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 지역에서는 청년들이 일군 임팩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희망제작소가 이들을 ‘소셜디자이너’라고 호명하는 이유입니다. 나의 성장이 로컬의 변화로 이어지는 소셜디자이너들의 다채로운 활동과 이야기를 전합니다.
‘손따미’ 채지연 스튜디오윔지 대표 | 부산
동글동글 호빵 같은 동물이 있습니다. 강아지 같기도, 살찐 토끼 같기도 합니다. 이 친구의 이름은 ‘손따미’입니다. 2019년 태어났습니다. ‘손따미’란 이름은 작가 채지연(32) 씨(스튜디오 윔지 대표)가 손에 땀이 많은 데서 나왔습니다. 단점이 개성이라는 뜻을 담았답니다. 만약 당신이 부산을 구석구석 돌아본다면, 이 동글동글한 친구를 여러 곳에서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채지연 씨가 만든 달팽이(카페거리), MZ를 꿈꾸는 산신령과 그의 말썽꾸러기 호랑이(부산 서면)…. 채지연 작가의 사진도 볼 수 있을 겁니다. 자랑스러운 부산 시민을 꼽는 ‘2023 갓생림픽’에 그가 뽑혔습니다. ‘손따미’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1만 명이 넘습니다. 그가 만든 굿즈들은 완판 기록을 세우죠. 지금까지 따낸 지원사업 규모가 1억여 원이랍니다.
그는 그림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 부산 출신도 아닙니다. 전남 광양이 고향이고 컴퓨터공학을 전공해 홈페이지 만드는 회사에서 8년을 일했습니다. 처음엔 일러스트레이터 프로그램도 쓸 줄 몰랐답니다. 물어물어 “구불구불한 길”을 한 땀 한 땀 돌아왔답니다. 이제 시작하는 작가들은 “쭉 뻗은 길”을 걷도록 자신의 노하우를 SNS에 올리고 클래스를 열어 공유합니다.

손에 땀이 많아 ‘손따미’…‘단점이 개성’ 메시지 담아 인기
-부산은 어떻게 오시게 된 거예요?
=전라남도 광양이 고향이다. 전시나 영화도 보고 인프라가 있는 곳에서 살아보고 싶더라고요. 서울은 무서워서 부산으로 갔죠. 부산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어요. 학교 다닐 때 코딩이 힘들어서 나중엔 안 하려고 했는데 취직해 코딩을 했죠. 도청이나 군청 홈페이지를 만들었어요.
그림을 배운 적 없어요. 그림은 어릴 때 끄적거리만 했는데 부모님이 그건 나중에 취미로 하라고 하셔서 학교 다닐 때는 그냥 공부만 했어요. 그렇게 가둬뒀다가 ‘이게 재밌네’하며 터저버렸던 거 같아요. 우연히 책 만들기 수업을 듣게 됐는데 글 분량이 적어 그림을 그려보자 한 거죠. 재밌더라고요. 2019년 제가 28살이 되던 해, 어린이날이었어요. 아이패드를 사면 애플 펜슬을 선물로 준다고 하더라고요. 성인인데도 선물 주냐 했더니 준다고 해요. 그 아이패드로 ‘손따미’ 활동을 시작했어요.
-‘손따미’는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으신 거예요?
=특별히 어떤 동물을 생각하진 않았어요. 다들 자기가 보고 싶은 동물을 캐릭터에서 보더라고요. 제가 손에 땀이 많이 나서 불편해요. ‘손따미’ 이름은 그렇게 나왔어요. ‘단점도 개성이다’라는 모토로, 자기 단점을 너무 싫어하지 마시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어요. 그 캐릭터가 인스타그램에서 점점 유명해졌어요. 그렇게 여러 구청이나 국민은행 캐릭터 등을 만들게 됐죠.

굿즈 제작 과정, 지원사업 선정 비법 공유
-‘손따미’ 굿즈나 캐릭터들이 인기가 많던데요.
=스토리가 있는 캐릭터, 배려가 담긴 굿즈를 만들려고 해요. 부산 전포공구길 스탬프 투어 굿즈를 만든 적이 있는데 그냥 스탬프는 재미없잖아요. 3D프린터로 작은 공구함을 만들었어요. 투어하면서 그 공구함에 미니 공구를 채우는 거예요. 공구를 다 모아오면 선물을 드리고요. 국민은행 중고등학생 대상 어플에 매주 웹툰 연재하는데 처음엔 원고가 너무 딱딱했어요. 원고 말투가 30대더라고요. 댓글이 90여 개밖에 안 달리더라고요. 안 되겠다 싶어서 제가 10대 단톡방에 들어갔어요. 10대들이 쓰는 언어를 익혀 원고를 손 봤어요. 지금은 댓글이 9천개 씩 달려요.
부산 진구 서면 캐릭터도 만들었는데요. 스토리가 있어야 재밌겠더라고요. 저는 혼자 일하니 회의를 같이 할 사람이 없잖아요. 담당자나 챗GPT랑 대화를 많이 해요. 서면의 역사, 설화, 이야기 거리를 살펴 보고 스토리를 뽑아내요. 챗GPT가 가끔 거짓말을 하거든요. 광안리에 어떤 동물이 사냐고 물으니 바다사자라는 거예요. 거긴 바다사자가 살지 않아요. 왜 추천해줬냐 그랬더니 ‘제 실수입니다’라고 답하더라고요. 검증해야 해요. 서면 캐릭터로 MZ를 따라하고 싶어하는 산신령과 성격이 꼬인 호랑이를 만들었어요. 산신령이 입은 한복은 옛 서면 호천마을 사람들 의복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산신령은 온화하고 놀기 좋아하는데 호랑이가 도통 말을 안 듣죠. 이 캐릭터가 부산 진구의 다른 캐릭터를 다 잡아먹었어요. 산신령과 호랑이 이모티콘을 4만 개 뿌렸는데 2분만에 완판, 지금까지 20만 개가 팔렸어요. 진구 어딜 가든 산신령과 호랑이가 있더라고요. 기분이 정말 좋죠. 부산 온천천 카페거리 캐릭터는 천천히 움직이는 달팽이에요. 온천천 카페거리가 벚꽃이 유명하거든요. 계절에 따른 변화가 아름다워요. 그런 아름다움을 하나하나 천천히 이야기해 주는 요정이에요. 거기 상인들이 아주 맘에 들어하셨어요. 달팽이 동상도 세워주셨어요. 하다 보면 길이 열리더라고요.

-그중에서도 가장 성취감이 컸던 작업은 뭐예요?
=부산시랑 장애인연합회가 함께 벌인 장애인 여행 나래버스투어 캐릭터와 굿즈를 만들었어요. 장애인들이 쓸 굿즈이기 때문에 고려해야 할 게 많았어요. 제가 부산 기장 장애인복지관에서 발달장애인들에게 그림을 가르쳐 왔거든요. 한 명 한 명 대화하며 노는 것처럼 수업해요. 장애인한테는 스티커 떼기가 힘들 수 있거든요. 그래서 배경지를 다 없애고 스티커도 크기를 키웠어요. 굿즈키트를 목에 걸 수 있도록 만들었고요. 다이어리 꾸미기 했는데 다들 좋아하시더라고요. 정말 뿌듯했어요. 제가 이제까지 굿즈 만들어 온 게 헛되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작 노하우를 SNS에 다 공개하던데요.
=‘다른 사람이 따라 하면 어떻게 하냐’ 그러는데 제 생각엔 할 사람은 하고 안 할 사람은 어차피 안 해요. 제가 지원사업을 이제까지 1억 정도 받았어요. 그 노하우도 클래스를 열어 알려드려요. 지난해부터 한 달에 30여명씩 수강생들을 받는거 같아요
-지원사업엔 어떻게 도전하시게 된 거예요?
=제가 관공서 홈페이지를 만들었잖아요. 그거 하면서 여러 지원사업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죠. 사람들이 관공서 홈페이지 잘 안 들어가잖아요. 놓치는 게 많더라고요. 제가 지원사업에 선정될 수 있었던 건 글을 잘 써서는 아니에요. 이 지원사업의 목적에 맞는 사람이라는 증명을 잘했던 거 같아요. 어디 가나 사진을 찍고, 제 성과를 기록하고 증명해요. 다양한 활동을 하니까 분야가 넓어져 지원사업을 더 받을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지원사업의 장점과 단점은?
=장점은 돈 주는 거. 제 자본으로 해볼 수 없는 걸 해볼 수 있잖아요. 멘토링도 해주고요. 단점은 사업이 끝난 뒤가 없다는 점이에요. ‘책을 내라’ 해서 책을 냈어요. ‘크리에이터가 돼라’ 해서 유튜브 개설했어요. 그러면 그 다음은요? 그 뒤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이드가 없잖아요. 저는 멘토링할 때, 지금 이 돈을 어떻게 쓸까에 집중하지 말고 그다음 뭘 할까를 생각해보라고 조언해요.
-올해엔 회사 대표가 되셨는데요.
=스튜디오 윔지는 지난 2월 만들었어요. 윔지는 엉뚱하다는 뜻이래요. 제가 언제까지 지원사업에 기대 활동할 수는 없으니 비즈니스에 더 초첨을 둬야 할 것 같았어요. 일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니 제가 혼자 다 하거든요. 일은 점점 많아지고요. 직원을 고용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어요.
-‘손따미’ 활동 초반엔 회사 생활과 병행하셨어요?
=회사는 8년 정도 다녔어요. ‘손따미’ 일이 커져 회사를 그만두고 전념하게 됐죠. 회사 다닐 때 정신과 질환 진단을 받았어요. 겉으로 봐선 아무도 모르는데, 사실 제가 하루에 약을 20개씩 먹어야 해요. 회사 생활이 힘들기도 했어요. 관공서 홈페이지 만들 때 지켜야 할 게 너무 많아요. 엄청 피곤해요. 처음 병증이 찾아왔을 때 일하다 공황이 와 울고 그랬어요.
-타지에서 사시는 게 힘들지는 않았어요?
=어떤 날, 집에 혼자 있는데 하루 종일 제가 한 마디도 안 한 거예요. 나는 왜 살지? 왜 여기 있지? 그런 생각이 들고 너무 외로웠어요. (SIR대회를 보면서) 내가 나이 들었을 때도 나 혼자 뭔가를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림은 왜 좋으세요?
=지금은 재미라기보다는 제 감정이나 기분, 이런 걸 표현하는 게 좋아요. 요즘엔 욕심이 많아져서 이렇게 표현하고 싶은데 왜 여기까지밖에 안될까 아쉬움과 답답함이 커지는 거 같아요. 주로 집에서 일하는데 여기저기서 많이 불러요. 너무 감사하죠. 그런데 힘들어요. 하루 종일 일하는 모드인데, 제가 아프고 나서 주치의 선생님이 그랬어요. “그냥 일을 하세요. 일이 삶의 원동력인 거 같아요.”

아프거나 힘들면 글을 써요
-활기차고 사교적이신 거 같이 보여요.
=저는 사람들과 척을 지지 않아요. 화가 나도 티를 안 내요. 우선 알겠다고 그래요. 일단 일을 먼저 해야 하잖아요. 시안을 줄 때부터 ‘이 시안대로 될 리가 없지’라고 생각해요. 바꾸라고 하면 바꿔요. 이골이 났나 봐요. 저는 아프거나 힘든 일이 있으면 밤에 글을 써요. 2019년부터 매년 독립출판으로 책 한 권을 출판해요. 손따미라는 이름과 별개로 채지연이란 이름으로 쓴 책이 따로 있어요. 제가 힘들고 우울할 때 쓴 책들이죠. ‘물빠진 팔레트’라는 제 독립출판사 이름으로 나와요. 이건 지인들도 잘 몰라요. 밤에 방에 스탠드 하나 켜고 글을 쓸 때 마음이 제일 평화로운 거 같아요.
-언제 제일 힘드세요?
=저는 고위험군 환자이기 때문에 그냥 이유 없이 힘든 시기가 와요. 그냥 아파요. 그래서 왜 아픈지 따지기보다 ‘내가 지금 아프구나, 병원에 가야 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해요. 처음엔 강박증 때문에 병원에 갔어요. 제가 점검 강박이 심했거든요. 집에 불이 꺼졌는지, 가스 밸브 잠궜는지. 일상생활이 안돼 개인병원에 갔는데 대학병원에 가보라는 거예요. CT, MRI 검사 다하고 대학병원에 긴급 입원했어요. 그때 제가 회사에 전화해 입원해야 하니 병가 처리해달라고 했어요. 학교도 병행하는 중이었는데 학교에도 전화해 휴학 처리해 달라고 하고 장학금 처리까지 문의했어요. 대학병원 교수님이 저는 정말 특이한 케이스래요. 고위험군인데 일을 잘하고 약도 잘 먹고 병원도 알아서 잘 오고.
-부산에는 계속 계실 건가요?
=서울 인프라가 더 좋은데 왜 계속 부산에 사냐고 묻기도 해요. 그런데 저는 부산에 있는 지원 사업도 다 못하거든요. 부산에 있는 인프라도 충분히 못 즐겨요. 또 굳이 서울에 가지 않아도 연락이 오고요. 부산에 살아도 다른 지역 지원사업도 딸 수 있고요.
-소셜디자이너클럽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각 지역 인프라들이 어떤 게 있는지 서로 나눴으면 좋겠어요. 부산에 모모스 커피가 유명하거든요. 모모스 커피는 뚱딴지같은 곳에 서 있어요. 모모스커피가 유명해지면서 다른 상점들도 들어와 이제 그곳이 커피 거리가 됐어요. 한 곳에 제 디자인스튜디오를 만들고 그 거리가 소품샵 거리로 커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인프라가 적다고만 생각하지 않고 그 인프라를 자기가 꼭꼭 씹어 잘 소화했으면 좋겠어요.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지식을 더 쌓아서 제가 아는 걸 다른 작가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저는 너무 구불구불한 숲길을 걸어왔어요. 스티커 하나 어떻게 만드는지 몰라 검색하고 여기저기 물어가며 배웠어요. 일러스트레이터 프로그램을 다룰지도 몰랐어요. 초보작가님, 창작자 분들이 제가 걸어온 구불구불한 길 대신 곧고 빠른 편한 길을 걸어올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 싶어요.
글: 김소민 연구위원 사진: 채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