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북한산에서 희망을 찾다 1

프롤로그

사람들은 산에 오릅니다. 고산 영봉에 태극기를 꽂겠다고 오르는 사람도 있고, 마누라 잔소리가 싫어 오른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찌 됐든 산의 재미를 안다는 것은, 애당초 사는 재미라는 게 공짜로 살아지는데 있는 것이 아니고, 산에 오르듯 한 발 한 발 땀 흘려 나아가는 데 있음을 안다는 뜻이겠지요. 그래서 산을 좋아하는 이는 어질다, 하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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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지난 1월 24일, 그렇게 어진 사람들이 모여 북한산에 올랐습니다. 우리사회의 아름다운 희망을 만들겠다는 희망제작소 등산모임 ‘강산애’ 회원들입니다. 어진 인상으로 말하자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박원순 상임이사님을 비롯해 ‘희망씨’ 취재로 인연이 있는 ‘구두수선의 달인’ 이창식님과 따님 은혜, 착한 기린 같은 윤재훈님, 낯선 일이라 알리고 싶은 게 많은 것 같았던 별 아이콘 작가 임혜사님, 얼마나 같이하고 싶었는지 웹 회원으로 가입하자마자 산행 신청을 하셨다는 한미숙님, 멀리 충남 아산에서 오신 김현숙님, 나눔의 택시를 운영하고 계신 김형권님, 아름다운 재단 기부자이신 문인근님, 여걸의 풍모에 1초만 함께해도 유쾌해지는( )님, 일부러 제주도에서 날아 왔답니다. 실제 나이 불문하고 신체연령은 스물다섯이라는 ‘건강 맨’ 석락희님, 다리를 다쳐 목발을 짚고 나타났지만 의욕만은 북한산을 열 번도 오르내리고 남았을, 경남 하동에서 온 박용규님, 정재석, 황태영님 박재연님, 조상희님, 그밖에 미처 성함을 기억하지 못하겠는 몇몇 회원들과 ‘언제나’ 분위기 메이커 희망제작소 정성원 실장님, 정용철, 신영희 연구원 등 모두 20명이 동행했습니다.

#1.산을 오르며

9시 30분 쯤 구기동 이북5도청 앞을 출발하자 금세 좁은 산길이 나타납니다. 모처럼 포근한 날이었지만 그간 내린 눈으로 얼어붙은 곳도 있어 심심한 발걸음을 긴장하게 합니다. 얼마쯤 오르자 계곡물이 넘쳐 얼음판이 된 길이 가로막습니다. 초입부터 힘들어하던 신영희 연구원이 미끄러워 울상이 됩니다. 그러면 뒤따르던 잘 생긴 신랑 정용철 연구원이 얼른 손을 잡아줍니다. 다른 여성회원들은 혼자서도 잘만 건넙니다. 잘 생긴 남자가 곁에 있는 게 문제였던 것으로 진단 할 수 있겠습니다.

한겨울에도 햇볕의 힘은 놀랍습니다. 그늘진 모퉁이를 돌아 양지쪽으로 나서면 벌써 봄이 온 듯 착각하게 합니다. 성급한 나무는 깨알만한 새순을 틔웠습니다. 어느 길목에서는 얼었던 땅이 녹아 바위가 굴러 내리는 바람에 다른 길로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지난겨울이 그리 추웠어도 봄은 반드시 오고야 마는 것을 깨닫는, 남들은 다 아는 이치를 뒤늦게 득도하는 순간입니다.

혼자서 묵묵히 산을 오르며 깊은 생각에 잠기거나 사념을 털어버리는 것도 좋지만 여럿이 오르는 산행은 또 다른 재미가 있습니다. 어느 일행에도 입심 좋은 사람 하나 쯤 있는 법이고 지루한 일렬종대 행군에서는 그런 이의 싱거운 우스개에 쉽게 웃음이 터집니다. 아마도 산행의 단순성과 자연의 소박한 풍경이 작은 것에도 까르르 반응하게 만드는 모양입니다.

그런 이유로 산에서는 낯선 이와도 쉽게 친해집니다. 오르고 내리는 길에 서로 수고하시라며 인사를 나눕니다.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십년을 익은 얼굴도 인사 없이 지내는 것을 생각하면 신기한 일이지요. 특히 박 상임이사님을 알아보고 건네는 등산객들의 “수고하십니다” 하는 인사 속에는 희망제작소에 대한 지지가 느껴져 감사하고 뿌듯합니다. 앞으로 북한산 등산로에 박 상임이사님의 자리를 하나 잡아드리는 것도 희망제작소에 큰 도움이 되리라 여깁니다.

#2.비봉에서

두어 번 쉬며 땀을 식힌 것을 빼고는 모두들 열심히 오른 끝에 목적지인( )봉에 올랐습니다. 남는 건 사진뿐이더라고, 기념사진 찍기에 분주합니다. 이창식님이 따님과 나란히 서서 기념사진을 한 장 부탁하십니다. 파인더 속에 몸집은 작아도 누구보다 큰마음으로 사는 멋진 아빠와 그의 착한 딸이 있습니다. 게다가 나뭇가지를 잘라 끝부분에 쇠를 두르고 침을 박아 어떤 기성품도 흉내 내지 못할 자작품 지팡이 갖고 있어 모두 감탄 합니다. 지난 인터뷰 기사에서, 그를 두고 왜 ‘구두수선의 달인’이라 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공기 맑은 산에서는 오이 향도 짙습니다. 희망제작소에서 챙겨 준 오이와 귤 초콜릿 같은 간식에다가 누군가 나눠준 빵 하나도 꿀맛입니다. 그새 박 상임이사님은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을 트위터에 올려 실시간 ‘팬’들의 답글을 즐기고 계십니다. 북한산 위에서 만나는 ‘IT 강국 대한민국’도 놀랍지만 젊은이들도 울고 갈 상임이사님의 ‘첨단무기 사용’도 놀랍습니다. 그 정도 해야 반백에도 젊은 아가씨들로부터 ‘원순씨’로 불릴 수 있는 것이겠지요…배울게 참 많은 분입니다.

정상에서 둘러보는 북한산은 그저 늘 거기 보이는 산이 아니었습니다. 아래에서는 의식조차 하지 못했던 산이 그렇게 크고 웅장할 수 없었습니다. 비봉, 문수봉에서 인수봉으로 이어진지는 능선은 멀리 운무에 덮인 채 끝이 없었고 그 아래 얌전히 들어서있는 서울은 평소 전쟁 치듯 살던 그 서울이 아니었습니다. 산 아래에서 도토리 키나 재며 살다가 이렇게 내려다보고서야 저 같은 도토리들에게 동지의 연민을 느낍니다.

#3.산을 내려오며

산을 내려오면서 처음의 서먹했던 분위기는 이미 사라지고 그새 친해진 이들끼리 뭔가 재미난 얘기를 나누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합니다. 잠시라도 함께 힘들여 올랐던 경험을 나눴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난 가을 ‘창녕 감 따기’ 행사에 갔던 일에 비춰보면 힘든 경험을 함께 나누는 것만큼 소속감과 친근감을 빨리, 오래 느끼게 하는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회원대상 행사는 가능한 회원을 생고생시키는 행사로 기획하는 것은 어떨까요.

#4.식당에서

상명대 뒤쪽으로 내려오는 길은 아늑한 오솔길입니다. 도심 가까운데 이런 곳이 남아있어 ‘디자인 서울’ 보다 더 매력적인 서울입니다. 산을 내려와 연구원들이 예약해 놓은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습니다. 산행은 즐겁지만 휴일에도 나와 행사를 돕는 연구원들을 생각하면 미안하고 고맙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앞으로 ‘강산애’ 만큼은 회원들이 알아서 하자는 뜻으로 등산 고수임이 드러난 석락희님을 회장을 뽑고 정기적인 산행을 약속했습니다.

에필로그

막걸리에, 수육에, 시원한 해장국까지, 운동 잘하고 너무 많이 먹어 다이어트가 걱정스럽긴 했지만 이런 것도 산행의 재미에서 빼놓을 수 없습니다. 평소에는 혼자 산에 오르는 편이지만, 가끔 좋은 사람들과 동행하는 것도 이런 맛에 즐겁습니다. 엄홍길처럼 히말라야에 오르기를 꿈꾸는 것도 아니고, 소로우처럼 속세를 버리고 숲으로 들어갈 것도 아니기에, 이 도시에서 만만한 산이나 오르며 오래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끔이나마 사람들과 산에 오르며 정을 나누는 것으로 이 도시에서 사는 작은 즐거움을 찾으려 합니다. 그 작은 즐거움이 도시생활의 작은 희망이기도 하겠지요. 그러고 보면 ‘강산애’는 강과 산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외로운 도시를 사랑할 희망을 찾으려는 모임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글: 민들레사업단 회원 서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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