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희망소기업’은 희망제작소 소기업발전소가 지원하는 작은 기업들로, 지역과 함께 고민하고 생활하며, 성장하고 대안적 가치를 생산하는 건강한 기업들입니다. 앞으로 이 연재가 작은 기업들의 풀씨 같은 희망을 찾아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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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의 하늘은 청명했다. 산들은 그 하늘에 기대 선 채 청도 읍내를 감싸 안고 있었고, 구석구석에 빼곡히 심어놓은 감나무는 앙상한 가지만을 드러낸 채 다가올 가을을 준비하고 있었다. 가을이 되면 속이 꽉 찬 감이 열려 온통 붉은 빛으로 세상을 물들일 날을 기다리며.

산 중턱에 이르자, 아늑함과 평온함이 느껴지는 자태가 한눈에 펼쳐졌다. 소싸움 경기장이 외로이 자리를 잡고 있는 그곳에 청도반시의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청도의 명물 청도반시는 씨가 없는 것으로 유명해요. 그런데 청도반시를 다른 고장에 옮겨 심으면 이상하게도 씨가 생긴답니다. 사람들은 토양이 좋아서 그렇다는 등 여러 가지 말을 하는데, 알고 보면 간단합니다. 감나무는 암수가 따로 있는데, 청도반시는 암꽃만 있어요. 수꽃이 없으니 씨가 생기질 않습니다. 그게 씨 없는 청도반시의 비밀이에요.”

농업회사법인 ‘감이랑’ 홍상선 대표의 말이다. 대부분의 과수는 한 꽃에 암술과 수술이 같이 있는 양성화(兩性花)지만 감은 암수꽃이 따로 맺히는 단성화(單性花)이다. 청도반시는 여러 종 중에서 암꽃만 존재하기 때문에 청도반시에 씨가 생길 일이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청도반시의 개화 시기가 수꽃에 비해 1주일 빨라 씨가 생길 가능성은 더욱 낮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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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이랑은 농민들과 ‘함께’ 하는 회사

청도는 감의 도시라고 할 정도로 곳곳에 감나무가 무성하다. 마당이 있는 집이 있다면 열에 아홉은 감나무가 마당 한 켠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 감 5개 중 하나가 청도에서 열리고, 청도 농가 70%가 감을 재배할 정도로 감은 청도의 대표적인 작물이다.

이 때문인지 청도는 감을 이용한 상품 개발에 적극적이다. 최근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아이스 홍시는 물론 쫀득쫀득한 맛이 일품인 감말랭이, 감으로 만든 와인, 감잎차 등 다양한 형태의 감 가공식품을 세상에 선보였다. 현재 청도군 내 감 가공 공장은 30여 곳에 달한다. 공장 하나 없던 청도군에 감이 새로운 길을 열어준 것이다.

농업회사법인 ‘감이랑’도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성장해온 회사 중 하나다. 감말랭이를 생산하는 ‘감이랑’은 2006년에 설립된 감 가공 회사다. 감말랭이와 함께 청도반시와 반건시 등을 생산, 판매하고 있으며, 청도 지역을 중심으로 판매망을 확대하고 있는 중이다.

회사명 ‘감이랑’은 두 가지 뜻을 담고 있다. 감과 이랑의 합성어로 여기서 ‘이랑’은 갈아놓은 밭의 한 두둑과 한 고랑을 아울러 이르는 말을 뜻한다. 또 다른 뜻은 ‘이랑’을 ‘~ 와 함께’란 말로 해석해 감과 함께 하는 사업이란 의미를 담았다. 농민과 농촌과 함께 더불어 하는 감 가공 사업이란 의미도 담겨 있다. 홍 대표는 이를 농촌에서 터득했다.

“사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청도군에서 운영하는 ‘감 아카데미’를 다녔어요. 이곳에서 감에 대한 지식도 쌓고 가공 기술 등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어요.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지혜는 농민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얻었던 것 같아요. 감에 대한 여러 가지 기술이나 노하우는 결국 농민들 속에 있었던 거죠. 지역의 농가를 여러 차례 방문했는데, 그분들께서 열린 마음으로 감에 대해 많이 가르쳐주셨습니다. 농촌에 가서야 감 잡은 거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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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후반전은 농촌에서

‘자연과 사람과 사회가 풍요를 나눔’

감이랑의 경영이념이다. 자연과 사람과 사회가 풍요를 나눌 수 있도록 하는 회사가 있을까? 홍 대표는 자신 있게 가능하다고 말한다.

“우리 인간이 지금까지 자연을 짓밟고 훼손한 결과, 환경 문제가 터지는 등 자연의 역공이 시작됐다고 봐요. 지금 현재의 금융 위기도 마찬가지죠. 우리 사회가 너무 경쟁만을 앞세우고 인간미가 없어졌잖아요. 공동체가 살아있는 사회, 자연과 사람, 사회가 서로에게 선순환 작용을 하는 사회를 만들고 싶어요. 조그만 청도 지역이지만 그 꿈을 이루고 싶습니다.”

그의 말에서 청도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엿보이지만, 그는 사실 이 지역 사람이 아니다. 청도와는 별 상관 없어 보이는 강원도 태백에서 나고 자랐다. 그런 그가 청도와 연을 맺은 것은 청도 소싸움 대회 덕분이다. 대구에서 대학을 졸업한 그는 한국우사회 1호 사원으로 입사하면서 대구와 청도를 오가면서 직장생활을 했다.

소싸움 대회 일을 하면서 그는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처음 얼마간은 그러한 기대가 현실이 되는 것 같았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소싸움 대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것이다. 케이블 방송에서도 소싸움 대회를 생중계 해주면서 그러한 기대는 커졌다. 그러나 그의 마음 한 구석 깊은 곳은 허전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도시 생활에서 그는 큰 보람을 찾기가 어려웠다. 경쟁과 욕심이 몰고 온 비인간적인 모습에 그는 적잖은 상처를 받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소싸움 대회와 관련된 잡음도 안팎으로 들려오면서 그는 새로운 꿈을 펼치고자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그 시작은 자신의 청춘을 바친 청도에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랫동안 일하면서 행복하게 살 거리를 찾아보니 도시보다는 농촌에서 사는 것이 낫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청도에서 할 일을 찾아보았고, 틈새시장이 보이더라고요. 바로 청도의 가장 큰 부존자원인 감이었죠. 바로 그 길로 감 아카데미도 다니고 여기저기 책도 구해서 읽고 그랬어요. 그리고 준비가 어느 정도 됐다 싶었을 때 회사에 사표를 냈습니다.”

그는 2006년 7월 회사를 그만뒀다. 입사한 지 6년 만의 일이다. ‘농업에서 인생의 후반부 준비해보자.’ 그가 사표를 쓰면서 스스로에게 다짐했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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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기업이 많이 생겨야 농촌이 살아나요.”

그는 농촌에서 인생의 새로운 승부수를 던졌다. 하지만 논과 밭을 사서 이주하는 일반적 형태의 귀농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가 그러한 선택을 한 이유는 지금 농촌에 필요한 것은 농기업 활성화를 통한 농가 소득 증대라는 생각에서다. 부가가치가 낮은 농산물의 생산과 공급으로는 농가소득 증대의 한계가 있기에, 가공산업에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러나 막상 경험해 본 농촌기업의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경험과 기술이 전무한 귀농 사업가가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었다.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했고, 모르는 것 투성이였다. 답답한 마음에 그는 농림부 홈페이지를 통해 장관에 편지를 썼다. 농기업 지원을 확대해 농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얼마 후 담당국장으로부터 답장이 왔다.

“2007년이었어요. 농촌 문제는 자금 지원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생산이나 포장, 판로, 마케팅 등 시스템 구축을 통해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글을 올렸죠. 그런데 어느 날 전화가 왔어요. 장관님이 그 글을 읽어보고 담당국장에게 직접 전화를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면서요. 앞으로 정책 공청회 등 정책을 수립할 때 의견을 반영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물론 그날 이후 다시 연락은 오지 않았습니다.(웃음)”

법인 설립 초기에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긴 했지만,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익힌 마케팅과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비교적 빠른 시기에 사업을 제 궤도에 올려놓았다.

감과 같은 과실 작물의 가장 큰 단점은 비수기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감의 경우 감 출하 시즌인 10월부터 2월까지가 한해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다른 시기에는 매출이 큰 폭으로 줄어들어 대책 마련이 필요했다. 홍 대표는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다가 어버이날 마케팅을 떠올렸다. 어버이날 선물로 카네이션과 함께 감 가공상품을 패키지로 파는 상품을 만든 것. 이를 위해 지역 우체국과 함께 판촉을 벌였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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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로 건너 떠난 농촌, 고속도로 타고 돌아오도록

홍 대표는 현재 감을 이용한 새로운 상품 개발에 나서고 있다. 감 가공을 하고 나면 감 껍질이 버려지는데, 이를 이용해 감식초를 만들어 상품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른바 ‘치킨 무’라 말하는 초절임 무에 빙초산 대신 버려지는 감껍질을 이용해 만든 감식초를 사용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경북대 식품연구소와 함께 제품 개발에 나선 상태다.

이외에도 감 가공의 자동화도 추진 중이다. 감말랭이 가공 과정에서 상당 부분 수작업을 통해 감껍질을 벗기는 데, 이를 자동화하는 기술을 개발하려는 것. 농업진흥청 농업인 기술개발 공모과제에 그의 아이디어가 선정돼 곧 기술 개발에 나설 예정이다. 아직 사람의 손길이 많이 필요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이 그가 기술개발에 적극적인 이유다.

그가 새롭게 준비하는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농촌 체험 사업이다. 청도 지역에는 많은 감나무가 있는데 그 중 방치돼 있는 감나무가 상당수 있다. 지역에 유휴 농가가 늘어나고 고령화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관리되지 않는 과수원이 많기 때문이다. 그는 감 농가와 함께 이러한 감나무들을 도시민들에게 분양하는 사업을 준비 중에 있다.

이를 위해 지역의 청년들을 한 데 묶을 생각이다. 감 가공 사업을 하는 청년들을 모아 청도지역 감 가공사업 청년협의회를 구성하고자 한다. 이 모임을 통해 감 농가 체험 사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농가 소득 증대와 청도반시 홍보가 이 사업의 목적이다.

또 청도반시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 청년협의회를 적극 구성할 생각이다. 감 가공 사업자 대부분 가족들이 감 재배를 하고 자식들이 가공을 하는 형태인데, 혼자서는 전체 시장에 대응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 함께 모여야 교섭력도 높이고, 판로도 공동으로 개척할 수 있다는 게 홍 대표의 생각이다.

그가 농촌에 터를 잡은 지 이제 3년째다. 새로운 인생의 장을 친척 하나 없는 농촌에서 일군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닐 터. 그러나 그에게서 피로한 기색이 엿보이지 않는다. 자신이 그곳에서 기회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농촌은 그에게 새로운 기회이자, 앞으로 풀어내야 할 숙제가 많은 새로운 도전과제다.

“농업과 농촌에 대해 우리 사회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내가 생활할 터전이라고 관심을 가지면 도시 보다 많은 기회를 주는 곳이 농촌이라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들이 어진에 신작로를 지나 도시로 나갔지만, 이제는 고속도를 타고 다시 농촌을 찾게 만드는 그러한 농촌으로 만들고 싶어요. 우리 감이랑이 그런 역할을 하게 됐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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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소기업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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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작성자 소개

노준형은 전공이 뭐냐고 물어볼 때가 제일 난감하다. 전자공학과 글쓰기의 상관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회로설계(Circuit Design)와 글쓰기의 원리는 동일하다고 종종 주장한다.
몇 차례 취재기자를 꿈꾸며 <코리아포커스>, <아시아경제 브이에스뉴스> 등에서 짧게나마 기자생활도 했으나 불가항력적 상황에 밀려 지금은 현재 IR 대행사 아이피알파트너즈에서 일하고 있다.
‘노대리의 직딩일기’와 같은 자전적 에세이를 쓰고 싶지만, 잦은 야근에 치여 하루하루 꿈을 내일로 미루고 있다. 희망제작소의 소중한 부름을 받게 된 것에 감사하며 사는 소박한 직장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