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례없는 비상계엄 선포는 국가, 사회, 그리고 시민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분노와 절망 속에서도 우리는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길을 찾아야 합니다. 희망제작소는 2025년을 맞아 <민주주의X마음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광장과 일상의 경계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당신, 지금 당신의 마음은 안녕하신가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민주주의의 진보는 직진이 아니라 나선형 운동을 하는 것 같다. 몇 발 진전하다가 다시 예전으로 한 두 발 후퇴하고, 또다시 앞으로 몇 발 나갔다가 때로는 그보다 훨씬 더 뒤로 퇴보한다.
한국 근대사를 훑어보면 명확하다. 해방 후 이승만의 집권과 4·19 혁명, 민주 정부의 등장과 박정희의 쿠데타, 서울의 봄과 광주 민주화 운동의 해방 공간을 압살한 전두환·노태우 군사정권. 꿈같던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10년 뒤에 다시 이명박 박근혜 정부로의 퇴보, 그리고 촛불혁명에 이은 문재인 정부와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는 이른바 ‘wax & wane’, 흥망성쇠를 번갈아 겪으며 나아가고 있다.
1987년 민주화 끝자락에 만난 농부의 염원
모든 ‘주의’(ism)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이념이나 사상이다. 민주주의는 완성되지 않은 염원이고, 그 과정은 인내심을 기반으로 한다. 하나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싶다. 1987년 대학 시절 끝 무렵, 6·10 항쟁의 소소한 전리품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치렀다. 노태우가 당선된 선거다. 학생운동의 민주화 투쟁은 열기가 빠지고, 대통령선거라는 태풍에 갈 길도 모호해진 상황이었다. 백기완 선생이 출마했다가 단일화에 실패하고 후보에서 사퇴했다.
학생 운동권 일부는 공정선거감시단으로 농어촌지역에 선거참관인으로 들어가는 활동을 했다. 워낙 부정선거가 횡행하던 시절이었다. 선거참관인이 되기 위해서 정당 당원이어야 했다. 그때 당시 카톨릭농민회가 지정하는 선거구로 가기 위해 얼떨결에 평화민주당(당시 김대중 대통령 후보) 당원이 되어 경북 예천의 한 시골 마을로 갔다.
아름답게 흐르는 내성천이 내려다보이는 한 농부의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졌다. 그 농부 어르신은 놀랍게도 그 마을 근동을 통틀어 유일한 평화민주당 당원이었다. 20년 가까이 마을 사람들의 놀림과 핍박을 받으면서도 한결같이 ‘김대중 선생님’이 대통령이 되기를 염원하던 분이었다. 보수적인 마을에서 나고 자라 한 번도 마을 밖을 나가 본 적이 없었다. 그는 1971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한 김대중 대통령 후보의 안동 연설을 듣고서 김 후보에게 온 마음을 맡겼다고 했다. 평생 시골 마을에 살면서 김대중 그 분이 꿈꾸는 세상을 일구는 데 작은 힘을 보태며 한결같이 농사를 지으며 살고 계셨다.
아시다시피 김대중 대통령은 1987년 선거에서 낙선했다. 낭인 생활을 하다가 그로부터 무려 10년이 지나서야 대통령이 되었다. 경북 예천의 농부는 근 30년 만에 염원을 이뤘다. 어르신을 통해 민주주의를 이뤄내는 과정은 인내와 희망이 중요한 덕목이라는 배움을 얻었다.

서부지법 폭동 사태, 민주주의의 실격자들
최근 서부지법 폭동 사건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5년 전 미국 트럼프 지지자들의 국회의사당 폭동 사건을 자연스레 떠올렸을 것이다. 그들의 행동은 자기중심적이며 천박하기 그지 없었다. 일방적이며 즉각적인 해결을 위해 행동으로 직행했다.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를 실현하기 위해 모든 과정과 절차를 무시했다.
민주주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실격이다. 한국의 극우수구 집단도 그들과 다름없는 민주주의의 실격자들이다. 목숨을 걸고 집회 결사의 ‘자유민주주의’를 현실화시킨 진보진영의 사람들을 향해 비열하고도 천박하게 거들먹거리는 저들을 과연 우리의 대열에 합류시키려 계속 노력해야 할까 싶었다.
한숨이 절로 나오는 저들을 보며, 노암 촘스키의 “표현의 자유는 누구에게나 어떤 방식으로건 허용되어야 한다”라는 말로 위안을 삼았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모든 문제의 이름이다”라는 슬라예보 지젝의 말도 민주주의의 본령에 대한 경구로 삼아 보면 조금 더 위안이 될 수도 있겠다. 민주주의는 결국 실격자들도 품어야 하는 것 같다.
‘마음의 연대’에서 발견한 민주주의의 생명력
수확도 있었다. 이번 내란 사태를 겪은 시민들의 연대의 물결은 “폐허에 핀 꽃”을 방불케 했다. 광주민주화 항쟁 때 어머니들의 주먹밥과 김밥처럼, 남태령 대첩과 광화문 광장에서 공유된 오병이어의 기적은 잇몸이 시큰해지도록 감동적이며 또한 치유의 힘을 가졌다.
마음의 연대를 보면서 ‘사람의 공동체는 이렇게 살아 있구나’, ‘환란 속에서도 힘을 얻고, 결국 사람 사는 세상의 희망을 다시 확인시켜 주는구나’라고 찬탄했다. 조금 더 인내하고, 소박하게 실천하고, 사람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계속 생명력을 지니며 흘러갈 것이다.
한 외국 기자가 이번 계엄 내란에 대항하는 수많은 민주 시민들을 보고 이런 기사를 썼다고 한다. “한국 사람들은 나라에 위기가 오면 집에서 가장 밝은 것을 들고 나온다.” 참으로 감동적이다. 그 가장 밝은 것은 우리의 희망이다.
글: 이승욱 정신분석클리닉 ‘닛부타의 숲’ 대표

서로의 마음을 돌보고 민주주의의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는 자리에 시민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 일시
✔️ 3/13(목) 오후 7시 | 민주주의를 치유하자_ 김찬호 성공회대 교수
✔️ 3/19(수) 오후 7시 | 21세기 생존주의와 생태민주주의_김홍중 서울대 교수
✔️ 3/20(목) 오후 7시 | 요즘 우리가 괴로운 철학적 이유_박구용 전남대 교수
✔️ 3/27(목) 오후 7시 | 도시의 마음_김승수 전 전주시장
📌장소: 온/오프라인 동시 진행
오프라인 : 희망제작소 3층 (서울 마포구) / 온라인 : 줌 링크 발송
📌 대상: 시민 누구나
📌 신청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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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가비 : 일반 시민 30,000원 *후원회원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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