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2007년 10월 4일, 남한과 북한의 두 지도자들은 ‘2007 남북정상회담 공동선언’을 발표하였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방북 이후 7년이란 세월이 지나 이루어진 남북정상회담이었지만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 비해 훨씬 더 구체적이고 확대된 경제협력 방안들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정전체제의 종식과 평화체제 수립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 졌으며 그 전날 발표된 제6차 6자회담 2단계 회담결과에 대한 이행의지가 담겨 있다는 점 등에서 결코 작지 않은 성과를 담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공동선언이 발표된 이후 한국에선 이미 예상되었던 보수진영의 “퍼주기” 논란이 재개되었고 대통령의 NLL(북방한계선) 발언을 공격의 빌미로 삼은 정략적 공격이 거세게 이어지고 있다. 과연 한반도 그리고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평화질서의 구축 문제가, 국내 정계와 학계, 그리고 언론에서 진지하고 심도 있게 논의될 수 있을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정전협정의 당사자이면서 지금 한반도에서 발생하고 있는 많은 문제의 ‘원인과 해법’ 모두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선 남북한 두 정상의 공동선언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는가? 정상회담 공동선언이 발표된 이후 미국 백악관이나 국무성의 공식 입장은 “원칙적으로 환영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 현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 분위기는 말 그대로 “원칙적 환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공동선언이 발표된 이후 정상회담의 성과를 미국 정계와 여론 주도층들에게 알리기 위한 한국 주요 인사들의 방미가 계속되고 있지만, 이번 남북회담의 의의에 대한 미국 언론이나 싱크탱크들의 반응은 여전히 그리 호의적이지 않거나 대체로 소극적(또는 무관심)이라 보여 진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정상회담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6자회담 2단계 합의결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미국 주류 싱크탱크, 한반도 문제에 무관심>

보통 이런 사안이 있을 경우 곧바로 다양한 수준의 보고서와 논평을 발표하는 것이 미국주요 싱크탱크들의 일반적인 행태임에도, 10월 3일 6자회담 2단계 합의문 발표, 10월 4일 남북정상회담 공동선언 발표에 대해 논평이나 분석보고서를 발표한 싱크탱크는 거의 없다. 특히 남북정상회담 공동선언에 대해선 더욱 그러하다. 필자가 조사해본 결과에 따르면, 2007년 10월 14일 현재 두 사안에 대해 공식적인 논평이나 보고서를 발표하여 자신들의 홈페이지에 게재한 경우는 겨우 몇 건에 지나지 않는다(미국 싱크탱크의 경우 소속 연구원이 외부에 기고한 원고들도 모두 자신들의 홈페이지에 게재한다).

우선 미국 내 가장 대표적인 싱크탱크들이라 할 수 있는 브루킹스연구소나 전략 및 국제문제연구소, 카네기 평화기금, 외교관계평의회, 미국진보센터 등은 6자회담과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일체의 논평이나 보고서도 발표하지 않고 있다. 보다 냉정히 말하자면 본래 이들 싱크탱크들에서 ‘북핵문제’ 이외에 한반도 문제가 다뤄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할 정도이지만, 설령 그런 차원에서 보더라도 6자회담의 합의문, 남북정상의 공동선언이 아무런 ‘언급’의 대상조차 되지 않은 것은, (대체로 민주당에 가깝다고 볼 수 있는) 현재 미국 주류 싱크탱크들의 한반도 문제에 대한 관심정도를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2007년 10월 9일 주미한국대사관 홍보원이 주최하는 코러스 하우스 포럼(Korus House Forum)에는, 1994년 제네바 핵합의 당시 미국측 대표였던 로버트 갈루치(Robert Galucci) 전 국무부 차관보(현 조지타운대학 외교대학원장)는 <우리는 북한과 더불어 어디로 나아가는가 Where Are We Headed with North Korea?>라는 제목의 강연이 열렸다. 이날 갈루치 박사는 강연 시간 대부분을 6자회담 2단계 합의문이 갖는 ‘세부 사항의 모호함’에 대한 우려를 지적하는데 할애하였다.

과연 북한이 미국이 추정하고 있는 50~60kg 정도의 플로토늄에 대해 얼마나 정확히 신고를 할 것인가, 파키스탄으로부터 들여온 우라늄 농축용 원심분리기에 대해선 얼마나 밝힐 것인가, 북한은 다시 국제원자력기구에 참여할 것인가, 핵무기확산금지조약에는 다시 가입할 것인가? 동결된 핵물질은 북한 바깥으로 옮겨질 것인가, 북한에 남겨둘 것인가, 북한은 시리아에 핵과 관련된 노하우와 장비를 넘겨주었는가의 문제 등 해결해야하고 규명해야할 구체적 쟁점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10월 9일에 열린 6자회담 2단계 합의문, 특히 북한의 ‘비핵화’ 및 ‘6자회담’과 관련된 강연임에도 불구하고 갈루치 박사는 10월 4일에 발표된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언급은 거의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는 민주당 계열의 주요 지식인 가운데 한명인 갈루치 박사조차, “북한의 비핵화”와 남북한의 평화체제 수립을 하나의 틀로 적극적으로 사고하고 있지 않음을 보여 주는 단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기업연구소, '한미군사동맹의 종언'에 대한 경고>

한편 가장 보수적인 싱크탱크들이라 평가되는 헤리티지재단에서는 6자회담 2단계 합의문에 대한 분석 글이 제출되었지만 남북정상회담 공동선언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거의 유일하게 남북정상회담 및 공동선언에 대한 평가를 공개적으로 발표한 곳은 미국기업연구소이다. 미국기업연구소의 대표적 군사 및 한반도 전문가들이라 할 수 있는 크리스토퍼 그리핀(Christopher Griffin), 니콜라스 에버슈타트(Nicholas Everstadt), 애론 프리드베르크(Aaron L. Fridberg, 프린스턴대학교 교수)는 2007년 10월 9일 월스트리트 저널(Wall Street Journal)에 「미국 없는 한국을 향해 Toward an America-Free Korea」라는 제목으로 공동기고를 하였다.

이들은 남북정상회담의 가장 중요한 이슈는 “한미군사동맹의 미래”라고 주장하였다. 남북한의 정세 변화는 한미군사동맹의 종언을 예고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만약 한국이 북한과의 연합을 고려한다면 “한미 동맹이 없어지는 상황”에 대해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만약 한미군사동맹의 약화 나아가 종언이 이루어지게 되면, 그동안 미군에 의해 이루어졌던 수많은 군사적 장치들을 대체하기 위한 엄청난 군사비 지출이 당장 필요할 것이며 이는 남한 경제에 심대한 부담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만약 한국이 미국의 군사동맹이 아니라면 미국이 과연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기 위해 그토록 애를 쓰겠냐고 반문하는 것도 잊지 않았고 미국 대신 중국을 주요 교역 상대국으로 삼으려 하는 것인지 묻고 있다.

또한 미국과의 군사동맹이 아니라면 한국은 과연 주변 어느 나라와 과거 한미군사동맹만큼의 강력한 안보동맹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며, 한반도 정세에 위협이 발생할 경우 남한 내부로부터의 강력한 핵보유 압력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이들은 남북한의 독자적인 평화체제 정립이라는 목표는, 한미 간 군사동맹을 약화시키거나 아예 중단시킬 수 있다고 위협하며 남한은 “북한과 미국”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북한에 대한 불신에 기인한 것이라기보다, 남북한의 독자적 움직임이 자칫 아시아 지역 내 미국의 군사적, 전략적 영향력 약화와 중국의 영향력 강화로 이어지는 것에 대한 우려를 우선시하는, 미국 내 보수파들의 시각을 여실히 보여 주는 것이다.
”?”<정책연구소, '상호 신뢰하는 공간으로 나아가는 계기'로 평가>

반면 미국의 대표적 진보적 싱크탱크 정책연구소(Institute for Policy Studies)가 내고 있는 포린 팔러시 인 포커스(Foreing Policy in Focus)의 공동책임자인 존 페퍼(John Feffer)는 남북정상회담에서 발표된 공동선언에 대해 상대적으로 긍정적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는 2007년 10월 5일 코리아 타임즈(Korea Times)에 기고한 「정상회담 : 운동장 정치를 넘어 Summit : Post-Playground Politics」라는 글에서 2007년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중국의 경제와 미국의 군사력”에 의해 그늘이 씌워진 한반도를 보다 통합되고 상호 신뢰하는 공간으로 나아가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하였다(http://www.fpif.org/fpifoped/4614).

그는 경제협력에 대한 합의는 중국에 대해, 안보와 관련된 논의들은 미국에 대해 간접적이지만 분명한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즉 남북한의 경제협력은 동북아시아 경제발전의 허브를 차지하려는 중국의 의도에 효과적으로 경쟁하기 위한 새로운 지역 발전의 틀을 제시한 것이며, 남북한의 안보관련 합의들은 영구적 평화체제 수립을 향한 그들의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이는 앞서 미국기업연구소 연구원들이 지적한 것과 마찬가지로, 한미군사동맹의 기초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그는 남북한 모두 일본의 “보통” 군대(“normal” military)에 대응하기 위해 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하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것이 더 이상 한반도의 평화를 보장하는 최우선 역할을 수행하지는 않게 될 것이라 전망하였다. 남북한의 공동선언은 중국과 미국으로부터의 “완전 독립”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양 강대국의 각축 속에서 보다 ‘성숙한 협력의 시대’를 열어나가고자 하는 것임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기업연구소의 “둘 중 하나”라는 식의 극단적 해석과 명확한 대비를 이루는 논리라 할 수 있다.
”?”<미국 싱크탱크들, 이라크와 중국문제에 집중, 한반도는 ‘북한문제’ 또는 ‘북핵문제’로만 인식>

필자가 1년여 기간 동안 워싱턴 디씨에 머물며 미국 주요 싱크탱크들의 연구동향을 관찰해 본 바에 따르면, 미국 국내문제를 제외한 대부분 싱크탱크들의 관심은 ‘이라크’와 ‘중국’에 집중되어 있다. 중국과 관련해서는 중국의 국내 사정에서부터 국제적 역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들이 거의 매주 주요 싱크탱크들의 분석보고서나 강연, 세미나에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중국 열풍에 대응이라도 하듯, “미-일 동맹”의 문제를 화두로 삼은 일본에 대한 논의 또한 적지 않게 싱크탱크들의 검토 대상이 되고 있다. 수년간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한 후, 현재는 조지워싱턴 대학교 교수로 있는, 미일동맹 및 일본정치 분야 최고 전문가 가운데 한명으로 꼽히는 마이크 모치즈키(Mike Mochizuki) 교수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중국에 대한 연구가 많아진 건 사실이지만 일본 연구가 크게 줄었다고 볼 수는 없다. 다만 과거에는 주로 그것이 ‘일본의 경제’에 관한 것이었다면 최근에는 ‘미일동맹’을 중심으로 한 일본의 군사적, 전략적 역할’에 관한 것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반면 한반도의 문제는 오직 ‘북한문제’ 또는 ‘북핵문제’로만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왜소하다. 남한과 미국의 자유무역협정(FTA)에 관한 문제나 한미군사동맹에 대한 토론회가 가끔 개최되기는 하지만 미국 싱크탱크들이 독자적으로 이를 주최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고 대부분 한국과 관련된 기관들이 주최하는 행사들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북핵문제”가 일정한 고비를 넘긴 듯한 상황에서 이뤄진 남북 정상회담이 미국 주류 싱크탱크들의 관심을 얻기란 결코 쉽지 않다고 본다.

정상회담 직후 회담 관계자들이 이곳 워싱턴 디씨를 방문하여, 소위 여론 주도층이라 할 미국 싱크탱크 소속 연구원들이나 언론인들을 대상으로, 회담의 성과와 의미를 설명하는 자리를 연일 갖는 것은 이런 현실의 반영이라 할 것이다. 북한에 대한 불신과 남한에 대한 무관심, 그리고 중국에 대한 우려가 빚어어 낸 이와 같은 ‘기묘한 상황’을 그저 억울한 ‘홀대’로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그 자체를 하나의 열린 ‘기회’로 만들어 낼 것인가 또한 우리 사회의 정책 역량을 판단하는 잣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