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편집자 주 / ‘희망소기업’은 희망제작소 소기업발전소가 지원하는 작은 기업들로, 지역과 함께 고민하고 생활하며, 성장하고 대안적 가치를 생산하는 건강한 기업들입니다. 앞으로 이 연재가 작은 기업들의 풀씨같은 희망을 찾아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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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숲으로 뛰어든 격이었어요. 앞이 캄캄했죠. 그래도 앞으로 갈 수밖에 없었어요. 그렇게 앞만 보고 가다 보니 어느새 길이 보이더라고요.”

3대째 가업을 이어 전통주를 빚고 있는 세왕주조의 안주인 송향주씨의 고백이다. 아이 키우고 집안 살림하는 것밖에 몰랐던 그녀에게 지난 10년간의 양조장 생활은 무작정 뛰어든 여행과 다름없었다.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르는, 그곳에 무엇이 있을 지 모르는 여정이었다.


아파트 짓던 손이 술을 빚게 된 사연


고향에 내려오기 전 남편(이규행 대표)은 청주에서 건설업을 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건축 설계사무소를 다니던 남편은 청주에 터를 잡고 아파트 분양 사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곧잘 되는 듯했다. 하지만 1996년부터 건설 경기가 식으면서 상황은 안 좋은 쪽으로 흘렀다.

일시적인 현상일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3번째 아파트 분양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자금 사정이 극도로 악화됐고, 살고있는 집을 내놓아야 할 지경에 몰린 것.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편이 교통사고까지 당하면서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송씨는 그때까지만 해도 고향으로 내려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저 사업이 잠시 어려울 뿐이라고만 짐작했다.

“겨울이었어요. 그날 애아빠가 우리의 현재 상황을 말해줬어요. 그때 알았죠. 우리가 완전 빈털터리가 됐구나. 남편 얘기를 듣고 나니 이대로 있을 수 없었어요. 양조장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거죠. 물론 그런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너무 힘들었어요. 특히 아이들 교육이 걱정이었어요. 하지만 결정을 내리면 한쪽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알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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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년 1월의 일이다. 살고 있는 아파트를 팔아 밀린 자재 대금을 치르고 부랴부랴 고향으로 내려왔다. 할아버지때부터 운영해 오던 집안의 양조장을 물려받기 위해서다. 부모의 가업을 이어받았으니 큰 어려움이 없었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양조장은 이규행 대표의 동생이 맡아서 운영한 적이 있었다. 호주 유학생이었던 동생은 1993년부터 3년 동안 양조장을 운영했지만, 결국 일을 접고 호주로 돌아갔다. 전통주 시장 자체가 축소되고 있는 터라 판로 확대는커녕 기존 거래처 지키기도 버거웠기 때문이다.

실패를 재현하지 않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이 대표는 전통주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다. 집안일이니 어렸을 때부터 어깨 너머로 보아 왔고 남들 보다야 관심이 많았겠지만 술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아파트 짓던 손으로 전통주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전통주에 인생을 걸다


직원들은 누구보다 이 분야의 전문가였다. 가족들과 함께 오랜 시간 양조장을 지켰던 그들이었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아무리 양조장 사장이라도 쉽게 기술을 알려주진 않았다.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밥 짓는 것부터 차근차근 배웠다. 배달 일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틈틈이 많지도 않은 전통주 자료들을 찾아 가며 자신만의 비법을 연구했다.

또한 전통주를 잘 빚기 위해서는 술맛을 알아야 했다. 맛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면 좋은 술을 만들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영세한 양조장에서 대형 주류 회사처럼 규모 있는 연구실을 만들 수는 없는 일. 모든 연구는 이 대표의 몫이었다. 술맛을 알기 위해, 좋은 술을 빚기 위해 그는 마시고 또 마셨다. 그러나 항상 취해 있는 남편이 송씨는 안타까웠다.

“우리 남편이 처음에 내려와서 술을 많이 마셨어요. 좋은 술을 개발하기 위해서였죠. 하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을 거에요. 그때까지 청주에서 사람들이 찾아왔거든요. 빚 때문이죠. 그래서 싸우기도 많이 싸웠습니다. 그렇게 1년을 버텼죠.”

이 대표는 고향 덕산에서 오로지 전통주에만 매달렸다. 원료 자체의 성질을 파악하고, 이들의 배합에 따라 맛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아내기 위해 힘썼다. 그것도 쉽게 만드는 기존의 약주 생산 방식이 아니라, 오로지 손으로만 만들어내는 진짜 맛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시행착오는 필연이었다. 그러나 실패는 오기를 불러일으켰고, 첫 번째 결실의 씨앗이 됐다.

세왕주조의 대표주로 자부하는 천년주는 그렇게 탄생됐다. 진천쌀에 인삼, 백복령, 구기자 등 12가지 약초와 누룩으로 빚은 천년주는 소비자들의 입맛을 단번에 사로잡으면서, 진천군 문화상품으로 지정 받았다. 이어 2000년에는 제3회 전국 관광기념품 공모전에 입선하게 됐다. 할아버지 때부터 탁주와 약주를 빚어온 집안의 손재주가 그에게도 이어진 것이다.

막걸리는 2002년에 시작했다. 서민의 술이고 싼 술이라 쉽게 생각했지만, 약주보다 더 애를 먹였다. 양조장에서는 분명 맛이 괜찮았는데, 밖에 나가면 며칠 만에 상하기 일쑤였다. 효모균이 살아있는 미생물이기에 이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졌던 것. 맛의 비밀을 찾기 위해 3년을 고생했고, 2005년부터 주당들에게 옛 맛을 품은 막걸리로 인정받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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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면,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


세왕주조의 술맛이 입소문을 타면서 최근 몇 년 동안 부부는 매우 유명해졌다. 각종 방송에 세왕주조와 이 대표가 소개되고, 신문 지상에도 크게 보도됐다. 뿐만 아니라 허영만의 ‘식객’ 100회에 세왕주조를 소재로 만화가 그려졌고, KBS 드라마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에서는 촬영지로 선정되며 안방에 소개됐다. 덕분에 지역에서는 이미 유명인사가 다 됐다.

10년 동안의 고생이 결실을 맺었을 성싶지만, 정작 큰 돈은 벌지 못했다. 모은 돈을 모두 새로운 제품 개발에 쏟아 부었기 때문이다. 세왕주조가 보유한 제품 수는 웬만한 대형 주류회사 못지 않다. 대통령상을 3번이나 수상한 ‘생거진천 쌀막걸리’와 냉침법을 응용해 만든 ‘가시오가피주’, 그리고 흑미(黑米)로 빚은 ‘흑미와인’ 등 35종의 제품이 있다.

제품이 이렇게 늘어난 이유는 책임감 때문이다. 돈을 벌 작정이면, 잘 팔리는 것은 더 많이 만들고, 안 팔리는 것은 단종하면 된다. 굳이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 것보다 기존 제품을 잘 포장하고 홍보하면 된다. 선택과 집중, 그것이 일반적인 장사의 이치다. 하지만 이 대표는 장사치로 남고 싶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찾는 술은 계속 만들어야 된다는 게 그의 고집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새로운 맛을 원하면, 양조장에서 새로운 맛을 창조해냈다.

“사람들이 새로운 제품을 요청하면, 애 아빠는 묵묵히 신제품 개발에 나서요. 지난해에는 지역 어르신이 흑미를 가지고 와서 검은쌀 막걸리를 개발해 달라고 한 적이 있어요. 그 분이 다른 지역 축제에 갔다가, 지역 특산품으로 막걸리 담근 걸 보시고, 우리 애 아빠한테 우리 지역의 특산물인 친환경 흑미로 막걸리를 만들어보자고 한 거죠. 지금 팔고 있는 ‘검은쌀 막걸리’의 탄생비화죠.”

물론 제품 개발에 나섰다 낭패를 겪은 일도 많았다. 한번은 반살균 형태의 알코올 도수 7도의 신개념 막걸리를 시장에 내놓은 적이 있었다. 시장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달짝지근한 맛과 톡 쏘는 맛이 어우러져 소비자들의 입맛을 빠른 시간 내 사로잡은 것.

그러나 늘어나는 주문량에 함박 웃음을 지은 것도 잠시. 이내 반품이 쏟아져 들어왔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막걸리가 유통과정에서 상한 것이다. 개발비와 원료비만 고스란히 날렸지만 그래도 후회는 없다. 이를 계기로 막걸리와 쌀, 누룩의 성질에 대해 더 깊게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패는 연구원 하나 없는 세왕주조의 소중한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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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왕주조 막걸리에서 옛 맛이 나는 이유?


세왕주조 막걸리에는 특별한 것이 없다. 그저 담백하고 시원할 뿐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부터 아이의 손을 잡고 오는 젊은 부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고향의 맛을 다시 느끼고 싶은 이들, 역사가 깃든 곳을 찾는 호기심 어린 발걸음 등 그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결국 다시 찾는 이유는 맛이다.

“막걸리 맛을 보면 옛 맛이 난다고들 해요. 비법이 뭐냐고 묻는데. 방법이 특별한 게 있겠어요? 그냥 옛날 방식 그대로 만드니까 옛 맛이 나겠죠.”

세왕주조 술은 옛 방식 그대로 만들어 낸다. 고두밥을 찧고, 이틀간 종균실에서 배양한다. 그 다음 배양된 것을 항아리에 담고, 덧밥(술밥)을 다음날 넣어준 뒤, 이틀 동안 숙성한다. 이 모든 것을 사람의 손으로 한다. 예전에 기계를 들여놓은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건물 구석에 처박혀 있다. 사람의 손맛을 낼 수 없어서다. 사람이 손으로 균을 띄울 때 날씨에 따라 그 방법이 다른데, 이 미세한 감각을 기계는 결코 흉내 낼 수 없다.

술이 익기를 기다리는 시간의 여유는 술을 자연스럽게 익게 만든다. 하루 이틀 만에 뚝딱 만들어낸 술에서는 느낄 수 없는 깊은 맛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더불어 숙취의 고통에서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 6일 동안 술이 익어가면서 숙취 유발물질인 아세트알데히드가 자연스럽게 날아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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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멀다하고 먹거리 불안이 사회적 문제로 등장하지만, 세왕주조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이 집의 첫 번째 고객이 바로 이대표의 부친이기 때문이다.

“저희 막걸리를 우리 아버님은 매일 드세요. 점심 때 반주로 꼭 한잔씩 하시거든요. 우리 아버님께서 잡수시는건데… 그런데 그걸 떠나서 사람들이 먹는 거잖아요. 물론 돈도 중요하지만, 우리에게는 이것이 가업이잖아요. 우리 집안의 명예도 걸려 있는 거구요.”

70여년 동안 우리 술을 빚어온 세왕주조. 3대를 이어온 전통주의 역사는 옛 것이 사라진 현대인들에게 추억을 선물로 선사한다. 하지만 이들 부부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말한다. 대를 이어 계속될 양조장을 만들고 싶단다. 그러기 위해서는 할 것이 많다. 우선 양조장 옆에 전통주 전시 시음 판매장을 만들 계획이다. 그곳에 양조장의 역사를 기록할 것이다.

“우리 양조장의 역사를 나무로 표현하고 싶네요. 우리 할아버님께서 나무를 심으셨고, 아버님은 뿌리를 내리셨어요. 저희는 줄기를 뻗게 했습니다. 앞으로 우리 후손들은 나무의 잎이 무성하도록 만들어 주겠죠? 100년이 흐르고, 200년이 흘러도 후손들이 대를 이어 전통을 지킨 우리의 역사를 보고 양조장을 지켜나갔으면 합니다.”


사라질 뻔 했던 덕산 양조장


세왕주조의 양조장은 제58호로 지정된 등록문화재다. 일본 사람이 설계한 건물이며, 1929년에 짓기 시작해 1930년에 완공됐다. 백두산에서 전나무를 가져와 지었다. 자연을 활용한 건물로 양조장에 적합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통풍을 좋게 하기 위해 문의 방향을 정했고, 건물 내부에도 바람이 통할 수 있는 통풍구를 마련했다.

집 앞에 측백나무를 심어 해충을 방지하고 목조 부패를 방지했다. 측백나무의 진액이 바람을 타고 날라오면서 해충을 방지하고, 건물의 나무가 썩지 않는 역할을 하는 것. 실제 2006년 보수공사를 하면서 건물을 해체한 적이 있었는데, 뼈대가 하나도 썩지 않았었다. 외벽은 썩지 않도록 검은 도료를 사용했다.

건물 내부에 들어서면 70년의 세월을 순간 이동한 듯한 느낌을 가진다. 발효실에 들어가면 항아리에 ‘1935 龍夢製’(용몽제)란 글자가 찍혀 있다. 물론 전시용은 아니다. 거기서 술이 보글보글 익어가고 있다. 1평 남짓한 작은 사무실에는 허영만의 ‘식객’에도 등장하는 오래된 금고가 자리를 지키고 있고, 벽에는 이승만 시절부터 받은 주류 품평회 상장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덕산 양조장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 했던 아찔한 기억이 있다. 2001년의 일이다. 그 해에 덕산 양조장의 일부가 도로 계획 상 길이 나는 곳으로 지정됐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군청에 항의를 했지만, 딱히 방법은 없었다. 다행히 그 해와 이듬해에 도로 공사는 없었고, 2003년 2월에 문화재 등록이 받아들여지면서 건물 철거는 피할 수 있었다.




취재/작성자 소개

노준형은 전공이 뭐냐고 물어볼 때가 제일 난감하다. 전자공학과 글쓰기의 상관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회로설계(Circuit Design)와 글쓰기의 원리는 동일하다고 종종 주장한다.
몇 차례 취재기자를 꿈꾸며 <코리아포커스>, <아시아경제 브이에스뉴스> 등에서 짧게나마 기자생활도 했으나 불가항력적 상황에 밀려 지금은 언론홍보대행사 커런트코리아에서 홍보AE로 일하고 있다.
‘노대리의 직딩일기’와 같은 자전적 에세이를 쓰고 싶지만, 잦은 야근에 치여 하루하루 꿈을 내일로 미루고 있다. 희망제작소의 소중한 부름을 받게 된 것에 감사하며 사는 소박한 직장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