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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의 한 걸음 더

안승문.
교사-> 해직-> 서울교육위원. 이것이 그의 경력이다. 그는 교육위원으로서 스웨덴과 핀란드의 교육을 시찰하러 왔다가 돌아가는 마지막 순간, 발트해를 보며 목놓아 통곡했다는 사람이다.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고통스런 학교생활을 하고 있는지, 그 나라 아이들의 상황과 비교하며 흘린 눈물이다. 그는 이윽고 단봇짐을 싸메고 이곳 스웨덴 스톡홀름 대학에 유학을 왔다. 제대로 아이들을 교육하는 최고의 교육선진국을 배우고자 한 것이다. 그로부터 2년, 그는 이 지역의 여러 학교와 교육 현장, 교육자들과 교육 행정가들을 만나며 글도 쓰고 강연도 하면서 한국교육을 좀 더 나은 희망의 미래로 나아가게 하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어느 날 그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리고 이메일을 보내 왔다. 스웨덴과 핀란드의 교육정책과 현실을 보러 가자는 것이었다. 물론 하루를 온전히 빼기 어려운 내가 7박8일의 시간을, 그것도 내 돈을 들여가며 해외여행을 할 여유는 없었다. 더구나 교육의 중요성은 알지만 교육을 전공하는 다른 분들도 많은데 내가 구태여 또 이 문제에 개입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 분들과 함께 하면 결국 교육문제에 개입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예감도 여행에 부정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당연히 정중한 거절의 편지를 보냈다.

그는 다시 이메일을 보내왔다. “한국 교육의 희망이 무너졌습니다. 박변호사님이 이 여행에 함께 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어디에서 희망을 찾을 것입니까?”로 시작되는 긴 이메일이었다. 물론 내가 한국 교육의 희망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그의 간곡하고 절절한 요청에 나는 더 이상 저항할 수가 없었다. 이미 잡혀 있는 일정을 몇 개 취소하고 내 마일리지를 쓰고 나머지 돈을 부치면서 결국 이 여행에 합류했다. 안승문, 그는 분명 열정적인 교사이다.



”?”안승문 선생만이 아니었다. 이번 여행에 함께 한 30여명의 교사와 교수 등 교육계 인사들이 모두 하나같이 우리의 교육현실에 때로는 비분강개하고 때로는 절망하며 때로는 희망을 모색하는 분들이었다. 우리는 공항에서부터 스웨덴과 핀란드의 학교를 오가며 발트해를 건너는 쿠르즈 선상에서, 호텔에서, 시내를 오가는 버스 속에서 끝없이 논쟁하고 대화했다. 이런 논쟁과 대화는 새벽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우리의 교육현실이 어렵기는 하지만 바로 이들의 열정 때문에 분명히 희망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배움이 즐거움이 아니라 고통이 되고, 소수의 우수 학생을 위해 다수가 들러리가 된다. 돈도 없는데 남들 가는 학원도 가야 하고, 아침밥도 못 먹고 방학도 없이 학교 와서 별보고 집에 가지만 시험만 치고 나면 다 잊어버린다. 졸업장은 받았지만 갈 곳이 없고, 교사는 군림하고, 학생은 반항하고, 학부모는 막나가고, 교장은 꽉 막혔고, 상담할 시간은 없는데 처리할 공문은 많다. 학생이나 교사나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없다.

이것이 현장에서 교사들이 느끼는 우리 교육 현실이다. 그러나 스웨덴과 핀란드의 교육은 완전히 별천지였다. 그 교육의 현장을 둘러보며 결코 그 명성이 헛되지 않았음을 새삼 확인했다. 무엇보다도 인간적인 배려와 집중이 가장 눈에 띄었다. “모든 사람을 위한 교육”이 이 두 나라 교육의 모토이다. 아무도 자신과 부모의 사회적 지위, 재산, 능력에 따라 차별받지 아니한다. 아니 오히려 재산이 없고 장애가 있고 재능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집중적으로 지원을 함으로써, 그 아이들이 낙오되지 않도록 하는 정책이 인상적이었다. 나라의 예산과 자원을 기꺼이 아이들을 위해, 특히나 뒤처지는 아이들을 위해 투자하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 사교육 때문에 가난한 아이들이 뒤처진다. 장애와 학습능력 때문에 뒤처지는 아이들은 절망의 나락으로 빠진다. 어떤 교사는 우리의 교육정책을 “쭉정이는 다 버리고 간다”라고 표현했다. 이 아이들은 우리의 아이들이 아닌가. 결국 낙오된 아이들이 사회로 나와서 무엇이 될 것인가.

학교교육 최고의 핵심은 결국 사회적 능력을 키우는 일이다. 통합교육을 하고 무학년 교육을 하는 것은 결국 아이들이 나이와 생각, 학습능력과 장애, 경험을 넘어 서로 어울리고 서로 배움으로써 사회를 이해하고 적응하고 잘 살아가도록 하자는 것이다. 공부 잘하는 아이와 못하는 아이, 여학생과 남학생, 장애인과 비장애인, 가난한 집 아이와 부자집 아이. 이 모든 아이들이 함께 모여 공부하고 소통하고 자라나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하여 하나의 좋은 시민으로 성장하고 사회성을 갖춘, 제대로 된 한 인간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스웨덴과 핀란드의 교육은 철저한 독립과 자율을 자랑한다. 교육부는 전체적인 원칙과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뿐, 그 비전에 따라 교육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전적으로 지방정부와 학교, 교사들에게 맡겨진다. 자율은 창의성을 낳고 창의야말로 교육현장에서 우수한 교사와 좋은 학습을 낳는 원동력이 된다.

또 하나,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모두가 협력하고 연대하는 방식과 노력이 돋보였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교장과 교사, 교사와 교사, 교사와 학부모, 교사와 아이들이 모두 서로 소통하고 협력하고 있었다. 이른바 ‘3자 대화’라는 것도 교사와 학부모와 아이가 함께 하여 학습목표를 정하고 평가하며 조정하는 특별한 방식이었다. 이 과정에서 어떤 권위나 일방통행도 있을 수 없다. 오직 아이의 올바른 성장과 충분한 학습이라는 목표 외에는.

이제 한국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다. 단지 현재의 경제위기만이 아니다. 과거 개발과 성장의 시대에는 오직 경제성장이라는 하나의 목표만을 향해 돌진하는 시대였다. 그러나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다. OECD에 가입하고 세계 13위권의 경제대국을 이룩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허울이고 외형일 뿐이다. 우리의 근본과 뿌리가 흔들린다면 이런 외형적 결과는 금세 허물어지고, 끝없이 추락할 수도 있다. 우리 경제와 사회, 정치와 문화를 튼튼하게 하기 위해서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상호 소통할 수 있는 인간, 창의적이고 상상력을 피워낼 수 있는 인간을 양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바로 교육이 제자리에 돌아와야 한다. 21세기 보다 더 지속가능한 경제를 이루고, 한국의 문화적 르네상스를 열기 위해서 우리는, 바로 교육을 바로 세워야 한다. 너무나 다양한 이해관계와 논쟁이 있지만 비전을 제대로 가다듬고 그 절차와 방식을 갖추고 함께 토론하고 합의해 나간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이다. 우리가 스톡홀롬과 헬싱키에서 꾸는 간절한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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