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2월 12일 오후 4시, 전북 김제시 남포리 ‘희망남포작은도서관’. 이곳 앞마당에서는 아주 특별한 마을 잔치가 열렸다. 차가운 영하의 날씨에, 천막을 날려버릴 듯 세찬 바람이 불어대는 가운데 마을 주민들이 속속 천막 안으로 들어섰다. 추위에 꽁꽁 언 얼굴마다 웃음꽃이 피어났다. 주민들은 시각장애인으로서 남다른 열정과 용기로 지역운동의 모범을 보여준 오씨의 일대기 출간을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행사장 들머리와 연단 주위에는 각계에서 보낸 여러 종류의 화분들이 놓여졌고, 천막 한 구석에서는 떡국을 끓여내느라 허연 김이 식을 줄 몰랐다. 행사 시작 전 1백여 좌석이 꽉 들어찼고, 미처 입장하지 못한 이들은 서거나 천막 바깥에서 귀를 쫑긋 세운 채 스피커에 귀를 기울였다. 인근 덕암정보고등학교 풍물패 학생들이 신나게 꽹과리와 장구, 북을 두들겨댔다.

남포리를 떠들썩하게 한 이날 행사는 <오윤택 평전 - 때로는 눈먼 이가 보는 이를 위로한다> 출판 기념회. 오윤택(48)씨는 희망제작소가 기획한 ‘희망을여는사람들’ 시리즈 2권의 주인공이다. 오씨는 남포리에서 태어나 이곳 ‘남포문고’를 중심으로 25년 넘게 헌신적인 봉사활동을 펼쳐온 인물. 남포의 ‘상록수’라 불릴 정도로 변함없이 주민들의 곁에서 믿음직한 벗으로 살아왔다.

이날 행사에는 이건식 김제시장, 최규성 국회의원, 채수창 경찰서장, 강완성 김제교육청 학무과장, 오인근 금만농협장, 배준식 새마을운동김제시지회장, 고영주 우체국장 등 김제시의 유력 인사들이 거의 참석했고, ‘책읽어주는어머니모임’ 유순하 대표 등 오씨와 각별한 인연을 맺은 이들 4백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루었다.

2년 전 오씨와 처음 인연을 맺은 박원순 희망제작소(이사장 김창국) 상임이사는 인사말에서 “국보 1호인 남대문이 불타 온 국민이 속상해 하고 있는데, 눈에 보이는 보물보다 더 소중한 것이 사람”이라며 “사람 중에서도 오윤택씨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헌신과 봉사를 해온 사람이 진짜 보물”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책 발간을 후원하고 제작한 도서출판 푸른나무 엄주웅 이사는 “오윤택씨 평전 발간은 유명인이나 힘 있는 사람이 아닌 평범한 사람의 ‘대단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며 “이러한 분들의 책을 출간하게 된 것을 큰 보람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30년 가까이 김제 지역에서 인삼 농사를 짓고 있다는 배준식 지회장은 축사에서 “말 주변이 없어 원고를 써 놓고 수백 번을 읽었다”고 말해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배 지회장은 “어렵고 힘들었던 경험이 더 소중한 것 같다”며 “오윤택이 지금처럼만 변하지 않고 살아주기를 바란다”고 격려했다.

”?”행사 중간에 주민 문화자씨가 노구에도 불구하고 가곡 ‘상록수’를 열창했다.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늙어 갔어도~’ 노래가 이어지자 오씨의 가난하고 외로운 삶을 기억하는 주민들이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30년 넘게 오씨를 지켜봐 왔다는 주민대표 고영주 우체국장은 “오윤택은 시각 장애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도 하기 어려운 많은 일들을 해왔다”며 “그가 있어서 남포리 주민들은 외롭지 않았다”고 그의 노고를 치하했다.

여느 출판기념회와 달리 마을잔치로 진행된 이날 행사는 축사가 이어지는 가운데 밥과 술을 나누었다. 부녀회에서 정성스레 마련한 밥상에 삶은 돼지고기, 전, 동치미, 묵은 김치가 올랐다. 푼푼한 밥상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매운 홍어무침. 전라도 잔치에 홍어가 빠지면 섭섭해 한다는 말이 실감났다. 행사에 참석한 주민들은 더운 떡국을 후후 불어가며 배를 채운 뒤, 뒤풀이를 위해 장영숙 부녀회장 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마을잔치가 열리던 이날, 눈썹 같이 고운 달이 어느덧 땅거미 내린 고샅길을 은은히 비추어 주었다.

관련기사 : 오윤택씨 출연(KBS3라디오 심준구의 세상보기)http://www.kbs.co.kr/plan_table/channel/3r/index.html?pg_date=20080203&table=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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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인물을 찾아서는 희망제작소 박원순 상임이사의 발로 뛰는 ‘민심보고서’이자 ‘평민열전’이다. 척박한 땅에서 피운 꽃이 더 아름답듯 어려운 여건 속에서 희망을 찾는 끈질긴 실험과 노력들은 더욱 빛난다. 모두가 지역이 무너져가고 있다며 걱정하고 있을 때 희망제작소는 바로 그곳, 지역에서 희망을 찾기 위해 길을 나섰다.

모두의 발길이 도시로 향하는 지금, 지역을 향해 걸어가는 또 다른 발걸음이 있다. 모두의 눈길이 도시를 선망하는 지금, 지역에서 그보다 더 큰 희망을 찾는 노력들이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 길 위에서도 “지역에 희망은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은 여전히 가슴에 부딪쳤다.

그렇게 절망의 현실 속에서 희망제작소는 희망의 증거를 찾고 싶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우리는 희망이 싹트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사람과 단체, 조직을 만나면서 희망이 움트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한 주일에 두 차례씩, 2년 여 동안 만난 사람이 6백여 명에 달한다.

희망제작소는 직접 만난 이들의 아름답고 대단한 이야기를 한 권 한 권 책으로 묶어내고 있다. 현재 토종벌 총각 김대립씨와 남포리 ‘상록수’ 오윤택씨의 이야기 두 권이 도서출판 푸른나무 후원으로 출간돼 있다. 희망인물 시리즈가 1백권이 되고, 1천권이 되는 기분 좋은 꿈을 꾼다. 앞으로도 희망제작소는 ‘지역’을 화두 삼아 천리길을 가는 소처럼 묵묵히 사람과 땅을 만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