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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종의 사막을 건너는 법

우리나라의 가을 풍광 중에 제일 상쾌한 것이 산등성이를 따라 소나무와 단풍의 어울려 있는 모습입니다. 요즘 청와대 뒷산을 보면 소나무의 색깔은 더욱 새파랗고 형형색색의 단풍이 수를 놓은 것 같아 보기가 좋습니다. 근래는 가보지 못했지만 금강송이 많은 강원도와 경상북도 산악지방에서 보는 소나무의 기상과 단풍의 화려함은 정말 빼어난 한국의 가을 경치라 하겠습니다. 언제 보아도 자연은 사람이 싫어하는 색칠을 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근래 옛날에는 없던 대단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소나무가 대거 서울로 상경하고 있습니다. 언제 누가 시작했는지 모르겠으나 서울의 좋다는 빌딩이나 공원 또는 아파트 단지를 보면 소나무가 심어져 있습니다. 어떤 곳에는 수십 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심산의 공기를 마시며 미끈하게 자란 금강송도 많습니다. 소나무 조경은 유행병 같습니다.

여름에 보면 도심의 소나무 그늘에 앉아 카페라테를 즐기는 서울 젊은이들의 표정이 참 행복해 보입니다. 솔바람은 없어도 소나무가 주는 상큼한 색깔은 사람의 마음을 서늘하게 만듭니다.

소나무의 서울 이주비는 아주 비싸다고 합니다. 좋은 것은 한 그루를 뽑아다 심어주는 데 2천만~3천만 원 한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산골짜기에서 자라는 소나무는 모양이 좋든 나쁘든 부모가 뿌려준 씨앗에서 자라 그냥 자연스럽게 살아가다가 어느 날 조경업자의 눈에 찍히면 상경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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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신문기사를 보니 금강송이 많은 울진군에서는 태양광발전소 인가를 얻은 기업이 발전소 부지의 금강송을 캐내 팔기로 계약을 했다고 합니다. 발전소 규모는 크지도 않고 고용효과도 별로인데 산림훼손 규모는 클 것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주민들이 산림훼손으로 재해가 발생할까 걱정합니다.

전국의 잘 생긴 소나무들이 수난을 당하기 시작한 지는 오래입니다. 요새 시골에서는 땔감으로 쓰이지도 않아 숲을 헐어 댐을 만들거나 공공시설을 지어도 베어지는 나무를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유독 인기가 있는 수종이 있으니 그게 소나무입니다.

바위틈에 자라는 멀쩡한 소나무를 캐어내기 위해 주변을 파헤치고 난리를 피우기도 합니다. 강릉 인근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오랫동안 벗 삼아 오던 소나무가 조경업자에게 팔려나가면서 마을에 분란이 일어난 예도 있습니다.

이런 사정을 알고 나니, 서울 시내로 이사 온 소나무들의 모습이 예전과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아스팔트나 콘크리트 바닥에 네모꼴의 숨구멍을 겨우 내주고 서울시민에게 상쾌한 몸매를 뽐내라고 강요하는 꼴입니다. 그들의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씨앗에서 발아하고 자라며 더러는 죽기도 하는 자연의 과정을 생략해 버리고 절정의 모습만 억지로 보여주려는 조경의 전형을 소나무의 상경에서 봅니다. 지주목에 의지해서 빌딩 앞에 서 있는 상경 소나무의 모습에서 서울의 에고이즘을 느끼게 됩니다.


* 이 칼럼은 자유칼럼에 함께 게재합니다.

올챙이 기자로 시작해서 주필로 퇴직할 때까지 한국일보 밥을 먹었다.혈기 왕성한 시절의 대부분을 일선 기자로 살면서 세계를 돌아 다녔고 다양한 이슈를 글로 옮겼지만 요즘은 환경과 지방문제, NGO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이제는 글 쓰는 것이 너무 지겹다’고 말하면서도, 지난 100년 동안 지구 평균 기온이 0.6도 올랐다는 사실이 인류의 미래에 끼칠 영향을 엄중히 경고하기 위해서 사막을 다녀온 후 책을 쓰고, 매주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그는 여전히 현장에 있고 천상 글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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