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이 화두입니다. 전 세계는 물론 한국사회의 불평등은 마냥 외면할 수 없는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자본도, 지역도, 인구도, 지역도 불평등투성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리고 있는데요. 지역소멸, 저출생, 부의 양극화 등 복잡한 사안들이 얽혀있어 해법을 찾기 쉽지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단박에 바꾸는 이상을 바라보기보다 당장 할 수 있는 실천을 지역사회 내에서 ‘지역순환경제’로 펼쳐보자고 제안하고, 실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매튜 브라운(영국 프레스턴시의회 의장)과 닐 맥킨로이(미국 ‘협력하는 민주주의’ CWB 글로벌 리더)입니다.
매튜 브라운과 닐 맥킨로이가 주창하는 ‘지역순환경제’, 알듯 말 듯 한 단어처럼 들리죠. 지역순환경제는 지역사회가 자산을 직접 소유하고, 통제하는 것을 기반으로 지역 경제를 변화시키는 민주적 경제 개발 전략인 지역 공동체 자산 구축(Community Wealth Building, CWB)을 뜻합니다.
희망제작소가 지향하는 연구와 맞닿아있는 만큼 지난 9월 30일부터 10월 4일까지 닷새 동안 서울, 경기, 대전, 전남 영암군 등지에서 <지속가능한 로컬, 민주주의 경제모델구축 국제포럼>을 개최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포럼 현장을 소개합니다.
갈수록 심화된 불평등 문제…해답은 현장에서
희망제작소와 함께 포럼을 주최한 정원오 목민관클럽 상임대표(서울 성동구청장)는 개회사를 통해 “인구감소와 수도권 집중 현상으로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이 날로 심화되고 있다. 지역의 어려움을 너머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는 만큼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한다”며 포문을 열었습니다.
이은경 희망제작소 소장은 “사회혁신을 실천해온 희망제작소가 새로운 비전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지역 공동체 자산화 구축(CWB) 전략을 만났다”라며 “자본주의 중심의 주류 경제 원리, 경제 시스템을 바꿔나간다는 점이 큰 자극이 되었고, 사회혁신과 지역 자산화 구축(CWB)과의 접점을 만들어갈 수 있으리라 본다”라고 포럼 취지를 밝혔습니다.
공동주최한 박정현 의원(대전 대덕구)은 인사말을 통해 “해외에서 주목받고 있는 지역 공동체 자산 구축의 핵심은 지역에서 쌓은 부가 선순환되는 전략”이라며 “프레스턴 시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었지만, 4년 만에 낙후된 도시 20%에서 살기 좋은 도시로 바뀌었다. 지역사회의 부를 증대시키는 전략”이라고 말했습니다.
송재봉 의원도 “지방소멸의 위기에 직면한 가운데 뚜렷한 해법을 만들고 있지 못한 현실에서 민주주의 경제모델을 어떻게 실천하고, 성과를 거두고 있는지 배우고, 지역과 국제적 무대가 연대하는 자리”라고 축사를 건넸습니다. 한국 사회는 물론 각 지역들이 처한 현실을 돌아보면, 정치·경제·사회 시스템의 변화가 요구되고 있습니다. 거시적인 방식으로 해답을 찾기엔 한계가 분명하다는 데 공감했습니다.
지역의 부가 우리 지역에 머문다면
불평등 문제의 대안을 새로이 모색하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이번 포럼의 연사로 초대한 매튜 브라운과 닐 맥킨로이입니다. 2018년부터 영국 프레스턴 시 시의회 의장을 지내고 있는 매튜 브라운은 지역의 역량과 자원에 기반한 지역 공동체 자산 구축(CWB) 전략인 ‘프레스턴 모델’을 설계·추진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협력하는 민주주의(The Democracy Collaborative, TDC)에서 CWB 글로벌 리더로 활동 중인 닐 맥킨로이는 후기 자본주의의 병폐를 개선해 지속 가능한 경제모델을 실천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펼치고 있는 지역 공동체 자산 구축(CWB) 전략은 무엇일까요. 불평등한 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속가능성을 만들어내는 접근법인데요. 궁극적으로는 시스템의 변화를 지향하지만, 각 지역마다 처한 현실에 맞게끔 실용적으로 전략을 적용하며 변화의 흐름을 이어가는 게 중요합니다. 지역 공동체 자산 구축(CWB)의 핵심은 지역 내 자원이 누수되지 않고 순환되도록 촉진하면서 지역의 내생적 힘을 키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역 공동체 자산 구축(CWB) 전략을 이루는 핵심 요소는 무엇일까요. 지역 공동체 자산 구축(CWB)를 구성하는 5개 기둥은 다음과 같습니다. ▲공정한 노동 ▲지역 금융 ▲토지와 자산의 공정한 이용 ▲진보적 조달 ▲포용적이고 민주적인 기업 등입니다.
해당 지역 혹은 경제 생태계에서 ‘닻’ 역할을 하거나 영향을 끼치는 앵커기관, 지역 내 다양한 주체(대학, 병원, 기업)와의 협력이 밑바탕돼야 합니다. 지역이 보유한 인적·물적 자원을 파악하고, 연결하고, 시너지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러한 지역 공동체 자산 구축(CWB) 전략은 현재 영국의 스코틀랜드, 프레스턴, 미국의 보스턴, 시애틀, 시카고, 애틀랜타,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호주 등에서 시도되고 있습니다.
매튜 브라운과 닐 맥킨로이가 지역공동체 자산 구축(CWB) 전략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닐 맥킨로이는 “전 세계 부자 상위 1%가 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만 봐도 ‘비상식적 상황’”이라고 일갈합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포용적이고 진보적인 경제모델 전략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지역과 주민을 위해 작동할 수 있는 경제전략으로 바꿔야 할 때”라고 주장합니다. 더불어 앞서 언급한 지역 공동체 자산 구축(CWB) 전략의 5개 기둥을 한꺼번에 시도할 게 아니라 지역에서 바로 도입할 수 있는 것부터 전략 및 정책으로 적용해 변화의 물꼬를 트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소위 ‘위기에 처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말하지 않아도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내가 사는 지역 내 부의 흐름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말이죠. 청년들이 취업하기 위해 서울이나 수도권으로 터전을 옮기거나, 막상 고향으로 돌아가더라도 지속가능한 삶을 꾸리기 어려워하는 것은 낯선 일이 아닙니다. 지역 공동체 자산 구축(CWB) 전략이 지역의 부가 외부로 부가 흘러가지 않고, 뿌리를 내려 재화·서비스·고용 창출 등이 이뤄지는 경제 전략에 공을 들이는 이유입니다.
매튜 브라운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영국이 긴축 정책의 고삐를 단단히 쥐면서 전통적 경제모델의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냈다고 지적했습니다. 기업으로부터 자본을 유치하거나, 도시재생 모델로는 지역의 자산이 지역 내에서 순환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매튜 브라운은 약 14만 명의 인구를 가진 프레스턴 시에서 의장을 맡고 있는 만큼 지역 공동체 자산 구축(CWB) 전략을 현실화한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프레스턴 시는 외부 자본을 유치하는 데 힘쓰기보다 지역 내 대학, 병원 등의 앵커기관을 선정했습니다. 앵커기관의 피고용인에게 생활임금을 지급하면서 불평등을 해소하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지난 2021년에는 프레스턴 협동조합을 설립해 기업의 민주화를 촉진하고 있습니다. 매튜 브라운은 “프레스턴 주민들에게 ‘대안이 있다’라는 선택지와 희망을 주고 싶었다”라고 회고했습니다. 이어 ‘네트워크’와 ‘소유’를 바탕으로 프레스턴시의 도시계획도 재검토했습니다.
불평등의 씨앗이 ‘소유’인 만큼 프레스턴 시에서는 지역자산의 소유권을 지자체로 이전해 공동체 자산으로 활용했습니다. 공적 연금기금으로 쇠퇴한 건물을 사들여 학생들을 위한 주택으로 바꿔 지역 경제를 촉진했습니다. 프레스턴 시 외곽에 위치한 월튼 서밋 산업 단지를 지원하고, 지자체가 소유한 극장 ‘Animate’ 개관을 앞두고 있습니다. 대자본, 대기업 중심이 아닌 다양한 지역 주체(중소기업, 소상공인)가 참여하는 통로를 열어둔 셈입니다.
이러한 과정은 프레스턴 지역 내 고용 창출로 이어지고, 지역 내 기업으로부터 자원을 구매하면서 지역의 부가 프레스턴 지역에서 돌기 시작했습니다. 지역 주민들의 참여는 자연스레 지역 공동체 자산 구축(CWB) 전략의 지속가능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글: 방연주 시민연결부문 연구위원 | 사진: 희망제작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