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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근의 한중일 삼국지

남북관계의 대립이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게 되었다. 이명박 대통령 집권 이후 전격적으로 추진해온 이른바 ‘잘못된’ 과거로부터의 탈피라는 정책에 대한 북한의 거친 반발은 드디어 ‘발사체’를 추진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남북의 공조와 경협의 상징인 개성공단 사업 또한 그 전도에 적지 않은 암운을 드리우고 말았다.

그런데 이와 같은 남북의 경색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아무리 곰곰이 분석하고 연구하더라도 이명박 정부의 외교정책이 빚어낸 ‘콩 심은 데 콩 나는’ 격의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밖에 없다. 유감스럽지만, 비현실적이며 겸허하지 못한 외교전략의 궤도를 막무가내로 고집해 온 결과 도달하게 된 철저한 자업자득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은 이데올로기를 토대로 한 양극 체제와 비교할 때 그 불안정성이 더 크다. 패권대국 미국의 쇠퇴조짐 속에 중국과 EU, 인도와 일본 등 주요 세력들이 그 역량을 증가시키고 있으며 이들 사이에 상호작용의 심화 또한 새로운 다극체제적 경향을 짙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국가안보를 동일한 이데올로기 공유 국가군 속에서 보전했던 과거와 달리, 사실상 개별 국가 스스로가 보전해야 하기 때문에 소수 강대국들을 제외한 대다수 국가들에게는 오히려 더 부담스러울 수 있다. 이는 우리 한국에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과도기적’ 국제정세 하에서 우리에게는 과연 어떠한 생존 및 번영전략이 필요한 것일까?

이와 관련, 이명박 대통령은 국가안보와 경제번영을 위해서도 한미동맹의 강화 및 업그레이드는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20세기가 아닌 21세기에 살고 있다. 더구나 국제정세의 기본 패러다임이 또 다시 크게 변화하고 있는 과도기적 상황 속에서 20세기에 만들어진 한미동맹의 강화가 21세기 우리의 국가안보 및 경제번영에 얼마나 커다란 도움이 될 수 있을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거늘, 자칫 ‘득보다 실’이 더 많은 것은 아닌지 냉철하게 성찰할 필요가 있다.

경제성장을 위해서라면, 국내외 정세의 안정이 전제되어야 한다. 아무리 유능한 경제 지도자라도 국내외 상황이 편치 못하면 경제분야에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 현 정부가 혹시라도 ‘과거’ 일본의 예를 염두에 두고 있지 않기를 바란다. 2차 대전 이후 일본은 국가안보를 비롯한 대외적 안정을 사실상 미국에만 의지한 채, 오로지 국내의 경제 재건에만 주력해왔다. 그 결과, 오늘날과 같은 막강한 경제를 일궈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결과에만 현혹되어서는 곤란하다. 그 무렵의 일본은, 냉전과 2차 대전 패전이라는 국내외 정세 속에서 그 길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로서는 거의 유일했던 선택지가 오늘날과 같은 좋은 결실을 이뤄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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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 일본은 과거와는 크게 달라진 국내외 정세 속에서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미일동맹의 ‘강화’로 패권대국 미국에 더 경사되면서 미국이 조성하는 국제사회의 대립구도에 계속해서 깊숙이 빠져들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현행 미일방위조약 등을 위반하면서까지 미일동맹을 ‘확대’함으로써 일본 사회의 국론분열과 이로 인한 국력소모 또한 심각하게 되었다. 이러한 식으로는 일본이 지향하는 ‘국제평화주의국가’ 노선은 갈 길이 멀고도 험난하기만 하다.

현재 일본사회에서는, 이와 같은 사태악화 속에 대미관계 강화 일변도 정책을 수정하라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예를 고려할 때 대미 동맹 강화를 통한 대외적 안정과 그 속에서의 경제발전 주력이라는 모델은, 단지 손에 익숙하다는 이유로 최첨단 디지털 기기에 맞설 상대로 아날로그 기기를 선택하는 것과 같은, 매우 애처롭고도 위험한 대응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한편, 중국의 사례 또한 동맹과 경제 발전의 상관관계에 대한 하나의 중요한 참조가 될 것이다. 경제 살리기를 위해 개혁개방정책을 선언한 중국은, 그 대외적 기반 조성을 위해 이미 1980년대부터 실용외교노선을 견지했다. 그 일환으로 1989년에는 그 동안 대립하고 적대시하던 구소련과 국교정상화를 실현시키기도 하였다. 이를 통해 미국과 소련이라는 ‘좌우의’ 초강대국과 모두 우호관계를 맺으며, 중국은 1949년의 건국 이래 가장 안정된 대외정세 속에 경제발전에 주력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중국은, 천안문 사태라는 국가적 위기를 맞이해서는 ‘동맹을 결성하지 않는다(同盟不結盟)’를 포함한 이른바 ‘4불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를 기반으로 해서, 제3의 특정 국가를 가상의 적으로 상정하며 대립국면을 기조로 하는 동맹관계로부터 탈피하였다. 그 대신에 상호호혜를 기반으로 해서, 적대국을 상정하지 않고 이에 따라 대립국면이 전제되지 않는 파트너십 관계를 적극 전개하였다. 국가 관계의 근본양식으로서 동맹의 시대는 끝났으며, 파트너십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후쿠야마 교수의 지적을 외교전략에 잘 담아내고 과감하게 실천한 것이다.

그 결과 중국은, 한국을 포함한 인도나,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과 같은 과거의 적성국가 혹은 대립국가들과도 모두 상호호혜에 입각한 파트너십 관계를 수립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적을 적으로 삼지 않을’ 뿐 아니라, 아예 ‘적을 만들지도 않는’ 신중하며 실용적인 외교전략 덕에, 중국은 국가 위기 시에도 대외환경을 오히려 더욱 공고히 하며 오늘날과 같은 경이로운 고도성장의 토대를 마련해 낸 것이다.

이와 같은 중국과 일본의 사례에 비춰볼 때, 경제 살리기에 주력하겠다며 전개하는 현 정부의 외교정책은 그 목표와는 동떨어진 채 헤매고만 있는 것 같아 유감스럽지 않을 수 없다.
다행히도 옛 말에 ‘땅은 비 온 뒤에 더 굳어진다’고 했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대립이 유례없이 심각해진 현 상황에 대한 다각적 성찰 및 향후의 대처 방안 등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절실하다.

‘한미동맹 강화’ 주장과 ‘비핵 개방 3000’ 등이 얼마나 위험하고 오만한 것인지, 이로 인해 우리의 국가안보와 경제번영이 얼마나 큰 영향을 받고 있는지 등에 대해 더욱 다양한 외교관을 지닌 사람들을 폭넓게 등용하는 가운데 이웃 나라의 외교전략 등도 적극 벤치마킹하여야 한다. 이를 통해 그 동안의 시행착오가 이제는 우리가 제대로 된 방향에서 국가안보를 굳건히 다지는 가운데 착실한 경제성장도 가능할 수 있도록 외교분야에서 과감한 궤도수정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되는 것이다.

글_우수근
우수근은 한국출신 ‘아시아인’임을 자처한다. 일본유학(게이오(慶應義塾) 대학 대학원) 중에 아시아를 자각했고, 미국유학(University of Minnesota, 로스쿨(LL.M)) 중에 아시아를 고민하다가, 중국유학(화동사범(華東師範) 대학, 법학박사) 중에 아시아인이 되었다. 좀 더 열린 마음과 좀 더 따뜻한 마음으로 국내외 외국인들과 더불어 살자고 외치는 그는 현재 중국 상하이 동화(東華)대학교 외래교수(外敎)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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