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세월호를 잊지 않도록
– 정우영(시인, 작가회의 사무총장)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대참사. 우리의 일상은 거기서 멈췄습니다.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은 물론이고 눈과 귀와 마음이 열린 사람들은 누구나 4월 16일을 벗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고가 아니었습니다. 자본과 탐욕이 빚은 처참한 수장이자 몰살이었지요. 그러니 살아 있는 자는 참사의 책임에서 아무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회피할 수도 없고 외면해서도 안 됩니다. 내가 책임자이며 우리의 과실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여전히 저 4.16에 머물러 있습니다. 설렘이나 벅참보다는 슬픔과 아픔에 더 목이 멥니다. 흐드러지는 봄꽃이 이렇게 서럽기는 처음입니다. 5월 항쟁 이후에도 산수유와 진달래를 보며 이보다 마음 괴롭진 않았습니다. 피어나는 꽃이 아이들의 눈망울과 겹치고 들려오는 바람 소리가 물 속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의 거친 숨결로 다가듭니다.
얼마 전에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소원도 들었습니다. 실종자 가족들이 제발 유가족이 되게 해 달라고 바랐다는군요. 세상에 유가족이 되고 싶은 이들은 우리나라의 세월호 실종자 가족밖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 기가 막힌 소원 아닌가요. 전 심장이 아파 잠깐 가슴을 틀어쥐었습니다.
이 말을 듣는 사람도 이처럼 고통스러운데 일 년을 견디고 있는 가족들은 어떻겠습니까. 돌아오지 않는 가족과 함께 스러지고 싶은 생각밖에는 없지 않았을까요. 유가족, 얼마나 아프고 서러운 호칭인가요. 그런데 실종자 가족들이 원하는 것이 바로 그 ‘아프고 서러운 호칭’입니다. 내 살붙이, 내 피붙이의 뼛조각 하나라도 쓰다듬어 보고 싶은 소망의 표현이지요. 저는 이내 격하게 고개 끄덕였습니다. 맞습니다. 억울하게 숨져간 저 분들을, 실종으로 끝맺을 수는 없지요.
이후, 저는 각오를 다시 고쳐 맸습니다. 저 강고한 철면피 부조리와 끈질기게 붙어 보고자 합니다. 저들이 어떤 작당을 하든, 무슨 패악을 부리든 간에 의연하게 대처하겠습니다. 일 년이 지나오는 동안,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고 저들의 후안무치만 강화되어서 지쳐버린 분들 적지 않습니다. 진상 규명을 방해하는 온갖 책동과 음모, 거짓 회유로 떨어져 나간 분도 꽤 됩니다.
하지만, 분노와 모멸을 일상으로 전환하여 꿋꿋이 버티고 연대하는 분들 여전히 많습니다. 노란 리본이 적게 보인다거나 집회 발길이 덜어짐을 잊혀짐이라 예단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이제부터가 본격적으로 지난한 싸움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즐거운 싸움, 흥겨운 쟁투를 벌이자고 말이지요. 대참사에 이 무슨 어리석은 소리냐고 하실 분도 계실 텐데요. 그렇지 않습니다. 슬픔과 분노는 오래가지 못하고 사람을 상하게 만듭니다. 저들이 노리고 있는 게 바로 이때일 거라 저는 짐작합니다. 모두 다 지쳐 포기하도록 만드는 전략이지요.
안산과 팽목항을 가보고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사람들은 거기서 죽음을 살고 있었습니다. 안타깝지만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는 304분의 희생을, 304분의 헌신으로 되살려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일상에서 세월호와 관련되는 무엇인가를 실천하는 겁니다. 페이스북에서는 ‘좋아요’를 누르고, 인터넷에서는 세월호 관련 글을 찾아 읽고 퍼나르고, 짬나는 대로 광장에도 나가서 함께 합시다. 노란 리본도 가슴에 달고 말이지요. 음울한 마음은 음울을 전파하지만, 생동하는 싸움은 생동의 에너지를 퍼뜨립니다. 416이 사람과 사회를 살리는 살림의 날이 될 수 있길 간절히 바랍니다.
1989년 <<민중시>>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한 정우영 님(시인)은 현재 작가회의 사무총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시집으로 <<마른 것들은 제 속으로 젖는다>>, <<집이 떠나갔다>>, <<살구꽃 그림자>>가 있으며, 시평에세이 <<이 갸륵한 시들의 속삭임>>을 펴내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