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해피시니어’는 사회 각 분야에서 전문적인 역량을 쌓은 은퇴자들이 인생의 후반부를 NPO(비영리기구 : Non-Profit Organization) 또는 NGO(비정부기구 : Non-Government Organization)에 참여해 사회공헌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고, NPO·NGO에게는 은퇴자들이 가진 풍부한 경험과 능력을 연결해주는 희망제작소의 대표적인 대안 프로젝트입니다.본 프로젝트에 함께 하고 있는 ‘해피리포터’는 NPO,NGO들을 직접 발굴 취재해, 은퇴자를 비롯한 시민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하는 시민기자단입니다.

한 손엔 펜을 한 손엔 카메라를… 인문학 통해 일어서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해요.”

첫 마디를 뗀 최정은 대표의 첫 인상은 외유내강형이란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작은 체구임에도 불구하고, 단단한 내면의 힘이 느껴졌다. 최 대표는 원래 미술학도로서 디자인계통의 회사를 다녔는데, 늘 뭔가 공공의 이익이 되는 일에 대한 욕구가 있었다고 한다.

“사실 이 단체의 초대 원장님이셨던 친할머니가 하시는 일에 특별히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 그냥 공익적인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걸 하면 재미있겠다 싶었어요. 마침 할머니가 아프셔서 아버지가 이어받기 위해 준비하시는 걸 보고 옆에서 같이 준비를 하게 됐구요.”

”?”
W-ing의 역사는 1953년 은성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런데 은성원이라는 명칭이, ‘사람을 대상화하는 사회복지기관 특유의 느낌을 강하게 준다’는 비판이 많았다고 한다. 여성을 수동적 피해자로만 보는 듯한 시각, 수혜 중심의 복지 마인드가 변해야 한다는 문제제기가 더불어 따라왔다.

“여성복지가 낙후, 소외됐고 단지 복지적인 차원에서 해결이 안되겠다 싶었죠. 한 순간의 생계 유지만 가능한 복지마인드에서 벗어나, 사회 전체를 바꾸고 여성이 힘을 갖는 것에 초점을 맞춰 복지와 운동적인 마인드가 함께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NGO의 힘과 마인드, 그리고 사회복지기관으로서의 역할이 어우러져 그 정신을 갖고자 노력했어요. 두 가지 축을 갖는 건 쉽지 않지만 성매매 방지법 때도 여러 활동을 했었고 시기시기마다 필요하면 캠페인이나 시위, 기자회견을 통해 계속적인 의견 특히 정책적인 부분에 대한 아젠다를 만들어가고 있어요.”

W-ing이라는 이름은, 여성은 같이 살아야 하며 우리의 철학은 여성(Women)이 주도적으로 살아가야 하기에 (initiative) 연대를 통해 (networking) 같이 성장 (growing)해야 된다는 의미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그간의 사회복지의 관행을 버리고자 했던 것 중에 참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회복지에서 쓰는 용어를 다 버리는 거였어요. W-ing의 친구들에게 ‘너 어떤 말이 싫으니? 적어와 봐,’ 했더니, ‘내가 무슨 사건이냐 사례관리하게? 내가 외박증을 왜 써? ‘이런 얘기들을 하더라구요. 그래서 개별상담원이라는 직함을 ‘함께 인도한다’는 의미로 코치로 바꾸고, 거주, 입소, 졸업, 퇴소같은 말도 버리고 입학생, 졸업생으로 바꿨죠. 대대적인 혁신인 셈이죠. 간단한 것 같지만 폐기하는 퍼포먼스도 하고 했더니, 모두들 해방감과 카타르시스를 느끼더라고요.”

빵보다는 장미를 선택한 그녀들

사실 이 단체를 취재하고자 했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W-ing에서 진행하고 있는 인문학 특강때문이었다. 누리집에 실린 강의 녹취록에 나타난 그녀들 각각의 내면적 깊이와 진실성은 감동 그 자체였다.

“<인문학 감수성>이라고 해서 프로그램을 2005년도에 줌마네 이수경씨가 진행한 적이 있어요. 글쓰기 12회를 했는데 그 중에서 <제인에어> 다시 읽기를 한 적이 있어요. 제인에어가 구박받으며 쏘아대는 얘기인데, ‘내 마음은 어땠는 줄 아세요? 절망이었어요.’ 이런 대사를 나의 상황에 맞춰 내 얘기로 바꾸는 거였어요.

맥락은 따라가지만 단어와 상황만 좀 바꿔서 어렵지 않게 하다보니, 친구들이 자기상황, 내가 가진 울분을 토해내기 시작했고 카타르시스를 느끼더라고요. 그것이 집단상담 효과 이상으로 나타났어요. 이거다 싶었죠. 그때 친구들의 글을 모아 <내 인생의 작은 수첩>이라는 책을 냈습니다.

2년 전 처음 철학을 시작할 때도 다들 어렵다고 아우성이었지만, 결과는 역시나 감동이었죠. ‘나의 존재에 대한 계속적인 물음을 해야 되나? 나는 어떤 존재인가?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서 나는 어느 단계에 와있나?’ 이런 질문을 계속 던지고 사유하고 사색하고 반성적 사고를 하게 했죠.

그래서 작년에 프로그램을 더 체계화 했어요. 내면의 힘을 위해 사유하고 사색하는 힘을 길러 나의 언어로 세상과 소통하고, 세상을 보고 상황을 읽으며 그 맥락 아래서 나의 삶을 계획하고 컨트롤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인문학의 역할인 듯해요. 갈수록 확고해져요. 이제는 목숨 걸고 해요.

사실 되게 힘들어요. 작년에 33회를 했으니까요. 되게 힘들긴 하지만, 다른 어떤 것보다도 친구들이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이 많이 보여 좋죠.

일단 친구들의 언어가 달라졌어요. 가장 큰 차이가 자기 언어로 말하는 거죠. 전국에 있는 기관들 대상으로 사회적 일자리라는 프로그램을 한 번 했는데 대표나 실무자는 아무도 안 갔어요. 그런데 다른 단체 실무자들이 니네 친구들은 언어가 역시 다르더라고 하더라고요. 저희는 몰랐죠. 늘상 만나니까.

자활척도 개발을 하는 가톨릭대 김희숙 교수가 전국의 자활 여성을 만나면서 우리 친구들과도 인터뷰할 기회가 있어서, “여기 있으면서 가장 좋은 게 뭐냐” 했더니 인문학이라고 했대요. 교수가 소름이 확 끼쳤다고 하더라구요.

사실 재작년에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가서 이 사업에 대한 제안서를 냈을 때 면접자들이 다들 ‘이거 할 수 있겠냐. 그것도 얘네들 데리고’ 그러길래, 당신네들이 돈 안 줘도 우린 할 꺼다. 걱정하지 마시라. 이만큼의 규모는 아니더라도 꼭 할꺼다라고 했어요. 실제로 지금도 하고 있구요.

정말 하거든요, 발표하고 나의 여성성 얘기하고 철학이란 무엇인가 얘기하고. 왜 우리 애들은, 여성들은 못하다고 생각하는지… 성매매는 단지 한 때의 경험이에요. 똑같은 여성인데 왜 개네들은 다를거라고 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내심 부끄러웠다. 이 단체의 여성들이 인문학을 하는 사실 자체가 큰 이슈가 될 것이라는 발상에는 ‘그들이 마치 하기 힘든 일을 기적적으로 해낸 것’이라는 전제가 무의식적으로 깔려있었던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인문학이 소위 말하는 소외 계층에게 꼭 필요하냐는 질문에, 그는 “자존감을 위해 생계를 위한 빵이 아닌 마음의 등불 장미를 피워줘야 한다”고 답했다. 자원이 열악한 상황에서도 살아 남을 수 있는 까닭은, 인간이 왜 살 수 밖에 없는지 존엄성을 깨닫는 것,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건 뭔지를 아는 것이란다.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삶을 살도록, 특히 ‘남자에 의해서 지배당하고 종속 당한 채, 흘러 가는 게 아니라, 여성 스스로 정의한 행복을 위해 살아라’ 그런 메시지를 계속 주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경제적 여건도 중요하지만 내면의 힘이 있어야만, 거절 해야 할 때 ‘노(No)’라고 얘기하고 자기 주관을 갖고 허락하는 힘을 키울 수 있기에, 인문학이 굉장히 기여를 한다고 한다.

”?”
글을 통해, 영상을 통해 ‘내가 말하는 나’

최정은 대표가 진취적이고 모험적 성향이 강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 단체의 ‘그녀들’ 또한 모험을 주저하지 않았다. 이제는 한 손에 펜을, 다른 한 손에는 카메라를 들고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직접 내고 있다.

“4년 전 우연히 여성 영상집단 <움>이랑 작업을 할 기회가 있었어요. 너무나도 건강한, 괜찮은 친구들이어서 ‘그 친구들이랑 같이 찍으면 좋겠다. 작업을 했으면 좋겠다’ 싶어 모셔다가 영상 워크샵을 했어요.

항상 우리는 인터뷰 대상이었는데, 그게 아니라 내가 카메라를 직접 들고 내가 나의 언어로써 세상을 말해보겠다, 세상과 소통하겠다는 거였죠. 하지만 역시나 찍고 편집하면서 수천 번을 ‘그만두겠다. 이런 거 찍고 싶은데 안 나오니 포기하고 싶다.’ 뭐 그랬어요.

그런데 영상 워크샵 통해서 한 명씩 제작을 하고 1회 때 상영을 했는데 반응이 가히 폭발적이었어요. 여성부 장관도 와서 울고 갈 정도로. 왜냐면 ‘얘네들 만날 하는 거 미용이나 네일아트나 너네들 자원할 게 뭐 있냐, 했는데 얘네들 카메라도 들어? 영상도 만들어? 다큐도 찍을 줄 아네’ 새로운 가능성을 연거죠.”

지난 해에는 필리핀에서 여성 단체들과 아시아 NGO를 위한 연수원이랑 연계를 해서 교육도 받고 영화도 틀고 활동가들하고 얘기도 나누고 성매매에 관해 토론도 했다고 한다. 여기서 운영되는 미디어센터는 기록하고 제작도 하고 찾아가는 상영 서비스, 대여까지 해내고 있었다. 올해까지 4회째인 여성인권영화제에서 7작품 중 4작품이나 상영을 하는 그녀들의 열정에 그 누구도 불가능을 운운할 수 없다.

말하기에는 능통하나 글쓰기에는 젬병인 현 세태와 달리, 이들은 여전히 펜의 위력을 몸소 실감하며 자신의 진심을 써내려 가고 있었다.

“가장 기본이 쓰고 말하는 거죠. 말도 중요하지만 글쓰기는 나의 친구이자 벗이에요. 내가 이걸 쓰면서 나에게 힘이 생긴다는 걸 깨닫는 거죠. 윙에서 나갈 때는 그 어떤 것보다도 글쓰는 건 두렵지 않다라고 할 정도에요.

예를 들어, 어떤 강좌 후에 감상문을 쓰라고 했을 때 ‘좋았다’ 이렇게만 쓰면 “빠꾸~!”이러죠. 그러면 자기들끼리 옆에서 “구체적으로 뭐가 좋았는데? 그게 뭔데?” 이런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을 펼쳐요.

글을 잘 쓴다는 건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깊숙이 들여다 보는 거라고 생각해요. 소위 먹물 좀 먹었다는 실무자들도 이리저리 재고, ‘이렇게 말하면 상대방이 뭐라고 생각할까’를 먼저 생각하고 이러는데, 친구들은 그런 게 없으니 삶의 경험들이 진심으로 묻어 나온다는 거죠.”

때로는 엄마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그녀들과의 적절한 동거

W-ing을 찾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사람에 대한 신뢰가 망가진 채’ 오기 때문에, 6개월이 넘어도 여전히 경계하고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야말로 인간의 바닥까지 다 봤기에 자신감도 없고 사람을 대하는 것이 서툴지만, 쉼과 치료 그리고 코치들의 애정을 받으며 이런저런 경험을 하다보면 ‘나도 존중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구나. 나도 뭘 할 수 있는 존재구나’ 하며 서서히 회복해 나간다.

반면 8개월 동안 병원만 다니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땐 마치 아기가 걸음마 떼기를 기다리는 엄마처럼 그냥 그렇게 기다린다고 한다.

“사회복지 전문가 1조항에 친구 같은 사회 복지사가 아닌, 전문가로 해야 한다고 나와요. 그런데 안 통해요. 그러면 안돼요, 마음의 문을 안 열죠, 친구, 엄마, 멘토 갈수록 엄마 같기를 바래요.

갈수록 자원이 열악한 친구가 많은데, 이 친구들한테 포근하고 엄마 같고 사랑 받아 보고 싶은 게 있으니 많이 치대고 그래요.”

잘 지내다가 하루 아침에 나가버리는 경우가 가끔 있다고 한다. 비록 몸은 힘들지만 정신적으로는 동질감을 느끼는 그 ‘낯익은 곳’이 오히려 편안하게 여겨져 다시 돌아가는 셈이다. 새로운 것도 배워야 하고 변화해야 되는 이곳, 사회에서의 적응을 두려워하는 그녀들을 생각하며 한숨짓는 최정은 대표의 가슴통증이 그대로 전해진다.

보고 싶은 대로가 아닌, 보이는 대로 봐주세요

대통령 소유 건물에서 여전히 자행되는 성매매, 여성부의 축소, 정부의 일관성 없는 정책으로 인해 이 단체가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우리가 알아서 하고 있으니 가만 좀 내버려 두라고, 수사 살살하라 이런 거 하지 말고 열심히 하는 사람 열심히 하게 내버려 두라는 거죠. ‘네가 스스로 갔고 돈 받고 자발적으로 하는 거잖아. 너네가 피해자가 아니다’라는 식의 ‘자발성, 비자발성’ 논란을 더 이상 하지 말아달라는 거죠. 의미자체가 없어요. 거기에 들어간 것 자체가 이미 피해자인걸.

새롭게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돌팔매를 던지지 말고 구태여 불쌍하게 보지도 말고 내버려뒀으면 해요. 대신 사회적인 안전망을 튼튼히 하는 데 더 노력했으면 해요.

어떻게든 일을 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데, 사회가 이들에게 기회를 주고 많은 이들이 동참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죠.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성숙되고 건강한 기운들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단순한 보조금, 생계비 지원이 아니라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해요.”

”?”
사람이 비로소 사람답게 ‘살아 움직이고’ 조금씩 변해가는, 그런 감정들의 변화를 보면서 사람에게 에너지 얻는다는 최정은 대표.

사실 W-ing에서 하고있는 사업들은 어쩌면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을 하는 것’ 일지도 모른다며, 더 나이가 들면 목공작업장에서 일하며, 많은 아이들과 여성들에게 가구를 나눠주는 것이 꿈이라고 덧붙였다. W-ing의 여러 언니들도 이 꿈에 동참하기로 이미 약속했단다.

최대표와 그녀들이 펼칠 새로운 모험, 다음 행보가 기다려진다.

W-ing
전화 : 02-836-7195
E-mail : esw3872@hanmail.net
누리집 : http://www.w-ing.or.kr/

”?” [글, 사진_최주희(josumi20@hanmail.net)/ 해피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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