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편집자 주/올 여름 스페인의 아름다운 휴양도시 산 세바스티안에서 사회혁신 섬머스쿨(Summer School on Social Innovation 2008)이 열렸다. 이 섬머스쿨에 참가하고 있는 희망제작소 기획2팀 김연희 팀장이 현지에 도착해서 짐을 풀기 바쁘게 첫 참가기를 보내왔다. 평소 ‘봉순엄마’로 불리며 어디서든 다재다능한 끼를 발산하는 김연희 팀장은 행사 기간 동안 생생한 현지 소식을 부지런하게 전해줄 예정이다.



한 달 전인가 갑자기 학교를 다녀오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학교라면 질색할 나인데, 이번 만큼은 조금 다릅니다. 스페인 북부 해안의 아름다운 휴양도시 산 세바스티안(San Sebastian)에서 열리는 여름학교, 그것도 사회혁신을 주제로 하는 학교(Summer School on Social Innovation 2008)이기 때문입니다. 섬머스쿨은 영국의 영파운데이션(The Young Foundation)과 스페인 바스크지역의 몬드라곤 협동조합(Mondragon S. Coop.), 그리고 사회혁신을 촉진하고 정보, 지식과 경험을 교류하기 위해 조직된 국제네트워크조직(Social Innovation Exchange; SIX)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행사입니다.


첫 행사 주제는 사회혁신 방법론


올해로 첫 번째 열리는 이 행사는 특히 영국, 유럽,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사회혁신에 대한 관심과 사회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특히 영국에서는 많은 중간지원조직(intermediaries)들이 생겨 사회혁신을 추구하는 단체, 기업들에 펀딩하고 지원함으로써 국가 전체적으로 사회혁신을 촉진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이 분야의 연구라든지, 컨퍼런스들이 생겨나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영국이 사회적기업과 관련해서도 활성화되어 있는 상황과도 연결해볼 수 있습니다.

올해 섬머스쿨에서 주로 다룰 주제는 방법론(method)에 관한 것입니다.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고안하고 접근해가는 방법들을 말합니다. Young Foundation은 앞으로 사회혁신을 위해 고안된 방법론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그것들이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지, 그리고 그 효과는 무엇인지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다고 합니다.

실제로 사회혁신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모아 직접 각자의 경험을 말하게 하고 서로 교류하고 토론하게 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사회혁신을 촉진시키고 확장시키는 것이 섬머스쿨의 주된 목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연구를 시작으로 영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실제 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이나 연구자들로부터 경험과 지식을 끌어내고 이를 분석하여 세계적으로 사회혁신을 위해서 재사용될 수 있도록 혼합하고 변용하는 일을 한다고 합니다. 결국, 사회혁신 흐름을 확장시키고 촉진할 수 있는 촉매제를 만들고 유통시키겠다는 것으로 사회혁신에 대한 리더 혹은 씽크탱크 역할을 자청하고 나선 것입니다.


영화제와 재즈의 도시로 유명한 산 세바스티안


산 세바스티안? 그렇습니다. 산 세바스티안은 오랫동안 작은 어촌마을이었다가 1174년쯤 자치왕국도 세워지고, 귀족들의 휴양지로도 애용되다가 현대에 와서는 산 세바스티안 영화제와 산 세바스티안 재즈 페스티발이 열리면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도시입니다. 산 세바스티안 영화제에서는 우리나라의 봉준호 감독이나 김기덕 감독 등이 수상한 바가 있습니다. 아…축구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레알 소시에다드 연고지, 그리고 이천수가 비록 벤치에서지만 활약한 적이 있는 도시라는 것도 빼놓을 수 없겠네요. 안타깝게도 제가 도착하기 바로 전날까지 재즈페스티발이 해변가에서 열렸다고 합니다. 해변가에서 재즈라…… 생각만 해도 낭만적인데 아깝게 놓치고 말았습니다.

서울에서 마드리드까지 약 12시간, 여름이면 거의 사막 같은 더위를 뿜어내는 마드리드를 벗어나 삼등열차를 타고 6시간 30분 정도를 북쪽으로 올라가면 프랑스 남부 국경에 접한 바스크주의 산 세바스티안을 만날 수 있습니다. 휴양도시답게 따뜻한 햇살과 해안가에서 불어오는 기분 좋은 산들바람이 삼등열차에 지쳐 굳어진 몸을 부드럽게 마사지해주었습니다.

택시를 타고 숙소로 가는 동안 세계적으로 아름답다고 하는 라콘자(조개더미) 해변을 볼 수 있었습니다. 글쎄…나지막한 산으로 둘러싸인 말발굽 모양으로 아담한 맛은 있으나 왜 세계적으로 아름다운 해변이라고 호들갑을 떠는지는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세계적으로 훨씬 더 아름다운 해변이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사람이 그런 말을 했거나, 작은 어촌마을을 세계적인 명소로 만들기 위해 그렇게 주문 혹은 포장을 했거나 둘 중에 하나입니다. 아마 후자쪽이 아닐까요……


Young Foundation 대표 Geoff Mulgan을 만나다


숙소에 도착하여 짐을 풀었습니다. 묵고 있는 곳은 대학교 기숙사인데 화려하지는 않지만 아주 깨끗하고 쾌적한 대학교 기숙사입니다. 대충 정리를 마치니 6시쯤인데, 저녁 9시나 되서야 전세계에서 모인 여름학교 참가자들이 모여 저녁을 먹는다고 합니다. 배고파 죽겠는데 스페인은 시에스타(지중해 연안 국가와 라틴아메리카의 뜨거운 한낮 여름에 낮잠 자는 습관으로 생산성 문제로 공식적으로 폐지, 현대에는 많이 사라지고 있음)가 있고, 저녁시간이 상당히 늦으며 열정적인 밤문화를 즐기는 것으로 유명한 나라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산 세바스티안으로 오기 전 마드리드에서 하룻밤 묵은 곳이 시내 한 중간의 호스텔이었는데 새벽 4시까지 너무 시끄러워서 잠을 못 이루기도 했습니다.

미팅 시간인 저녁 8시 30분에 로비로 내려가니 몇 명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 중에 제가 알아볼 수 있었던 사람은 사진으로 본 적이 있는 Young Foundation의 대표 Geoff Mulgan이었습니다.

Geoff Mulgan은 오는 10월 희망제작소가 여는 사회창안 국제 심포지엄에 발제자로 올 예정이기도 합니다. 먼저 다가가 아는 척을 했더니, 어떻게 알았냐며 너무나 놀라면서 반가워했습니다. 사진보다 훨씬 젊고 잘 생겼다고 칭찬을 했더니 역시 좋아하더군요.(역시 칭찬이 먹히는 건 유니버설^^) 영국은 물론, 이탈리아, 프랑스, 덴마크, 중국, 레바논 등에서 온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습니다.

비영리단체는 물론 사회적 기업, 정부기관, 기업, 중간지원조직, 협동조합, 연구소, 학교 등 일하는 곳도 가지각색이었습니다. 이처럼 정부와 기업, 그리고 제 3 섹터의 경계를 넘는 교류와 토론 역시 이 행사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부분입니다. 대강의 소개를 마친 후 삼삼오오 짝을 지어 저녁식사 장소인 구 시가지로 걸어갔습니다.


스페인 골목을 걸으며 한국을 돌아보다


걸어가는 동안,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청계천 이야기’나 ‘오마이뉴스’에 대해서 가장 많이 물어왔습니다. 그리고 간혹 ‘촛불집회’에 대해서 묻고 관심을 갖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들 사례들이 특히 영국 사람들에게 알려진 이유는 Geoff가 사회혁신의 사례를 들어 많이 이야기하고 다니기 때문입니다. 특히 Young Foundation의 연구에서도 다루어진 적이 있는 ‘오마이뉴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정말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오마이뉴스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시민참여형 저널이라는 개념은 거의 혁명에 가깝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해외 언론에서도 많이 소개된 바 있다고 합니다.

희망제작소는 ‘모든 시민은 연구자다’, ‘모든 시민은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는 힘이 있다’라는 콘셉트를 지향하고 있다고 설명해주었습니다(오마이뉴스 칭찬을 너무해서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했는데, 사실인가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한 30분쯤 걷자 우리나라 골목길, 특히 이제는 재개발로 없어진다고 하는 피맛골과 같은 느낌의 구 시가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이런 구 시가지를 못 살려서 안달인데 우리는 없애려고 안달인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구시가지는 타파스(술과 간단한 안주를 파는 스페인식 선술집)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10시쯤이나 시작된 저녁식사는 12시까지 이어졌습니다. 해변도시답게 해산물 에피타이저로 시작해, 돼지고기 넙적다리를 말렸다는 ‘하몽’, 적포도주, 오렌지, 럼을 섞어 만든 전통주 ‘샹그릴라’로 이어졌고, 배가 불러 더 이상 먹을 수 없을 때 드디어 메인 디쉬가 나왔습니다. 꼭 닭다리처럼 다리를 하늘로 쳐들고 누워있는 우스꽝스러운 ‘몽크피쉬(monk fish; 아구)’와 연어구이는 거의 손도 못 댈 정도였으니까요.

식사 후 12시부터는 클럽을 돌기 시작했는데, 섬머스쿨이 내일 9시부터 시작되는 것이 맞는지 궁금할 정도였습니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사회혁신가들은 그야말로 전형적인 스페인식 밤문화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노는 것을 좋아하는 나지만, 20시간 넘게 산 넘고 물 넘어 온 나로서는 거의 체력이 바닥난 데다 내일 섬머스쿨에서 난생 처음으로 발표(그것도 서툰 영어로;;;)도 있었기 때문에 먼저 자리를 일어나겠다고 했습니다. 어쩌다 영어로 발표하고 토론하겠다는 이런 몹쓸 용기가 났는지 나도 모릅니다.

내가 일어나자 나랑 비슷하게 긴 여정으로 먼 거리를 달려온 사람들이 하나 둘씩 따라 일어서면서 자리는 대강 마무리가 되었습니다(졸지에 분위기 킬러가 됨). 산세바스티안에서의 첫날밤은 이렇게 기울어졌고, 내일부터 본격적인 썸머스쿨이 시작됩니다. 앞으로 좌충우돌 섬머스쿨, 전 세계의 사회혁신가들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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