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박원순의 희망탐사 24>

대구 삼덕동은 달랐다.

이곳은 풀뿌리지역운동의 새로운 실험지이며 전진기지이다. 이곳에서 시작된 담장허물기운동은 동네의 담을 넘어 대구전체로 확산되더니 전국으로 이어졌다. 담장허물기운동은 시작에 불과하다. 마을미술관, 마을문화관, 녹색가게, 어린이집이 만들어졌고 마을잔치가 벌어졌다. 곳곳에 벽화가 그려지고, 허물어진 담 위로 마을 주민들의 정이 오갔다.

그러한 대구 삼덕동이 또 다른 도전에 직면하기 시작했다.

몇 발자국만 나가도 고층 아파트가 병풍처럼 둘러진 대도시 속에서 사람들의 모습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보물 같은 삼덕동에도 재개발 바람은 어김없이 불어왔다. 여느 지역처럼 재개발 찬성과 반대로 마을주민은 확연히 갈라섰다. 허물어진 담장 사이로 새로운 마음의 담장이 더 높게 날카롭게 세워졌다.
”?” 한때 새로운 희망을 안겨줬고, 도심공동체 형성의 가능성을 보여줬던 그곳이 처참함과 슬픔으로 얼룩지기 시작했다. 남다른 대구 삼덕동을 만들었던 이들의 가슴에도 상처가 남았다.

그럼에도, 나는 또 다른 희망을 본다. 척박한 땅에서 꽃이 피기 위해 수많은 노력들이 선행되어야 하듯 어려운 여건 속에서 희망을 찾는 끈질긴 노력들이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것만으로 희망의 증거는 충분하니까.

대구 삼덕동에서 마을공동체를 만들었던 그들을 만났다. 월급을 털어 운동에 바칠 정도로 사심 없는 헌신과 새로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비전을 갖고 삼덕동의 마을공동체를 되살렸던 대구 YMCA 중부지회 김경민 관장과 대구 YMCA 청소년쉼터 백경록 기획실장. 커다란 난관 앞에서 그들이 또 어떤 희망을 그려나갈지 궁금했다.

전국 최초로 담을 허물다

삼덕동이 처음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담을 허물면서였다. 담장을 허무는 건 아주 작은 생각에서 비롯됐다. 예쁜 정원을 정성껏 가꿨는데 혼자보기는 아까웠다.

“이 동네로 이사 온 것이 96년입니다. 여기에서 아들 둘을 낳았으니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죠. 골목길 담벼락 밑이 언제나 그렇듯 이곳도 음지와 같더라고요. 그 대책으로 골목 가꾸기를 해보자 생각했죠. 마을사람들이 모여 전시도 하고 축제도 하고 동네공원도 만들면 소통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골목공원을 만드려다 보니 담장을 허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정원을 함께 공유할 수 있으니까요.”
”?” 하지만 담을 허무는 데만 그쳤다면 김경민 관장이 아니다. 그는 동네 어린이들의 환경 그림을 받아 골목에 전시하고 ‘꾸러기 환경그림대회’를 열었다. 방치되어있던 점포를 수리해 물물교환 형식의 재활용 가게도 열었다. 벽화만들기, 골목주차선 지우기 등의 운동이 이어졌다.

곧바로 담장허물기는 대구의 시민운동을 번졌다. 대구YMCA 등 121개 기관, 단체가 참여한 ‘대구사랑운동시민회의’가 담장허물기운동을 시민운동으로 추진한 것이다. 대구시도 나서 행정기관의 담장을 허물었다. 이 운동은 전국으로 퍼졌다.

“대구사랑운동시민회의는 선구적인 거버넌스 모임 형태입니다. 과반수가 시민단체 사람들이었는데 내가 그 모임의 실무위원이었어요. 매년 실무위원회에서 선도과제를 정하는데 99년도의 과제로 담장허물기운동을 하자고 제안해 채택됐죠.”

김 관장은 특히 이 과정에서 대구사랑시민회의의 간사로서 일하던 대구시청의 한수구 주임의 열정적 활동을 설명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모두 나서서 제 일처럼 했지만 그의 활약은 더욱 빛났다”라는 게 김 관장의 설명이다.

한 공무원에 대한 칭찬에 입이 마르는 김 관장을 보면서 담장이 허물어졌듯 민과 관 사이에서도 오묘한 긴장의 담은 허물어지고 곧 동지가 됐음을 알 수 있었다. 허물어진 담장은 사람들 사이의 정, 아름다운 벽화, 주민들의 하나 된 힘을 보여주는 다양한 공간들로 곧 채워졌다.

담장이 허물어지니 마음의 경계도 허물어지더라
”?” “이렇게 담장을 허물고 마을미술관과 마을문화관 마고제를 만들었어요. 마을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만들어본 거죠. 또 무료어린이집과 쉼터, 일자리지원센터, 빛살미술관도 연달아 문을 열었죠. 모든 시작은 담장을 허문 것에서 비롯됐죠. 담장을 허물면서 마음의 경계도 같이 깰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마을 문화관의 이름인 마고제는 한국 전래의 창조신인 마고할머니의 이름에서 땄다. 이 곳 마당에서 아이들이 놀 때 마고할머니가 지켜주길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마고제는 마을 축제마당이기도 하고 문화관이기도 하며 손님을 위한 게스트하우스 역할도 한다.

마고제에서 벌어지는 마을축제는 그야말로 마을 잔치다. 음식 나누고 막걸리 한잔 돌리고 노래방기계 가져오면 그것이 잔치가 된다. 특별한 MC도 없지만 아이들도 몰려들고, 서로 흥겨워진다. 음식은 마을 주민들이 직접 만든다. 그러다보니 예산도 60만 원이면 족하다.

허물어진 담장으로 생긴 것이 또 하나 있다면 바로 벽화다. 전국에서 제일 많은 벽화가 있는 곳이 바로 삼덕동이다. 담장을 허물어도 회색 집 벽만 덩그러니 있다면 그 또한 재미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벽화를 하기 시작했다.

“벽화는 마을디자인이나 마을 공간연출 사업의 시작이었어요. 벽화가 16곳 있는데 전국에서는 최고로 많은 것으로 알아요. 벽화작업은 처음부터 설치작가 김정희 씨가 도맡았어요. 그 분이 마을의 벽화작업을 자신의 작품이라고 생각하며 애써주셨죠.”

하지만 그들의 벽화에는 여느 벽화처럼 페인트로 칠해져있지 않다. 마을의 역사만큼 오래 남을 수 있도록 완성도가 높고 지속성이 있는 벽화를 만들기 위해 타일이나 병두껑, 항아리조각 등이 모두 동원되었다.

오랜 역사가 있는 마을, 삼덕동

”?” 마을은 오랜 시간을 통해 조정이 되고 형성된다. 역사가 긴 마을 삼덕동에는 부의 상징처럼 보이는 높은 빌딩숲이 없다. 하지만 종류별로 전업사, 작은 밥집, 중국집, 작은 상점, 마트, 문구점, 밤에만 여는 맥주집, 비디오집, 만화방 등이 모두 자리 잡고 있다. 새벽 2시에 마실을 나가면 외상으로 맥주 한 잔 할 수 있는 곳도 있고 비디오가게도 야한 집이 있고 건전한 집도 있다. 적절하게 배치되고 모여서 하나의 마을이 형성된 것이다.

“삼덕동은 대표적인 구시가지죠. IMF를 지나면서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기우는 것이 보일 정도였어요. 저소득층이 많아졌죠. 하지만 과거 일제 때부터 해방 직후까지는 대구 최고의 부자 지역이었다고 해요. 지금은 그때처럼 부유하지 않지만 그냥 좋아요. 우리끼리의 끈끈한 정이 있고 다양한 실험들이 펼쳐지고, 성공하고 이쯤이 좋은 것 같아요”

오히려 너무 개발되지 않은, 하지만 오랜 역사와 끈끈한 정이 가득한 그런 장점들이 마을 공동체를 가능하게 했음을 김경민 관장은 안다.

“90년대 중반 이후에 YMCA내부에 작은 YMCA운동을 하자는 논의가 있었어요. 큰 건물 짓고 주민과 유리되는 상황을 개혁하자는 게 시작이었죠. 저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는데 이곳에서 운동을 하다 보니 이게 바로 작은 YMCA운동이더라고요. 그게 바로 마을만들기 운동이구요. 주민과 교감하며 주민과 함께 일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하는 게 마을만들기의 구체적인 형태가 아닐까 싶어요.”

삼덕동 위기에 처하다
”?” 없는 것 없는 삼덕동, 하지만 마을의 역사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사실 역사는 아주 사소한 곳에서 그 생명을 이어온다. 면면을 기억하는 장소와 사람들에 의해서 말이다. 하지만 재개발이 되는 순간 그 마을의 역사는 사라진다. 개발의 붐을 타고 새 건물이 헌 건물을 대체하고 새 입주자들이 기존의 살던 사람을 대체되는 그 순간에….

“대구시에서 재개발 지역으로 163군데를 지정했는데 삼덕동이 그 중 하나입니다. 갑자기 불어 닥친 재개발 바람으로 여느 지역과 마찬가지로 재개발 지지와 반대로 마을주민들이 확연히 갈라섰어요. 어떻게 만들어진 마을 공동체인데 말이죠. 요즘은 정말 재개발 사업이 얼마나 잔인한가를 매일 느끼고 있습니다. 사실 아무리 좋은 마을만들기를 하고 싶어도 그 공간의 지속성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모든 것이 불가능할 수밖에 없어요. 지난 40년 동안에 형성되어온 한 도시공동체가 얼마나 의미있는지 우리사회는 생각하지 않더군요.”

실제로 삼덕동 마을 주민들은 재개발 찬반을 두고 50대 50으로 팽팽히 맞서면서 담장을 허물면서 같이 허물어졌던 마음의 장벽들이 다시 삐죽삐죽 솟아나고 있다.

“재개발 저지에 발 벗고 나설 생각이지만 워낙 재개발 바람이 드세서 솔직히 자신이 없어요. 건설회사가 개입하고 토호 세력이 가세하고 동장이나 관변단체들, 공무원들까지 끼게 되니 저항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어요. 7~8년 마을만들기운동을 하면서 나름대로 우리의 네트워크가 있어 저항을 하고는 있는데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어요.”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10년이 넘게 마을만들기 운동이 펼쳐졌고 풀뿌리마을운동이 성과를 거둔 이곳이 갑자기 불어 온 재개발 바람에는 금세 무능력해지다니 말이다. 그동안 마을사람들이 함께 흘린 땀과 눈물, 웃음이 그렇게 무능한 것일까.

서울시로부터 ‘아름다운 마을’로 지정되기도 했던 한양주택이 끝끝내 철거되고 역사도 철학도 없는 ‘뉴타운’이 지어지는 현장을 보면서 재개발 앞에 당당한 마을을 만나고 싶었다. 삼덕동이 그런 마을이 될 수 없을까? 재개발로 높다란 아파트가 지어지면 기껏 허물었던 담장과 마을의 벽화와 마을회관과 미술관은 어떻게 되는 걸지,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재개발이 정말로 개발의 길인지도 의문이다. 백번 양보해 역사도 없고 차이도 없는 똑같은 마을 163곳이 들어서는 것을 눈감고 넘어간다고 가정해보자. 당장 주머니라도 채워줄 수 있을지 뉘 아는가. 그래, 역사도 포기하고, 마을공동체도 포기하고 주머니라도 두둑이 채워준다면 똑같은 마을 163곳의 비극을 눈감아보겠다. 하지만 말처럼 주머니라도 채워줄 수 있는가?

이미 대구에서 집합주택 주거율이 70%다. 163곳이 모두 개발되면 그야말로 아파트 도시가 된다. 이는 결국 공급과잉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현재 대구지하철 2호선이 개통되면서 분양 대기 물량이 6만 세대라고 한다. 여기에 혁신도시를 하면 또 2만 세대, 달성군의 테크노폴리스가 35만 평 규모로 계획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공급과잉이다. “지금 추세로도 공급과잉인데 더 진행되면 일반저평가가 이루어져 도시 모라토리움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는 김경민 관장의 설명이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신임시장 취임직전에 결정내린 재개발

삼덕동이 재개발 예정지로 지정된 것은 지난 2006년 6월 중순으로 새 시장의 취임직전이었다. 전 시장이 그만두고 새 시장이 들어오는 시정 사각의 시기였다. 어쩜 그것을 노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더구나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의 개정발효시점이 그해 8월 25일이었으니 재개발 예정처리 시점에서는 구법이 적용되어 더 쉽게 재개발이 진행될 수 있었다.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데 그리고 그 주권의 행사는 바로 선거를 통해서 이뤄진다는데 우리는 주권을 행사할 수가 없어요. 실질적으로 주민들이 뽑아주는 게 아니거든요. 공천만 얻으면 되는 게 그들이 바라보는 것은 낮은 국민들이 아닌 높은 그 누구이죠. 그러니 대구에서는 시민운동하는 것도 힘듭니다. 제도적 권력이 완전 장악을 하고 있어서 시민단체의 생각은 중요하지가 않아요. 왜냐, 공천에만 신경쓰면 되니까요. 그럼 당선되니까요.”
”?” 재개발의 대대적 진행에 한 술 더 떠 대구시는 지난해 고도제한을 풀겠다는 발표를 했다.

“처음부터 도시계획을 너무 개발론자 중심으로 진행했어요. 도시를 탐욕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는 입장에 반해 공공적으로 조율하는 것이 의회나 시청이 해야 할 일인데 반대가 된 거죠. 대구에서 최고 고도지역에서 풀리는 곳이 신천지역입니다. 이곳은 바람 길로서 기후조절기능과 대기오염물질의 환류기능을 하고 있는 곳인데 고도제한이 해제되면 어떻게 될지 큰 걱정이에요.”

날로 뜨거워지는 지구와 한반도. 특히 대구는 분지지역으로 여름에 덥기로 유명하다. 그 곳에 바람 길조차 막아버리는 게 아닐지 나 또한 걱정이다.

도시해체론자가 만드는 도시를 소망한다

“근대도시가 형성된 것이 400여년 되는데 인간이 살려면 도시가 해체되어야 한다고 봐요. 실제로 도시해체론자의 관점에서 도시를 다루어나가는 입장이 필요합니다. 적극적으로 도시를 해체하려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도시를 꿈꾸는 거죠. 바로 그런 것들이 창조도시, 그린시티, 신에너지 중심의 도시 등 대안의제로 나타나는 게 아닐까요? 도시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 틀을 해체하려는 사람들이 있어야 해요.”

도발적인 생각에서 변화가 시작된다. 담을 허물었듯 도시를 해체하려는 사람들에 의해 만드는 도시에 대한 김경민 관장의 생각이 멋지다. 중심은 생명이고, 자연이며, 생태다. 근대도시의 주류적 개념에 반대되는 접근, 거대한 생명에 대한 의지들이 잘 표현된 도시는 어떨까?

아직은 멀었다. 그래서 백경록 실장의 다음과 같은 말이 그저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 역시 생태적 상상력이 부족하더군요. 서울의 프로젝팅은 너무 빨라요. 청계천을 보세요. 한 시장이 두둥 하고 나타나니 어느 날 갑자기 실행되잖아요. 청계천을 보면 도심 안에 살아있는 생태와 자연이 크게 밀고 들어오지 못해 너무 안타까워요. 청계천은 수세식 화장실을 보는 것 같죠.”

하지만 난 또 이런 그들이 있음으로 해서 희망을 본다. 너무 쉽게 얻어지면 희망은 그 가치를 잃을 테고, 다수가 이미 손에 넣었다면 희망이 아닐 테니까.

면담일시 – 2006년 10월 25일 오후 6시

면담장소 – 대구 중구 삼덕동 일대

면담인사 – 김경민(대구 YMCA 중부지회 관장)

백경록(대구 YMCA 청소년쉼터 기획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