. 우리의 경우 딱 필요한 때 받았습니다. 작은 기업들은 적기에 적절한 자금을 지원 받으면 자리 잡는데 굉장히 도움이 되죠.”

개인 생산자들이 가공 산업을 시작하는 데에는 적잖은 어려움이 따른다고 한다. 식품가공 공장의 경우 1억 원이 넘는 돈을 들여 폐수처리 시설을 갖추어야 한다. 시설 투자에 거액의 비용이 들어가 다른 부분에는 투자할 여력을 잃는다. 강 대표는 농산물 가공 산업이 대기업, 수입식품업체 중심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면서 “국내 가공 생산자들에게 적절한 지원이 제공되도록 법이 제정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소비자가 함께 만든 생산물


화성한과의 발전을 이끈 숨은 주역은 소비자다. 때론 무서운 시어머니로, 때론 든든한 후원자로 조언을 아끼지 않으며 지금의 화성한과를 만들어냈다.

“생산자인 저를 소비자가 키운 셈입니다. 직접 공장에 와서 정보를 주고, 새로운 제조법을 알려주기도 했죠. 단순히 소비만 한 게 아니라 생산을 함께 고민한 겁니다. 어떤 분은 시어머니를 모시고 와서 노트 한 권 가득 제조법을 일러 주기도 했습니다. 이런 노력들이 우리를 지탱해줬다고 생각합니다.”

한성한과의 제품은 저렴한 가격과 전통적인 제조 방법으로 많은 호평을 받았다. 제품도 다양해졌다. 노인들이 좋아하는 부드러운 유과를 내놓고, 우리 밀을 사용한 약과를 선보이기도 했다. 소비자에게 큰 도움을 받은 만큼 끊임없이 스스로 채찍질을 해왔다.

“소비자가 늘어 이젠 정말 잘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소비자는 항상 완벽할 것을 요구합니다. 소비자에겐 용서가 없습니다.”


화성한과가 남다른 이유


성공에는 반드시 비결이 있다. 강 대표가 화성한과의 성공 비밀을 담담히 밝힌다.

“엿을 만들 때 공장에서 추출된 효소를 쓰는데 주로 외국산 입니다. 국산 농산물을 가공하는 생산자들의 대부분이 원료의 99%는 국산을 써도, 1%는 수입 효소를 사용하곤 합니다. 화성한과에서는 우리 땅에서 경작한 보리에서 나오는 효소를 쓰죠. 물론 우리도 100%는 아닙니다. 국산 설탕을 쓴다고 해도 그 원료인 사탕수수는 외국산 이죠.”

화성한과 제품의 유통 기한은 3개월로 타제품의 절반 수준이다. “모든 생산물은 만들어질 때 가장 맛있다”는 생각으로 최대한 유통기한을 줄였다. 주문이 들어오면 3일 안에 제조해 공급하는 주문생산 방식을 취해 신선도를 유지한다. 한과제품으로는 유일하게 겉 포장지에 제조일자까지 표기하고 있다.

“한과는 기름으로 튀기는 유탕처리를 많이 합니다. 처음에는 콩기름을 썼는데 유전자변형식품(GMO) 논란이 일자 미강유(쌀겨기름)를 쓰기 시작했죠. 제조 과정에서 사용된 기름은 4 ~ 5시간 정도 튀기고 나면 매일 폐기합니다. 폐유는 비누 만드는 곳에 보내고 있죠.”

강 대표는 앞으로 화성한과의 모든 제품을 ‘3무 과자’로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다.
화학첨가제, 기름, 설탕의 세 가지 재료를 쓰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이미‘동그랑 쌀과자’의 경우 이 원칙을 지켜 만들고 있다.

“3무를 내세우는 곳은 우리밖에 없습니다. 고유의 콘셉트로 만들고자 합니다. 우리 조상은 찹쌀을 열흘 정도 물에 담가놓은 후 삭혀서 유과를 만들었습니다. 실패 가능성은 크지만, 베이킹파우더를 쓰지 않아도 자연적으로 효소가 생기게 되죠. 올해 1월부터 법이 바뀌어 한과를 만드는 데 들어간 모든 재료를 표기해야 하는데 우리는 반대했습니다. 의무 사용재료를 법으로 정해, 넣지 않아도 되는 재료를 모두 넣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꼭 필요한 재료만 쓰는 사람들이 피해자가 되죠.”


백화점의 유혹을 뿌리치다


강 대표는 가공식품의 제조, 유통 방식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자신이 직접 겪은 고충을 토대로 한 그의 생각은 단단하다.

“연간 매출이 3억 원 정도 되었을 때 한 백화점에서 ‘한 시즌에 4 ~ 5억 원을 벌 수 있다’며 입점을 권했습니다. 강한 유혹이었지만,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백화점과 계약을 하고 그쪽의 요구를 맞추려면 대량 생산체제로 가야 합니다. 가격도 백화점이 원하는 수준에 맞춰야 하죠. ‘쌀값이 내렸으니 값을 내리자, 명절 때 ‘텐 플러스 원’행사를 하자.’ 등의 요구들 모두 들어줘야죠.”

”?”그는 화성한과가 20년에 걸쳐 조금씩 커왔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백화점에 입점했다 나오게 되면, 무리해서 늘렸던 시설이 모두 무용지물이 될 것이란 사실도 명백했다.

“이쪽 시장 생산자들이 한살림과 생활협동조합 시장에서만 거래하려는 이유가 있습니다. 한살림과 생협에서는 회비를 낸 조합원이 우리 물건을 사먹죠. 일반 시장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회비도 안 내고, 자신이 원하는 것만 골라 사먹습니다. 생산자에 대한 대우가 다를 수밖에 없죠. 백화점은 우리의 직거래 원칙에 맞지 않습니다. 백화점에서 물건이 안 팔리면 반품을 하거나 반값 할인 판매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농민이 땀 흘려 만든 생산물입니다.”

물론 개인사업자에게 시설 투자는 언제나 위험부담이 따르는 일이다. 강 대표는 생산자 간의 공동 투자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생산자들이 결합하는 것이 앞으로의 모델입니다. 아산의 푸른들 영농조합이 좋은 예죠. 1차 생산자(농민)들이 함께 투자를 해 가공공장을 운영하고 이익 역시 배분하는 겁니다. 경남 산청에서도 영농조합법인을 만들어 죽 제품을 생산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소비자와 생산자가 함께 간다’는 구호가 있지만, 사실 두 주체는 대립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소비자는 안전한 먹을거리를 싸게 먹으려 하고, 생산자는 비싸게 팔려 합니다. 그 대립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자본의 공동투자입니다.”


도마다 공동체가 운영하는 공장을 만들자


인터뷰 도중 화성한과의 제품 몇 가지를 맛볼 수 있었다. 평소 사무실에서도 간식으로 접한 적이 있어 고소한 내음이 더 정겹다. 부부는 앞으로 아이들을 위한 믿을 수 있는 먹을거리로서 한과를 널리 알려가겠다고 했다. 부부에게는 친환경 유기농 제품에 대한 굳은 신념이 있다.

“친환경 유기농은 단순히 많이 생산해서 많은 이윤을 창출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이 더 중요하죠. 비닐하우스를 짓고 화석 연료로 온풍기를 틀어 농산물을 생산하는 것은 유기농의 취지에 맞지 않습니다. 시민발전소의 박승옥 대표가 우리 공장 지붕에 태양광 발전 장치를 만들자고 해서 동의했습니다. 친환경 제품을 친환경 연료로 만드는 일은 아주 중요합니다.”

수출을 늘리는 것도, 공장 규모를 키우는 것도 맹목적인 추구 대상이 될 수는 없다.

“수출을 위해 생산을 늘리는 것도 자본주의가 추구하는 자본의 무한 증대와 최대 이윤 산출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생산 규모가 커지면 개인이 유지하기보다는 지역 공동체가 참여하는 가공공장이 되어야죠. 우리 공장 하나가 전국의 수요를 모두 소화할 필요도 없습니다. 지역의 수요에 따라 도마다 하나씩 화성한과와 같은 공장을 만드는 겁니다.”

갖은 우여곡절 끝에 성공을 거뒀지만, 아직 부부의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자신과 같은 귀농인들, 더 나아가 우리 농업을 위한 생각거리가 끊이지 않는다.

“캐나다에서는 도시인들이 땅을 사서 농민에게 제공합니다. 농민들은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기로 약속하고, 생산물은 도시인들이 책임지고 모두 팔아주죠. 20명 이상이 공동으로 투자하면 한두 사람이 죽더라도 그 땅에 계속 유기농을 지속할 수 있습니다. 귀농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기반을 잡는 일인데, 바로 땅이 문제입니다. 땅을 빌려 유기농을 하는 사람들은 땅에 투자를 할 수 없죠. 농산물 가공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아이템을 가진 분들이 공장이 없어 사업을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리_이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