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개

한국형 사회적 기업, 이게 최선입니까?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기업은 ‘뜨는 개념’이다. 몇 년 사이에 사회적 기업 또는 사회적 기업가는 대중적인 용어가 됐고, 관련 내용을 다룬 책이나 논문도 쏟아져 나왔다. “또 사회적 기업?”이라고 묻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이제는 많이 알려진 이 개념은, 그러나 나라마다 다른 방식으로 수용, 해석, 적용되고 있다.

사회적 기업가를 기업가적 방식을 사용해 여러 사회 문제를 혁신적으로 해결하려는 사람이라고 정의할 때, 특정한 사회적 기업가가 사회적 기업을 통해 시급히 해결하려고 하는 사회 문제의 종류와 성격은 다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2008년 제정된 사회적 기업법의 인증을 받은 이른바 ‘한국형 사회적 기업’들은 이런 혁신성과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을까?

<사회적 영웅의 탄생>에서 독일의 대표적인 사회적 기업가 14인은 “사회적 기업가란 누구인가?” 그리고 “사회적 기업가는 어떻게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고 있다. 자신의 체험과 성찰을 씨줄과 날줄로 삼은 진솔한 이야기들을 통해 사회적 기업의 의미와 과제를 되돌아보고, 사회적 기업을 수용하고 확산하는 한국적 방식에 문제를 제기한다.

이 14인의 ‘사회적 영웅’들이 한 경험에 견줘, 한국의 사회적 기업은 지나치게 국가 주도적인데다 고용이나 경제 중심의 편향에 빠져 있다. 시민사회의 미약한 역량과 사회적 기업가의 협소한 시각 탓일까? 아니면 구조화된 불황과 여전히 남아 있는 시장 불신 탓일까? 이런 의문에 답하면서 사회적 기업과 사회적 영웅이 탄생하는 독일식 경로를 돌아보고 사회적 영웅의 탄생을 예비하기 위해 한국식 경로를 탐색하려는 시도가 바로 <사회적 영웅의 탄생>이다.

모순과 차별, 그리고 평범한 사회적 기업가

14인의 사회적 기업가는 각자 자기 삶에서 목격한 모순과 차별 속에서 길어 올린 주제를 화두로 삼아 사회적 영웅의 길로 접어들었는데, 각자 화두로 삼은 주제는 청소년 문제와 청년 고용, 교육, 의료와 보건 분야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연극을 통해 청년 실업자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고 진로 탐색을 돕는 ‘프로젝트 공장’, 청년 실업자에게 새로운 직업 교육 방법을 실행하고 창업을 돕는 ‘이쿠 컨설트’, 비행 청소년에게 권투를 통해 노동을 배우게 하고 사회 통합을 이끄는 ‘일과 권투’와 ‘한트-인’이 청소년 문제와 청년 고용에 집중했다면, 미취학 아동을 대상으로 과학을 교육하는 ‘사이언스랩’, 사회적 취약 계층의 부모들에게 자녀 교육의 노하우를 교육하는 ‘부모 회사’, 이민 후속 세대의 학습 부진을 선후배 청소년들의 도우미 사슬로 해결하는 ‘IBFS’, 대학 교육을 받으려는 청소년들의 저변을 넓히고 대학생들이 대학에서 자기 길을 잘 찾도록 돕는 ‘노동자 자녀’는 교육 분야에 관심을 뒀다.

매 맞는 아내들의 문제를 의사들의 정보 네트워킹으로 치유하고 예방하는 ‘게지네’, 학교 캠페인 등을 통해 정신질환자들을 향한 사회적 터부를 교정하려는 ‘IM’, 모국어로 된 정보를 제공하고 소통을 활성화해 이민자들의 건강권 문제를 해결하려는 ‘민족의학센터’가 의료와 보건 분야에 해당한다면, 인터넷을 통해 유권자들의 정치 참여를 돕는 ‘국회의원 관찰’, 첫 출산의 어려움에 직면한 이웃을 이웃이 나서서 자발적으로 돕는 ‘웰컴’, 추상적이고 도덕적인 호소를 넘어 구체적인 이해를 매개로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씨오투 온라인’, 축구의 사회적인 의미를 활용해 국제적인 프로젝트로 성장한 ‘스트리트 풋볼 월드’ 등은 사회적 기업과 사회적 영웅의 다양성을 입증하듯 특정 주제로 분류하기 어렵다.

14인의 사회적 기업가들의 공통점을 한마디로 정리하기도 어렵다. 다만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사회적 모순과 차별을 발견한 어떤 ‘평범한 사람’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고 성찰하고 소통하는 과정에서 비범한 사회적 기업가와 혁신적 대안이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는 있다. ‘사회적 영웅의 탄생’은 개인적이면서도 지극히 ‘사회적인 과정’인 것이다.

사회적 영웅이 만드는 공정한 사회, 연대의 경제와 사회적 소통

모순과 차별이 있는 현장에서 만난 사회적 영웅들은 모두 관료화와 형식화를 경계하거나 심지어 혐오한다. 연대와 소통의 가치와 효용을 알기 때문이다. 정부와 얕은 수준의 관계는 유지하지만 일방적으로 의존하지 않는 대신, 다양한 중간 지원 조직을 활용하거나 성공한 기업의 노하우를 수혈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요컨대 독일이 그런 것처럼 국가가 사회적 기업을 인증하고 관리하는 방식을 벗어나 사회적 기업이 진정한 사회 혁신의 기제이자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가 될 때, 우리 시대의 사회적 영웅들은 모순과 차별 없는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주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독일의 지난날과 한국의 오늘은 같은 듯 다르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듯이 ‘평범함 속의 비범함’을 갖춘 우리 이웃 속에서 ‘사회적 영웅’이 출현해야 한다는 사실에는 차이가 없다. 일상의 살아가는 사람이 자신의 삶 속에서 드러나는 모순과 차별을 그냥 지나치지 않을 때, 그 사람은 일상의 문제의식에서 혁신의 동력을 찾는 사회적 기업가가 될 수 있다. 또한 그럴 때 사회적 기업은 정부와 기업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에서, 국가 주도적 특성과 고용 중심 패러다임을 넘어 온갖 사회 문제들을 연대와 소통이라는 방법론을 통해 혁신적으로 해결하는 유용한 수단이 된다.

※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선정 ‘3월의 읽을 만한 책’ (2011)

■ 목차

추천사 | ‘박명준의 유럽희망통신’ 발간에 즈음하여|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머리말 |평범함 속의 비범함을 갖춘 사람들을 찾아서

1부| 청년, 실업자이거나 실업가이거나
청년 실업자, 연극으로 기 살리고 취업하기|프로젝트 공장|산드라 쉬어만
청년 실업자, 직업교육 따라잡고 창업도 한다|이쿠 컨설트|노버트 쿤츠
비행 청소년들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법|일과 권투·한트-인|루퍼트 보스

2부| 교육 불평등의 재생산을 막는다
하늘이 파란 이유, 아이들도 묻고 답할 수 있어요|사이언스랩|하이케 쉐틀러
불평등의 대물림, 부모들이 나서서 막는다|부모 회사|마인라트 암부르스터
이민자 아이들과 기회 공장의 도우미 사슬|IBFS|무라트 부랄
도구화된 대학 교육을 넘어서는 소통의 가치|노동자 자녀|카탸 우어바취

3부|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의 건강권을 지킨다
가정 폭력, 네트워킹으로 예방하고 치유하기|게지네|마리온 슈테펜스
마음의 병을 마음대로 말하게 하자|IM|마누엘라 리히터-베를링
이민자들의 건강권, 사회적 소통으로 푼다|민족의학센터|라마찬 잘만

4부| 그래도 남는 문제들
인터넷에서 소통하고 온라인으로 정치하기|국회의원 관찰|그레고 학막
연대의 경제로 해결하는 첫 출산의 어려움|웰컴|로제 폴츠-슈미트
에너지 효율은 소셜 미디어 비즈니스로|씨오투 온라인|요하네스 헹스텐베르크
거리의 축구가 추구하는 평화로운 거리|스트리트 풋볼 월드|위르겐 그리스벡

맺음말 | 사회적 기업을 보호해야 한다

■ 저자 소개

박명준

박명준은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쾰른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노사관계, 노동시장 제도, 사회 정책, 거버넌스, 시민사회 등에 주로 관심이 있다. 비교론적 관점에서 한국과 동아시아를 분석하는 학술 연구와, 독일을 포함하는 유럽의 시스템과 실천에서 한국이 얻을 교훈을 찾는 정책 연구를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현재 베를린 자유대학교 한국학과 전임연구원이며, 희망제작소 객원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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