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사용자

지금, ‘SDS 인물열전’이 펼쳐집니다. 소셜디자이너스쿨(이하 SDS) 동문으로 구성된 취재단이 500여 명이 넘는 SDS 동문 중 교육 수료 후 활발하게 소셜디자이너로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들을 찾아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부터 사회혁신을 위한 원대한 꿈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세 번째 주인공은 SDS 9기 동문 신혜정 한국여성노동자회 청년교육팀장입니다.


SDS에 대한 ‘따끈따끈한 기억’과 ‘가시지 않은 여운’을 지닌 한국여성노동자회 신혜정 청년교육팀장을 만났다. 그녀가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한 소개는 다른 매체를 통해 충분히 접할 수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의 일이 아닌 ‘인간 신혜정’의 인생과 SDS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는 시간을 가졌다.

“내 삶의 원동력은 불안함”

신혜정 팀장은 어느 누구보다 20대를 숨가쁘게 살아왔다. 연극 공연, 단편영화 제작 및 출연, 농활, 공활, 기지촌활동, 빈민활동을 비롯한 학생 운동, 게릴라 언론 활동, 과 및 단과대학 대표, 여덟 달 간의 캐나다 생활, 미국, 일본, 중국, 태국,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여행, 영화 관련 공연 및 행사 기획, 미디어 및 대안문화예술 교육 기획 및 보조 강사, 국제회의 준비, 웹 기획, 대기업 취직, 여성노동운동, 노무사 준비, 영어 강사 및 과외, 캠페인 조직, 동티모르 인권 프로그램, 활동가를 위한 미디어 교육 강사, 마음수련, 웹 아티스트 활동, 홈페이지 제작, 여성학 1년 석사 과정, 가구 만들기, 스윙 공연, 미대 편입 준비 등등. 한 눈에 쭉 훑어보기도 어려운 다양한 일들을 해왔다.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했을 것 같은 이 시간들에 대해 그는 “내 삶의 원동력은 불안함” 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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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자아를 성찰하고 원하는 삶을 찾기 위해 겪는 건강하고 자연스런 ‘불안’ 과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안고 살아야만 하는 생존과 직결된 ‘불안’ 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두 가지 불안을 동시에 떠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첫 번째 불안은 외면한 채, 두 번째 ‘생존에 대한 불안’에 잠식당하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과연 행복한 것일까?

그 역시 부모로부터의 독립과 생계 문제에 직면하면서 생존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고자 대기업에 취직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벌어지는 성차별, 경직된 조직문화, 비전 없는 업무에 지쳐 결국 그만두게 되었다.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업의 잘못된 관행과 성차별적인 조직문화 등을 바꾸고자 하는 비전을 갖게 된다. 이후 ‘한국여성노동자회’에 들어가 이 땅의 일하는 청년들을 위한 수많은 일들을 기획하고 실행해나가고 있다. 최근에는 노동자를 위한 소통의 창인 소셜네트워크 서비스 ‘일로넷’을 만들었고, 구태의연한 ‘청년노동백서’를 이름부터 세련된 ‘청춘job知’로 재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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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두 가지의 ‘불안’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돌파했다. ‘건강한 불안’ 을 원동력 삼아 자신을 찾기 위한 여정을 계속해왔으며,  그 여정은 현재의 삶으로 이어졌다. 물론 충분한 소득이 보장되지 않는 시민단체 활동가로서의 삶은 여전히 생계에 대한 불안을 안고 있다. 그러나 자신이 하고 싶은 여러 가지 일을 시도하며, 세상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일을 하며, ‘원하는 삶’을 찾기 위한 과정을 걸으며, 생계에 대한 불안은 어느덧 단단한 자신감 바뀌고 있었다.

신혜정 팀장은 올 해 우리 나이로 서른이다. 인간의 평균 수명이 길어진 탓인지, 이젠 ‘서른’ 이라는 나이가 주는 느낌이 예전과는 조금 달라졌다. 서른 살에도 취업난 탓에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탁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서른 살에 결혼하지 않은 것은 이제 여성의 경우에도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니다.

90년대 초반 최영미 시인은 ‘서른, 잔치는 끝났다’ 고 노래했고, 노래하는 음유시인 김광석은 ‘또 하루 멀어져간다.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라고 탄식했다. 그러나 2011년 서른을 맞이한 수많은 지인들은 ‘잔치’는 아직 제대로 해본 적도 없고, ‘서른 즈음에’를 들으며 지난 날을 되돌아볼 겨를도 없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전쟁 같은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다.

신 팀장 역시 예외는 아니다. 그만큼 ‘제대로’ 살고 있는 사람도 없음에도, 늘 ‘제대로’ 살기 위해서 오늘도 분투하고 있다. 시민단체 활동가라는 신분에 갇혀서 놓치는 것이 없도록 늘 깨어 있어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한국여성노동자회에서 20대 청년과 관련된 거의 모든 사업을 진행하면서 바쁜 일과 중에도 ‘일로넷’을 만들었고, 영어공부를 하고 싶은데 돈이 별로 없어서, 또는 나이가 너무 많아서 망설이는 사람들을 모아 주말마다 ‘영어공부방’을 운영하고 있으며 업무가 끝난 후에는 디자인 강좌를 들으러 달려간다. SDS를 만난 것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이십대 때와 별반 다를 것 없이 바쁘고 치열한 하루하루이지만, 분명 그때와 달라진 것이 있다. “다양한 경험과 시행착오를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에 대해 조금씩 확실하게 알아가고 있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생겨서 더 이상 불안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앞으로의 삶이 기대되고 흥분된다고 한다. 지금도 여전히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지만 고민하고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불안한 일이 아닌 즐거운 일이 된 것이다. 그는 “뜨거운 열정을 바쳐서 하게 될 나의 일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했으면 좋겠다” 며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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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DS는 ‘지지대’ 같은 것

신혜정 팀장은 사회적기업에 대한 관심 때문에 SDS의 문을 두드렸다. 2006년부터 시민단체에서 일을 하면서 NGO와 시민사회단체가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 한계를 느꼈다. 사회 문제를 비즈니스 모델로 해결하는 사회적기업은 매우 신선하고 창의적인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적 기업에 대한 관심을 앞으로의 인생에서 하나의 큰 축으로 두고 살기로 결심했고, 이러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도록 잡아주는 계기로 SDS를 선택했다.

그는 SDS를 수강하며 사람들과의 네트워킹이 큰 자극이 되었다고 했다. 비슷한, 또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면서 즐거웠고 앞으로 무언가 새로운 일을 시도할 때 손을 내밀 수 있는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것 같아서 기쁘다며 그는 “SDS는 지지대 같은 것” 이라고 말한다.

신 팀장에게 소셜디자이너 또는 사회혁신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는 최근에 다니고 있는 디자인 강좌에서 ‘디자인이란 나를 둘러싼 세계를 구성하는 일’이라고 배웠다며 ‘소셜디자인’도 결국은 디자인의 본질과 맞닿아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나를 둘러싼 세상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출발하는 일, 이 세계를 어떻게 하면 좀 더 아름답게 만들까를 고민하는 사람이 바로 소셜디자이너” 라는 것이다. ‘사회혁신’이라는 단어보다는 ‘소셜디자이너’라는 말이 더 와 닿는다고 했다. 또한 사회혁신이든 소셜디자이너든 너무 많은 것들을 한꺼번에 바꾸기는 어렵지만 작은 변화가 큰 변화의 출발점이 되도록 하고자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예를 들면 신 팀장이 올해 발간한 청춘 ‘job知’는 청년 노동에 관한 기존의 자료집들이 내용이 너무 딱딱하고 실용적인 정보라 할지라도 보기 좋게 구성되어 있지 않아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점에 착안해 만들었다. 청년 노동자들이 꼭 알아야 할 정보들을 세련되고 예쁜 디자인과 구성을 통해 엮어냈다. 비록 참신한 아이디어도, 획기적인 변화도 아닐지 모르지만, 앞으로 꼭 필요한 변화의 출발점이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괴로워하라, 부대껴라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라는 다소 진부한 질문을 던졌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내 손 끝까지 전해오는, 강렬한 이끌림을 주는 무언가를 향해서 살아야 해요. 자기 자신에게 별다른 감흥이나 열정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은 삶을 낭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어떤 재능과 강점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어떤 식으로 나의 능력을 발휘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인가를 끊임없이 탐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많이 괴로워해야 합니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흔히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신 팀장의 대답은 그가 살아가고 있는 모습과 어우러져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SDS를 통해 만난 사람들이 있어서 든든하고, SDS가 앞으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지지대’가 될 것 같다는 그가 SDS에 바라는 점은 단 한 가지였다. 사람들과 부대끼는 일이 더 많이 일어나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유명인의 강연보다도 더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 것은 때로는 따뜻하고 때로는 신선한 자극으로 심장을 뛰게 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이며, 그러한 좋은 만남은 SDS라는 특별한 공간이 있기에 가능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근황이 궁금한 SDS 동문이 있느냐고 묻자,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김웅’ 동문의 소식이 궁금하다고 했다. 스물한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지방에서 서울로 혼자 올라와 많은 것을 경험하고 돌아간 김웅 동문이 현재 무엇을 하면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가 궁금하다고 했다.

그와 약 한 시간 반 동안 이야기를 나누면서 오랜만에 가슴이 뛰었다. 삶에 대해 한없이 진지하고 뜨거운 사람과의 만남은 행운과도 같다. 이십대의 불안을 무사히 극복하고 뚜렷한 인생관과 단단한 자신감을 지니게 된 그에게 나의 고민을 털어놓고 싶은 충동을 느낄 만큼 그는 멋졌다. 그런 그의 삶에 지지대와 지원군이 되어줄 SDS 사람들은 더욱 멋지다. 함께여서 기쁘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겠지.

기획_ 인물열전 취재단 (SDS 9기 오호진, 양수진, 이재은, 김웅, 김남희)
취재ㆍ글_ 양수진 (SDS 9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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