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계출생율 0.72를 기록한 한국사회는 2025년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20%를 넘어서는 초고령사회로 빠르게 진입할 전망이다.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진입하는 초고령사회는 연금과 의료보험, 장기요양보험 등 사회보장제도의 재정부담 증가와 함께 노인 빈곤, 고독사 등 사회적 문제 심화로 이어진다.
정부는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를 도입했고, 2018년에는 지역사회 통합돌봄 추진 로드맵을 발표하며 선도사업을 시작했다. 관련 법률이 제정됨에 따라 2026년부터는 전국으로 확산된다. 지역사회 통합돌봄은 기존 시설 입소 중심에서 지역단위 보건의료 및 돌봄, 생활서비스를 제공해 지금까지 살아온 지역사회에서 노년의 삶을 보내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20년 전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희망제작소가 목민관클럽 8개 지방정부(강원 고성군, 대전 유성구·중구, 서울 관악구·성동구·은평구·중랑구, 충북 진천군, 이상 지방정부 이름 가나다순) 단체장‧공직자들과 함께 일본 나가노현 사쿠시와 도쿄도 시나가와구 일대를 다녀왔다.

방문의료의 선진지, 나가노현 사쿠시
일본에서도 의료 선진도시로 알려진 나가노현 사쿠시는 해발 700~800m 고산지역이라 뇌출혈로 사망하는 주민이 많았다. 부족한 의료 인프라를 극복하고자 ‘예방이 가장 좋은 치료다’라는 구호 아래 주민자치 활동을 열심히 했고, 의료와 돌봄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연계했다. 주민들은 지역 병원에 대한 신뢰가 매우 높다.
인구 10만 명인 사쿠시에는 종합병원인 사쿠병원을 비롯해 7개의 병원이 있고, 일반진료소(동네의원) 88개소, 치과진료소 55개소가 네크워크로 연결되어 있다. 병원들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마치 하나의 큰 병원처럼 움직인다. 예를 들면, 병원을 옮길 때 의사 소개서만 있으면 추가로 초진비가 들지 않는다.
이런 의료시스템에 돌봄시스템이 연계되는데, 방문간호스테이션이 방문의료와 돌봄의 중심역할을 한다. 병원에서 퇴원하는 노인들은 개호노인보건시설에 입소하거나 곧장 자택으로 퇴원하는데, 이들의 의료와 돌봄을 방문간호스테이션이 담당한다. 사쿠시에는 총 6개의 방문간호스테이션이 있다.
사쿠병원은 사쿠시가 지역포괄케어시스템을 만들어가던 2016년 우스다건강관을 새롭게 열었다. 사쿠병원 의사들의 생활건강 강좌, 지역주민과 의료진의 커뮤니티 활동 등을 통해 주민들의 일상적인 건강관리 활동을 지원하고 병원과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큰 부엌이 달린 진료소, 홋치노롯지
‘홋치의 오두막’이라는 뜻을 지닌 홋치노롯지는 부엌이 달린 커다란 거실이 진료소 역할을 하고, 실내 공간 곳곳이 놀이방도 되고 작은 도서실도 되는 독특한 곳이다.
내과, 소아과, 재택의료, 방문진료 등의 의료서비스와 장애아동 보육이나 방과 후 돌봄 서비스도 제공한다. 홋치노롯지에선 의사도 간호사도 평상복으로 일하기 때문에 케어하는 사람과 케어받는 사람의 경계가 모호하다.
덕분에 환자와 보호자들이 편하게 찾아와 소통하면서 의료와 돌봄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작은 도서실에서는 책을 읽거나 환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서 비치하는 등 삶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면서 서로돌봄을 실현하고 있다.

도쿄도 시나가와구의 지역포괄케어시스템
일본 도쿄도 23개의 특별구 중 하나인 시나가와구는 ‘생생계획21’이라는 3개년 개호보험사업계획을 수립해 실행하고 있다. 현재는 2024년부터 2026년까지 제9기 계획을 추진 중이다. ‘생생계획21’ 계획은 ‘가능한 정든 지역·우리 집에서 산다’를 목표로 정했다. 고령자와 가족이 요양보험 서비스 등의 공적 서비스와 주민의 서로돌봄 활동, 민간 서비스를 활용하면서 가급적 익숙한 지역, 자신의 집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한다.
시나가와구는 고령자 등이 일상적인 생활을 하는 지역으로 13개 권역을 설정해 권역별 재택개호지원센터와 버팀목 사랑·안심 스테이션을 설치하고 사회복지협의회의 생활지원 코디네이터를 추가해 종합적인 상담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모리사와 쿄코 시나가와구청장은 “지역 내에 그룹홈과 같은 익숙한 시설을 많이 만들고 매일 안부를 확인하는 등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보살피고 지켜나가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① 시나가와 종합복지센터 ‘야시오미나미 특별양호노인홈’
사회복지법인 시나가와 종합복지센터가 위탁·운영하는 야시오미나미 특별양호노인홈은 심신에 현저한 장애가 있어 가정에서 생활하기 어려운 노인을 위한 시설이다. 시나가와구야시오미나미중학교(1979년 개교)가 2008년 폐교되자, 그 건물을 내부만 수리해 2011년 5월에 오픈했다. 개인실과 4인실이 있으며, 4인실의 경우에도 칸막이를 설치해 사생활이 보호되도록 했다. 장기체류 89명, 쇼트스테이(단기체류) 11명 등 총 100명이 이용할 수 있는 대형 시설이다. 개인실 기준 월 6만엔(약 55만원)가량 자부담하며, 학교의 체육관 시설을 그대로 살려두어 노인들은 물론 지역주민들이 일상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개방해 놓았다.


②시나가와구 사회복지법인 ‘복영회’
1989년 시나가와구와 협력해 설립된 ‘복영회’는 특별양호노인홈, 경비노인홈, 재택서비스센터, 재택개호지원센터, 아동복지시설, 정신장애인복지시설 등을 운영하는 종합사회복지법인이다. 이 가운데 특별양호노인홈 입소자는 90% 이상이 휠체어에 의지하고 24시간 모니터링이 필요한 노인들이다.
복영회는 돌봄 노동자의 노동강도를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며, 돌봄인력 부족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첨단의료기기와 IT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입소자를 침대에서 휠체어로 옮길 때 리프트를 사용하고, 휠체어와 유사하게 생긴 욕조도 갖추고 있다. 또한 ICT기기를 활용해 수면상태와 호흡상태 등 실시간 데이터를 수집해 관리하고 장기적인 건강정보 추적관리도 하고 있다.

고령자 노인주택 ‘코코판 가와사키 다카츠’
코코판 가와사키 다카츠는 서비스제공형 고령자주택(사코주)를 포함한 복지·돌봄 복합시설로 1946년 학습지 회사로 시작해 일본 최대 교육·의료복지 기업으로 성장한 각켄그룹이 만든 지역포괄케어 복합시설이다. 4층 건물에 사코주(총 79실), 방문요양사업소, 치매고령자그룹홈(2그룹 18명), 각켄학습교실(유아‧초등·중등 대상), 아동발달지원시설, 도서관 등을 갖추고 있다. 여러 유형의 고령자 서비스 시설을 통합적으로 짓고, 어린이들이 이용하는 시설을 함께 운영하는 점이 눈에 띈다.

각켄그룹은 일본 고령자주택 분야의 대표적인 민간사업자로 고가의 고령자주택과 저소득층 중심의 노인요양시설(개호노인 보건시설, 특별양호노인홈) 사이에서 중산층의 선택지가 많지 않다는 점에 주목해, 중산층(월 15만엔, 약 130만원 내외) 고령자들을 위한 고령자주택과 케어시설 사업에 집중해왔다. 각켄그룹의 고령자주택은 건강한 고령자부터 요양·의료가 필요한 고령자까지 포괄하는 코코판(서비스제공형 고령자주택)과 메디컬케어서비스 시설(치매고령자 그룹홈) 등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가와사키시에서 운영 중인 각켄그룹의 코코판은 7곳, 메디컬케어서비스 시설은 5곳으로, 가와사키시의 지역포괄케어 정책에 발맞춰 시스템을 갖춰나가고 있다.
각켄그룹의 코코판은 중산층을 위해 일본정부가 2011년 도입한 ‘사코주(중산층 평균연금인 150만원 내외로 거주하면서 24시간 간병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노인임대주택)’의 모델이 됐다. 사코주는 민간이 정부에서 보조금(가구당 약 1,100만원)과 재산세·취득세 감면, 대출 혜택 등의 지원을 받아 짓고, 보증금 없이 기존 월세에 공급한다. 이러한 정책 도입으로 10년 만에 28만6천여 가구의 사코주가 일본 전역에 공급됐다.
글: 송정복 희망제작소 연구원‧목민관클럽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