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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이 저렇게 무너져 내렸는데 인터뷰나 하고 있어도 되는 것일까.’
희망탐사 인터뷰를 청하기 위해 전화했을 때 그는 이렇게 반문했다고 한다. 역사의 숨결이 담긴 문화재를 아끼는 이로서 숭례문을 바라보는 그의 마음은 무척 무거운 듯했다.

양철원 광명시 학예연구사는 문화 활동가에서 시청의 학예연구사로 변신해 지역의 향토사를 발굴하고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2월 16일 광명시를 찾아 지역의 역사를 담고 있는 그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문화운동가에서 학예연구사로


“2004년 광명시에서 학예연구사를 모집할 때 채용되었습니다. 시에서는 지역의 문화재를 관리하는 전문 인력을 필요로 했죠. 이전에는 지인이 운영하고 있는 광명문화원에서 지역축제 기획 등의 일을 했습니다. 문화원은 지역의 전통문화, 역사, 문화재를 연구하는 기능도 담당하고 있었죠.”

”?”그는 문화원 근무 당시 시로부터 위탁받아 오리 이원익 선생(조선시대 영의정을 지낸 청백리)의 기념관을 만드는 작업을 진행했다. 답사에 나선 그는 이원익 선생에 관한 연구 자료가 거의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 발로 뛰며 자료를 모아 이원익 선생의 평전을 만들고, 광명시에 위치한 민회빈 강씨(소현세자 부인)의 묘소에 대한 자료집도 펴냈다.

“광명시에는 문화재가 많지 않습니다. 얼마 되지도 않는 문화재인데, 소홀히 다루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시청에서는 문화원에서 할 수 없었던 방대한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광명시의 문화재 데이터가 부족해 도록을 만들기 시작했죠. 3년 전부터는 지역학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민들조차 광명시에 대해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사람의 삶은 행정적 숫자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광명 사람들의 정서, 심리 상태에서부터 주거 변화, 자연 환경에 이르는 종합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2005년부터 2년에 걸쳐 본편 4권과 자료집 1권으로 구성된 광명시지(市誌)를 만들었다.

“자료집에는 ‘광명지역학 백과사전’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 책 한 권만 보면 광명지역의 모든 정보를 알 수 있게끔 만들었죠. 예를 들어 ‘의료’라는 검색어로 책을 찾아보면 광명시의 의료 관련 통계자료, 의료기관 현황과 변화 등을 모두 보여줍니다.”



빠른 시지(市誌) 편찬의 비결

그는 다른 지자체에 비해 비교적 짧은 시간과 적은 예산으로 시지 발간 작업을 마무리했다.
“오랜 기간 지역에서 일하면서 정보와 지식을 축적해놓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다른 시, 군에서는 평균 3 ~ 5년 걸리는 일을 2년 만에 해냈죠. 수많은 사람이 달라붙어 10억에 달하는 예산을 써가며 시지를 만드는 곳도 있지만, 우리는 1억 3천만 원 정도의 예산으로 일을 끝냈습니다. 다른 지역의 경우 교수 등 외부 인사들이 시지 편찬을 맡습니다. 지역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니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죠. 우리는 지역에서 사학을 전공한 분, 자료 수집에 능한 지역 노인을 채용해 최소한의 인력으로 작업했습니다.”

그는“약점도 있다”고 했다. 한문 자료 등 고문헌은 많이 다루지 못한 점이다. 고문헌을 다루는 일은 속도를 내기 힘들고, 감수도 필요했다. 대신 근, 현대 자료를 많이 참고해 시지를 완성했다. 양 학예사에게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최근에는 사이버 향토자료관을 만들었습니다. 지역 문화재 사진을 비롯한 지역에서 발간된 모든 자료를 담으려고 합니다. 각 자료를 시기별로 분류해 두었고, 6개월마다 연표를 업데이트 하고 있습니다. ‘2005년 2월 1일 – 수영사업단 창단, LPG충전소 이전’식으로 사소한 내용까지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시지도 올려놓을 계획입니다.”


동지(洞誌)를 만들게 된 사연


양 학예사의 향토사 연구는 시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시지 편찬을 마무리한 후 “구체적인 내용을 모두 담을 수 없다는 한계”를 느껴 동지(洞誌)를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99년 문화원에서 광명시 학온동 동지를 만든 경험이 있습니다. 나름대로 좋았습니다. 경로당에 가서 노인 분들께 뭐하고 노시냐고 물으면 화투나 친다고 하시지요. 그럼 예전에는 뭘 하셨느냐고 묻는 겁니다. ‘줄다리기, 새끼 꼬기’ 등을 하셨다더군요. 언제 하셨느냐고 물으면 정월 보름에 하셨다는 겁니다.”

노인들과의 대화가 곧 전통문화를 발견해가는 과정이었다. 잊혀졌던 아방리(학온동의 옛 지명) 줄다리기 행사도 그렇게 찾아내 기록할 수 있었다. 지역문화에 관심 있는 주민들은 옛 기억을 확장해 연구하고, 재현까지 해냈다. 전승이 이루어진 것이다.

“2007년에는 소하동과 하안동의 동지를 만들었습니다. 올해에는 광명동과 철산동에서 작업을 이어가려고 합니다. 이에 더해 교회, 학교 등의 단체에서 자신들의 역사를 쓰겠다고 하면 경제적, 행정적 지원을 해주려고 합니다. 사료도 제공해 주고요. 1년에 다섯 곳만 지원해도 지역사료와 지역문화를 보완하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하안동 동지를 만들 때 그는 주민 여섯 명의 회고를 싣기도 했다. 개인의 이야기는 신뢰성이 떨어지지만, 공식 기록의 부족을 보충하려 한 것이다. 그는 “기록과 자료의 부족”이 가장 힘든 점이라고 했다. 수십 년 전 자료뿐 아니라 80년대 기록조차 폐기되어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었다. 동 사무소에서도 쓸 만한 자료를 찾기 힘들었고, 창고를 뒤져가며 작업을 이어나갔다.


사라진 역사를 메우는 어려움


그에 따르면 1940년대부터 60년대까지 광명시 역사는 거의 사라진 상태라고 한다. 지역사를 연구할 대학도 없었고, 그의 작업 이전에는 향토사 기록 시도가 전무했기 때문이다.

“광명시의 한 초등학교에서 기록을 뒤져봤더니 40 ~ 50년대의 자료는 모두 사라진 상태더군요. 당시의 좌-우 대립 때문에 월북한 사람도 있지만, 그런 인물에 대한 객관적 증언도 찾아 볼 수가 없는 형편입니다. 매우 열악하죠.”

전라도의 경우 시에서 대학에 요청해 향토사 연구 작업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안양 성결대학에서는 안양학연구소를 만들어 향토사 연구를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양 학예사는 “광명시에는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대학이 없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제가 이 지역에서 작업을 시작한 이유도 다른 사람들은 관심이 없고, 안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하고 있었다면, 굳이 하지 않았을 겁니다. 광명시 토박이 분들이 계시지만 이런 일을 한 분은 없었지요.”

그는 “지금부터 자료를 수집해도 늦지 않았다”고 힘주어 말한다. 사라진 역사를 되짚어가는 노력은 이미 시작됐다.


”?”“자료 수집을 하나의 캠페인으로 독려하고 있습니다. 물론 90년대부터 했다면 훨씬 좋았겠지요. 직접 발로 뛰는 노력이 부족했던 겁니다. 시정 소식지나 반상회보를 통한 홍보는 효과가 없어요. 직접 만나 부탁한 주민들만 자료를 가져와요. 앞으로 지역 내 학교를 돌아다니며 교육청과 함께 지역 문화 자료를 수집하려고 합니다. 자료를 기부하는 주민에게는 상품권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지역학이 살아난다


양 학예사는 “경기도 향토사에는 이미 쟁쟁한 맹장들이 있다”고 소개했다. 역사를 공부하며 지역문화에 관심을 둔 선구적인 학자들이 존재했지만, 인정을 받지 못해 고립되어 있다는 것이다.

“지방자치 시대가 되면서 이들이 면지, 동지를 만들기 시작했죠. 용인의 구성읍지, 이천의 설성면지 등 두껍고 방대한 분량의 책들이 90년대에 발간되었습니다. 당시 향토사 연구자들은 경제적인 자립이 힘들었습니다. 배우자의 수입에 의존해 작업을 해나갔고, 교사 등으로 근무하며 연구를 병행하는 경우도 있었죠.”

경제적인 어려움과 싸우며 힘겹게 향토사 분야를 개척한 그들이지만, 양 학예사는 “현재의 작업 수준이 그들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했다.

“요즘에는 시, 군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노하우도 쌓였죠. 경기문화재단에서도 일거리를 주고요. 하지만 오히려 이전 작업의 결과물이 더 학술적이고 구체적인 내용도 많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못 따라가죠. 체계도 훨씬 부족하고요.”

그래도 지역학에 대한 관심은 조금씩 커지는 추세다. 인근지역인 안산시에서는 안산지역연구소가 문을 열었고, 광명시 평생학습원에서는 6년간 성공회대에서 지역학 강좌를 열기도 했다. 수강생들은 광명시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공부한 뒤 졸업장을 받았다.

“조직 안에서 일하며 지역학을 고민하는 것이 주제넘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제 나름대로는 동지를 만드는 작업이 바로 지역학을 연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족한 점이 많지만, 현재의 노력이 쌓이다 보면 세월이 흐른 후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겠죠. 비단 역사뿐 아니라 다른 영역의 작업에도 향토사 자료가 큰 힘이 되리라 믿습니다.”

정리_이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