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

























Q: 당신은 불만이 쌓이면 어떻게 하십니까?
A: 삭힌다. 참는다. 친한 사람과 얘기를 하며 푼다. 실컷 자고 일어난다. 술 한 잔 먹고 풀어버린다…. 그렇게 하다가도 안 되면??
뻥! 하고 터뜨려 버린다.

삭히고, 참고, 털어내고, 풀어내고, 터뜨리고. 이것들은 지금까지 불만과 어울리는 동사들.
그런데 이건 어떨까. 불만을 노래한다면!?!


불만을 노래한다구?

핀란드와 독일 출신의 예술가 텔레르보 칼레이넨과 올리버 코챠-칼레이넨에게 어느 날 문득 떠오른 생각. “불만을 노래해보면 어떨까?” 아닌 게 아니라 핀란드 어 “Valituskuoro”는 핀란드말로 “불만합창단”이라는 뜻. 이 단어처럼 정말 합창단을 만들어 불만을 노래해본다면? 불평불만이 보편적이니만큼 어떤 곳에서도 가능하지 않을까?

텔레르보와 올리버는 유럽 각 도시의 예술 협회에 이를 제안했고, 제일 먼저 응답이 온 영국 버밍엄에서 불만합창단은 처음 시작하게 되었다. 버밍엄 지역 예술가와 주민들 18명이 참여한 버밍엄 불만합창단 공연 동영상이 인터넷을 통해 퍼져나가면서 “불만”과 “노래”라는 이 어울리지 않은 결합도 세계 각 도시로 퍼져나가고 있다.


어쩜 이렇게 똑같을까?

“사랑은 고통스러운데 왜 우린 계속 사랑을 하나,”(상트페테르부르크 불만합창단) “모두들 재활용은 눈곱만큼만 하지. 왜 내 세금을 가지고 전쟁을 벌이는 거야.”(버밍엄 불만합창단)“전쟁은 우리의 유일한 수출품”(시카고 불만합창단) “재능도 없는 녀석들이 브라운관을 장식하는데, 왜 나를 스카웃 하는 데는 한 군데도 없는 거야”(부다페스트 불만합창단) “왜 노래를 하는데 허가장이 필요한 거지~ 왜 나한테 자꾸 결혼은 언제 하냐고 묻는 거야”(싱가포르 불만합창단)“왜 토크쇼 사회자는 실업자들을 욕하는 거야. 우리 시장(市長)은 뉴타운 재개발 말고는 생각하는 게 없어”(함부르크-빌헬름스부르크 불만합창단)

맨날 지기만 하는 국가대표 하키팀, 사람들의 지름길이 되어 버린 내 앞마당, 나한테 맞장구 쳐주는 사람 하나 없는 세상, 게다가 맥주는 미지근하기만 하고. 어디 이뿐인가 정부는 세금을 거둬 전쟁이나 벌이고, 여자들 월급은 백날 일해 봤자 아직도, 그리고 여전히 남자보다 적고, 지구 온난화 문제엔 신경도 안 쓰는 사람들. 이처럼 불만합창단의 불만은 지극히 개인적인 불만들에서부터 지구적 위기에 대한 불만까지 세상의 모든 불만을 노래한다.


이곳에서 한참을 떨어진 곳에 사는 사람들의 불만인데 어쩌면 이리 똑같을까. 이들의 공연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 동질성에, 동시대를 살고 있는 지구인이라는 아주 작은 연대감에 괜히 눈물이 핑 돈다. 그러다가 가슴을 쾅! 하고 치는 건, 너무나 신나게 또 열심히 불만을 노래하고 있는 그 진지한 우스꽝스러움. 그것은 너무나 사적인 불만들을 그만큼이나 신나게, 열심히 그리고 진지하게 듣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불만합창단의 마법 같은 힘


예전 같으면 누가 내 늘어난 팬티 고무줄에 대한 불만을 들어줬을까? 예전 같으면 누가 뉴타운 개발 정책에 대한 불만을 들어줬을까? 불만합창단의 힘이란 바로 모든 불만을 꺼내고, 마음껏 불평하는 일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닐까? 그것은 다시 말해 누군가 나의 불만에 귀 기울이고 있다는 것. 서로가 서로의 청자(聽者)가 되어주는 공감의 기술은 나를 위로하고 공동체를 위로한다. 바로 이 과정에서 불만이라는 부정적인 에너지가 즐겁고 생기발랄한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이 어찌 평탄하기만 하겠는가.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의견 충돌은 어쩌면 필연. 함부르크-빌헬름스부르크 불만합창단에는 불만 가사가 너무 정치적이지 않아 같이 할 수 없겠다며 결국엔 합창단을 떠난 사람도 있었고, 부다페스트 불만합창단은 자신의 걸작을 만드는 데만 너무 애쓰는 음악가를 참다못해 다른 음악가로 교체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도 이 과정이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수천 개가 모인 불만들 중에서 우리 불만합창단이 부를 불만 가사를 정하는 그 모든 과정이 단원들의 끊임없는 논쟁과 토론으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서로를 이해하고, 이해시키고, 설득하고, 설득시키는 이 과정이야말로 민주주의를 경험하고, 더 많은 민주주의를 가지고 오는 것일 거다.

게다가 이를 ‘노래’라는 매개로 전달하니, 예술과 문화가 개인과 개인 그리고 개인과 사회를 이어주고 있는 것이다. 모두를 위한 예술이란 이런 게 아닐까. 불만합창단이 아름다운 건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불만에 대처하는 또 하나의 방법

지금까지 불만은 숨기거나, 터져 나오기 전에 싹을 싹둑 잘라내야 하는 것이었다. 왜? 불만은 갈등을 유발하니까. 그렇지만 이 진지하게 엉뚱한 불만합창단의 ‘대성공’은 불만이 사회적 자원임을, 그것도 굉장한 사회적 자원임을 보여주는 ‘사건’이 아닐까.

불만에 대처하는 또 하나의 방법을 제시하는 불만합창단. 불만을 노래한다면, 우리 사회에서는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 궁금하시다면, 불만합창단으로 오시길. 마음껏 불평하고, 신나게 노래하시길, 원츄!



*희망제작소는 2008년 10월 11일 불만합창 페스티벌을 개최합니다.
불만합창단을 조직하거나, 불만합창단원으로 참가하고 싶으신 분들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문의: 김이혜연 070-7580-8113/ kunstbe3@makehope.org
곽현지 070-7580-8125/ trust01@makehope.org




<이 글은 환경운동연합의 월간지 “함께사는세상”(7월호)에 실릴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