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빈집 많지만, 내 집은 아니네

몽덕희망원정대장의 남해 도전기! ‘인간관계 신생아’인 중년여자와 간식말고는 도통 관심 없는 몽덕대장 과연 남해 중에서도 남쪽 끝에서 동네책방으로 안 망하고 연결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요? 몽덕 대장은 손님을 내쫓지 않을 수 있을까요? 한 달에 한 번 전합니다. 

시골에 빈집 많지만, 내 집은 아니네

안 망할지도 몰라, 남해 동네책방 ⓶

내 집은 어디에 있을까? 시골에 빈집이 널렸지만, 제 집은 아닙니다. 남해에서도 땅끝 상주면, 제가 ‘인간AI’라고 부를 지인의 5평짜리 원룸 방바닥에 개와 함께 앉아 남해군 홈페이지를 온종일 검색했습니다. 이 동네에 간판을 단 부동산중개사무소는 없습니다. 임대 정보는 당근마켓이나 군 홈페이지에 올라옵니다. 알짜는 알음알음으로 얻어야 합니다. 그나마 인구 1600명 상주면엔 월세가 귀합니다.

원래 들어가기로 한 집은 있었어요. 1층은 제가 ‘신발달인’이라고 부르게 될 주인아주머니의 가게, 2층은 신발달인이 고양이와 함께 사는 집이고 거기서 가파르고 좁은 계단을 오르면 나타나는 3층 방 두 칸짜리입니다. 계약 기간이나 보증금이 없이 침대, 장롱, 가스레인지, 세탁기를 갖췄어요. 남해로 이사 오기 한 달 전, 처음 그 집에 간 날, 신발달인은 심각한 표정으로 제게 말했습니다.

“아이고, 발가락에 힘이 너무 없네.”

탄탄해 보이는 60대 단발머리 여자의 이름을 알기도 전에 저는 발가락이 얼마나 중요한지, 어떤 신발을 신어야 하는지 두 시간 동안 들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발가락을 꼼지락거렸어요. 이 집 희뿌연 샷시문엔 도어락이 없습니다. 불안합니다.

“누가 도어락을 달아. 다 문 열고 다니는데.”

남해살이 다섯 달째인 지금, 저는 그 말이 사실인 걸 압니다. 그동안 저도 도어락은커녕 문을 잠근 적도 없어요. 작은방 한쪽 구석이 눅눅해 보입니다. 주인은 점검했으나 원인을 찾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벽지에 해안선처럼 꼬불거리는 노르스름한 경계를 보며 생각합니다. ‘이게 무슨 누수야. 아트월이지.’ 그때는 현실을 몰랐어요. 이사 한 주 전, 그 집에 들어가지 않고 ‘인간AI’의 게스트룸에서 신세 지며 다른 집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폐가 널렸지만, 철거도 힘들어

1066동. 언론에 나온 남해군에 ‘1년 이상 미거주’ 빈집의 숫자입니다. (남해군에 근무했던 전 담당직원 말로는 관리자가 파악된 것만 그 정도이고 실제로는 2000채를 훌쩍 넘는답니다. 건물주와 토지주인이 다른 경우가 흔하고요. 또 건물을 자녀에게 물려줄 경우 자녀 모두의 동의를 받아야 폐가 철거가 가능하다더군요. 토지의 가치는 남지만 건물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떨어져 폐가의 경우 자녀들이 자기가 소유주인지도 모르는 경우도 흔하답니다.

담당자 골치가 터지는 거죠. “손주들에게 소유권이 넘어가는 경우엔, 그 손주들한테도 모두 동의를 받아야 폐가에 손을 델 수가 있으니 환장할 노릇이죠.”) 하여간 1066개 중에 제가 살 수 있는 집은 없었어요. 시골 어르신들은 큰 우한이 없는 한 집을 내놓지 않습니다. 물려받은 자식들도 마찬가지고요. 내놓아도 외지인인 저는 그 정보를 알기 힘들어요.

대개 집 안엔 쓰레기가 가득합니다. 처리 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폐가 주변엔 폐가가 모여있어요. 빈집투성이 마을에 덩그러니 혼자 살기는 겁납니다. 군에서 리모델링해 싼 월세로 내놓은 ‘귀농인의 집’도 찾아봤어요. 신청 기한을 맞춰야 하고 운 좋게 얻는다 해도 최대 1년까지만 살 수 있습니다. 저는 귀농인도 아닙니다. 청년은 군에서 월세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저는 애매한 중년이죠.

월세 20만 원에 나온 ‘주택’이 있다기에 짧은 다리 반려견 몽덕이를 데리고 달려갔습니다. 집 벽이 곧 울음을 터트릴 거 같았어요. 전에 창고였다고 하는데 지금도 그런 거 같습니다. 리모델링하면 되지만 제 소유도 아닌 집에 큰 돈을 쓸 수 없었습니다. 리모델링하고 2년 만에 쫓겨났다는 이주민 이야기도 들은 터예요.

상주면에서 차로 20분까지 범위를 넓혀 찾아봤습니다. 산중턱에 자리잡은 빌라의 이름은 ‘파라다이스’.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으니 풍경은 파라다이스가 맞습니다. 건물이 세기말 풍경이에요. 19가구 규모인데 두 가구만 산답니다. 나머지는 외지인들이 여름철 ‘세컨드 하우스’로 씁니다. 비어있다는 뜻이죠. 그나마 주인은 월세론 주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괜찮다 싶으면 한달살이용

그때까지 저는 자연이 제 마음에 평화를 가져오는 줄 알았습니다. 아닙니다. 편의점이 안식처였어요. 도시 불빛 속에서만 잠들었던 제게 까만 밤은 각성제입니다. 해변 근처 단독주택에 달린 원룸엔 밤에 들어가다가 논두렁에 처박힐 거 같았습니다. 큰 맘 먹고 월세를 60만원으로 올려 찾아봤어요. 잡풀이 잠식하긴 하지만 아늑한 정원이 있는 집입니다. 6개월만 거주 가능하답니다. ‘좋다’ 싶으면 한달살이용, 월세가 100만원 이상이에요. 반려견은 안된다 하니 돈 있어도 못 들어갑니다.

지쳤습니다. 빗방울이 떨어졌어요. 몽덕이와 뚝방길을 터덜터덜 걷는데 ‘신발달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저한테 집을 구해주려고 신발달인은 인맥을 동원했습니다. “여기 골목 펜션 주인이 2층을 리모델링 중이야. 거기 가보자~.” 펜션 아저씨는 4월에 이미 반바지 차림입니다. 여러 방향으로 창을 냈습니다. 벽은 청색, 문틀은 짙은 갈색입니다. 아직 싱크대는 없지만 그 집에서 상쾌한 아침을 맞이하는 개와 제가 그려집니다.

반바지 아저씨는 혼자 쉬엄쉬엄 고치는 중이라고 했어요. “세월아 네월아가 최고지.”(반바지 아저씨) ‘신발달인’이 아저씨를 몰아붙혔습니다. “월세를 내줘~.” 갑자기 쳐들어온 두 여자의 생떼에 아저씨는 당황했습니다. “월세 줄 지는 아직 결정 못 했는데.” “내줘, 내줘~.” 그 집을 나오며 ‘신발달인’은 제게 당부했습니다. “이 집 앞을 몽덕이랑 매일 왔다 갔다 해. 월세 달라고.” 결국 저는 그 ‘드림하우스’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반바지 아저씨는 완벽주의 예술가, 남해의 가우디였어요. 다섯달 째 리모델링 중입니다.

5월 햇살 아래 자포자기 심정으로 핫도그를 먹으며 텐트를 사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문자가 왔습니다. “다들 몽덕이(반려견)를 받아주지 않는다니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요. 누추한 우리 집이라도 들어오고 싶으면 와요.”(신발달인) 정이 많은 그는 길거리 고양이 셋을 구조해 키웁니다. 이름이 ‘카오스’를 줄여 ‘칼’인 검은 고양이, 회색 날쌘돌이 ‘재리’, 투실투실 인물 좋은 ‘미나’입니다. 이외에도 신발달인의 가게 앞엔 동네 길고양이들이 한 줄로 서 있어요. 두 주 동안 생고생을 하고 나니, 이 집이 펜트하우스같습니다. 게다가 바로 앞에 내 마음의 성전 편의점이 있습니다.

이사 온 다음 날, 하루 종일 비가 왔어요. 배가 고팠습니다. 밥할 기운이 없었어요. 집 옆 식당에 냄비를 들고 가 생선구이와 된장찌개 세트를 시켰습니다. “돈 때문에 파는 거 아닌 거 알지?” 식당 아주머니는 냄비 가득 된장찌개를 담고 생선 두 마리 구워줬습니다. 그 된장찌개를 일주일 먹었어요. 이튿날 아침엔 신발달인이 김치볶음밥과 들깨로 끓인 미역국을 줬습니다.

된장찌개를 일주일 내리 먹고 물려 한동안 못 간 식당을 지나, 몽덕이가 고양이들과 한판 기싸움을 벌이는 1층을 지나, 희뿌연 샷시문 너머 책상 앞에서 집중하고 있는 ‘신발달인’의 옆모습이 보이는 2층을 지납니다. 닭을 튀겨 아들을 홀로 키워내고 오만 고양이들을 챙기는 이 여자는 몸의 균형을 바로잡는 ‘스본스도’를 파고들고 있습니다. 하도 읽어 가장자리가 닳아버린 그의 ‘스본스도’ 책과 색색깔 필기 노트를 보고 난 뒤엔 저는 그의 발가락 강연을 허투루 듣지 않습니다. 신발달인은 영어도 공부 중입니다. “세계 여행을 하고 싶거든.” 그는 옥상에서 키우는 깻잎, 상추, 고추를 따다 주고, 제 빨래를 걷어주고, 생선을 나눴습니다. 간식을 얻어먹을까 싶어 2층 대문 틈에 코를 들이박는 몽덕이를 끌고 3층으로 올라갑니다. 저는 비로소 집에 도착한 거 같아요.

PS. 남해살이 다섯달이 된 지금 몽덕 대장은 고양이 군단과 잠정적 평화 협정을 맺었습니다. 

글: 김소민 희망제작소 연구위원 | 사진: 희망제작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